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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 Apr 10. 2022

코타로에 대한 오해가 있어

<코타로는 1인 가구> 2022

 원룸 시미즈 203호에 새로 온 사토 코타로, 그는 홀로 사는 4살짜리 소년이다. 이사 온 날 고급 티슈를 사서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이 먹을 음식을 요리하고, 청소와 재활용은 왠만한 어른보다 잘 해낼 수 있다. 그 어떤 슈퍼 히어로물을 봐도 픽션의 영역이니 눈감아줘왔지만 이번만큼은 불쑥불쑥 반발감이 생겨난다. 코타로는 학대와 방치 속에서 자란 피해아동이기 때문이다. 코타로의 어른스러운 행동들은 대부분 학대당한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에피소드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스토리의 중심축은 코타로의 전사를 밝히는 일이고, 서브축은 대개 이런 식이다. 코타로 주변의 미숙한 어른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고민하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 이들은 코타로에 의해(대부분 코타로의 과거 학대 경험으로부터 비롯한 '교훈'에 기대) 갱생하고 깨우쳐서 옳은 길로 나아간다. 만화적 상상력이 다분히 개입한 코타로의 설정과 달리 주변 어른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여성, 과거의 영광을 뛰어넘지 못하는 만화가, 이혼 후 혼자 사는 중년의 남성 등의 캐릭터들은 일본의 사회 문제를 안고 있다. 이들은 코타로와 맞물리며 자신이 처한 문제를 바로 마주하고 나아갈 방향을 알게 된다. 그 결정이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상처를 인정하고 앞으로 가겠다는 다짐이 어른들을 성숙하게 만든다.



 거칠게 서술했지만 <코타로는 1인 가구>의 특기는 극적인 사건을 배제하고 설득력있게 인물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연출이다. 이 때 어떤 캐릭터도 소모되지 않고 존중받으며 각자의 사정을 담담하게 전달한다. 그와 함께 코타로의 치유가 진행되는데, 대부분 카리노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다. 카리노는 생활력도 사회성도 부족해보이는 만화가지만 코타로의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눈치가 빠르다. 이는 그가 코타로와 아픔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테다. 카리노는 사실상 만화의 유일한 '어른'으로서 교량 역할을 한다. 코타로가 모든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지혜로운 길로 이끄는 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차 깨닫게 만들어 준다. 그것은 만화 또한 명백히 인식하고 있는 점이나, 카리노의 존재는 자주 흐려져 코타로를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적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어른의 길잡이처럼 생각하는 오류에 빠지기 쉬워진다.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김소영은 어린이는 어른의 길잡이라는 표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어린이가 가르쳐 주어서 길을 아는 게 아니라 어린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고심하면서 우리가 갈 길이 정해지는 것이다.' 어린이는 다 자라고 나서 사회에 배치되는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자란다. 그런데 코타로는 이미 성장을 끝낸 것처럼 오인되어 어른들의 고민과 갈등을 해결해주는 다른 생명체처럼 읽혀진다. 슈퍼 히어로가 힘을 얻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인과가 존재한다. 코타로의 초인에 가까운 능력들이 학대 경험에서 온 것이라는 도식은 너무나 폭력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만화의 흐름은 그런 결과만을 내게끔 짜여져 있다. 어린이로 설정된 캐릭터를 '감상하고' 싶어지는 어른의 잘못된 대상화는 너무나 오래되어왔다.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일상의 잔잔한 리듬으로 위로하는 이 만화의 아쉬운 점은 코타로가 너무나 인과가 명확한 행동만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코타로를 이해하고 보듬을 새 없이 코타로가 우리를 먼저 이해해주고 보듬어 준다. 어른들이 코타로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다. 

 결국 이 시대의 어른들은 어린이가 되고 싶은 것 같다. 다들 보호하는 존재가 아닌 보호받는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를 은근하게 노출한다. 요즘 들어 심하게 느끼는 이 역행의 감각을 <코타로는 1인 가구>의 후기를 보며 더욱 느꼈다. 나는 코타로가 더 어린이의 세계에서 뛰어 놀기를, 어른들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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