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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 Oct 07. 2022

힘겨워도 일기 쓰기

20221007 - 10.9에서

지금은 3시 21분. 날이 얄미울 만큼 좋다. 또또 좋은 마음 말고 얄밉다는 단어를 꺼내고 있군. 나는 이런 좋은 날씨를 늘 아쉬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떤 상황에도 이 청명함을 만끽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지 않아서 인 듯하다. 아니면 이 순간이 지나가버릴 거라는 슬픔을 미리하고 있는 것이거나. 좋은 것을 누리고 있어도 오롯하게 즐기지 못하는 이 마음을 어찌해야할까. 오랫동안 글쓰기를 하지 않았던 터라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타자를 친다. 오늘 글의 주제는 1. 스스로에 대한 진단 2. 맞닥뜨린 고민 3. 즐거운 상상이다.


휴직을 한 지도 벌써 7일이 지났다. 연차를 썼던 날까지 합치면 2주의 시간이 지난 셈이다. 북한산에 갔던 9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나는 '회사를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정'에 대한 시나리오를 10가지 정도 상상했다. 회사에 대해 생각하는 게 두려워서 자고 싶은데, 잠을 자면 내일이 온다는 사실이 또 두려웠다. 뭘 해도 회사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밤늦게까지 이어질 예정된 술자리가 무서웠고 그 다음날 새벽같이 촬영장에 가야하는 스케쥴도 벅찼다. 부산 출장이 제일 끔찍했는데, 대체 휴가도 쓸 수 없는 데다가 사흘을 집에도 가지 못하고 회사 사람들과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어정쩡하게 할 일도 없이 불편함만 지속되는 그 시간들이 무서웠다. 결국 내 고질적인 걱정과 염려가 나를 잠식한 것과 마찬가지다. 살면서 걱정했던 만큼의 일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불행은 준비되지 않은 마음이었을 때 더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습관적으로 걱정하고 염려했다.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 일이 일어나기 직전 상황이 오면 걱정하는 마음은 지쳐버리고 '될대로 되라지'하는 모드가 된다. 그리고나면 얼레벌레 일이 지나가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일은 다르다. 협업과 평가가 계속해서 이어져있고 차곡차곡 쌓여서 내 평판이 되고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게 만든다. 나는 내 실수를 늘 감추며 살았다. 그런데...일은 그렇지가 않은 거다. 얼렁뚱땅 해결한 뒤 치워버린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예토전생되어 내가 누구인지 말한다. 실수하는 나를 참을 수 없다. 그렇다고 실수를 안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없었던 일이기를 바란다. 누구나 실수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실수가 내 모든 것이고 나라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다. 평생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듣기 힘들 것 같다. 꼼꼼하게 보려고 노력해도 전혀 그렇지 못한 결과물과 마주할 뿐이다. 처음이라 다 그런걸까? 처음인 사람들 중에서도 내가 아주 못하고 멍청한 건 아닐까? 내가 두려운 건 내가 남보다 갑절의 노력을 들여야 하는 멍청이일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구제불능한 나. 그런데도 노력이라는 재능도 없는 나. 그러니 나는 나를 부풀린다...끊임없이...내가 괜찮은 사람, 멋있는 사람임을 설득시키려 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며 살았다. 실제로 그렇게 되려면 내가 별로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 나는 결국 인정할 수 있는 부분만 인정하거나 오히려 내 장점일지 모르는 것들도 깎아내렸다. 사실은 그게 장점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스스로 그걸 공격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런데 남들이 그 말에 수긍하기라도 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거다. 남들이 나를 이렇게 본다면 내 생각보다도 그 말을 신뢰한다. 내가 나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다른 사람의 말에 이리저리. 되고 싶은 것과 실제 나에 대한 괴리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대화를 할 때면 무조건 다른 사람의 선호를 찾아서 공감하기만 하고 사실 내 취향이 뭔지는 상대방이 모를까봐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대부분 나처럼 그들의 취향에 귀기울여주지 않았다. 내가 재미없게 얘기해서 그런걸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정말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는데, 막상 가서 내게 꽤 오래된 정신적 문제가 있어보인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객관적으로 내가 힘든 사람이라는 걸 증명받는 기분이라 기뻤다. 난 정말 힘든 사람이라고! 대외적으로 창피한 모습이겠지만 나는 이 생각을 10년도 넘게 했다. 불행 배틀에서 늘 1등을 하고 싶었다. 나는 달라, 내 불행은 진짜야같은 말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나를 불쌍하게 여겨줄 것 같았다. 나는 동정받는 게 좋다. 언제까지나 어리광부리고 싶고 내가 뭘 하든 칭찬만 해줬으면 좋겠다. 난 사실 조금이라도 비판을 받으면 자기혐오에 빠져 죽고 싶어진다. 그 직전 단계에서는 상대를 마구 공격한다. 어떤 의도로 이야기하느냐에 상관없이 내 멋대로 그들을 판단한다. 내가 우스워보이니까 저런 말을 하겠지? 와 같은. 자기혐오나 상대혐오로 끝나는 엔딩이다. 그래서 친구와 싸우면 늘 연을 끊는 엔딩이었다. 사실 나를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것도 생각보다 내가 너무 별로여서 내가 더 싫어질까봐 그러는 게 아닐까? 솔직할 수가 없다 나는 누구에게도...거짓말이 일상인 사람을 누가 좋아할까. 내가 사람들의 기준치, 허용범위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일까봐 두렵다. 다들 신입때는 실수하지, 아직 주니어인걸, 이라는 말을 들어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나는 10년이 지나도 성장해있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전문가가 되는 일은 불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일의 첫 단추도 다 잘못 꿴 것 같다.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그러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밉다. 미우면 안되는데 미울 이유도 없는데 그냥 미래의 나를 혼낼 사람들일 것 같아서 밉다. 그래서 무섭고 숨이 턱턱 막힌다. 사무실에서 나를 보는 것도 싫다. 일이 맡겨지면 무섭기만 하다. 못할 것 같고 울고 싶다. 어떻게든 해야한다는 생각이 나를 계속 조여온다. 그렇게 제대로 마치지 못한 일이 사수에게 넘어가면 정말 하등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다가도 그 기분에서 벗어나긴 했으니 상관없지 뭐, 하고 전혀 피드백을 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나는 그들의 말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만 하고 딱히 다시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없다. 왜 그럴까? 이 정도가 지금의 내 상태다.


고민은 단순하다. 11월에 이 일을 계속할 지, 아니면 다른 일을 찾을지. 진단서 문제 때문에라도 18일 즈음 회사와 다시 연락을 해야 할 텐데 지금으로서는 그 생각만 해도 불안하고 싫다. 다른 일을 찾는다는 선택지는 크게 영화 일을 하느냐와 다른 직업을 찾느냐인데...처음에는 무조건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 싶다가도 많은 기준점이 되는 첫 직장을 이렇게 놓치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것도 내 생각보다는 다른 사람들 얘기를 그대로 내 것으로 받아들인거다. 이 결정을 하고 나면 나의 나머지 10월을 어떻게 보낼지도 조금 명확해질텐데 결단을 내릴 수가 없다.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는 일은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라...진짜 뭐 어쩌라고? 매일 놀면서도 불안하다. 노는 법도 나는 잘 모르는 나머지 무작정 사람 약속만 잡고 있다. 10월 말이면 뭔가 해결되어있겠지...생각하면서.


그래서 하는 즐거운 상상은, 우습게도 기분이 좋을 때는 이것저것 재밌을 것 같다가 기분이 처지면 세상 아무것도 내게 즐거움을 줄 것 같지 않다. 기대감이라는 게 잘 만들어지질 않는다. 시작하는 힘이 잘 차오르지를 않는다...내 파트너는 자신의 즐거움은 오로지 자신 혼자 누리는 것인 사람이라 다른 사람의 무언가를 찾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은 아니라서 도움을 구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최대한 나가 본다. 내일은 뜨개질을 해볼까...


두서없지만 오늘 긴 글을 한 편 쓴 것도 생각을 정리하고 되새기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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