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사진은 부끄러움을 덮어준다. 같은 장면이더라도 두 가지 색으로 축약하면 어쩐지 촌스러움을 덜어내는 느낌이었다. 해서, 훗날 돌아보기 민망하고 오그라들지 모를 미성숙한 지금의 촌티를 잔잔하게 안아주는 예방 접종 같은 것이었다고 해야 할까.
흑백 사진은 어제의 파편들을 진공으로 포장해준다. 얼마나 오래된 일인지 가늠할 수 없게 애초부터 낡은 모습으로 박제하는 일. 너무 눈이 부셔 아플 지도 모를 기억들이라면 차라리 흑과 백으로 색이 지닌 생기를 도려냈었더랬다.
흑백 사진은 추억을 기억으로 식혀준다. 색채에 담긴 날씨와 공기와 마음 따위의 온도를 낮추어, 괜한 감상에 젖지 않도록, 뻔한 그리움에 잠기지 않도록. 애틋함의 온기를 걷어내어 담백하고 미지근한 맛만 남게 말이야.
정작 당신의 사진들은 흑백으로 찍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실수, 아주 큰 실책
흑백 사진을 왜 좋아하는지 물으셨기에
좋아하는 이유 여럿, 가 닿기 어려울 한참 늦은 답변.
[사진 : 바르셀로나, 스페인 / 샌프란시스코,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