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볼까 -제주 #5 애월 | 190712
오늘도 잘 자고 일어났다. 밖을 보니 하늘이 맑아서 바다에 또 들어갈 수 있겠다 생각이 제일 먼저 들면서, 그 이상 바랄 게 없다.
조식은 신청하지 않았고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아침에 문을 여는 곳은 커피 체인점들 뿐이다. 가까운 파스쿠찌는 1층뿐이라 바다가 잘 안 보일 것 같고, 바다 경치가 좋다고 하는,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스타벅스로 가기로 한다. 이곳 제주에서만 마실 수 있는 스타벅스 음료도 먹고 싶었으니까 산책 겸 걸어가 보자. 운동을 안 한 지 일주일쯤 되니 몸이 뻐근하기도 하고.
큰길로 나오니 해안을 따라 올레길이 있다. 조금 지나니 예전에 머물렀던 '빌라 드 애월' 숙소도 보이고, 그러고 보니 여기 올레길은 걷기가 좋아서 오며 가며 몇 번 다녔던 생각이 난다.
날씨에 감탄하며 바다를 보면서 걸으니 생각보다 금방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아침 식사를 안 했으니까, 배를 채울 겸 쑥떡 프라푸치노를 주문했다.
이층에 올라와서 어제의 여행 기록도 하고, 야외 자리에도 나가 앉아보았다. 하늘은 맑은데 그리 덥지 않고 바람이 살랑 기분 좋게 불어온다. 알아온 대로 바다가 아주 시원하게 잘 보인다.
제주인 친구와 다시 만났다. 어제의 물놀이 경험을 참고하여, 오늘은 협재 바다에서 떠다닐 생각이다. 어제 하루 종일 슈퍼밴드 노래만 틀어댄 게 친구에게 미안해서, 오늘 음악은 멜론 추천 리스트를 골랐다. 약간 놀랄 정도로 내가 일부러 선곡한 것과 같이, 지금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듯하다.
협재 해변의 개인 텐트 구역에 자리를 잡고, 밥을 먹으러 왔다. 간단히 김밥, 떡볶이 같은 걸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길가로 나와서 두리번거리니 떡볶이라는 메뉴가 있는 가게가 있어서 '가리비안 해적'으로 들어갔다.
http://naver.me/5tsoHDY2
컨테이너 안의 약간 허름한 술집 분위기가 맛과 위생을 잠시 의심하게 하였다. 하지만 맛을 봐야 어떤지 알지. 얼음 생맥주, 톳 김밥, 냉라면, 비빔 떡볶이를 주문하였고, 친구는 먹어보더니 맛있다고 다음에 또 오겠다며 '톳 김밥, 얼음 생맥주' 메뉴 이름들을 되뇌었다. 나도 역시 맛있게 잘 먹었는데 특히 톳 김밥이 특히 제주스럽고 좋았다.
협재 바닷가는 날씨가 좋아서인 지, 아니면 좀 더 유명해서인 지 중문 색달해변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물이 좀 빠져있어서 깊이는 얕고 파도는 작게 잔잔하고 가드분들은 수영 구역 주변으로 많이 계셔서 안전하게 놀 수 있었다. 누워서 둥실둥실 뜬 채로 움직임은 없지만 재미있게 놀았다. 정말 즐거웠는지 지금 보니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친구가 카페를 가자며 내비게이션으로 '명월 국민학교'를 찍으라고 한다. 국민학교? 초등학교가 된 지 언젠데 갑자기 국민학교래? 알고 보니 폐교된 자리에 카페를 만들어서 이름이 국민학교인 채로 있었던 것이었다.
커피 반에 가서 마실 거리를 주문하고, 창가에서 지켜보다 비워진 빈백에 자리를 잡았다. 역시 눕는 게 최고 좋다! 현무암 돌담에 푸른색들 너머 멀리 비양도까지 보이니, 이만한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건지 감개무량한 지경이다.
친구와 헤어지고 숙소로 와서 정리를 한 후, 오면서 눈여겨봐 둔 바다가 보이는 카페 '언니커피'에 간다.
저녁 식사를 겸할 요량으로 커피콩 빵을 고르고, 저녁이 되면 좀 쌀쌀해질 것 같아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였다.
이층으로 올라오니 매트리스 같은 넙적한 소파들이 있어서 조금 의외였다. 이렇게 누워 자도 될만한 자리를 만들어두다니, 여기는 테이블 회전에 대해 관심이 없나 보다. 잠시 왔다 간 손님 두 명 말고, 비가 오기 시작해서 그런 지 오는 사람이 없었다. 혼자 이 좋은 분위기에서 취향도 잘 맞는 카페 음악을 들으며 쉬었다. 이 넓은 공간에 혼자 있으니 어쩐지 오늘 밤은 내게만 빌려주는 선물 같았다. 덕분에 소파에 누워서 어두워지는 애월 바다를 실컷 바라보았다.
조금 후에 서바이벌 TV 프로그램인 '슈퍼밴드'의 최송 결선 방송을 해서 숙소에 보러 가야 한다. 요즘 유일하게 챙겨보는 방송이다. 편의점에서 '제주 백록담' 맥주를 사고, 안주는 근처 '바당 한 그릇'에서 새우튀김을 포장 주문하였다.
카카오톡 단체방과 개인방을 오가며 슈퍼밴드를 보는 친구들끼리 신나게 채팅을 하면서 보았다.
조금 아쉽게 응원하던 팀은 1등이 아니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모여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마 각자의 자리로 갈테고 이 팀이 계속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 이제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끝나고, 내 여행도 끝나고, 마지막 밤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