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인의 끼니를 위한 요리
평소에 자주 듣는 질문이다. 대답을 하려고 그간 생활을 떠올려보면 집에서는 거의 밥을 안 먹었던 것 같다. 일단 집에 들어가면, 거의 안 나가서 밖에서 사 먹지도 않고 음식을 시키지도 않으며 요리를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살은 나날이 쪄가는 걸까? 한동안 이 이상한 문제에 대해 꽤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것은 가끔 저녁 약속이 있을 때 마구 먹기 때문인 듯싶다. 난 적당히 보통의 양을 먹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주변의 말을 들어보면 밖에선 꽤 많이 먹어왔던 모양이다. 평소에 먹는 양은 작지만 폭식가이기 때문에 이 체격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만성 피로에 시달리면서, 이제는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우울감이 있었나 싶기도 한데, 늘 피곤한 상황에서 어떤 활동을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억지로 기운을 쥐어짜서 PT를 시작하게 되었고, 운동을 하는 1년 동안 체력이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보통 수준으로는 된 것 같다. 그렇게 괜찮다가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체력이 급격하게 나빠져서 힘들었다. 먹는 시간과 양이 불규칙했기 때문에, 어느 날, 식생활도 신경 써서 좋아지도록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19가 발생하고, 상근을 하다가 재택근무를 하는 생활로 바뀌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스스로도 밖에 나가는 일이 내키지 않아서 항상 집에 있게 되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밥도 집에서만 먹게 된다.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 안 좋고 모르는 사람이 오가는 것도 내키지 않기 때문에, 음식 배달 주문은 좋아하지 않는다. 점심시간에 다른 할 일도 없어서, 자연스레 간단하지만 요리로 만들어서 먹게 되었다.
엄마 님께서 가끔 반찬과 음식 재료를 보내주신다. 반찬을 보기 좋게 옮겨 담고 고기는 굽고, 간단하지만 요리를 해서 테이블에 잘 정리한 후에, 인증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린다. 멀리 살고 있고 살가운 딸도 못되지만, 잘 살고 있다는 모습을 나름으로 공유드린다.
2~3월에는 대부분 요리가 없는 음식들을 먹었다. 우선 인터넷으로 훈제계란을 두 판 주문했다. 귤 종류를 좋아하고 곧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는 생각에 천혜향과 한라봉을 번갈아가면서 다 먹어갈 때마다 한 박스씩 주문했다. 요즘은 온라인으로도 얼마나 다양하게 주문을 잘할 수 있는지 새삼 느껴져서 감탄했다. 주로 샐러드, 과일, 치즈, 레토르트 식품 (생선) 등을 주문했다.
과자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가끔 어딘가에서 조종을 하는 것처럼 한 번씩 많이 먹는 때가 오기도 한다.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들어오면 절대 안 나가려고 애쓰던 사람이 이상하게 일부러 나가서 사 오기도 한다. 그런데 집에 먹을 것들이 많이 있고 눈에 보여서 언제든 먹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들면 그런 일이 덜한 것 같아서 구색용으로 종종 사놓는다. 한동안은 조금씩 먹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데 어느 날이 되면 그래도 한방에 사라져 버리기는 한다.
즉석식품도 조리 단계가 있는데, 그동안은 데우는 것 이상은 귀찮아서 뭘 하지를 않았었다. 평소에 전자레인지는 별로 쓰지 않았어서 이사 올 때 정리를 한지라 지금은 없고 토스트 오븐이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데 편리하지는 않다. 그래서 집에서 뭔가를 먹을 일이 더 없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고 똑같은 음식을 먹어서인지 점차 볶음밥을 프라이팬에 데우고, 치즈나 간단한 것을 구워서 올리는 등 다른 시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고른 영양소가 포함되는 건강한 음식은 한식만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따뜻하게 먹고 싶어서 국물 음식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초반의 제조 국물은 어묵과 무만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어묵국, 콩나물 김치 국 같이 재료만 넣어도 어느 정도 맛이 나는 국물들을 만들었다.
봄이 오니 쑥국이 먹고 싶어서 도전을 해보았다. 쑥도 온라인 장보기로 냉동 볶음밥, 샐러드, 과일 등과 함께 주문을 했다. 쑥에 된장을 넣고 두부도 넣고 청양고추도 좀 넣어서 끊였는데 예상했던 맛과는 좀 달랐지만 쑥 맛이 조금 나긴 했다. 잘 안 해서 그렇지, 나는 요리를 하기만 하면 원래 잘하고 맛있게 되는 줄로만 알고 살았는데 아니구나. 아니면 실력이 줄었나 보다.
매생이 굴국 레토르트를 샀었는데 그때 들어있었던 건조 매생이와 엄마님이 보내준 조개관자를 넣어서 국을 끓여보았다. 건조 매생이가 생각보다 그럴듯했다. 따로 판다면 많이 사두고 싶다. 떡을 넣었더니 바다향에 쫄깃한 식감이 추가되어 포만감도 오고 꽤 괜찮은 한 끼 음식이 되었다.
집에서 간단하게나마 자주 음식을 만들게 되면서, 혼자 하는 식사는 대충 때운다는 생각이 조금은 줄어든 것 같다. 이전에 비해, 고기를 구워도 뭔가를 더 굽고 차려내고, 간식을 먹더라도 잘 담아서 차려낸다.
가끔은 하나의 요리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안 어울리는 재료를 한두 개씩 넣어서 이상할 때도 있긴 한데, 나름 발전하는 중인 듯하다. 토마토 달걀 볶음, 감바스는 재료들의 맛이 탄탄하기 때문에 실패하기 어려운 조합으로 생각된다. 탄수화물은 속은 불편하게 하지만 기분을 좋게 하고 배가 부른 느낌을 주어서, 그동안 멀리 해왔지만 다시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
여전히 요리도 조리도 별 관심은 없지만, 요리 시간과 실력을 더 늘려서 맛있고 다양한 집에서 해 먹는 식사를 해보고는 싶다. 나만을 위해서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점이 기분 좋다. 돈이 없다거나 밖에 나갈 수 없다거나 어떤 상황이 와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춰나가야지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지 않으려나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