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필름예술
계산기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
엑셀 프로그램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
김치 볶음밥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영화배우 -
이게 도대체 뭘까? 나는 이 영상들을 처음 봤을 때 3초 동안 생각이 멈췄다. 그리고 내 정신이 3초 동안 나가있다 돌아왔을 때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기대와 예측들이 깨졌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이었다. 마치 지하철에서 내리고 '지금이 저녁 7시니까 슬슬 어두워지고 있겠구나...' 하고 출구로 나왔는데 핑크빛으로 물든 하늘에 압도돼서 가만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그 감정처럼. 이 세 개의 영상 모두 다른 장르에 속했지만, 똑같은 감정을 전달했다.
물론 이걸 만든 사람도 단순히 재미로 만들었을 수도 있고, 보는 사람들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들이 창작을 넘어서 진지하게 예술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취미로 찍고 있는 필름 사진들이 이들과 같은 느낌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술]
나는 12년 전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카메라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당시에 나왔던 캐논 DSLR을 세워놓고 조리개와 감도, 셔터스피드를 조정하면서 어떻게 노출과 심도를 조정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렌즈를 통해 빛이 들어오면, 이미지센서라고 하는 장치가 빛 정보를 처리해서 하나의 파일로 만들어진다는 개념에 대해서도 배웠다. 당시에는 촬영과 편집 기술을 배우고 기계적인 원리를 깊이 파고드는 것이 나에게 있어 최선의 공부였던 것 같다. 그래서 촬영 과제를 하면서 카메라를 살펴보다가 더 근본적인 원리가 궁금해졌다. 이곳저곳을 뒤지며 자료를 찾았고 디지털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과정을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었다.
빛이 입자의 성질을 띄게 될 때 그 입자는 광자가 된다.
광자가 이미지 센서에 닿으면 센서를 구성하는 수많은 다이오드에 의해 잘게 쪼개져서 표본화(Sampling)되고, 광전 효과를 일으켜 전기신호로 바뀐다. 표본화된 전기 신호는 ADC변환기에 의해 양자화(Quantization)되어서 디지털 신호로 바뀌게 된다.
ADC에 의해 디지털 신호로 바뀐 데이터는
DCT계수에 의해 이산-코사인 변환을 거치고, 그 결괏값을 주어진 양자화 테이블에 따라 양자화를 진행하면 디지털 신호로 바뀌게 되는 꽤나 복잡한 과정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이 양자화된 값들을 상황에 따라 델타코딩, 엔트로피코딩과 같은 효율적인 데이터 압축방법으로 처리해서 품질은 최대한 유지하면서 데이터는 놀랄 만큼 줄어들게 된다. 그 후에 나오는 값들을 허프만 부호화(Huffman Encoding), 런렝스 부호화(Run-length Encoding)와 같은 방법으로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면 우리가 아는 JPG파일, MOV파일과 같은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진다.
1학년이 끝나고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을 했을 때는 4K 해상도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다음세대의 기술로 3D와 HDR이 꿈틀대고 있었다. 두 가지 모두 흥미로웠지만 나는 RAW 기록과 LOG 기록에 관심이 생겼다. RAW와 LOG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지만 이미지의 품질과 가능성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는 같은 방향을 갖고 있다. 특히 LOG 기록모드는 인간이 빛에 반응하는 특성을 고려해서 만든 너무나도 인간적인 기술이었다. 나약했던 원시인류는 어두운 밤과 동굴 속에서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 눈은 색을 인식하는 세포보다 밝기를 감지하는 세포가 더 많아지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밝은 부분보다 어두운 부분에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다. 이러한 우리 눈의 특성을 고려해서 만들어진 데이터 기록 방식이 LOG모드이다. LOG 모드를 잘 이해하고 활용하면 이상적인 대비와 색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졸업을 할 때까지 LOG모드를 지원하는 다양한 카메라를 빌려서 그들이 어떻게 다른지 테스트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더 선명하고 양질의 데이터를 담아내는 것이 나에게 가장 중요했다.
[대중예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취업을 하면서 나에게는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내 스승이자 사수였던 분이 "우리는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이야"라고 매일같이 말했고, 이때부터 이론적인 지식과 기술적인 것들을 조금씩 내려놓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중 예술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기울였다. 대중 예술은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소비되는 예술의 형태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좋아하고 관심 있어하는 것들을 창작하는 것이고, 나의 경우에는 프로젝트를 의뢰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제시하고 만드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필름룩'이라는 컨셉을 원하고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필름룩'을 열심히 만들었고, 잘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필름이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데 몇 년 동안 필름룩을 만들고 있던 것이었다. 이보다 더 모순된 게 있을까? 이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서 필름으로 사진을 찍었고 필름이 만드는 이미지를 서서히 배워 나갔다.
[필름 미학]
사진의 본질은 붙잡아 둘 수 없는 순간을 카메라의 시선으로 기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아예 다른 목적으로 카메라를 샀다.
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디지털로 스캔하고 그 스캔된 디지털 이미지를 보정하려는 목적이었다. 왜냐하면 디지털로 스캔된 사진에도 필름의 '감광 특성'이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감광특성이 보존된 필름은 어두운 부분에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된 우리 눈과 닮아있다. 그리고 필름에 발린 감광유제 속에는 수많은 은염 입자가 랜덤 하게 분포되어 있는데, 이는 인간의 망막에 분포된 시세포의 배열과 닮아있다.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선과, 어두운 부분에 다양한 색조를 드러내는 필름은 우리가 실제로 세상을 보는 것과 비슷하게 표현한다. 높은 빌딩에 빛과 그림자로 그어진 선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자세히 보다 보면 우리가 평소에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날카롭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빛의 반대편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10분 동안 가만히 바라본 적 있는가? 그림자는 생각하는 것처럼 새까맣지 않다. 그리고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그 어떤 색들보다 더 많은 색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눈이 그렇게 보도록 진화했으니까! 그래서 필름이 만드는 이미지는 우리에게 더 실제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나는 여전히 필름을 쓰는 것에 미학적인 이유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여전히 할리우드의 거장들이 필름으로 영화를 찍고, 필름을 디지털로 스캔해서 다시 디지털로 보정하는 과정들을 굳이 고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필름은 감광특성보다 더 중요한 것을 나에게 알려줬다. 바로 결과물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제한과, 36장이라는 한계!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는 그 자체가 나에게 엄청난 상상력을 자극했다.
처음 사진을 찍었을 때에는 필름의 디테일을 시험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노출만 잡고 마무리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번에는 이렇게 나왔으면 좋겠다...' 셔터를 누르기 직전에 했던 상상을 더듬었고 자연스럽게 사진에 덧대어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사진에 회화적인 요소가 나타났다. 필름이 만드는 인간적인 질감 위에 내가 생각했던 색깔을 섞으면 가끔 진짜 그림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그리고 한 장을 찍더라도 분명한 의도를 갖고 사진을 찍는 연습을 했다.
웃긴 얘기지만 필름을 찍을 때만큼은 '대중 예술'에서 '대중'이란 단어를 뺄 수 있었다.
본디 예술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운 것? 고상한 것? 숭고한 것?
아니면 그냥 나에게 즐거움을 주면 되지 않을까? 나를 감동시키거나,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들면 그게 예술인 걸까?
비트겐슈타인, 칸트, 헤겔, 벤야민, 들뢰즈, 그린버그 등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려 했고, 그 기준은 역사 속에서 계속 바뀌어왔다. 그중에 나는 장 보드리야르가 내놓은 개념에 대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고, 원래 존재하던 작품을 새로운 매체나 기술로 변형해서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 그 자체로의 가치와 의미를 가진다는 설명을 했다.
나는 사진을 필름으로 찍고, '디지털로 스캔된 필름사진'에 회화적 요소를 넣어서 '사진이 그림처럼 느껴지는' 보정 작업을 했다. 그리고 보정된 이미지의 리소스를 토대로 또 다른 영상에 이식하는 것으로 이미지를 완성한다. 이 어이없고 황당한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실제 눈으로 보는 것과, 실제 결과를 보는 것과, 그때의 감정을 상상하는 것의 괴리를 좁히는 데 너무나도 탁월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필름을 과거의 향수를 느끼고 싶어 사용하는 감성의 영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필름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논리적이고 당위성이 충분한 과정이다.
[이미지의 본질]
사진과 미술은 아예 다른 장르의 예술이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는 타임라인을 세워볼 수 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의 도구는 붓이었고, 재료는 물감이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사진이 등장했다. 사진의 도구는 카메라였고 재료는 필름이었다. 다시 기술의 발전으로 디지털 세상이 되었다. 모든 이미지가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었고 도구는 디지털카메라였다. 그리고 그 재료는 이미지 센서이다.
나는 이미지를 다루는 일을 디지털로 시작했다. 사람들은 디지털로 만드는 필름룩을 원했고, 이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필름으로 돌아가 사진을 찍었다. 내가 찍은 필름 사진이 회화적 요소를 반영해서 그림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화가들의 기법과 그렇게 그려야만 했던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함께 알게 되었다. 그림은 원초적으로 인간의 사상과 철학, 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미지를 표현하는 모든 매체들도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 본질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세상은 어떤 도구로 이미지를 표현하게 될까? 이미 아주 똑똑한 친구가 등장했고 이들의 도구는 알고리즘이다. 그리고 가장 기초적인 재료는 퍼셉트론이 될 것이다.
가끔 알고리즘이 창작의 영역을 잠식시켜 나가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완전히 대체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만약 극도의 정교함을 가진 알고리즘이 사상과 철학, 그리고 문학의 이미지를 완벽히 표현해 낸다면 지금 우리가 우려하는 일이 현실로 나타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시대는 흘러갈 뿐이고,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한 가지 명확한 건,
계산기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엑셀 시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김치볶음밥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영화배우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을 것 같다.
해당 스크립트를 토대로 아래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영상과 스크립트의 내용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