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은 따라올 수 없는 필름만의 영역

필름의 본질은 디테일에 있다.

by 흑조필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능이 더욱 개선된 디지털카메라들이 우후죽순 나오기 시작했다. 거기에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내가 찍은 사진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었고 디지털카메라는 집에 하나쯤은 꼭 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가전제품이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서서히 필름을 사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나마 영화에서만큼은 디지털이 필름을 뛰어넘을 수 없는 분야였다. 영화는 미장센과 분위기 있는 질감을 표현하는 것이 다른 매체보다 훨씬 중요했기 때문에, 해상도나 관용도와 같은 기술적 측면에서 압도적이었던 필름이 여전히 위용을 떨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디지털은 필름이 만드는 고유한 질감을 따라잡을 수 없었으며 크리스토퍼 놀런, 쿠엔틴 타란티노, 웨스 앤더슨과 같은 거장들을 필두로 많은 할리우드 감독들이 여전히 필름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아리의 알렉사나 레드 카메라와 같은 하이엔드 시네마 카메라가 나오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이들은 비용과 효율, 미학적인 부분까지 챙기며 거듭 발전했고 최근에 출시된 플래그십 모델들은 가히 모든 방면에서 필름을 뛰어넘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결국 코닥은 여러 가지 이유로 경영난에 허덕이다 2012년 파산 보호 신청을 내며 필름 시대의 종말을 알렸다.


이제 필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되었고 필름을 사용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최근에 나온 카메라들은 눈보다 더 선명한 화질과 최첨단 기능들로 무장했고 예전처럼 필름이 부흥하는 시대가 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제 필름은 그 고유한 질감을 원하거나 '옛날 감성'을 느껴보고 싶은 극소수 매니아층의 전유물이 되었다.


사실 지금 이 영상을 만들고 있는 나도 필름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다. 영상 편집을 전공으로 선택해서 대학에 들어갔을 때 필름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내 커리어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필름은 그저 구시대적인 유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회사에서 나와 독립을 하고, 한참 디지털 영상에 한계를 느낄 때 우연히 필름이 눈에 들어왔다. 한편으로 나는 순도 높은 필름룩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살면서 필름을 한 번도 다뤄본 적 없다는 것이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 생각이 들자마자 괜찮아 보이는 필름 카메라를 하나 구입했고, 홀린 듯이 촬영하며 필름의 특성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필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과 그들만의 영역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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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디지털은 결국 아날로그를 모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디지털카메라의 성능과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들이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특히 정해진 용량 안에서 양질의 데이터를 최대한 담아내는 LOG 모드는 데이터의 효율성과 후보정에 대한 유연성까지 모두 극대화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이 LOG 특성의 상용화가 디지털이 필름을 대체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실제로 LOG 모드로 촬영하면 필름으로 찍은 것처럼 똑같이 만들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빛의 감도에 따라 반응하는 우리 눈의 특성을 본떠서 필름의 감광 특성이 만들어졌고, 우리 눈과 필름의 특성을 본떠 LOG 감마 특성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본질은 디테일에 있다.

나는 세상에 두 종류의 카메라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우리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재현하기 위한 카메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필름을 재현하기 위한 카메라. 우리 눈을 재현하는 카메라들은 결점 없는 선과 선명한 색상을 만들며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이미지를 만드는데 초점을 맞춘다. 카메라 샵에 가면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카메라들이 이에 속한다.


다른 한편에는 필름을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카메라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아리의 알렉사, 레드카메라, 소니의 시네마라인 등이 있는데 영화나 광고 촬영 현장이 아니면 일상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은 카메라의 이미지 센서가 '필름처럼' 만들어 내는 데 몰두한다. 특히 알렉사가 만드는 이미지가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에 나 또한 디지털이 필름을 완전히 대체했다는 것에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필름으로 찍고 현상해 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정말 너무나도 미세한 차이였지만, 필름이 만드는 질감에는 측정할 수없을 만큼의 깊이가 있었다. 심지어 이 스캔된 필름 사진은 HD보다 더 작은 해상도에 갇힌 JPG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6K로 찍힌 카메라보다 압도적으로 풍부한 계조를 갖고 있었다.


현재 35mm 필름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 Alexa 35라는 카메라가 있다. 직접 작업을 해봤을 때에도 '이보다 더 좋아질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Arri의 최신 기술과 혁신이 집약된 이 1억짜리 카메라도 35mm 필름 한 조각을 완전히 뛰어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세계적인 거장들이 왜 큰 비용과 시간을 감수하며 여전히 필름으로 영화를 찍는 선택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필름만이 가진 이 미묘한 미학적 차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필름과 디지털의 기술적 차이는 꽤나 미미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체감하기는 어렵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진짜 필름만의 영역이라 느낀 것들은 기술적인 것보다 지극히 감각적인 것들이었다.

먼저 디지털은 예측한 대로 찍히고 필름은 상상한 대로 찍힌다는 것이다. 우리는 카메라로 촬영을 할 때 대부분 LCD화면을 통해 구도를 잡는다. 그러다 화면이 어두운 것 같으면 밝게 조정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색온도나 촬영 모드를 바꾸기도 한다. 원하는 이미지를 눈에 보이는 그대로 찍을 수 있고, 또 용량이 허용되는 만큼 마음에 들 때까지 찍을 수 있으니 디지털은 정말 편리하고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필름은 현상해서 나오기 전까지 어떻게 찍히고 있는지 볼 수도 없고, 내가 잘 찍고 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다. 그런데 어떤 장면을 찍기로 결정하고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는 순간 현상되어 나올 이미지를 상상하게 된다. 왜냐하면 필름은 눈에 보이는 대로 찍히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초점과 노출을 맞추고 셔터버튼을 천천히 누르는 동안에도, 셔터막이 열렸다 닫히는 찰나의 순간까지 상상은 계속된다. 그리고 필름이 매거진 속에 보관되어 있는 동안 잠시 잊혀졌다가 현상이 돼서 나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내가 찍은 사진을 보게 된다. 당연히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올 때도 있지만, 드디어 뷰파인더를 볼 때 했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때에는 상상 이상으로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가져다줄 때도 있다.

그런데 필름으로 상상하며 사진을 찍는 행위의 진짜 의미는 단순히 상상이 현실이 될 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상상을 하며 셔터를 누를 때, 그리고 현상된 결과를 확인할 때 내 머릿속에 저장된 팔레트가 확장된다는 것에 진짜 의미가 있다. 머릿속의 팔레트가 확장된다는 게 무슨 말일까? 누구나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 때 각자마다 다른 밝기와 분위기의 색감을 떠올리게 된다. 예를 들면 바다의 이미지를 떠올리라고 하면 각자 살아온 배경과 경험에 따라 수백, 수천 가지의 다른 색감의 바다를 떠올리게 된다. 여름의 시원한 바다, 추운 겨울 바다, 폭풍우가 치는 바다, 석양이 지는 바다. 이것이 바로 우리 머릿속에 저장된 팔레트이다.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필름으로 찍을 때 눈에 보이는 대로 찍히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뷰파인더로 보고 있는 장면에 내 머릿속의 팔레트를 섞어서 현상될 이미지를 그리게 되고, 현상되어 나온 사진을 보고 이전에 상상했던 이미지와 다시 비교하면서 예술적 사고가 확장되는 것이다. 이는 수채화를 그릴 때 물감 위에 물감을 덧칠하면서 새로운 색이 탄생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아날로그의 값이 언제나 무한대인 것처럼, 내 머릿속의 팔레트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다.


그런데 필름은 무한대로 찍을 수가 없다. 필름 한 롤은 36장으로 정해져 있고, 필름을 살 수 있는 자원도 정해져 있다. 아무리 필름이 많더라도 디지털처럼 셔터를 난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보통 한, 두롤 정도만 챙겨서 찍고 돌아오는 편이기 때문에 나갈 때마다 36장만 찍을 수 있다는 한계를 미리 세팅해두게 된다. 36장이라는 한계가 걸려있기 때문에 한 장, 한 장 영혼을 담아 찍을 수밖에 없다. 이는 돈뿐만 아니라, 시간도 함께 소모되는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괜찮게 나왔을 법한 수많은 장면들을 일부러 지나 보내게 된다. 왜냐하면 더 좋은 순간들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다 정말로 가끔씩 심장을 저릿하게 만드는 장면이 시야에 포착될 때가 있다. 그러면 그제야 뷰파인더를 눈에 갖다 대고 초점링을 돌리기 시작한다. 초점과 노출을 맞추느라 그 순간을 놓치게 되면 다시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된다. 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야 말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필름만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해진 시간 속에서 한정된 자원을 갖고, 수많은 기회들을 흘려보내는 것. 그리고 더 나은 기회가 왔을 때 과감히 도전하고, 좌절하더라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기회를 기다리는 것.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다 할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 바로 우리 인생의 포맷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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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의 첫 장면에 띄웠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는 볼 때마다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 줘서 1년에 한 번은 꼭 보고 있는 인생 영화다. 극 중에서 위대한 사진작가인 '숀 오코넬'은 설표를 눈앞에 두고 '이 아름다운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다'며 사진을 찍지 않는다. 학교를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이 영화를 정말 많이 봤지만 이 장면만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 것 같았는데, 내 눈앞에 설표가 있었다면 당장 찍고 난 다음에 눈으로 다시 보면 되지 않나?


그런데 필름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이게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몇 주 전 석양을 찍기 위해 한강에 가서 일몰 때를 기다렸던 적이 있다. 하늘이 빨개지기 시작할 때 이 때다 싶어 필름을 전부 다 써버렸고 충분히 잘 찍었다고 생각해서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일몰 직전에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아름다운 장면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억지로라도 와인딩을 해서 찍어보려 했지만 필름은 당연히 넘어가지 않았다. 필름을 더 챙겨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해가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바닥에 앉아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엄청나지는 않지만 나 스스로에게 만족할만한 사진은 꽤 많이 건졌었다. 평소에는 잊고 있다가 가끔 이 사진들을 꺼내 보면 마치 그 장소에 가있는 것처럼 그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곤 한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 수십 장의 사진들은 잊혀지게 된다. 그런데 석양 찍지 못했던 그날 바닥에 앉아서 바라봤던 그 황홀한 장면은 이 영상을 만들고 있는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해당 스크립트를 토대로 위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영상과 스크립트의 내용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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