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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mb Jul 28.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

쫄딱 망한, 사랑해 마지않는 나의 7월에 대한 위로.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 그중에도 7월을 사랑한다.

8월도 여름이지만 다음은 9월이라 이미 아쉬움이 자리 잡아버리거든.

그래서 여름이면서도 뒤에 아직 8월이 든든하게 기다려주는

7월이 제일 좋다.

8월의 초록보다 7월의 초록을 더 좋아하기도 하고.

6월부터 슬슬 기분이 좋아진다.

아니 사실 5월부터. 6월도 여름이니까.

올해는 4월 말부터 조금씩 설렜어.


이렇게 쫄딱 망해서 실망감을 태산같이 쌓아주려고

올해 유4월 말부터 설레발을 치게 만든 모양이다.

보이지 않는 손. 걸리기만 해. 가만 안 둬 진짜.


1년에 한 번 있는 나의 7월, 내 인생에 한 번 있는 2024년 7월이

쫄딱 망했다.


1.

여름여름한 초록색 좋아하고 그 사이로 작열하는 태양 좋아하고

그 아래서 푸욱 익어가는 폭염 사랑하는 나에게

이번 7월 날씨는 정말이지, 누구 멱살이라도 잡아야 할 것 같은 날씨.

내 기억에 이렇게 비가 많이 자주 오는 건 처음인 거 같은?

날씨부터 망했다.


2.

거기다 하필 이런 미친놈 같은 날씨에

소위 말하는 거지존, 이 정도면 꽤 버텼지 이제 뭔가 할 수 있겠지 했는데

이제야 정말 거지존 시작이라고 그래서 자르면 다시 시작해야 하고

전체적인 매직스트레이트를 하기도 애매하니 뿌리매직만 해놓고

좀 기다려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양심적이고 단호한 미용사 선생님 덕에

드라이할 때마다 돌아버릴 것 같-

아 아닙니다. 양심적인 신념과 태도 늘 감사해요.


3.

6월부터 기대했던 7월 일정이

책임을 물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변수로 김이 새 버렸고

김만 새 버린 게 아니라 너무 속상해서 위축되어 버린 자아에

억지로 숨을 불어넣느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고 있는데


4.

지하철을 타러 갔더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지하철이 안 다닌대서

부랴부랴 훨씬 돌아가는 버스 타러 갔더니 그마저 눈앞에서 놓치고

혹시 몰라 확인해 보니 20분 사이에 지하철이 다시 다닌다는,

기적적으로 잘된 일이지만 똥개훈련 만끽.


5.

습한 날씨와 폭염주의보가 겹친 금요일 밤에 고장난

(에어컨 없는) 내 방 서큘레이터와

임시로 들여놓은 집 선풍기는 다음 날 토요일 밤에 고장.


십자가나 염주 혹은 성수나 마늘 소금 뭐 그런 게 절로 떠오르는

나한테 왜 이래 내가 뭘 잘못했니 적당히 해라 쓰리콤보 속에

어느새 열흘째 서큘레이터나 선풍기 없이 지내는 중.


계속 비 오고 서비스 센터 갈 시간도 안 나고 시간이 나면 귀찮다가

문득, 지낼 만 한데? 어디 한 번 해볼래? 누가 이기나? 하는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해 버렸기 때문이다.


내 방의 온도는 비슷하겠지만 거실의 온도에 따라

언제는 버틸만하기도 하고 언제는 으허 싶기도 한 경험,

와잇 안 되겠다 싶다가도 착각인가 싶은 바람 한 줄기에

나도 모르게 행복해지는 경험을 하다가


아쉽다 슬프다 속상하다 하던 중에 위축됐던 내 마음,

정말 미친놈처럼 오는 빗속에서 미친놈 같은 습도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집어지고 불어 터졌던 내 마음이


어느새 단순해지고 잠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은 같은데 내 마음은 늘 같은데 내 행동도 늘 같은데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고 결과가 달라질 뿐.


내가 나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아쉽고 슬프고 속상하더라도 가끔 이렇게

내려놔도 괜찮은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배신이나 의리가 없는 게 아니라

이게 옳은 길로 가는 건강한 선택이라는 깨달음.


하나 더.

내가 나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내 선택에 내 생각에 내 말에 더 당당할 수 있게

현명하고 더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지.

얼레벌레 불렛저널도 날려먹은 7월을 반성하며

8월 불렛저널 준비하다가 떠오른 생각 주절거리기.


많이 읽고 많이 쓰고 적게 말하자.

눈을 뜨고 마음을 열고 심장은 좀 닫아둬.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

사랑하는 내 여름 신나고 즐겁고 뜨겁고 아름답게 : )


깨달음을 얻었으니 내일은 가자, 서비스센터.

오늘 드디어 7월다운 폭염. 사랑하는 온도와 햇빛 공기 바람. 코모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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