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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Jul 19. 2023

모자, 심심한데 재밌다

텃밭에서 풀 뽑는 구십 할머니 이것저것 많이도 심으셨네.

마당에 빙 둘린 붉은 장미들 풀 뽑는 할머니 응원하네.

지팡이랑 세 다리로 걷게 된 지 오랜 할머니 다리

풀 뽑으려 쪼그릴 땐 지팡이 필요없네

저녁 끼니 챙겨드리려 밭에서 일하다온 오십 아들

밥 먹자 "밥, 밥!" 불러도 할머니 귀 음소거이네.

귀가 연로함이 반이고 풀뽑기 열중이 반인 음소거는

아들의 "엄마, 밥!" 소리 "해 놓은 밥 있다"네.

늙은 엄마 밥 챙겨드리러 왔지 밥 얻어 먹으러 왔나

오십 아들 누명새는 아들 입막음을 위한 할머니 한 수라네.

엄마도 아들도 그 집 울타리 둘러싼 붉은 장미로다.

오십 아들과 구십 엄마 닮은 장미로다.


풀뽑으며 전진, 전진할 때마다 할머니 무릎팍에 축 늘어진

가슴팍은 오십 년 전 이 아들 밥통이네.

아들 젖 멕여 키우느라 늘어진 할머니 가슴팍마냥,

밥 멕여 키우고 보니 얼굴, 몸통 다 늘어져버렸네.

비록 다 늘어지고 늙어졌지만, 앉은 폼은 반듯, 말은 반짝

세상 급할 것 없는  이 할머니 여유롭다네.

할머니 똑 닮은 오십 아들도 세상에 급할 것 하나 없어

오십이 다 넘도록  장가를 못 갔는가, 안 갔는가.

장가 못 갔다고 그렇게 놀려대도 꿈쩍 않는 아들 고집은

아무리 밥 먹자 불러도 안 듣는 엄마고집 닮았구나

엄마도 아들도 그 집 울타리 둘러싼 붉은 장미로다.

오십 아들과 구십 엄마 닮은 장미로다.


묵묵하여 심심하나, 서로를 돌보는 열정은 재미인 바,

모자는 심심한데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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