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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Nov 15. 2023

마지막 정 떼기

  그 분과 인연을 맺은 지 24년이 된 지금에서야 눈에 뭔가 씌워졌던 콩깍지가 벗어졌다. 요즘 푹 빠져서 읽고 있는 로버트 기요사키의 <FAKE> 영향이 크다. 지금 생각하면 철저하게 이기적이었던 분이다. 그런 분께 가졌던 내 마음은 존경심과 서운함이었다. 

  가끔씩 황당하게 무시하는 말에 화가 났다기 보다는 자가검열을 했다. 그 분에겐 그랬다. 그게 내 도리라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차별에 다른 이들은 분노했지만, 난 그분의 마음 가는 것까지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특별히 애정하는 사람 축에 내가 끼지 못한다고 해도 그건 그 분의 마음이기에, 내가 서운해봤자 내 마음의 에너지만 상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냥 좋은 마음만 갖고 싶었다. 이런 걸 "호구"라고 한다. 호구이면 어쩌랴. 이게 내가 그 분을 존경하는 방법인데. 

  모든 것이 fake라는 걸 이미 알았기 때문에 서운하면서도, 애써 그런 맘들 접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연 맺은 이상 그 끈을 놓지 않으려는 나만의 방어법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뻔히 보이는 fake를 애써 긍정하려 했던 내 맘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인정하지 않던 자존심을 고집했던 낮은 자존감은 아니었을까.

  부서지고 깨어지고를 거듭했던 24년 간 마음은 늘 멍투성이었다. 내 맘 속 깊은 곳에서 아직 싹도 틔우지 못한 내 자아를 품은 토양은 늘 텅비었고, 외로웠다. 내가 아직 나오지 못한 내 토양 저 밑에서 꿈틀거리던 싹들. 잘못된 물을 주고, 따뜻한 햇볕이 품어내지 못한 채로 24년간 방치되었던 내 씨앗을 이제서야 보게 된다. 텅 빈 공간. 그렇게 정리했다.


  어제 꿈에 그 분이 나왔다. 그 분과 인연을 맺은 24년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정한 모습으로 대해주셨다. 늘 매정하고 냉정하였던 그분이었다. 내가 그 분에게 원했던 따뜻한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지 않을까. 그 분에게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그 따스한 온기로 인해 꿈 속에서나마 마음이 흔들렸고 모든 게 용서가 됐다. 꿈에서 깨서도 한 동안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그 분께 정을 떼고 마음을 정리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릴 정도로.

  꿈은 현실과 반대라고 하더니, 딱 이거구나. 이런 생각이 미치자 눈시울까지 촉촉해질 정도였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멍청한 호구일까... fake, fake, fake! 이 꿈이 마지막 정 떼기 단계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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