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첫사랑: 민들레 소년
2019. 3. 29.
내 초딩 시절엔
토요일도 4교시까지 수업하고
대청소 후 귀가를 했지.
오늘처럼 화창한 봄날
내가 앉은 1분단의 청소구역은
잔디밭 휴지 줍고 잡초 뽑기였는데
선생님께서 잡초가 무언지 알려주셨어도
우리들 눈엔 다 그 풀이 그 풀이었지.
지금 생각건대
잔디 아닌 풀들이 잡초라면
잔디도 잡초 중 하나인 거지.
아이들은 일찍 집에 갈 요량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대충 뽑아버리는 시늉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숱도 없이 가늘고 미끄러운 내 머리카락은
어떤 머리핀이나 머리끈도 잘 붙어있기 어려웠지.
그날따라 뭐가 잡초라는 건지 도통 이해되지 않은 채로
잔디밭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저 민들레 모양이 박힌 머리끈이 흘러내려
산발을 하고 있었던 게지.
영화 <은교>에서 은교가 낭떠러지에 흘린 거울이
다 같은 거울이 아니라 상심했듯이
나 또한 그 민들레 머리끈이
다 같은 머리끈이 아니어서
산발을 한 채로 찾고 있는데
그때 그 잔디에 저렇게 노란 민들레가 잔뜩 피어있었던 게야.
도통 무언가를 찾는 데는 소질이 0도 없는 내가
민들레 환한 곳에 숨어있는 머리끈을 찾았을 리 없고
나 또한 은교처럼 상심하여 울고 있는데
아이들은 대부분 집에 가서
더욱 텅 비어 무섭기까지 한 초등학교 운동장
그 사이를 가로질러 한 남자아이가 다가왔지.
우리 반은 아니었으나
그 아이도 당번 청소가 늦게 끝난 듯하였어.
그 아이가 열심히 잔디밭을 살폈고
이내 곧 찾아주었지.
<은교>에서 낭떠러지에 떨어진 거울을 찾아주던
그 할아버지 작가의 늙은 외양에 상관없었 듯이,
내 초등학교 2학년 때의 그 동년 소년에게서 본
봄을 보았지.
민들레 핀 잔디를 보면 생각나는 그 아이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데 소질이 있었어.
소풍을 가면 으레 했던 보물찾기.
난 한 번도 찾을 수 없었던 그 보물.
언젠가 산으로 소풍을 갔을 때
여지없이 못 찾겠던 보물.
일찌감치 포기하고 앉아서
나뭇가지 사이로 삐죽이 보이는 하늘을 쳐다보며
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는데
그 나무 사이로 불쑥 나타난 그 민들레 소년.
내게 뭐하냐길래 보물 못 찾겠어서 포기하고 시간 때우고 있다고 했지.
자신은 아주 많이 찾았다며
내게 건넨 보물 쪽지.
덕분에 난 초등학교 소풍 중 유일무이하게
보물찾기 쪽지로 상품을 교환할 수 있었어.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데모라는 걸 했는데
저질체력인 내가 도저히 대열을 따라갈 수 있어야지.
결국은 밀리다 밀리다 대열을 놓쳐버리고
"전노 일당 처벌하라"는 피켓만 든 채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데
그 아이가 나타났지.
훌쩍 컸지만 어린 시절 모습은 그대로였고
머리는 빡빡 깎았고 군복을 입었어.
휴가 나왔는데 지나가다가 나를 보았다며.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는데
난 그 애와 한 반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때까지 이름도 모르고 있었어.
학생들이 도로 점거하고 경찰이랑 대치하고 있는데
이런 거 들고 여기 있으면 어떡하냐고
그 아이는 내가 든 피켓을 도로 한쪽으로 버리더군.
난 여기가 도통 어딘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우리 집에 가는 버스 서는 곳까지 데려다주고는
그때의 휴대폰 기능을 하던 삐삐 번호를 알려주고 가더군.
난 그때는 몰랐어.
그 아이가 우리 집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도 의문인 게 군인이 삐삐를 갖고 다닐 수 있었을까?
잠시 휴가 나온 동안만 가족 것을 빌린 것일 텐데.
그때는 그 아이가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몰랐지.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눈치도 없고 무심한 나였네.
저 민들레 필 즈음이면 가끔 생각나던 그 소년에게 말이지.
이제껏 무심했으니
앞으로 민들레가 피면 꼭 기억하겠네.
토요일 오후 늦도록 민들레 숲을 헤치며 내 잃어버린 머리끈을 찾아주었던 그 마음을.
나무숲에서 보물 쪽지를 건네던 그 마음을.
우리 집도 알고 있었으면서
끝내 발걸음 하지 못한 채로
연락처도 못 물어본 채로
가족에게 빌린 삐삐가 울리길 고대했던 그 마음을.
지금은 나만큼 나이 들었을 그 소년
그대는 노인이 되어도 내 눈엔 영원히 소년으로 남아있을 터.
노란 민들레를 가슴 한 가득 품에 안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