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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Nov 24. 2021

95 동기의 전화

[국문열전1] 2017.10.18.일기 중에서

  며칠 전 대학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작정 생각나서 보고 싶다고. 친구도 삼둥이 엄마로 올해 다시 복직했다고 한다. 고3을 맡았다는데 많이 힘든가 보다. 다둥이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 또한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고등학교 선생이 직업인 친구의 상황과 그 아이들의 상황.

자체가 말 안 해도 어떻다는 것 충분히 팍팍 꽂혔다. 수원에서 가까이 지내는데도 삼둥이 맘들은 얼굴 보기 힘들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너~~~~ 무 보고 싶어서! 가을 되면 옛 애인이 생각난다는데 옛 친구들이 생각난다. 특히 대학시절 친구들이 더욱 그리운 이유는.

  IMF를 대학교 때 겪었던 우리는 저마다 가정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앞으로의 불확실한 미래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답답할 때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냈던 이들이 대학 동기였다.

  학번마다 특성이 있었지만 우리 동기들은 특히 착했다. 대체로 성인이 돼서 만난 대학 친구들은 이로움을 먼저 계산하기 때문에 진정한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우리 동기들은 그러지 않았다. 정말 희로애락을 마음으로 함께하며 서로에게 큰 버팀목이 돼주었다. 이후 신앙 안에서라면 모를까 내가 만난 사회의 어떤 집단도 이런 곳은 없었다. 다들 개성은 뚜렷했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하나로 녹아났다. 개성은 있으되 그게 서로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는 장점으로만 씌었지 절대 부딪치지 않았다. 그만큼 서로를 존중해주고 배려함이 큰 덕이었다.

  정말 좋은 시절이었다. 다들 돈이 없는 고학생들이라서 적당히 알바도 해야 했고, 적당히 놀 줄도 알았고 적당히 공부도 했다. 지금 다들 저마다의 일터와 가정에서도 제 몫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도 착하고 성실하고 똑똑한 범생이 기질에,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고 아껴주었던 따뜻한 인성에 기반한 것이라 믿는다. 나는 절친이 초등학교 때, 고등학교 때 1명씩밖에 없을 정도로 친구를 좁고 깊게 사귀는 편이었는데 대학 와서 그게 깨졌다. 동기 전체가 정말 소중하고 그리운 친구들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정말 많이 보고픈 친구들이다.

  요즘 빈 가을 하늘 쳐다보면 친구들 얼굴이 많이 그립다. 말풍선 속에 친구들이랑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자꾸 떠오른다.

조별 과제하느라 함께 과방에서 밤새다가 한 친구의 썸남이 찾아와서 우르르 몰려가서 바람잡이 했던 추억. 과제가 하도 안 풀려서 시적 화자의 심정이 돼 보자면서 백주대낮에 술판 벌였다가 얼굴 벌게진 채로 다음 강의 시간에 들어가 단체로 신나게 졸다가 엎어져 자고 온 추억.(그때는 예수님께 컴백하기 전이라 술어술문학과라는 국문학도의 위상에 맞게 술을 적당히(?) 마셔주던 시절이었다. 예수님께 돌아온 탕자가 된 후로는 술은 입에도 안 대지만) 체육대회 때 사체과에서 전과한 친구의 활약에 힘입어 무적함대였던 우리 팀. 피구계의 메쉬였던 우리 친구의 공 놀림은 운동장에 나온 문과대 여학생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국문학도로서 애들이 기본 글발과 말발이 있어서 타 학과들과 함께 듣는 교양 강좌에 가면 늘 A학점은 우리들의 것이었다. 대리출석도 서로 해주며, 마음속의 양심을 스스로 위로했던 시절. 리포트를 편집만 달리해서 서로 베껴서 내주던 시절.(그래서 난 지금도 나 같은 애들 있을까 봐 출석 부를 때 얼굴 꼭 확인하고 리포트도 다 읽어본다)

  친구들이 함께 시간표를 짰던 덕에 일상이 많이 겹쳤다. 가장 일찍 오는 애들이 도서관 자리를 맡아놓고 있으면 약속도 안 했는데 캠퍼스 특정 장소에 주르르 모인다. 결국 가방만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하던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시며 수다 떨던 그 커피맛을 잊지 못해서 난 아직도 믹스커피를 가장 좋아한다.


  엊그제 전화 온 그 친구는 졸업하기도 전에 임용고시에 붙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선생님을 지금처럼 많이 뽑기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발령받기 전에 갑자기 성경을 읽더니 신앙이 생겨서 교회에 간다고 해서 정말 쇼킹했었다. 문과에서 고사를 지낼 때 제일 앞에서 장구치고 돼지머리에 절하던 친구였다. 애들 수상, 관상 같은 것 봐주면서 살짝 신기 있는 무당과도 같은 이미지였는데 말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어 더욱 독실한 청년을 만나 은혜로운 가정을 이루고 있는 친구.

  에스라 성경강좌 불법 cd를 구워 준 지가 꽤 되었는데 아직도 바빠서 못 들었다고 하드만. 얼른 들어라, 친구야! 네가 정말로 좋아할 강의란다. 너나 나나 삶이 여유롭면 넌너리나게 싫어하고 성현의 한 줄 가르침에도 압도되어 몸부림치며 하루하루 달리 살기를 좋아했던 우리들 아니니?

내가 아무나한테 안 권한다. 정말 진리 추구에 열불 나게 목메었던 이들을 기억하여 선별한 중에 네가 있었단다. 꼭 들어보자. 애들 크면 꼭 같이 가보자. 정말 기대를 작게 하지 말고~

  요즘 우리 친구들이 너무 보고파서 운다! 그래도 모이자고를 못 하는 게 내가 애들 때문에 못 나가니까..

한 십 년 후면 꼭 자주 보자! 같이 여행도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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