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배
[국문열전2] 2018.05.27.일기 중에서
내가 처음 그를 본 건 1995년도 학과 신입생 환영회에서였다. 대전 궁동 O&O 소주방에서 신입생인 우리 95학번과 선배들이 함께 하는 자리. 그때 "방금 동남아에서 돌아온 선배"라며 한 선배를 소개하는데, 선배들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하는 가운데, 이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선배가 있었다.
난 "방금 동남아에서 돌아온"을 "방금 동남아에서 순회공연을 마치고 온"으로 들었다. 그냥 노래 좀 하는 한 선배를 소개하는 관용구 정도로 생각했다. 뜻밖의 열화와 같은 반응은 지금 용어로 거의 아이돌급이었다. 무슨 팬클럽이라도 되는 마냥 객석에서 하도 난리가 났길래 어떤 사람인가 싶어서 봤다.
깜짝 놀랐다. 그 이유는 정말 동남아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까만 얼굴에 수염을 기르고 있는 외모는 정말 당시로서는 한국 남자 같아 보이지 않은,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었다. 더욱 특이했던 것은 나만한 키에 어깨가 몹시 넓어서 정말 정사각형 같은 몸이었다. 진심으로 난 동남아 사람인 줄 알고 주변 사람한테 물었다. 동남아에서 온 유학생이냐고. 그 말이 웃겼는지 주변 선배들은 내가 한참 착각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마이크를 잡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한국말을 꽤 잘했다. 그리고 노래도 정말 잘했다. 아까 그 소개는 노래 잘 하는 사람을 소개할 때 쓰는 관용구가 맞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필리핀에서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잠을 잘 못 잤는지 목이 안 좋다는 내용의 말을 했다. 뭐야, 정말 동남아인이었어? 한국어 되게 잘하네 하고 놀라려고 할 때쯤! 알고 보니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갔다가 들어온 선배라는 것이다. 즉 '방금 동남아에서 온' 선배가 맞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난 그 선배를 떠올리면 늘 동남아가 함께 생각이 났다.
그 선배의 기인적인 풍모는 늘 선배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했다. 자칭 'dog brothers'라고 당시 국문과 "개족보"의 멤버를 자처하던 선배였다. 그 멤버들의 특징이 음주가무를 좋아하고, 국문과의 '국'자 알기를 '누룩 국'자로 알고, 술과 음악을 모르는 자 문학을 논하지 말라는 것을 진리로 믿었던 논 나니들이었다.
검은 피부에 콧수염까지 기르고 다니던 그 선배는 꼭 검은색 양복 재킷을 입고 다녔다. 내가 우연히 꼭 그 옷을 입을 때만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바지나 티셔츠는 바뀌어도 꼭 검은 양복 재킷을 입어서 얼굴은 더 동남아인 같았고, 양복 재킷의 반듯한 어깨선 때문에 더 정사각형 같았다.
밤늦게 집에 가려고 교정을 걸으면 가끔씩 술에 흠뻑 젖어서 캠퍼스를 걸어가는 그 선배의 모습이 목격이 되곤 했다. 나는 그 선배가 엄청난 애주가라는 건 알았지만 특별히 주사를 부리는 것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전설처럼 전해지던 그 선배의 주사가 있었으니... 아마 스스로 도그라 말하는 이유가 아마도 그 주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건 바로 '무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같이 술 마시다가 팔을 물렸다, 손을 물렸다는 부지기 수였지만 가장 못 믿겠던 부위가 바로 머리를 물렸다는 증언이었다.
여하튼 술 취하면 무는 게 주사인 그와 친해졌던 계기가 있었다. 5월에는 문과대학에서 체육대회가 있었다. 난 운동을 너무 못하는 고로 혹시나 선수로 착출 당할까 싶어 미리 응원으로 선수를 쳤다. 내가 목소리가 커서 응원단으로 딱이었다. 당시 학생회 체육부장이었던 그 선배와 체육차장인, 그 선배의 의형제라 하던 도그 브라더스의 다른 멤버, 그리고 체육부랑은 전혀 상관이 없던 나 이렇게 셋이서 북 치고 징치며 응원하고 있었다. 그 선배는 원래 기타를 잘 쳤고, 의형제라는 선배는 교내 록밴드의 드러머였다. 내 목청이야 원래 타고났으니 어느 순간부터는 주객이 전도되어 다들 경기는 안 보고 셋이서 하는 응원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삼남매였다. 두 의형제 사이에 내가 끼다 보니 삼남매라고. 나 역시 당시에는 크리스천이 되기 전의 사람으로서 술 마시고 기타 치고 노래하던 논나니였으니 뭐 두말할 필요도 없이 금방 친해졌다.
같이 술을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특별히 개인적으로 많이 만나거나 도움을 주고 받았던 기억은 없지만, 언제든 만나면 늘 반가워해주고 격려해주었던, 참 좋은 선배였다.
엊그제 학회에서 그 선배와 잘 아시는 분을 만나서 연락처를 알게 됐다. 너무 반가워서 전화를 했다. 내가 하도 반가워하니 연락처 알려주신 분이 혹시 썸 타던 사이였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래서 형제였다고 대답했다.
극작가로서 아주 맹활약을 하고 있었다. 참 흐뭇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연락처를 저장하면 카톡 이름이 올라오고 카스도 뜨는 덕에 친구 신청을 하고 카스에 올라온 글들을 읽어보았다.
글들이 다 까만색 정사각형으로 보였다. 20년 전의 선배가 그냥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안 변했다는 말은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말이므로 그 선배에게 그 표현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냥 그대로였다. 그대로에서 작가와 교수라는 직함이 하나씩 더해진 듯한 느낌의 글들.
오랜만에 스무 살 때의 나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동기들에게 전화를 쭉 돌려봤다. 그 선배 글에서 받은 그대로의 느낌. 이래서 친구가 소중하고 추억이 아름다운 것이구나!
나는 많이 변했다. 일단 난 13년 전 크리스천이 되면서부터 술은 끊었다. 그리고 기타를 안 친지 정말 오래됐다. 대학원 들어오면서 기타를 안 쳐본 것 같다. 또한 노래를 되게 못하게 됐다. 이젠 어디 가서 나 한 때 노래했던 사람이란 말 절대 못할 정도로 노래를 못한다. 논나니였다고 하기엔 의아할 정도로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됐고, 과거의 나처럼 낭만을 찾아 강의시간에 자주 이탈하는 사람을 잡아 족치는 기성세대가 되었다. 45kg의 날씬했던 몸매는 절구통이 되어버렸고, 늘 일과 일상에 찌들어 앞만 보고 달리느라 옛 시절 나는 다 잊어버린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나이다.
하지만 가끔씩 정말 무언가가 갑자기 쿡하고 튀어 올라오면 갑자기 그리워 미치겠는 때가 있다. 가을의 텅 빈 하늘이 그랬고 95년도 히트곡이었던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을 우연히 듣게 되면 그랬다. 엊그제 읽게 된 사선배의 카스 글들이 또 내게 그런 감수성을 자극한다.
사 선배님! 사 작가님의 글 팬으로서 또한 좋은 글들 계속 부탁드려요! 멋지십니다. 늘 응원할게요! 제 응원 솜씨 잘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