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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Nov 28. 2021

보령 오토바이

[국문 열전 3]

   가죽잠바, 오토바이, 180cm 정도 키에 마른 체형. 이목구비 또렷한 샤프한 외모. 우수에 젖은 눈빛. 순정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그의 모습을 처음 볼 때는, '우리 과에 어떻게 저런 남자가!' 하는 찬사가 튀어나올 법한 독특한 멋과 분위기를 갖고 있는 그는 내 대학 동기이다. 그의 얼굴은 깎아놓은 듯한 조각 같았다는 느낌이 팍팍 들 정도로 가까이 가면 콧날에 살 베일 듯했고, 그 콧날에 베인 듯한 진한 쌍꺼풀이 인상적이었던 그.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영락없는 차도남이었다.

   재수를 해서 우리보다 한 살 위의 그를 우리 동기들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형"이라 불렀다. 지금은 "오빠"란 단어가 그리 간지러운 단어가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호칭은 커플 사이가 아니고서는 쓰지 않는 단어였다. 지금 생각하면 여자 동기들이 "형"이라 호칭하는 게 더 이상할 법도 한데 당시 대학가는 그런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직까지도 "형"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야 하는 고학생이었던 그는 학교 수업에 못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아직도 그의 존재를 강하게 각인시켰던 그의 시가 있다. 국문과 시화전에서 유독 눈에 들어와 마음에 오래도록 흘렀던 그의 시. 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랐던 그의 어린 시절 한 그림을 그대로 담아낸 시. 특히 어머니의 마른 젖만 빨며 울던 아기의 모습을 묘사했던 그 시귀절은 지금까지도 잊히질 않는다. 그때까지도 잘 먹지도 먹이지도 못할 정도로 가난한 집이 있었던 것이다. 동기들 모일 때 가끔씩 모습을 보이는 그는  차도남 분위기에 맞지 않게 그는 스스로를 '촌놈'이라 했다. 사실 그는 사투리를 쓰진 않았지만 살짝 늘어지고 천천한 말투가 누구를 베어버릴 듯한 조각 같은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따뜻함이 있었다. 반전 매력이랄까? 여하튼 그는 스스로를 '보령 오토바이'라고 칭했다.

  그랬던 그가 동기  중  한 여자애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동기들 내에서는 그 둘을 맺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 여자 동기로 말한다면 동기모임에서 호프집이나 락카페는 고사하고 커피숍 한 번 가보지 않은 친구였다. 학교 와서 공부하고 집으로 사라지는. 한 번은 조별 모임을 하느라 친구들과 커피숍에 갔는데, 당시 커피 기계에 내려진 커피와 각설탕, 액상 프림을 주던 시대였다. 그녀는 각설탕과 액상 프림을 어디에 쓰는 건지도 모를 정도로 노는 것과는 거리가 먼 순진무구한 친구였다.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함박웃음이 참으로 아름다웠고 큰 눈빛이 선했던 그 여자 동기는 순진하고 순수한 순둥이였다. 나는 그녀에게 '웃음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둘이 잘 어울려 보였다.

  그러나 '보령 오토바이'가 아무리 '웃음의 여왕'한테 맘을 표현해도 '웃음의 여왕'이 받아주지를 않았다. 동기들이 다 알 정도로 '보령 오토바이'는 진심이었던 것 같은데, '웃음의 여왕'은 한사코 도망을 다니더라는 것이다. 뭐가 문제였을까?

  동기모임 때 우연히 내 옆에 앉게 된 그가 얼큰히 술에 취하자 그의 진심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웃음의 여왕'을 정말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 '보령 오토바이'가 '웃음의 여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주저리주저리 말한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통통한 외모가 좋다'는 점이다. 자신이 말라서 통통한 여자가 좋다고...

  듣다 듣다 아니 되겠다, 내가 나서야지 했지만. 들려오는 소문은 처참했다. 둘이 데이트를 딱 한 번 하기는 했다는 것이다. '보령 오토바이'가 만나자고 해서 만난 장소는 [계룡 분식]. 당시 충대는 쪽문 쪽의 궁동이 개발되어 갖가지 음식점, 호프집, 커피숍 등이 즐비하여 "새동네"라 불렀고, 학생들의 모임 장소의 주축이 되었다. 반면 인문대에서 가까운 서문 앞은 (지금은 개발이 되어 첨단을 달리는 곳이 됐지만) 당시는 논이고 밭인 그린벨트 지역이었다. 그곳에 딱 두 개 있는 허름한 분식집 중 하나가 [계룡 분식]으로 라면과 막걸리, 소주 등을 팔던 곳이다. 궁동까지 거리가 꽤 멀던 인문대 학생들도 국문과가 아니면  잘 안 갈 정도로 허름했던 곳이다. 깡소주를 문학적 영감의 샘물로 여기는 국문과 시정잡배들이나, 전통 사수파 운동권  학생들, 정말 돈 없는데 술 마시고 싶은 외상파 학생들이 자주 가던 분식집이 바로 [계룡분식]이었던 것이다. 그곳을 첫 데이트 장소로 잡았다는 말부터가 불안했다. 곁에 있던 친구들이 이건 좀 말렸어야 했다. 그대들이 진정한  친구라면!

  그래도 '웃음의 여왕'은 나가긴 했던 모양이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라 하니 예의상 만나보기는 할 요량으로. 계룡 분식에서 나올 음식이야 라면밖에 없다. '보령 오토바이'는 라면과 소주를 시키더니 먹으면서 하는 말이, 자신은 언제 결혼해서 아이를 몇 명을 낳고 싶다고...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가족계획이라니!

  '웃음의 여왕'은 그날의 그 어색한 데이트 자리에는 처음부터 나가선 안 됐다는 현타가 왔고, 그다음부터는 그를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웃음의 여왕'의 미모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객관적으로 영화배우 급으로 잘 생긴 '보령 오토바이'였기에, 외모는 사실 '보령 오토바이'가 거의 압도적이었다. 그 조각남을 피해다닌다는 게 일반인이 들으면 전혀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둘 사이엔 그런 내막이 있었던 것이다.

  '보령 오토바이'의 일편단심은 이후로도 몇 년을 갔다. 군대 다녀온 이후에도 그는 오로지 한 여자, 순둥이만 맘에 두었고 이후로 그가 연애를 했다느니, 결혼을 했다는 소식은 여적지 들려오진 않는다. 순정이었고, 아마 두 번 다시없을 진실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그는 참 따뜻한 남자였다. 동기라서 그런지 남녀로 감정이 생기진 않았지만, '정말 좋은 남자이다, 이런 남자랑 결혼하면 평생 사랑만큼은 듬뿍 받고 살 수 있을 거다, 내 눈에 남자로 안 보이는 게 아쉽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학과에서 올릴 연극 연습을 하다가 "전두환 노태우 처벌하라"를 외치는 '대전 지역 대학생들 총 궐기 대회'인즉, 데모에 인원동원을 하느라 끌려간 적이 있었다. 나와 같이 소처럼 끌려 나온 동기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꽤 많은 인파가 모인 데모 대열은 충남대에서 대전역까지 뛰어가고 있었다. 지금도 거리가 꽤 되는 그 거리를 대열에 끼어서 걷다 뛰다를 하는데 이건 지옥이 따로 없었다. 체력급수 5급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정말 고역이었다. 계속 뒤처지는 나를 누군가가 계속 따라붙으면서 지켜주는 느낌을 받았다. '보령 오토바이'였다. 남자 동기들이 여자 동기들을 몇 명씩 맡아서 지켜주면서 대열을 따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은행동까지 어찌어찌 따라는 갔는데 이미 저 앞에서는 의경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드디어 '그게' 나왔다. 최루탄.

  어린 시절  대학가 근처에 살아 너무도 많이 맡았던 이 냄새는 내겐 최고의 고문이었다. 최루탄 터지는 소리에 공포감이 엄습하여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내게 그가 담배에 얼른 불을 붙이더니 담배연기를 불어주었다. 그가 맡은 우리 여자 동기들 몇 명에게 다들 그렇게 한 번씩 담배연기를 불고 다닌 이유는 담배연기가 최루탄을 희석시킨다는 말 때문이었다. 저 앞에서는 경찰과 대치하면서 최루탄을 쏘아대고 있는데 난 '전-노일당'이 처벌되기 전에, 내가 이 최루탄 가스에 처형되겠다는 생각으로 눈물만 줄줄 흐르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담배연기를 정말 싫어했지만 그날 그가 불어준 담배연기는 참 고마웠다.

  그는 노래를 정말 잘 불렀다. 특히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라는 곡을 정말 잘 불렀다. 나도 그때는 노래, 음악에 미쳐있을 때였던 지라 노래방에 가면 죽이 잘 맞았다. 특히 그와 듀엣을 하면 신이 났는데, <그대 안의 블루>,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잘했다. 겨울바다에 가보고 싶다는 내게  보령 바닷가 출신인 그가 말했던,

  "겨울바다가 얼마나 추운데. 바다고 뭐고 얼어 죽어!"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그래서인지 겨울바다 가면 보령 오토바이가 생각난다.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 결혼은 했나? 그때 최루탄에 정신 못 차리던 내게 불어주던 담배는 여전히 많이 피우나? 노래실력은 여전할까? 시좀 계속 쓰지!   '촌놈'이라 자청하고 '보령 오토바이'라 자칭하던 그. 이렇게 저렇게 얽힐 추억이 많은데.


  난 연인이었던 사람은 늘 헤어졌던 기억의 에너지가 좋았던 추억을 다 잡아 삼켜 버리기 때문에, 연인이었던 사람과의 좋은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남자여도 우정으로 지냈던 좋은 추억은 늘 이렇게 남아있다가 문득문득 기억의 문밖으로 나와 반갑게 인사하는 그런 이들이 있다.

  여자가 나이 먹으면 친구를 더 좋아한다더니, 확실히 사랑보다는 우정이 내겐 좋다. 특히 남자의 경우는 더. 보령 오토바이는 지금 소식도 끊기고 수소문할 방법도 없지만... 뱅크의 노래 들릴  때마다, 겨울바다 볼 때마다 문득 옛 추억을 소환하는 소중한 동기로 내게 남아있다. 보고 싶다, '보령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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