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펑펑 오는 산속의 외딴 산장. 문을 열면 벽난로가 있고, 마룻바닥에 편백나무로 된 벽과 높은 천장. 엔틱 느낌 좌르르 흐르는. 짙은 회색의 러그가 깔려있는 마룻바닥은 벽난로의 열기가 닿는 부분은 뜨겁고, 열기가 닿지 않는 부분은 차가웠으면 좋겠어.
눈 속을 한참 헤매느라 얼어버린 몸을 그 러그 위에 안착시키고 벽난로 불멍을 한참 때리다 보면 산장의 주인이 맥심 커피를 스테인리스 컵에 한 잔 타서 권해줬으면 좋겠어. 캠핑용 컵으로 살짝 야생의 느낌이 나는 컵. 양손으로 컵을 잡고 손을 녹이며 한 모금 들이키면 따뜻한 커피가 식도를 타고 위로 들어가며 몸을 사르르 녹이겠지. 눈 맞은 머리와 얼굴, 손이 벽난로와 커피에 사르르 녹으면서 몸이 노곤해지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으면 좋겠어.
단 하룻밤 그렇게 보낼 수 있을 만한 곳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나 가능하겠지. 아니, 나의 상상왕국인 파란 나라에서는 매일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파란 나라에서는 난 아직껏 미혼 여성이 되어 그런 외딴곳에서 첫눈에 이끌리는 인연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그런 곳에서 사람을 만나면 위험할 일이 더 많겠지만, 상상왕국에서는 그냥 믿고 사랑에 빠져도 될 사람들만 살고 있으니, 아마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무한한 자유가 보장되는 상상왕국.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절대 망하지 않을 나라. 나에게 상상왕국이 없다면 뭔 낙으로 살까? 오늘도 한참을 상상왕국의 눈 내리는 겨울 산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산장에서 산장 주인과 사랑에 빠지다가 아픈 이별을 하고 돌아왔다. 이별 직후라 맘이 그다지 편하지는 않다. 이런 설정은 옛날 영화나 드라마 혹은 애니메이션에서 하도 많이 써먹어서 이미 데드 메타퍼가 된 터라 내 픽션에서 욹어먹지도 못하겠다. 이렇게 추운 날은 그냥 이런 상상의 시간으로 잠시 버거운 현실의 시간을 대체하며, 설레고 행복하게 땜방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시절 난 행복했다고 기억할 수 있겠지. 측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