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힘을 다 끌어모아 밀어내도 밀어지지 않을 때가 있고, 아무리 막아서도 생각지도 못한 빈 구석을 타고 흡수되듯 딸려 들어올 때가 있어. 반면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아무 생각이 안 날 때도 있어. 이러한 상태를 원해서 그렇게 투쟁했는데, 막상 그렇게 되면 험난했던 투쟁들이 한갓 투정들처럼 작아 보여. 그때가 오면 그간 내면에서 치열하게 있어왔던 힘겨루기가 다 뭐였나 싶은 한없는 공허감이 밀려오지.
내가 이길 수 없어 주저앉았던 마음들이 정리됐다 느낀 건 마음의 에너지 크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성분 변화 때문에 그런 거야. 에너지를 줄이려고 애써 노력하지 마. 성분이 변화되면 금방 끝나. 자꾸 밀려고 하고 철벽 치는 거 보기 안쓰럽다. 너무 다치는 거 같아. 자연스럽게 놔두면 어느 순간 그냥 변하는 순간이 와. 리트머스지에 마음을 떨어뜨렸을 때 이전과는 다른 색깔로 반응하는 순간 말이야.
정리되고 깨끗해진 것 같아서 후련할 것 같지? 사실 그런 면도 있겠지만 오히려 더 공허해질 수도 있어. 속 시끄럽던 그간의 투쟁의 시간이 치열할수록 더 그래. 모두 묻어버리려고 애써 삽질하지 마. 닫아버리려고 애써 못질하지 마. 밀어버리려고 애써 끙끙대지 마. 너 충분히 많이 다쳤어. 그냥 둬.
햇빛 한 번 쪼이면 다 변화될 것들이야. 그냥 그 안에서 계절이 바뀌길 기다려. 내일을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