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었다는 사실을 잊는다는 허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4)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4)
이누도 잇신/츠마부키 사토시, 이케와키 치즈루
일본 영화의 멜로는 가끔 이렇게 특이한 것들이 있다. 손끝에서 눈물이 나오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심장은 가슴에 있는데, 가슴이 미어지는 게 아니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게 아니라. 팔다리가 미어지고 손끝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떠나간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평소 내 신념이 비합리적인 신념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영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어떤 노래가 그러던데, 사랑이니 아니니 하는 걸 논한다는 것 자체가 사랑했다는 뜻이다.
내가 떠난 사랑을 사랑이라 여기지 않던 신념이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던 가수는 어쩌면 "사랑한다"는 게 중요하지, "사랑했다"는 건 무의미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다 뒤집었다. 떠나가도 온통 사랑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쿠미코의 집. 쿠미코를 떠나 구 여자 친구에게로 돌아가 데이트를 하는 츠오네가 길거리에서 했던 오열.
이 사랑은 다시 이루어지진 않을 것 같지만 그렇게 평생 갈 것 같은 느낌이 진하게 묻어나는 결말이 깊은 아픔으로 다가왔다.
사랑이 끝난 자리는 왜 그리 아팠을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그건 '잃어버림'이 주는 아픔을 '잊어버림'으로 덮어버리는 고통의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의 앞섶에 아직도 묻혀있을 사랑의 향기를 허공으로 띄워 보내야 하고, 가끔 저 넓은 하늘 어디론가 사라졌을 그의 향기가 한참 후에도 허공을 볼 때 코끝에서 느껴지는 듯한. 없지만 내 코끝은 분명히 느껴지는 그 향이 코 끝을 타고 들어와 머리를 어지럽게 하며 심장을 감쌀 때 느껴지는 깊은 아픔들.
츠오네가 떠난 쿠미코의 정돈된 집의 구석구석은 아마도 그런 향이 가득하겠지. 떠나온 츠오네도 이곳저곳에서 느끼게 되겠지. 등 뒤에 매달려있던 쿠미코의 무게감을. 그날 바닷가에서 파도가 휘감던 젖은 신발의 축축함을.
잃었다는 사실을 잊는다는 허위는, 이루어지지 못했던 모든 사랑에 대한 변명이고 회피지만, 또한 그게 사람이니까. 사람으로서의 총량은 그것뿐이니까.
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은 사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