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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한 Apr 14. 2024

이동휘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캐릭터 - 124


이동휘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동휘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정휘동

제목: 죽음의 기회 


“말도 안 돼는 소리 하지 말고, 같이 정신차려 보자”


휘동은 자신의 친구가 신청한 안락사에 반대했다.

그리고 친구의 신청서를 찢어 버리기 위해서 법원을 찾았지만

이미 법정 싸움이 벌어졌다.


안락사법이 통과되고 

법정 싸움을 걸쳐 이를 승인하고 안 하고 가 결정된다. 


의사를 찾아서 휘동은 자신의 친구가 아직 살수 있다고 말한다.

정신적으로 이미 피폐해진 친구는 상담 중에 이대로 살아 있으면,


너무 초라하다 보니, 이제는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사람마저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라고 호소하며 자신을 이대로 두면 

사회의 악이 될 거 같다며, 안락사를 신청했다. 


“개소리 좀 집어 치워!”


그런 친구를 동휘는 때려 죽이고싶었다.

빨리 안락사에 관련한 제출안을 취소하라고 협박했지만,


“죽이고 싶은 눈빛이네, 그래.. 나 죽여줘.. 나 제발 좀 죽여줘!”


그의 연인은 그의 눈 앞에서 살해당했다.

그 뿐만 아니라 강간 사건이었고, 그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죽어야 하는 건 니가 아니라 그 놈이지!!!”

“나도 이제 살 필요가 없어”


평소 잉꼬 부부라고 소문이 났던 친구,

그런 친구가 이렇게 무너진 모습을 보자 가슴이 아픈 휘동이었다. 


“야, 너 왜 그래.. 강했잖아”

“다, 덕분이었는데,, 이제 없잖아.. 나 살 이유가 없어.. 다 그 놈 같아 보여서”


자신의 부인을 강간한 놈은 평소 자신을 잘 따르던 직장 후배였다.

일부러, 자신의 부인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친근하게 지냈다는 건 몰랐다.


그렇게 당한 후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친구. 

그런 친구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해보지만, 친구는 결국 


재판에서 승소해 안락사를 허락받는다. 


“미안하다 휘동아. 덕분에 좋은 삶이었어, 하지만, 나한테 우리 아내가 너무 크다. 지금 혹시 저승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까, 기대가 돼”

“…”


죽음이 기대가 된다는 말에 휘동은 더 이상 친구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 먼저 가 있어라. 내가 곧 쫓아갈 테니까”

“곧은 무슨, 천수를 누리다 와라. 내가 먼저 가 터를 마련해 놓을 테니”

“개색히, 그냥 좀 있지”

“마지막 가는 길 이렇게 보낼 꺼야?”

“아니, 잘 가. 잘… 잘 가라고..”


감정은 억눌러 보지만, 

억누르지 못한 감정은 어쩔 수 없이 표정으로 드러나고, 눈물로 새어 나왔다. 


그는 장례식을 죽기 전에 했다. 

그리고 모두의 인사를 받고 안락사 주사를 맡고, 행복하게 잠들었다.


휘동이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죽음으로 가서, 

사랑하는 그녀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꼭 행복해라”


그의 육체가 불타 가루가 되어가는 시간,

그와 함께 했던 수많은 시간이 떠오른다. 


저승에서는 부디 나쁜 일 없고 행복만 하길 바란다.

사랑하던 그녀 와도 꼭 만나길 바라고.


그와 친했던, 그의 살아있는 가족들도 눈물범벅이다.

굳이 꼭 이런 이별을 해야했나 친구를 원망했지만. 


그가 원한 일이니까.


애초에 저런 안락사법이 통과만 안됐어도!

휘동은 목표가 생겼다. 


안락사법을 다시 폐지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변호사 법을 공부해 


죽으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며 어떻게 든 막겠다는 생각을 했다. 


“휘동이 이제 공부하냐?”


친구의 변화에 다른 친구들은 놀랐다.

친구를 잃은 친구의 마음을 이해했고, 또 감탄했다.


예전부터 머리가 좋다는 소리는 자주 들었지만

그가 무언가에 집중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기도 했다.


“그래봐야 백 일을 못 넘긴다!”

라며 내기까지 걸렸지만, 결국 휘동은 변호사가 된다. 


안락사법 전문 변호사가 되기로 한 휘동은 이제,

모든 안락사를 막을 생각이었다 


죽음의 기회는 오직 신만 정할 수 있다 라고 생각했고,

어쩌다 보니 여러 종교단체의 지원까지 받게 되는 휘동이었다.


휘동은 안락사 반대 변호사로 유명세를 떤다. 

승률 0%로. 


사실 안락사를 신청하는 사람들 대 부분이 삶이 너무나 힘든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쉽게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때,

수 없이 무너지고 무너져서도 끝내 일어서다가,


이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을 때 

고통이 끝나길 바랄 때 죽음을 바랐다. 


그러다 보니 법원은 대체적으로 안락사를 통과한 사람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보통 법원이 하는 일은 이 사람이 정말 자진해서 죽음을 원하는 게 맞는가?


혹시나 다른 외압으로 인해 선택한 일이 아닌가? 

이런 법률적인 해석과 이 부분에 대한 감정(평가)을 하는 역할이 주였다.


그러다 보니 주변인이 아닌 본인이 강력하게 원하는 일이라는 게 확정이 되면

거의 다른 수순 없이 안락사 형이 결정됐다. 


“뭔가 방법이 잘못됐어”


동휘는 자신의 처절한 승률을 보며 방법을 다르게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자살방지법에 대한 법안을 준비하면서, 


안락사 신청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위로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기꺼이 그 희망이 되어 주겠다고. 


그렇게 동휘는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만나

비록 이기지 못하더라도 설득하며, 그들에게 다시 삶을 희망하게 해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런 휘동의 활동에 감명받은 몇몇의 자원봉사자들도 

동휘의 뜻에 공감해 함께했다. 특히 종교단체들이 자원봉사를 자처하며 찾아왔다.


일손은 늘 부족하기에 동휘는 거절하지 않고 모든 지원을 받았다.


“솔직히, 이런 일은 국가가 해야하는 거 아닙니까?”

“맞아요. 국가가 사람을 죽게 하는 법을 통과시키다니, 저는 나라 망했다 생각했어요”

“어쩌겠어, 자원 낭비일 수도 있는거지”

“자원 낭비요?”

“아니, 나는 그러니까, 에이 일합시다!”


동휘는 가만히 일 못하고 숨만 쉬는 사람에게도 

절대로 낭비라는 말을 써 선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살아 있으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옛말에 이미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고요!”


휘동이 좋아하는 드라마에서도 

제발 살아만 있게 하라고, 그럼 날아 가겠다고 하는 대사도 있었다. 


“사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알려줘야 합니다”


사람들은 안락사법이 통과되고 얼마나 사람들이 신청할까?

오히려 이를 역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잘못되진 않을까 걱정도 하지만,

법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아서 


현재 알려진 바로는 아직까지 본인이 아닌 타인의 안락사 신청은 없었다.

식물인간처럼 본인의 의사가 없는 경우에는 안락사 신청이 불가능했다.


오로지 자의로만 안락사 신청이 가능했다.

그래서 사라들은 반쪽짜리 법이 아닌가 생각했다. 


정말 안락사가 필요한 사람들은 저런 사람들이 아닌 가 했는데

법을 어기지 않은 사람을 타의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라는 걸 명제로 내세웠다. 


아마 그냥 타의가 사람의 생을 결정할 수 없다고 했으면 

사형선고에 대한 논란이 계속될 것이니 이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처럼 보였다. 


휘동은 그런 거 상관없이 

타의 든 자의 든 죽음은 하늘의 뜻으로 결정된다는 주장을 펼치며


오늘도 자신의 사단을 이끌며 안락사 반대를 외치며 

안락사를 신청한 사람들의 적이 되고 있다. 


그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제발 좀 죽게 좀 내버려두라는 말을 하지만,

그때마다 휘동은 그들의 손을 두 손으로 부여 잡고 .


“같이 삽니다. 살다 보면 희망이 있을 겁니다”


말하면,

그들은 울먹이면서 말했다. 


“변호사님, 제발 저 좀 살려, 아니 죽게 두세요. 저 너무 힘들어요”


하지만 휘동은 생각했다.

그들은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더 이상 살 용기가, 희망이 없는 거라고. 


그래서 어떻게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까

늘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러다 사람은, 사람으로 힘들지만 사람으로 치유 받는 다는 

그런 아주 간단한 공식을 깨닫는다. 


그래서 여러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희망에 대한 책을 지원하기도 하고, 음악도 만들고 그랬다. 


[죽는 것 보다 나은 삶]이란 축제도 만들고 여럼으로 노력하는 휘동이었다.

그런 휘동에게 다가 온 어떤 여인, 그녀의 이름은 연지였다. 


“연지..씨?”


휘동과 그녀는 죽는 것보다 나은 삶에서 만나게 되었다.

휘동은 이런 일을 하는 걸 더욱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와 데이트를 하다가

앞으로 집에서도 그녀가 보고싶어 청혼을 했고, 

그 청혼이 받아져 이제는 연인에서 부부로 함께하게 되었다.


휘동에게 연지는 세상의 모든 것이 되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살게 된 휘동은, 


처음으로 승소하였다.

자살에 실패한 사람을 자신이 이끄는 재단으로 와 

희망을 주고, 사랑을 주고, 행복을 줄 수 있게 노력하는 휘동이었다. 


그렇게 몇번인가 승소를 거듭하기 시작하며

어느새 승소율이 35%가 되었다.


이제 세 번 중 한 번은 이기게 되었다. 

그들에게 휘동이 차린 센터/재단이 효과가 있었다. 


“봐! 내가 뭐랬어!”


그렇게 휘동은 삶의 소중함을 사라들에게 전파했다.

자식까지 태어나 행복한 삶은 더욱 더 더하기가 되면서 곱셉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런 휘동에게 크나큰 시련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자식 둘을 데리고 여행을 떠난 연지,

휘동도 함께하려고 했으나 지난 소송에 대한 대법 판결 날짜가 조정되어

함께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이기고 늦게라도 출발할 께”

“알았어, 먼저 우리가 가서 잘 놀고 있을 꼐!”

“그래, 금방 갈게!”


그렇게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늘에서 비행기 폭파사고가 일어났고,


시체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휘동은 자신이 변호사로 참여만 마지막 사건에서 

승리를 얻었지만, 죽고 싶어졌다. 


한동안 우울증을 앓으며 살다가 

휘동은 자신이 그토록 반대하던 죽음.


죽음의 기회를 얻으려 했다.

안락사법 폐지를 주장하던 휘동은 


자신이 안락사를 신청하게 된다. 


그런 휘동을 막는, 민경,

휘동의 법인으로 들어와 재단과 센터에서 같이 일하며 

안락사 반대로 일하고 있는 민경이었다.


“선배님..”

“민경아. 나 그냥 냅둬, 우리 연지,, 보러 가야해. 나.. 정말… 우리 연지.. 봐야해”


그렇게, 


휘동은 연지가 보고싶어 안락사를 신청했고

민경은, 자신이 존경하던 선배의 죽음의 기회를 빼앗기 위해 


그와 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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