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막 내리기 시작한 순간, 진도는 집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이 다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만 부으면 완성되는 컵라면처럼 자신도 서울만 오면 완성될 줄 알았다. 그렇게 그렸던 미래였는데, 지금의 현실은 자신이 상상한 모습과 너무나 달랐다.
“아. 아 뜨거.”
뚜껑을 여니 김이 모락모락 퍼지면서 사라졌다. 붉게 칠해진 국물에 하얗다 만 나무젓가락을 우겨 넣는 진도였다.
곧 나무젓가락에 끌려오는 누런 색의 면들을 서둘러 후루룩 소리를 내며 입안으로 넣는 진도였다.
“캬. 역시 라면은 매운 게 최고지.”
그렇게 상처받은 하루를 위로했다. 차가워진 마음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라도 버틸 수 없는 느낌이었다.
이미 무너져 파편 된 희망을 다시 줍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다. 고향으로부터 도망치다시피 한 진도였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이름과 다르 게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이제 어떡하냐.”
라면을 거의 다 비우고 이제 국물만 남았을 때였다. 그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한 진도였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국물을 다 마셨다.
“몸에 안좋아도.”
남은 찌거기도 나무젓가락으로 긁어모아 먹는 진도였다.
“맛은 좋잖아.”
다 먹고 이제 분리수거만 남은 컵라면이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잘 살았다.”
진도는 평소에 편의점에서 먹기만 잘 쳐먹고 정리는 잘 하지 않는 사람들을 혐오했다. 그래서 자신을 혐오할 수 없으니 쓰레기를 잘 정리정돈을 했다.
그나마 이 편의점은 다른 편의점에 비해서 깨끗한 편이긴 했다. 이 시간대에 일하는 알바생 때문이었다.
“식사 다 하셨어요?”
“아, 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덕분이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아무 상관이 없었다. 어떤 손님은 이 알바생 때문에 이 편의점을 오지 않을까 생각은 했다.
알바생은 방긋 웃으며 도진에게 인사를 했다. 야간 알바가 오기전까지 11시가 이 편의점의 피크였다.
알바생이 근무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여기 점장님은 잘 안 오시나 봐요?”
“점장이요?”
어린 알바생이 손님인 도진을 쳐다보았다.
“항상, 알바생님만 있는 거 같아서.”
“알바생님?”
방긋 웃으며 쳐다보는 알바생이었다. 머리를 쓸어 뒤로 넘기는데 샴푸 광고를 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진도는 알바의 미소를 보고 황홀한 기분을 느꼈지만 왜 웃는 건지 몰랐다.
“점장 없죠. 알바, 있는데 전 아니 예요.”
“네?”
“제 꺼 예요. 이 가게. 사장이 저예요.”
먹던 라면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놀라는 일이 드물어졌다. 처음에는 매일 놀랐지만 이제는 사건과 사고가 끊임이 없는 게 너무나 당연한 삶이 되었다.
그런데 며칠간 알바라고 생각했던 젊은 여자가 이 넓은 편의점의 주인이라니. 부러운 감정과 더불어 놀라운 감정이 컸다.
편의점의 크기는 정말 커서 안에서도 밖에서도 앉아 있을 공간이 있었다.
“이렇게 넓은데.”
“그래서 고생이긴 하죠. 다 빚이예요 이것도.”
그래도 대단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직 자기 꺼 아니고 은행꺼라고 하는데 젊은 여자가 이런 게 간수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대단했다.
“대단하시네요.”
대단하다는 말 말고는 할말이 없었다. 서울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자신과 다르게 훌륭한 결과물을 낸 그녀였다.
“다 덕분이죠.”
진도와 같은 손님 덕분에 이렇게 운영할 수 있는 거라고 오히려 고마워하는 그녀를 봤다. 하늘은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고 했는데 그녀가 엄청 노력했기에 이런 결과기 일어났겠지 생각했다.
“덕분에 배우고 가네요.”
부러움에서 질투가 낳아지고 있었다. 씁쓸한 입맛을 다지며 진도는 그만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이미 어리고 예뻐서 자신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더 높이 치솟아 올라가 버린 느낌이었다.
못 먹을 과일을 쳐 다도 보지 말라고 했다. 오늘의 진도는 사과가 갑자기 떨어져도 그걸로 인해 중력을 발견해낼 뉴턴은 절대로 되지 못할 모습이었다.
과거엔 내가 먼저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뉴턴의 권위는 자신한테 있을 거라고 말하고 다녔던 진도였지만 오늘만큼은 뒷걸음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밝은 밤이네.”
그녀처럼 어두운 밤을 비추는 등불과 같은 존재도, 오늘만큼은 진도 같은 사람에게 검은 불을 선사하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돌아온 자신의 집은 캄캄했다. 전기세도 곧 끊길 위기였고 가스도 마찬가지였다. 해결하기엔 너무나 가벼운 지갑과 0에 가까운 숫자가 찍혀 있는 통장 잔고였다.
“여기 왜 있냐.”
알바생이나 보려고 서울에 올라온 건 아니었다. 알바생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도 오늘로 끝날 수도 있었다. 오르지 못할 산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산봉우리에 오른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산을 볼 수 있었겠지 만 자괴감이 들기에 그러고 싶지 않은 모습이 생각났다.
진도는 한 번도 펴보지 않은 담배가 생각났다. 펴볼까 싶었다. 그러려면 다시 편의점에 가야 했다. 가기 싫을 줄 알았는데 핑계가 생겨서 좋았다. 시간을 보니 11시 전이었다.
“11시 넘었으면 안 피고 싶었을 거 같지만.”
담배와 라이터를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다시 발길을 옮기는 진도였다. 그런 진도를 다시 발견하고 놀란 알바, 아니 어린 사장님이었다.
“또 오셨네요?”
“아 네, 여기 담배 한 값 이랑 라이터 하나만 주세요.”
“담배 피세요?”
“이제 피워보려고요.”
“아. 한 번도 안 사셔서. 아직 안 피우시면 안 피우는 게 좋은데. 담뱃대신 할 거 추천해드릴까요?”
담배가 편의점 매출의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알고 있었던 진도는 놀랐다. 자신이라면 더 많이 담배를 피게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바깥에서 담배를 피면 냄새도 나고 오려던 손님도 발길을 끊기 때문일까?
“건강 생각하면 좋잖아요~”
자신의 예상이 모두 빗나가는 진도였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여자라고 생각했다. 문득 한 번도 보지 못한 유니폼의 이름을 보았다.
유나라.
그녀의 이름이었다.
“나라씨?”
“어. 아 이거 알바생 껀데. 제 이름은 아니에요.”
“아. 이름. 물어봐도 돼요?”
“물어보면 물어보는 거죠. 대답을 제가 할지 말지 정하면 되는건데, 물어보는 것도 물어봐요? 사실 물어본 거 아닌가 그게?”
입술을 깨문 진도였다. 그래 물어본 거 맞았다. 그러면 대답을 해주면 안되나 생각만 했다.
“그쪽 이름 알려주면, 저도 알려 줄게요. 제 이름.”
“저요? 저는 진도. 박 진도입니다.”
“박진도. 어려 보이시는데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담배 하러 사왔다가 소개팅을 하는 느낌을 받는 진도였다. 그런데 담배를 얻는 것보다 이게 더 마음에 드는 결과였다.
“이제 스물 아홉니다. 29살.”
“아. 그래요? 저희 동갑이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했을 거 같은, 아니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거 같은 외모였다. 그래서 어린 학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과 동갑이라는 말에 놀란 진도였다.
“뭐에요? 그 눈빛?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네요?”
“아. 어려 보여서, 고등학생 인줄 알았어요.”
“아 정말요? 호호. 사람 볼 줄 아시네요?!”
좋아서 손사래를 치는 그녀였다.
“우리 동갑인데 그럼 친구 할래요? 동네친구 없어서 심심했는데.”
자신의 이름을 주세나라고 밝힌 그녀였다.
세나도 진도처럼 서울로 상경했다. 그것도 무려 17살 때 일이었다.
자신 보다 3년 먼저 서울에 올라왔다고 했다.
“처음엔 그럼, 동대문에서 일한 거야?”
“그렇지, 그때 멋도 모르고 옷 장사해보겠다고 나서서”
어느새 편의점 앞에 펼쳐진 좌석에서 캔 맥주를 마시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11시가 넘어 다른 알바생이 세나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때 지나가면서 뉴스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다.
최근 들어 바닷물 수위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고 했다.
-아주 위험한 증상입니다.
바닷물이 일시적으로 응축하는 느낌으로 이게 폭발하면 위험해질 거란 말이 있었다.
“무슨 바닷물이 개구리도 아니고, 날아오르기 위해 움츠리는 거야?”
남몰래 들은 뉴스를 꺼내는 세나였다.
조금 전까지 서로 어떻게 서울에 상경했는지 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제가 바뀌었다.
진도는 그런 부분을 다른 사람이 했으면 불쾌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세나에겐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름을 모를 때부터 이미 느끼고 있던 호감이 빠른 속도로 물살을 타고 있었다. 마치 해일처럼 자신의 마음을 덮쳐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너는 뭐 하려고 서울 왔어?”
이 편의점은 세나의 큰 꿈이 깨진 조각이었다.
꿈이 크다 보니 깨진 조각도 컸다.
하지만 진도의 꿈도 세나 못지 않게 컸다.
“나는, 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기자가 되고 싶어서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맨 땅에 헤딩을 했다.
그리고 딱딱한 바닥에 피만 쏟았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다가 먹고 살 문제 때문에 대형 언론사가 아니라 우선 돈을 벌 수 있는 아무 곳이나 취업을 했던 진도였다.
그게 패착이었다. 사기를 먹었다. 그렇게 몇 달치 월급도 받지 못해 일했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취업을 했다.
이미 빚이 가득한 상태였다. 그곳에서는 양심에 어긋나는 기사를 써야 했다. 참고 쓰려 다가 피의자가 자신에게 ‘네가 죽인 거라고, 너 같은 기자가 우리 애 죽인 거야’라는 말을 듣고 펜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 위해서 기사를 썼던 진도였다. 그런데 자신의 기사로 인해 직접적으로 누군가 자살을 했다. 그 이후 트라우마가 생겼는데, 회사는 글을 못 쓰는, 취재도 못해오는 기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진도씨, 오늘 까지만 일을 하는 걸로 하고, 자리는 정리해 줘야겠어.”
“…”
진도는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알바를 하면서 버텼지만 이미 터진 일을 메우지 못했다. 그렇게 내야 할 돈을 내지 못한 게 많았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숨이 턱 막혔다.
어떤 글을 보면 사랑이 밀려오는데, 진도에게는 빚만 밀려왔다.
유일하게 빚이 아닌 빛으로 파도 쳐 온 게 지금 눈 앞에 있는 세나였다.
진도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속물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예쁜 여자하고 만 같이 있어도, 기분이 좋네. 재밌네.’
예쁜 여자를 세나로 처음 본 건 아니었다.
그런데 전부 ‘일’로 만나 ‘을’로 지내야 했다.
그래서 갑과 을이 아닌 이런 관계가 신기한 도진이었다.
“좋다. 이렇게 만나서. 갑자기 만났지만, 앞으로 잘 지내보자.”
주먹을 내미는 세나였다. 그녀를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이런 친구가 생긴 것 만으로 위로를 받는 진도였다.
“나도. 잘 부탁해.”
그때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시간은 이제 교통편도 끊길 시간대였다.
새벽만이 오고 있을 시간이었는데 새벽 말고 다른 것도 함께 오고 있었다.
“해일이야.”
“해일?”
아무리 해일이 커도 여긴 서울인데. 인천도 부산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 있나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 위에 뜬 헬리콥터들이 빚춘 빛들에 대기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벽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