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389
로운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로운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노선필
제목: 가로웹툰
새학기가 되고, 봄바람이 살랑이는 어느 날 선필이 다니던 고등학교 교실은 무척 부산스러웠다. 선생님은 칠판 가득 오늘의 수업 내용을 적어 내려갔고, 학생들은 저마다의 필기 도구를 꺼내 들고 분주하게 받아 적고 있었다. 평소라면 긴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떠들썩하기만 한 2반 분위기도 이날만큼은 달랐다.
“이거 시험 범위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학생들에게 불꽃 같은 의지를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잠깐만요! 아직 못 적었어요!”
한 학생이 급하게 손을 들고 외쳤다. 눈을 가늘게 뜬 선생님이 ‘왜 아직도 못 적었어?’라는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칠판 지우개를 들었다 놨다 한다.
“빨리 적어. 나 갈 길이 바쁘니, 다른 친구 것 좀 배껴서라도 끝내.”
교실 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학생들은 서로 노트 앞뒤를 돌려보며 정신없이 필기를 해 내려갔다. 어느새 종이 한 귀퉁이엔 무언가 삐뚤빼뚤하게 적힌 흔적들과, 옆 친구가 빌려준 노트를 바탕으로 제대로 옮겨 적으려는 시도 등이 교차해나갔다.
그 와중에 노선필 역시 빠르게 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업 내용을 기록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면 전혀 달랐다. 그의 공책에는 수업 내용이 아닌, 무언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림들이 빼곡했다. 선필은 언뜻 보기에 수업 필기를 하는 것처럼 교묘히 위장하고 있었지만, 사실 ‘만화’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선필은 혼자 구석자리에 앉아 자기 노트를 넘겨보았다. 페이지를 빠르게 넘길 때마다 마치 애니메이션의 원리처럼 그림이 찰나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게 보였다.
“오, 이거 정말 재밌는데?”
곁에서 보던 친구가 감탄한다. 다른 친구들도 호기심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교과서나 만화책에서만 보던 장면을, 선필이 직접 그린 낙서로 치부되지만 사실은 꽤나 정성껏 그린 그림들이었다. 학우들인 이를 생생히 감상했다. 그걸 본 친구들은 몹시 흥미로워했다.
“야, 넌 커서 뭐 될 거야?”
“만화가. 난 만화가가 되는 게 꿈이야.”
선필은 주저함 없이 대답했다. 친구들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야, 만화가도 돈 잘 벌어?”
장난스럽게 물었다. 요즘 웹툰이 대세라곤 하지만, 아직 부모님 세대나 어른들 사이에서는 ‘만화가’라는 직업이 과연 안정적인 길인지 의구심을 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필은 그럴 때마다 자신만의 촌철살인으로 대응했다.
“너네가 다 돌려보기만 안 하고, 직접 다 사 보면 대박날 텐데?”
그 말에 친구들은 순식간에 정색했다가 곧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나중에 네가 데뷔하면 꼭 사줄게!”
약속을 하면서도, 과연 그런 날이 올까 하는 반신반의한 표정들이 교차했다.
하지만 선필에게는 늘 한 가지 ‘확신’이 있었다. 펜 끝에서 태어나는 캐릭터와 이야기들이 사람들을 웃기고 울릴 수 있다면, 그 길에는 반드시 기회가 있으리라는 것. 만화에 대한 열정은 그를 매일매일 설레게 했다. 교과서보다 더 두꺼운 스케치북이 항상 그의 가방에 들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고민할 즈음, 선필은 무거운 현실감에 맞닥뜨렸다.
“대학에 가더라도 만화 관련 전공을 택해야 하나? 아니면 웹툰 학원이라도 다녀야 하나?”
“웹툰 작가를 계속 꿈꾸고 싶지만, 부모님은 예술 대학 진학을 반대하시네.”
부모님에게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직장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들도 자식이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살길 바라니까. 하지만 선필의 고집은 만만치 않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만화를 그려야지.”
결국 타협안으로, 형식적으로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그 외 시간에는 웹툰 관련 학원이나 개인 작업을 병행하기로 했다. 다행히 입학한 대학에서도 만화 동아리가 있어서, 선필은 그곳에서 비슷한 꿈을 가진 친구들과도 교류할 수 있었다.
당시 그의 최대 관심사는 스마트폰으로 보는 ‘웹툰’이었다. 그러나 주류가 된 세로 스크롤 방식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을 품었다. 왜 모든 웹툰이 세로 스크롤이어야 할까? 만화책을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그 독특한 연출감, 페이지를 넘길 때의 묘미, 장면과 장면이 병렬로 펼쳐지는 그 가로 구도의 쾌감을 디지털 환경에서도 살릴 순 없을까?
선배 만화가들에게 이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대부분 돌아온 말은 비슷했다.
“요즘은 세로가 대세야. 독자들이 스마트폰을 세로로 들고 보니까, 굳이 가로로 보려면 불편해하잖아.”
“가로는 예전부터 전통적인 만화책 방식이지. 지금 시대엔 안 맞는다.”
현실은 ‘세로 스크롤’이 분명히 대세였다. 플랫폼 대부분도 세로 스크롤 방식 외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독자들도 그 방식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선필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면 내가 직접 방법을 찾아봐야지. 정말 안 되는 건지, 아니면 아직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던 건지.’
그 때부터 그는 스마트폰 화면을 가로로 돌려놓고, 어떤 만화를 그려야 가장 효과적일지 노트에 빼곡히 아이디어를 적어나갔다. 주요 포인트는 캐릭터가 가로로 이동할 때의 역동성, 컷 사이에 숨겨진 연결감, 그리고 독자가 직접 페이지를 넘길 때 느끼는 쾌감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지 2년 차에 접어들 무렵, 선필은 드디어 가로 스크롤 방식으로 구상한 단편 웹툰을 완성했다. 제목은 <회전목마>.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청춘 성장물이었는데, 주인공이 가로로 빙글빙글 이어진 무대 위를 달리며 시련을 극복해나가는 설정이었다. 주요 장면에서는 독자가 직접 화면을 가로로 슬라이드하면, 캐릭터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달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출되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들고 여러 플랫폼에 투고했을 때 돌아온 답변은 하나같이 냉정했다.
“저희는 세로 스크롤만을 지원합니다.”
“가로 스크롤은 아직 시스템적으로 구현이 어려울 것 같네요.”
“아이디어는 좋지만, 독자들이 불편해할 우려가 큽니다.”
거절 메일이 쌓일 때마다 선필은 좌절했다. 한동안 만화를 완성시킬 의지도 꺾여 버릴 정도로 힘이 들었다. 동아리 친구들조차 좋은 반응이 없었다
“야, 그냥 세로로 바꾸면 되잖아. 굳이 왜 고집을 부려?”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도 그런 의문이 피어올랐다. ‘그래, 그냥 나도 세로 스크롤로 하면 되지 않을까? 굳이 옛 방식을 고집해서 뭐하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선필은 만화책을 바라볼 때마다, 가로로 펼쳐진 컷 구성의 매력에 다시 사로잡혔다. 특히 거대한 장면을 수평으로 배치함으로써 얻는 박진감,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는 스릴감은 디지털 만화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요소였다. 그는 언젠가 이것이 통할 날이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울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선필에게 낯선 메일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신생 웹툰 플랫폼 ‘웹빌드’입니다. 작가님의 투고 작품 <회전목마>를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저희가 아직 규모는 작지만, 가로 스크롤 웹툰을 테스트해보려 합니다. 혹시 함께해 주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그가 그토록 원하던 가로 스크롤 형식을 플랫폼 측에서 직접 제안해온 것이었다. 선필은 그날 밤 잠도 못 잘 정도로 기뻐하며, 곧바로 연락을 취했다. ‘웹빌드’의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저희도 세로 스크롤만큼 안정된 시스템을 구축한 건 아니지만, 가로 스크롤이라는 형식을 한번 시도해보고 싶어요. 독자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선필 작가님께서 저희와 함께 파일럿 연재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탄생한 작품이 바로 <가로의 전사>였다. 이전 단편 <회전목마>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좀 더 대중성을 가미한 ‘판타지 액션’ 장르로 구성한 것이었다. 가로로 스크롤을 넘어갈 때마다 캐릭터가 펼치는 공격이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컷을 설계했고, 스토리는 몬스터와의 전투, 동료들과의 합동 플레이 등을 통해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이도록 했다. 초기 반응은 기대 반, 불안 반이었다.
“가로로 보니까 왠지 게임하는 듯한 느낌이라 신기해요!”
“근데 스마트폰을 가로로 돌려야 해서 조금 불편하네요.”
독자들의 댓글들은 호기심과 어색함이 교차했고, “이게 세로로 보면 안 돼요?”라는 물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꾸준히 보는 독자들은 하나둘씩 늘어갔다. 이 가로 연출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전투 장면에서 나오는 가로 스크롤 특유의 박진감을 극찬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인물들 간 대화가 양옆으로 이어지는 장면도 색다른 매력을 뿜었다.
<가로의 전사>가 어느 정도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자, 선필은 독자들이 남기는 댓글 하나하나에 신경 쓰게 되었다. 특히 “장면 전환 사이에 대화가 좀 더 매끄럽게 이어지면 좋겠다”라는 피드백이 있었다. 세로 스크롤에 익숙한 독자들은, 가로로 스크롤을 넘길 때 다음 컷에서 이미 대화가 끝나버리거나 상황이 확 바뀌어 있는 점을 어렵게 느낀 것이다.
그래서 선필은 과감한 변화를 주었다. 컷과 컷 사이에 ‘짧은 연결 컷’을 삽입해,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흐름이 이어지도록 했다. 예를 들어 전투 장면에서 주인공이 공격 자세를 취하며 대사를 던지는 컷과, 상대 몬스터가 반응하는 컷 사이에 작은 전환 컷을 두어 ‘공격이 이어지는 과정’을 부드럽게 묘사하도록 했다.
또한 대사를 너무 한 장면에 몰아넣는 대신, 가로로 스크롤하면서 대화가 이어지도록 분산 배치했다. 이 변화는 의외로 상당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어, 이거 전보다 훨씬 보기 편해졌어요!”
“가로가 이렇게까지 박진감 넘치는 줄 몰랐네요!”
그렇게 독자들의 반응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작품을 개선한 결과, <가로의 전사>는 차츰차츰 ‘웹빌드’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웹툰 커뮤니티에서도 가로 스크롤 웹툰을 처음 접해본 독자들이 ‘색다른 경험’을 높이 평가하며, 구전 마케팅처럼 소문을 퍼뜨려 주었다.
작품의 인기가 점점 커져가자, ‘웹빌드’는 새로운 시도를 제안했다. 바로 연예인이나 배우를 모델로 삼아 ‘특별 출연 캐릭터’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요즘도 웹툰 속에 아이돌이나 유명인이 카메오로 등장하여 화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 이를 통해 이목을 끄는 것이다.
그 대상 중 한 명이 바로, 요즘 핫하게 떠오르는 젊은 배우 ‘389 행운’을 모델로 한 캐릭터였다. 잘생긴 얼굴과 훤칠한 키, 그리고 다정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로운을 웹툰 속 캐릭터로 그려 넣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였다.
선필은 처음엔 이 제안에 대해 조금 망설였다. 작품 전체의 스토리 흐름과 부합해야만 했다. 단지 홍보를 위한 억지스러운 등장은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해보니, 의외로 잘 어울릴 만한 부분이 있었다.
<가로의 전사> 속에는 각 마을의 수호 기사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주인공이 모험을 떠나는 여러 지점에서 협력 혹은 대립하는 중요한 단역이자 조연들이었다. 거기에 ‘로운’을 모델로 삼은 매력적인 수호 기사를 등장시키면, 스토리도 한층 풍부해질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결국 선필은 대본 회의를 통해 로운의 출연을 결정했다. 그의 설정명은 ‘루안’. 진짜 이름과는 살짝 다르지만, 캐릭터의 외모와 분위기는 로운을 참고해 애니메이션체로 변환했다. 루안은 해당 마을의 수호 기사로서 뛰어난 검술을 자랑하며, 주인공을 돕거나 때로는 경쟁심을 불태우기도 하는 인물이다.
웹빌드는 이와 같은 특별 출연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가로의 전사>에 루안이 등장! 원작 모델은 바로 ‘389 로운’!”
이런 식으로 SNS를 통해 관련 이미지를 배포했고, 순식간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덕분에 <가로의 전사>는 이전보다 더욱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기존 독자들 역시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에 흥미를 느꼈고, 로운의 팬들은 좋아했다.
“우리 오빠 캐릭터가 너무 멋지게 나온다!”
웹툰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작품과 인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자, 선필은 생각했다. ‘역시 대중성과 작품성을 함께 고려해야 훌륭한 결과물이 나오는구나.’
가로 스크롤 웹툰이라는 독특한 형식이 점차 인기를 얻자, 다른 플랫폼들도 슬슬 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가로의 전사>가 어느 정도 흥행 궤도에 오르며 좋은 평가가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신선한 형식”
“생각보다 불편함이 크지 않다”
더불어 수많은 독자들은 가로웹툰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가로야 세로야, 중요한 건 재미지!”
예전에는 ‘웹툰은 세로가 편하다’라는 게 당연시되었지만, 의외로 가로 구도가 주는 영화적 연출감이나 만화책 읽는 듯한 감성이 색다르다는 반응도 커졌다.
이런 흐름을 감지한 기성 대형 플랫폼들은 조금씩 가로 스크롤을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일부 플랫폼은 한정된 이벤트 페이지에서만 가로 뷰어를 지원하고, 독자 반응을 살폈다. 아직은 미미했지만,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변화였다.
물론 세로 스크롤이 갖는 장점 한 손으로 간편하게 이어 볼 수 있고, 휴대전화 세로 화면에 최적화된 점 등은 분명히 여전히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로라는 새로운 형식이 경쟁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시간이 흘러, <가로의 전사>는 여러 에피소드가 완결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주인공이 최종 보스를 무찌르는 클라이맥스 직전, 독자들은 폭발적인 댓글과 ‘기다리면 무료’ 쿠폰 등을 활용해 조회수를 끌어올렸다. 마지막 연재분이 올라가던 날, 웹빌드의 서버가 잠시 다운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그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린 후, 선필은 웹툰 분야 전문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기자의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
“<가로의 전사>가 성공을 거두면서, 작가님께서는 가로 스크롤이 세로 스크롤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보시나요?”
선필의 대답은 솔직했다.
“아니요. 저는 가로 스크롤이 세로 스크롤을 대체하리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더 나은 방식’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고요. 다만, 어떤 이야기에는 가로 구도가 더 매력적인 연출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실제로 보여주고 싶었죠.”
이어 기자가 물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가로 스크롤 작품만 만드실 예정인가요?”
선필은 잠시 고민했다.
“아마 작품마다 다를 것 같아요. 어떤 스토리는 세로가 어울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가로가 줄 수 있는 극적인 효과와 장점을 잊지 않을 겁니다. 언제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독자들이 그걸 재밌게 받아준다면, 형식의 한계는 없는 거니까요.”
그 인터뷰는 웹툰 관련 커뮤니티와 SNS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가로냐 세로냐’로 갈리던 논쟁에 대해 선필은 '둘 다 가능성이 있고, 둘 다 장단점이 있다. 작가는 이야기에 맞는 최적의 형식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정리해 준 셈이었다.
<가로의 전사> 완결 후, 선필에게는 꽤 많은 제안이 들어왔다. 기존의 세로 스크롤 작품을 가로 버전으로 리메이크해달라는 의뢰도 있었고, 전혀 다른 장르의 신작을 함께 기획해보자는 러브콜도 있었다.
그 중 눈길을 끈 건, 한 게임 회사와의 협업이었다. 이 회사는 RPG 게임의 스토리컷을 가로 스크롤 만화로 만들어보자는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었다. 실제 게임 속 세계관을 기반으로 웹툰을 제작하고, 그 웹툰을 보면서 유저들이 게임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전투 장면이나 던전을 횡스크롤로 구현하면, 마치 게임 속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현장감을 살릴 수 있으리라는 구상이었다.
선필은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전에도 <가로의 전사>에서 RPG적 요소를 담아냈는데, 이제는 진짜 게임 회사와 협력해서 더 발전된 연출을 해볼 수 있겠구나.’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가 그를 설레게 했다.
한편, 웹빌드 쪽에서는 후속작으로 판타지가 아닌 현대물이나 로맨스 장르를 가로 스크롤 형식으로 시도해보자고 제안했다. 굳이 액션이나 판타지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 로맨스에서도 가로 구도를 잘만 활용하면 영화 같은 느낌을 낼 수 있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선필도 생각하고 있었다.
“레스토랑 장면에서 양옆으로 펼쳐지는 인테리어, 주인공이 대화할 때 테이블 건너편에 있는 사람, 그리고 배경의 야경 등 가로로 펼쳐지면 훨씬 폭넓은 연출이 가능하다”
결국 그는 여러 선택지 중에서도, 일단은 게임 회사와의 협업을 최우선으로 택했다. ‘웹빌드’와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가로 스크롤 시장을 함께 키워나가고 싶었지만, 조금 더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경험해 보는 것도 작가로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웹빌드 측에서는 아쉬워하면서도, 선필의 도전을 응원해 주었다.
가끔씩 선필은 교실에서 만화를 그리던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린다. 그때는 단순히 ‘만화가가 되고 싶다’라는 꿈으로 가득 차 있었고, 구체적인 미래나 플랫폼 같은 건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모바일 환경이 발전하면서 웹툰이라는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세로 스크롤이 사실상 표준이 되었다. 그 틈에서 가로 스크롤을 고집한다는 건, 어쩌면 무모하고 위험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것이 오히려 창작자로서의 도전 의식을 자극했다. 결과적으로 <가로의 전사>는 대중에게 ‘가로’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심어주었고, 세로가 아니라서 ‘낡았다’라고 무시당하던 편견을 깨부쉈다.
요즘도 선필은 후배 작가나 지망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창작자의 역할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거지, 형식을 영원히 고정해두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세로든 가로든,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어떤 매체든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콘텐츠와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는 열정입니다.”
그가 이렇게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얘기하면, 후배들은 한껏 눈을 빛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누구든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면, 거기에 ‘답’이 될 만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세로 스크롤이 편하고 익숙하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이들은 가로 스크롤의 시도에 대해서 “불편하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형식이 성공적인 한 예시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었다. <가로의 전사>가 뿌린 씨앗은 생각보다 큰 열매를 맺고 있었다. 이제 가로 스크롤 웹툰은 새로운 장르로서 점차 성장하고 있고, 독자들도 점점 더 다양한 연출과 형식에 문을 열고 있다.
선필은 다시금 펜을 들었다. 머릿속에는 이미 새로운 시놉시스가 떠올랐다. 이번에는 현대 로맨스를 가로 스크롤로 풀어볼까, 아니면 완전히 우주를 무대로 한 SF를 시도해볼까. 온갖 상상력이 그를 밀어붙였다.
그는 원고지 대신 디지털 드로잉 태블릿을 켰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 즐겨 듣던 음악을 플레이했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내가 지금 어떤 무대를 펼치든, 언젠가 또 누군가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겠지.’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작업실에는 미래를 향한 열정이 충만했다.
-작가 인터뷰 발췌
[수많은 만화가들이 각자의 형식을 찾고 있어요. 예전엔 만화책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웹툰 세대가 되었고, 앞으로는 VR이나 AR로 만화를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때가 되면 세로든 가로든, 더 나아가 360도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까지 탄생할 거예요. 저는 늘 그 변화를 준비하고 싶습니다.]
이렇듯, 선필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교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소년이, 이제는 가로 스크롤 웹툰의 선구자로 자리 잡았다. 그가 보여준 것은 단지 ‘고집’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에 대한 가능성과 끊임없는 연구, 그리고 독자를 향한 애정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앞으로도 무수한 장면으로 이어질 것이다. 마치 가로로 길게 뻗은 스크롤을 천천히 넘기듯, 노선필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가로웹툰의 장을 열었던 선필은, 이제 자신이 펼칠 무대를 자신이 가장 잘 이용하는 작가가 되어 더 많은 도전을 하게됐다. 2D의 한계를 넘어 이제는 3D 작품. 아니 4D의 시대를 열어볼까 고민했다.
휴대폰 화면의 빛으로 캐릭터가 정말로 역동적이게 움직이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3D영화가 있는데 3D, 4D 웹툰은 못 만들라는 법은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