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414
세븐틴 조슈아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조슈아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조정수
제목: 한인의 밤.
정수는 오랜 외국 생활을 통해 이미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잊었다. 사실 태어난 곳도 한국이 아닌 외국이었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저 정수에게 미지의 세계일 뿐이었다.
“정수야. 너는 비록 미국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잊지마 한국인이라는 걸.”
“나는 미국인인데, 왜 한국인 일걸 잊지 말아야 해?”
가족의 말에 정수는 알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자신의 이름인 정수조차도 미국식 이름이 아닌 한국 이름이었다. 다양한 인종이 만나는 미국이라서 특별하게 눈치채지 못했었다.
“그건 말이지. 그러니까.”
정수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자랐다. 비록 부모님이 한국 출신이긴 했지만, 정작 정수가 태어난 곳은 미국 중서부의 한 평범한 도시였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고, 영어를 자국어처럼 쓰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아시아계 학생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편함을 크게 느끼지는 않았다. 그저 ‘난 미국인이니까’라는 자연스러운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국인이라는 걸 잊지 말라’라는 부모님의 당부가 조금씩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정수야. 너는 비록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잊지 마. 한국인이라는 걸.”
부모님이 자주 하시는 말이었다. 정수에게는 다소 낯설었다. ‘나는 미국인인데, 왜 한국인일 걸 잊지 말아야 해?’라는 의문이 매번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부모님은 ‘그건 말이지…’ 하며 대답을 흐리곤 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이름인 ‘정수’ 역시 미국식 이름이 아닌 한국식 이름이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지 않았지만, 가끔씩 조… 정수? 발음하기 어렵네라고 말할 때마다 정수는 어딘가 모를 미묘한 어색함을 느끼곤 했다.
그럼에도 정수는 스스로를 미국인이라 여기는 데에 조금의 의문도 없었다.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학교 생활을 함께한 친구들도 모두 미국이었으니 당연했다. 집에서는 한국말을 조금 배우기도 했지만, 부모님이 바쁘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는 못했다. 게다가 외동아들이었던 정수는 부모님과 대화할 때도 영어를 주로 썼다. 주위에 한국계 친구가 거의 없었고, 한국 노래나 영화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 ‘나는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당연해 보였다.
그러던 중, 정수에게 작은 변화가 생긴 계기는 대학교 진학이었다. 동부의 한 도시로 가게 되면서, 전보다 훨씬 다양한 문화권의 학생들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캠퍼스 내에는 한인학생회(KSA)도 있었고, 매주 한국 음식 파티나 문화 행사를 열곤 했다. 전에는 관심도 없던 그런 모임에 가끔 초대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망설여졌다. ‘내가 왜 굳이 한국인 모임에 가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부모님이 그렇게 말했던 이유가 뭘까? 한 번쯤은 가봐도 좋지 않을까?’라는 호기심도 생겼다. 그렇게 간단한 마음으로 발을 들인 곳이 바로 ‘한인의 밤’ 행사의 준비 모임이었다.
행사 준비 모임은 한국 요리를 만들거나, K-POP 댄스 공연을 연습하거나, 전통악기 공연 등을 계획하는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로 가득했다. 정수는 처음 그 자리에 앉아있을 때 소외감을 느꼈다. 모두가 한국어를 자유롭게 쓰고, 어릴 때부터 한국 문화를 익힌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부모님의 사업 때문에 잠시 미국에 와 있는 교환학생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어릴 적에 이민 왔지만 집에서 꾸준히 한국어를 배운 덕에 발음이 거의 원어민 수준이었다.
“안녕, 정수! 혹시 순대 먹어봤어?”
낯선 사람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정수는 잠시 ‘순대? 그게 뭐지?’라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sundae’인가 하고 떠올렸지만,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디저트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에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 잘 모르겠어.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 순간 주변에서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그들은 순대를 모른다는 사실이 신기한지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그 웃음은 정수를 놀리려는 분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재미있어하며 친해지고 싶어하는 긍정적인 기색이었다. 하지만 정수는 괜히 뺨이 빨개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국인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했으면서 정작 한국 문화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 뒤로도 정수는 서서히 ‘한인의 밤’ 행사 준비에 참여했다. 행사를 앞두고 매주 모여 전통 음식 만드는 연습을 하고, 서툰 한국어라도 배워보려고 애썼다. 주위 친구들은 어색한 발음을 귀엽게 여기며, 하나하나 친절히 알려주었다. 김치찌개, 불고기, 비빔밥 등 한국 대표 음식 만드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다 보니, 그 맛과 향기에 자연스레 매료되었다. ‘왜 부모님이 가끔 김치찌개를 끓이고, 그걸 그렇게 자랑스러워하셨는지’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행사 당일, 넓은 강당에서는 많은 사람이 모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학생들도 있었고, 현대적인 의상을 입고 K-POP 댄스를 추는 팀도 있었다. 정수는 그곳에서 ‘내가 미국에서 당연하게 생각해온 문화 외에도 이렇게 멋지고 색다른 한국 문화가 있구나’라는 사실을 생생히 느꼈다. 그 무대에 선 사람들은 각각 말투나 배경은 달랐지만, 모두 마음 한구석에는 ‘한국’을 향한 애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행사가 끝난 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정수는 뒤풀이에 갔다. 한국 음식점에 다 같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비록 정수는 한국어가 서툴렀지만, 옆자리 친구가 통역해주거나 천천히 설명해주자 재미있게 대화에 끼어들 수 있었다. 어느새 시곗바늘이 밤늦은 시간을 가리킬 때까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아온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어떤 친구는 한국에서 태어나 10살 때 미국으로 이민 왔다. 부모님이 식당을 운영하며 힘겹게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본인은 학교에서 영어가 서툴러 놀림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영어에 능숙해졌고, 지금은 부모님 식당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곤 한다고 했다. 또 어떤 친구는 미국에서 태어나 계속 미국에서만 자랐는데, 방학마다 한국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뵙고 한국 문화를 접해 왔다고 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또 다른 고향’이었다.
정수는 그 대화를 들으면서 왠지 모를 부러움을 느꼈다. 자신이 한국 문화와 뿌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민 2세대, 3세대라는 말로 한정할 수 없는, 말 그대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한국인들이 세계 곳곳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낯선 땅에서 처음 터를 잡은 부모 세대의 이야기, 혹은 미국에서 겪은 정체성 혼란, 차별,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정수가 잊지 못할 말이 있었다. 한 선배가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난 사실 내가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늘 헷갈려. 근데 언젠가부터 그게 중요하지 않아졌어. 난 그냥 나이고,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문화를 잘 섞어서 살아가면 되더라고.”
그 말은 정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사실 어느 한쪽으로 자신을 고정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신의 정체성은 결국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한국도, 미국도 다 정수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수는 점점 더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집에서 가끔 틀어놓던 한국 드라마도 시큰둥했지만, 이제는 자막을 달아 놓고 진지하게 보기도 하고, ‘한국어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캠퍼스 도서관에서 한국어 교재를 찾아 잠깐이라도 읽어보며, 새삼스럽게 한글의 독특한 매력을 느꼈다. 어느 날, 정수는 가족 모임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엄마, 아빠. 나… 이번 방학 때 한국에 한번 가보고 싶어요.”
부모님은 예상하지 못한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수는 평소에 한국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방학이면 친구들과 미국 내 여행을 하거나, 인턴십을 찾는 데 열중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에 가보고 싶다니,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정말로? 왜 갑자기 한국에 가고 싶어졌니?”
“그냥… 잘 모르겠어요. 한인의 밤 행사도 참여해보고, 한국 음식도 만들어보고… 뭔가 나 자신도 모르는 뿌리가 있는 것 같아요. 직접 가서 보면, 뭔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부모님은 잠시 정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걱정과 기대, 그리고 묘한 기쁨이 섞여 있었다. 결국 부모님은 환한 미소와 함께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정수는 비행기에 올랐다. 부모님은 바쁘다는 이유로 함께 가지 못했고, 정수 혼자 한국으로 떠나는 여정이었다.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과연 한국에서 자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자신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첫인상은 생각보다 훨씬 현대적이고 세련된 풍경이었다. 공항 내부에는 한글과 영어가 함께 표기된 안내판이 곳곳에 보였고, 전 세계 사람들로 붐볐다. 그중에서도 한국인들이 주를 이루는 풍경은 정수에게 큰 낯섦으로 다가왔다. 미국에서는 소수 인종이라 느끼곤 했는데, 여기는 다들 자신과 비슷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오, 여기서는 내가 남들과 비슷하게 생겼네.”
정수는 이런 느낌이 의외로 어색했다. 공항 상점에서 커피를 사려 할 때, 점원은 당연하다는 듯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정수가 서툴게 영어로 대답하자, 점원은 당황한 듯 웃으며 영어로 대응했다. ‘아, 여긴 한국이구나.’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숙소로 향하면서 택시 기사님과 대화를 시도해봤지만, 기사님의 빠른 한국어를 알아듣기란 쉽지 않았다.
“미국에서 왔어요. 부모님은 한국 분이고요.”
간신히 말을 전하니, 기사님이 반가워하며 아이고, 잘 왔네. 미국은 어떻소?라고 물었다. 정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중간중간 단어가 통하지 않는 부분은 휴대폰 번역기를 써 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서울의 도심 풍경은 정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빽빽한 빌딩 숲 사이로 번쩍이는 간판들이 가득했고, 골목 골목마다 작고 큰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만의 한국’을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부모님이 이야기하던, 조금 더 전통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며칠 후, 정수는 부모님이 알려주신 distant cousin, 즉 먼 친척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얼굴도 제대로 본 적 없는 그 친척은, 부모님이 이민을 떠나기 전 가까웠던 이모의 아들쯤 되는 사람이었다. 낯선 만남이었지만, 그 친척은 매우 반갑게 정수를 맞이해 주었다.
“정수야, 정말 왔구나. 미국에서 살았다면서? 한국은 처음이니?”
“네, 완전 처음이에요. 이렇게 반겨주셔서 감사해요.”
그 친척은 정수를 데리고 서울 곳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서울남산타워에 올라가서 서울의 전경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경복궁에 가서 고궁 투어도 해보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전통시장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정수는 드디어 ‘순대’를 직접 맛보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독특한 냄새가 났지만, 맵고 쫄깃한 맛이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그날 밤, 숙소에 돌아온 정수는 침대에 누워 하루를 곱씹었다.
‘이곳은 내가 무언가를 찾아야 할 곳, 내 뿌리가 있는 곳이라고 했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분명히 한국은 생소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동시에 주고 있었다. 사람들의 외모가 자신과 비슷한 것은 당연했고, 거리에서 들리는 한국어가 종종 영어만큼 편안하게 들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어로 길을 묻거나 가게에서 주문할 때면 자신이 외국인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미국에서의 삶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에서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많아서 흥미롭기는 하지만, 자신의 일상과 정체성이 이미 미국 문화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일까?’라는 질문은 여전히 대답하기 어려웠다.
며칠 뒤, 친척은 정수를 지방 소도시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부모님의 고향 마을이 있었다. 정수가 태어나기 전, 부모님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시골 풍경이 펼쳐진 도로를 달리면서, 정수는 창밖으로 논과 밭, 그리고 낮은 산들이 어우러진 모습을 구경했다. 미국에서 보던 광활한 대지와 또 다른, 아기자기함이 깃든 자연 풍경이었다.
마을에 도착하자, 오래된 한옥 형태의 집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여기저기서 어, 누구네 아들 왔대?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이 소식을 듣고는 신기한 듯 정수를 바라봤다. 누군가는 흥미로워하며 말을 걸었다.
“미국에서 왔다고? 부모님이 여기서 자랐으면, 너도 한국어 좀 하겠네?”
“조금밖에 못해요. 잘 못 알아듣기도 해요.”
마을 사람들은 정수의 어색한 한국어를 듣고도 친절하게 반응했다. 발음을 교정해 주기도 하고, ‘이건 이렇게 말해야 해’라며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건네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소박한 음식은 정수에게 또 다른 한국을 보여주었다. 서울의 번화가와는 전혀 다른, 정겨운 시골 풍경 속에서 느끼는 한국 말이었다.
며칠간 고향 마을을 돌며, 정수는 부모님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친척들에게 전해 들었다. 당시 시골 학교에서 어떻게 공부했는지, 동네 어귀에 있던 문방구에서 어떤 간식을 사 먹었는지, 방학이면 또래 친구들과 어떻게 뛰어놀았는지 등등. 듣고만 있어도 부모님의 어린 시절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마치 오래전 영화 속 장면을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정수는 묘한 연결감을 느꼈다. 자신이 전혀 겪어보지 못한 ‘한국의 과거’ 속에도 분명 자신의 일부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동시에, 부모님이 왜 자신에게 ‘한국인임을 잊지 말라’고 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았다. 이는 단순히 국적이나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문화와 삶의 이야기가 자신의 뿌리에 여전히 이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수는 점차 자신이 미국인이면서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제는 굳이 ‘나는 미국인인가, 한국인인가?’라는 질문에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두 문화 모두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며, 자신이 가진 배경은 그저 하나의 정체성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행 마지막 날, 정수는 서울로 돌아와 다시 한 번 야경을 둘러봤다. 강남의 화려한 빌딩 숲, 한강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다리, 그리고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문득 뉴욕의 밤거리와 오버랩되며 미묘한 친숙함을 느꼈다. ‘어쩌면 나는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다 살아갈 수 있을 거야’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정수는 스스로에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근데 집이 어디지? 미국이 내 집이기도 하고, 한국도 내 집 같아졌네.”
물론 당장 영구 귀국을 할 생각은 없었다. 정수에게 여전히 미국은 성장의 터전이었고, 자신의 삶이 오롯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 한국이라는 땅 역시, 전혀 남의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에도 자신만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부모님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정수는 다시 한인의 밤을 떠올렸다. 미국 대학 캠퍼스 한 구석에서 만났던 다양한 배경의 한국계 학생들, 그들이 쏟아내던 웃음과 눈물, 고민과 희망들. 그리고 그 속에서 정수가 느꼈던 작은 울림까지 모두 그 자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금 정수는 한국 여행을 통해, 조금 더 넓은 시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한국인’이기도 하고, ‘미국인’이기도 하며, 또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무는 존재이기도 하다. 국적이나 피부색, 언어 능력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과 마음이 정체성을 정의해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곧 비행기에 오를 시간이었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정수의 표정은 복잡하면서도 평온했다.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드리지? 한국 좋았다고 전하면, 아마 엄청 좋아하시겠지.’ 순간, 알 수 없는 뭉클함에 가슴 한켠이 뜨거워졌다.
‘그래, 나중에 또 오면 되지. 그땐 더 많은 한국어 단어를 배워서, 길도 혼자 잘 찾고, 시장에서 장도 보면서 살아봐야지.’
정수는 살며시 웃으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제 그는 어디에 있든,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완전한 미국인’ 혹은 ‘반쪽짜리 한국인’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냥 ‘조정수’라는 한 사람으로서, 두 문화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던 와중에, 미국에서도 유행중인 한국의 편의점을 들렸다. 이 시작은 일본이라고 하는데, 옆나라 일본도 가보고 싶어졌다. 한국인들이 일본 여행을 좋아한다는 글을 본 적도 있었다.
"편의점이라,."
정수는 그 안으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몰랐다.
인생을 걸어도 아깝지 않을 상대가, 자신을 향해, '어서오세요' 라고 외치며 반갑게 웃어줄 줄은, 딸랑하고 종이 울리는 순간까지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