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413
세븐틴 정한의 연기를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정한의 연기를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한윤식
제목: 어디에서 볼까요
압도적인 무대를 보고 난 윤식은 언젠가 나도 저런 무대에 서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진짜 대단하다.”
사람들이 오늘 있었던 공연을 보고 나서 최고라고 칭송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런 후유증을 견디지 못한 윤식은 그만 알바에서도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어? 뭐야?”
윤식이 공연 때를 떠올리며 춤을 추는데, 그 춤을 보고 사람들이 몰려들자 윤식을 말리지 않는 정직원이었다.
“뭐야, 우리 알바가 저런 재능이 있었어?”
윤식은 백화점에 입점한 가게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가 알바를 하고 있는 것도 잊은 채 누군가 실수로 틀어버린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말았다. 그러다가 음악이 꺼지자 이제서야 자신이 서 있는 장소를 알았다.
“어..”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지자 부끄러워 하고 있는 와중에 직원 누나가 윤식의 실수를 만회하게 해주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준 것이었다.
윤식에게 갑자기 가게에 홍보하는 가디건을 걸치더니.
“잘 어울리죠?”
그러자 사람들이 옷가게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윤식은 순간적으로 고객 모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헌신적인 알바생이 되었다.
“춤 잘 추더라?”
누나의 칭찬 덕분에 한시름 놓은 윤식이었다.
윤식은 쑥스러워서 어깨를 움츠렸지만, 막상 주변에서 박수를 쳐 주니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뜨거워졌다. 왠지 모르게 기분 좋은 자극이었다. 스스로도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은 새삼스러운 느낌. 그는 얼른 가게 한편에 들어가 진정하려고 했지만, 이미 몇몇 손님들은 아까 그 춤 더 보여주세요! 하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에이, 부끄러워요…”
입이 이렇게 말해도, 마음속은 왠지 다시 한번 음악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그런데 직원 누나가 뒤에서 다가와 슬쩍 그의 등을 치며 웃었다.
“다음 곡 틀면 또 춤춰 볼래? 이번엔 공식 퍼포먼스로 해도 돼.”
그게 말이 쉽지, 공식 퍼포먼스라니. 윤식이 뻘쭘해하며 마른침을 삼켰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모험심이 솟구쳤다. 그냥 한 번 더 해볼까?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손님들이 호응해 주는 분위기라면 결과가 나쁘진 않을 테니까. 게다가 아까 무대 위에서 춤추던 모습을 상상했을 때 느꼈던 짜릿함… 그걸 조금이라도 맛보고 싶었다.
“좋아요. 대신 잠깐만 화장실에 다녀올 게요.”
윤식은 바람을 쐬러 잠시 밖으로 빠져나갔다. 백화점 유리문을 통과하자 붉은 노을이 매장 앞 건물들 사이에 깔려 있었다. 낮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 가슴이 저릿하게 설레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잠시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폰을 꺼내 보니, 알바 단체 채팅방에는 벌써 오늘 행사 대박! 같은 메시지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 사이 스크롤을 타고 올라간 다른 메시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이머시브 공연단 한국 상륙 확정! 특별 오디션 안내]’
낯익은 공연단 이름이었다. 과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던 해외 퍼포먼스 극단이 이번에 한국에서 새로운 이머시브 공연을 기획하고, 오디션을 연다는 소식이었다. 윤식은 공연을 좋아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이머시브’라는 개념은 정확히 잘 모르고 있었다. 다만 관객이 무대의 일부가 되고, 혹은 배우들이 관객 사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진행하는 신선한 형식이라는 얘기를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다.
“이거 내가 잘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분명 어려운 도전이라는 걸 알지만, 그 공연에서 춤출 수 있다면, 제대로 무대를 누빌 수 있다면… 그 상상만으로도 두근거렸다.
문득 직원 누나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뭐 해? 빨리 안 들어오고.”
“아… 네! 금방 갈게요.”
그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간단한 댄스 곡이 틀리자, 이번에는 좀 더 자신감 있게 리듬을 탔다. 팔과 다리의 동작에 확신이 실리고, 관객들의 함성에 순간순간 보답해 주듯 몸을 움직였다. 그의 몸짓은 서툴지만, 진심이 깃들었다. 눈에 띄는 건 연습량이나 테크닉이라기보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열망이 춤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이었다.
“잘한다, 진짜!”
“저 청년 가게에서 알바 하는 사람 맞아?”
손님들의 호기심과 칭찬이 이어졌고, 매장에 생각보다 더 많은 고객이 몰려들었다. 이벤트가 끝날 무렵, 누나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공연장에서도 통하겠는데?”
그러자 윤식이 반사적으로 말했다.
“공연장… 아, 저 사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나가 먼저 반응했다.
“혹시 그 공연단 오디션 보려고?”
윤식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어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히 대답했다.
“단체 채팅방에 공지 떴잖아. 나도 관심 있어서 봤거든. 근데 너라면 잘 어울릴 것 같아.”
“정말요? 제가 봐도 돼요?”
“당연하지. 난 너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
잠깐이지만 윤식의 가슴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번졌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 말 한마디가 그의 의지를 북돋웠다. 그날은 그렇게 매장 문을 닫고, 뒷정리를 하며 자연스럽게 이머시브 공연단 오디션 얘기로 꽃을 피웠다. 누나는 자기 대학 시절에 연극 동아리에서 조연출을 했던 경험을 들려주며, 오디션에서 주로 보는 게 뭔지, 기본적으로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 등 실질적인 조언을 해 주었다.
다음 날, 윤식은 아침 일찍부터 잔뜩 긴장한 채 모니터 앞에 앉아 오디션 안내문을 꼼꼼히 읽었다. 오디션 신청 접수는 이번 주까지, 제출 서류는 기본 신상 명세서와 경력 사항, 그리고 자기소개 영상이었다.
‘경력이랄 게 없는데… 그냥 춤을 좋아하는 평범한 알바생인데… 그래도 자기소개 영상을 만들라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그는 손을 꼭 쥐고 고민하다가, 결국 누나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누나, 오디션 자기소개 영상 어떻게 찍으면 좋을까요?”
다행히 곧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보여 주면 돼. 스토리텔링을 넣거나. 예를 들어 네가 좋아하는 공연 이야기를 하면서 춤추는 모습을 짧게 보여 준다거나?”
윤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무대나 춤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면 될 것 같았다. 그는 방에 카메라와 삼각대를 세팅해 놓고, 잠시 전에 다운로드 받은 배경 음악을 재생해 봤다. 밝고 리드미컬한 곡이 귀에 꽂히자, 어제 백화점에서 느꼈던 그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윤식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카메라를 바라보며 자기소개를 시작했지만, 점점 손발이 풀리면서 말투와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공연을 좋아하게 된 계기, 거기에 빠져들어서 혼자 흥얼거리며 춤을 추던 순간들, 그리고 최근 백화점에서 잠깐이지만 즉흥적으로 춤을 춰 보면서 깨 달았던 것들. 그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다 음악을 작게 깔고, 즉흥 안무를 조금 더 이어갔다. 고백하자면, 전문 무용수처럼 화려한 테크닉은 아니었지만, 윤식 특유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에너지가 묻어나는 영상이었다. 녹화를 마친 뒤, 그는 영상을 확인하며 생전 처음 겪는 부끄러움을 온몸으로 느꼈다.
“으으…”
배를 움켜쥐며 침대에 파묻혔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어나 영상을 간단히 편집했다. 대충 단어와 장면 전환을 매끄럽게 정리한 다음, 오디션 웹페이지에 파일을 올렸다.
‘와… 정말 보내 버렸네…’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동시에 기묘한 해방감을 맛봤다. 며칠 뒤, 백화점 알바에 나간 윤식은 괜스레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혹시나 ‘탈락’ 메시지가 날아올까 봐, 수시로 휴대폰을 확인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 옆에서 누나는 그런 그를 보며 킥킥 웃었다.
“오디션 결과가 그렇게 신경 쓰여?”
“네… 혼자서 너무 기대하는 거 같아서 떨려요.”
“하긴, 나도 그 공연단 유명하다고 들어서 궁금하긴 해. 만약 붙으면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요. 뛰어들어서 열심히 해봐야죠!”
윤식은 마음을 굳게 먹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누나는 그런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꼭 합격해서 이 누나도 초대해 줘. 공연장에서 보게.”
그 순간, 윤식은 어렴풋이 상상했다. 꿈처럼 큰 무대가 아니라, 거리와 관객이 뒤섞인 이머시브 공연 현장 속에서 자기 자신이 뛰어다니고 춤추는 모습을. 조명 대신 길가의 가로등, 무대 장치 대신 도심의 광장이 무대가 되는 장면. 관객들은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배우와 소통하고, 배우들 역시 관객 속으로 파고들어 함께 호흡하는 형태라고 들었다. 생각만 해도 긴장되고 설레는 일이었다.
드디어 일주일 후, 윤식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오디션 1차 합격 여부를 알리는 문자가 바로 그것. 그는 매장 한쪽에서 품을 뒤져 얼른 휴대폰을 꺼냈다.
‘[한윤식 님, 1차 서류 및 영상 심사에 합격하셨습니다. 2차 오디션 일정은 다음 주 토요일이며…]’
“합격이래요!”
윤식은 메시지를 보는 순간, 비명을 지를 뻔했다. 누나에게 외쳤더니, 누나 역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진짜로? 대박인데! 괜찮아, 잘할 거야!”
“으악… 어떡해요, 이제 본격 오디션 준비해야겠는데?”
이후로 윤식은 2차 오디션 때의 자유 퍼포먼스와 즉흥 연기가 있을 거란 안내 문구를 떠올리며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백화점 일 마치고 나면 매일같이 연습실을 대여하거나, 인적이 드문 공원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신체 표현 연습을 했다. 초기엔 혼자서 동영상을 보며 흉내 내는 것부터 시작했지만, 차츰 인터넷으로 이머시브 공연 사례를 찾고, 배우들이 관객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연구하기도 했다.
때마침 누나는 과거 연극 동아리 시절의 지인에게 연락해 우리 알바생이 좀 도와달라고 하는데…라며 소규모 워크숍 기회를 주선해 줬다. 윤식은 그곳에서 연극과 즉흥극을 배워 본 사람들과 짧은 장면들을 만들어 보며 ‘상황 속에서 자연스러운 반응을 이끌어내는 법’, ‘상대와의 호흡을 읽는 법’ 같은 걸 배우게 되었다.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단순히 대사나 안무만 외우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감정을 즉시 바꾸고, 관객 반응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니 정신이 쉴 틈이 없었다.
“어, 이렇게 하면 되나요?”
“지금 네가 만약 공연 중에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았다고 생각해 봐. 관객이 ‘누구세요?’ 라고 물으면, 어떻게 답할 거야?”
동아리 지인의 조언을 들으며 윤식은 머릿속으로 상상해 봤다. 실제 이머시브 공연에선 관객과 가까운 거리에서 다양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했다. ‘나도 모르는 대본 밖 질문이 들어오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 순간순간 즉흥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겠네’라는 흥미로움도 느꼈다.
2차 오디션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백화점 측에서 스케줄 조정을 허락해 주어서, 토요일은 휴무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오디션 전날 밤, 윤식은 뒤척이며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방안을 천천히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가볍게 음악을 틀었다. 몸을 풀며 마지막으로 안무 동작들을 점검해 보니, 어느새 새벽 한 시가 훌쩍 지났다.
‘제발 실수하지 말자. 그래도 재미있게 해 봐야지.’
그렇게 어느 정도 각오를 다진 후에야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다음 날, 그는 약속된 시간에 맞춰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에서 조용히 이어폰을 꽂고 오디션 곡을 다시 한번 들었다. 음악의 흐름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마음의 긴장을 풀어 나갔다. 명동 인근의 어느 스튜디오 건물 앞에 도착하니, 이미 세련된 옷차림에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원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대부분은 전문적으로 춤이나 연극을 해 본 사람처럼 보였다. 윤식이 겉보기엔 평범한 청년처럼 보여서 인지, 몇몇 지원자들은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윤식이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자, 어떤 지원자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 어떤 이는 “안녕!” 하고 밝게 받아 주기도 했다. 그중 한 여성 지원자가 다가왔다.
“혹시 춤 전공이세요?”
“아, 아니요. 그냥 저는… 알바하면서 틈틈이 혼자 춰 왔어요.”
“와, 대단하시네요. 저도 사실 연극 전공인데 이머시브 공연은 처음이라 긴장되거든요.”
그렇게 잠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모두들 긴장 상태다’라는 공통점이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이 오디션은 새로운 도전이자 떨리는 이벤트인 셈이었다. 윤식은 문득 마음이 좀 편해졌다. ‘나만 긴장하는 게 아니야. 다들 비슷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곧 담당 스태프가 출석을 부르며 간단한 설명을 시작했다.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 오디션은 자유 퍼포먼스와 즉흥 상황극으로 진행됩니다. 자유 퍼포먼스는 1분 이내, 즉흥 상황극은 2인 1조로 이루어집니다.”
윤식은 목이 바짝바짝 말랐다. 1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을 최대한 어필해야 한다. 그리고 즉흥 상황극… 그도 2인 1조가 돼 관객과 배우를 오가며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마음속으로 반복해 온 시뮬레이션을 실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래도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앞으로 나아갔다.
번호표를 달고 한쪽에서 대기하던 중, 윤식은 커다란 거울 앞에 서서 조용히 숨을 고르며 몸을 풀었다. 어제 연습한 마지막 동작까지 떠올리며 가볍게 팔과 다리를 흔들어 봤다.
‘할 수 있어. 긴장하지 말고, 그냥 즐기자.’
스태프가 그의 번호를 호명했다. 자유 퍼포먼스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심사위원 두 명과 다른 스태프 몇이 노트북과 카메라를 준비하고 있었다. 윤식은 점잖게 인사한 뒤, 음악을 틀기 전 짧은 멘트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윤식이라고 합니다. 몸과 마음을 한껏 움직여 보겠습니다.”
“네, 편하게 하세요.”
다행히 심사위원들도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그리고 곧 음악이 재생되었다. 윤식은 심호흡을 하고, 그 익숙한 리듬에 몸을 맡겼다. 처음엔 다소 굳은 동작이었지만, 점차 박자를 타면서 어제까지의 연습량이 살아났다. 과장된 몸짓은 아니지만, 춤 속에서 확실한 감정이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고개를 들고 팔을 뻗으며 리듬을 그렸다. 순간, 머릿속에 백화점 앞에서 춤추던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공연을 처음 봤을 때의 떨림, 그리고 관객이 가까이서 지켜보는 상황의 긴장과 희열. 그 모든 게 한꺼번에 떠올라서, 윤식은 어느샌가 입가에 미소가 번져 있음을 느꼈다.
1분은 금방 지나갔다. 음악이 끝나자, 윤식은 조금 숨이 찼지만 기분이 몹시 상쾌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잠깐 대기해 주세요.”
윤식은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왔다. 가슴이 터질 듯 두근댔지만, 일단 큰 실수 없이 마쳤다는 안도감이 그를 휘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2인 1조 즉흥 상황극 순서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앞서 대화를 나눈 여성 지원자와 짝이 되었다. 둘은 무작위로 제시된 상황극에서 이머시브 공연 중 예상치 못한 관객의 질문에 대처하기라는 컨셉을 받아 들었다.
각본도 대사도 없이 무작정 상대와 감정을 주고받아야 했다. 심사위원은 지시에 두 사람은 잠시 눈빛을 주고받았고, 윤식이 무작정 먼저 말을 꺼냈다.
“주어진 2분 동안,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만들어 보세요”
“저기… 혹시 여기서 어떤 공연하고 있는 줄 아세요?”
그는 즉흥적으로 ‘관객’ 역을 자처했고, 상대방이 ‘배우’ 역을 맡는 형태로 대화를 펼쳤다. 여성 지원자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금세 표정을 바꾸며 받아쳤다.
“아, 여기서 지금 시간여행 댄스 공연하고 있는데요, 초대 받으셨나요?”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대화하며 즉흥적으로 몸짓과 설명을 섞었다. 마치 눈앞에 관객들이 섞여 들어와 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이 공간이 실제 공연장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서로의 동선을 만들어 갔다. 윤식은 중간중간 ‘발을 헛디딘 관객’ 역할도 해 보고, 갑작스런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상황을 계속 전개했다. 상대방이 흔들리지 않고 재치 있게 답변할 때면, 윤식도 거기에 맞춰 ‘추임새’를 넣어 주면서 이야기를 커다랗게 부풀렸다.
“좋습니다. 여기까지”
결국 2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심사위원은 손짓으로 마무리 하라는 표시를 주었다. 윤식은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예상보다 훨씬 즐거웠다. 마치 작은 무대에서 한바탕 연극을 해 본 기분이었다.
오디션이 전부 끝난 뒤, 윤식은 복도에 앉아 물을 마시며 땀을 닦았다. 그리고 천천히 실감이 났다. ‘난 정말 오디션을 봤고, 여기까지 왔구나.’ 비록 합격 여부는 모르지만, 이 과정만으로도 큰 용기와 깨달음을 얻은 느낌이었다. 그가 휴대폰을 확인하니, 누나에게 “오디션 잘 봤어요?”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윤식은 짧게 답을 쳤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요. 결과는 아직 모르지만요… 그래도 재밌었어요!”
문득 복도 건너편에서 담당 스태프가 손짓으로 그를 불렀다.
“한윤식 님?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윤식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긴장된 표정으로 스태프에게 다가갔다. 도대체 어떤 얘기를 하려는 걸까? 좋은 소식이든, 아니든,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마음이 또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윤식의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무대’를 향한 작은 발걸음은, 또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특히 이번 이머시브 공연은 도시 전체를, 세계의 도시 중 하나인, 천만 인구의 서울을, 도시 자체를 무대로 하는, 지상 최고의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