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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캐릭터 - 415

by 라한
세븐틴 준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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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원준하이

제목: 역사의 하이


“대한민국과 중국인민공화국은 일본제국의 압제에 함께 맞서 싸운 동맹국이야!”


동아시아 세 나라는 유럽과 다르게 서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을 싫어했고, 중국은 한국과 일본을, 그리고 마찬가지로 일본은 중국과 다시 한국을 싫어했다. 그중에서 또 재밌는 그나마 한국이 났다는 조사치도 존재했다.


준하이는 어렸을 때 한국으로 오게 됐다. 부모님이 사업차 한국에 오래 머무르다가, 한국의 최고의 대학교라고 하는 한국대학교에 외국인 전형으로 들어가게 될 기회가 있어서, 용의 꼬리를 하느니, 뱀의 머리가 났다는 부모님의 조언으로 한국대에 입학을 목표로 하게 된 것이었다.


겉 모습만 봐선 사실 한국인과 중국인은 별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인은 관계조사처럼 중국도 싫고 일본도 싫어했다. 막상 실제로 거리에서 사라들을 만나보면 그런 중국 혐오나, 일본 혐오는 없었지만, 온라인 상에서 특히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결국은 한국에 살고 있는데, 한국인들과 친해져야겠지.”


대인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준하이는 스스로 한국인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인이 중국을 싫어하게 된 동북공정이라던지 이런 부분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중국인의 정서에 어긋나는 말을 통해 한국인을 기쁘게 하고 싶지는 않고, 그중에서 살릴 수 있는 역사적 진실들을 찾았다.


비록 일본을 희생해야 하긴 했지만, 함께 항일전쟁 무장전선에 나갔던 역사를 토대로 한국인들과 우호를 돈독해야겠다고 생각한 준하이였다.


“나중엔, 일본에 살게 되면, 일본과 친해질 방법을 찾아보지 뭐.”


오래전 한국의 전신인 조선이 강제로 병합당하던 시절. 지금은 한국에선 그걸 일제강점기라고 부르던데, 한반도를 떠나 항왜를 하던 조선인들이 있었다.


한국에선 이를 독립운동이라고 불렀고, 이는 지금의 중화민국보단 대만쪽이 더 전통성이 강하긴 했지만, 그래도 중국 대륙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준하이는 이를 자료조사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우호를 다지기 위해 노력했다.


준하이가 처음 한국 땅을 밟았던 건 여덟 살 때였다. 부모님 손을 잡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기가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가 뒤섞여 들려오는데, 낯선 건 분명하지만 동시에 설레기도 했다. 한자를 기본으로 삼는 중국과 달리, 한국 특유의 기호 같은 문자가 신비로웠다.


그 후 부모님의 사업이 번창하여, 그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한국 학제를 밟았다. 다행히 언어는 금세 익숙해졌지만, 그를 둘러싼 시선들은 간혹 차가웠다. 초등학생 무리 중 몇몇은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짱깨' 같은 말을 가볍게 내뱉곤 했다. 어린아이들끼리 주고받는 무심한 장난이라기엔, 거기에 서린 적개심이나 편견이 꽤 생생했다. 그럴 때면 그는 그저 고개를 숙이곤 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학교 담장 아래에서 혼자 서성이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다. 발음이 서툴러 헤매는 준하이에게 무심히 잡아 준 손, 도시락 반찬을 나눠 먹으며 한국에 오래 있었으면 네 입맛도 꽤 한국화됐겠는데? 하고 웃어 주던 친구들. 아직 어린 그에게, 한국 사람들이 모두 혐오를 퍼붓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 건 바로 그런 일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온라인상에선 심한 말이 오가지만, 실제로 마주치는 사람들은 나름 다정하다는 걸 조금씩 깨달아 갔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부모님은 그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이제 너도 고등학교 가면 진로를 생각해야지. 아마 대학은 한국에서 가게 될 거야. 한국 명문대는 어때?”


실제로 당시만 해도 중국 주요 대학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 다녀와 봐야 경쟁이 치열해 녹록치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부모님은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라는 식으로, 한국 명문대를 목표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준하이는 새 출발을 다짐했다. 언어도 어느 정도 자신 있었다.


“어차피 오래 살 거라면 친구들을 더 사귀고, 이 나라 문화를 뼛속까지 이해해 봐야지”


그 무렵부터 그는 한국의 역사, 한중 관계,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까지 관심을 갖고 살폈다. 특히 혐오라는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궁금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면 ‘중국 싫어!’라는 감정이 불쑥불쑥 튀어나왔지만, 정작 주변 한국 친구들은 그렇게 노골적으로 중국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다만, 동북공정이나 만주, 역사 왜곡, 이런 것들 때문에 불쾌하다”는 말은 가끔 들을 수 있었다.


준하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굳이 내가 한국인을 기쁘게 하려고 중국사를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대신 한중 간에 긍정적인 연결고리를 찾자고 마음먹었다. 그때 그가 눈여겨본 것이 바로 함께 항일했던 역사였다. 비록 중화민국 시절이었고, 지금은 정권도 달라졌지만, 어쨌든 일본 제국에 맞서 중국과 조선(현 대한민국의 전신) 독립군들이 같이 싸운 순간이 분명 존재했다.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 김구 주석과 장제스가 서로를 지원하던 이야기, 만주의 독립군 기지, 그리고 여러 무장 항일 투쟁의 기억들.


“일본 제국에 맞서 싸웠던 건 한국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구나.”


준하이는 스스로도 그 역사를 되짚으며, 이미 100년도 더 전에 한국과 중국이 함께 총부리를 겨눴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에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어쩌면, 이를 통해 한국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외부인’이 아니라 ‘역사의 연장선상에 선 동료’로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도서관 자료실과 인터넷을 뒤져 이와 관련된 논문, 기록, 그리고 당시 인물들의 수기를 찾아 읽었다. 비록 어려운 한자와 용어가 많았지만, 이해하려 애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한중 간의 오래된 교류와 인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편, 고등학교 마지막 해가 되고, 예상대로 준하이는 한국의 명문대로 알려진 ‘한국대학교’(일명 ‘한국대’)에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원래 경쟁률이 높기로 유명했지만, 생각보다 성적이 괜찮았던 그는 자소서와 면접에서 향후 한중 관계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진솔히 풀어냈다. 면접관들은 낯설어하면서도, 한중 공동항일사 연구에 대한 준하이의 열정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결국 그는 당당히 합격했다. 아직도 잔뜩 긴장된 마음이었지만,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든 날 밤엔 스스로도 잘했다며 기뻐서 방 안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개강 첫날, 캠퍼스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낯선 얼굴들이 잔뜩 모였다. 외국인 유학생도 꽤 많은 편이었고, 중국어로 말하는 무리를 보고 준하이에게 말을 걸어 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일부러 다른 중국인들 무리에만 어울리지 않고, 한국인 친구들과도 섞여 보고 싶어 했다.


“여기서 계속 살 거라면, 이들과 진짜 친구가 돼야지.”


가장 눈에 띈 건 각종 동아리 부스였다. 춤 동아리, 밴드 동아리, 봉사 동아리… 그러나 준하이가 발길을 멈춘 건 ‘역사학술연구회’라는 다소 딱딱해 보이는 동아리 앞이었다. 부스 앞에 붙은 포스터에 동아시아 항일운동의 공조를 주제로 한 연구 프로젝트 진행 예정이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을 부르는 듯한 그 안내를 본 순간, 그는 바로 동아리에 가입하기로 결심했다.


“안녕하세요. 새로 입학한 원준하이라고 해요. 중국에서 왔고, 동아시아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동아리 부스 안에서 테이블을 지키고 있던 2학년 선배가 반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중국? 와, 반가워. 나는 박지영이라고 해. 이 동아리는 주로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데, 특히 옛날부터 중국이랑 일본이랑 얽힌 사건이 많잖아? 우리도 이번에 항일운동 관련 자료를 모아서 세미나를 하려고 해.”

“바로 그거에 관심이 많아서요. 저도 힘껏 참여해 보고 싶습니다!”


선배는 준하이의 열정 넘치는 목소리에 환하게 웃었다. “좋아! 일단 신입 환영회 때 와서 인사 나눠. 멤버들도 다 같이 만나 보고, ‘미니 발표’라고 해서 각자 관심 있는 주제를 간단히 말해 보는 시간도 있어.”


신입 환영회 날, 그는 예상보다 훨씬 더 아늑한 분위기에 놀랐다. 텅 빈 강의실 하나를 빌려서 피자와 치킨을 시켜 놓고, 둘러앉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었다. 그곳에서 같은 과 선후배, 심지어 다른 과 학생들까지 만나게 됐다.


“우리 동아리는 전공 가리지 않고 역사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이야,”


지영 선배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한구석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짧은 단발에 동그란 안경을 쓴 사람이었는데, 말투가 어딘가 낯설었다. 영어 같기도 하고, 때론 서툰 한국어 같기도 했다. 준하이가 슬쩍 다가가 혹시 교환학생이세요? 하고 조심스레 묻자, 그 인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난 일본에서 온 호시노 아유미라고 해. 역사동아리에 흥미가 있어서, 겸사겸사 들어와 봤어.”


일본에서 왔다는 말에 준하이는 순간 조금 당황했다. 주위 친구들 중 일본인을 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근현대사 특히 항일운동까지 다루겠다는 동아리에 들어오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 그렇구나. 반가워.”

“한국과 중국이 일본 제국주의를 상대로 함께 싸웠던 역사를 나는 앞으로 깊이 파고들 텐데… 바로 일본에서 온 친구가 여기 있다니. 어떤 반응을 보일까?”


준하이는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다가, 곧장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호시노도 긴장했는지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한국어로 이어 갔다.


“학교에서 동아시아사 관련 수업을 많이 들어서, 조금씩 알긴 하는데… 솔직히 일본으로서는 과거사 문제가 쉽지는 않거든. 그래도 같이 공부하면서, 제대로 알고 싶어.”

“나중에 혹시 자료 조사 같은 거 함께 해 볼래?”


서툴지만 진심 어린 그녀의 태도에, 좀 더 친해지면, 서로의 관점도 교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준하이는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또 묘한 설렘이 생겼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하고 물었다. 호시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응, 좋지!” 하고 짧게 답했다.


환영회 분위기는 생각보다 화기애애했다. 지영 선배가 "다들 한마디씩 자기 소개 플러스 관심 분야 얘기해 보자”며 제안했고, 각자 돌아가며 말을 이어갔다. 누군가는 독도 문제에 관심 있고, 누군가는 한국의 현대 정치사를 파고들고, 또 누군가는 북한과 중국의 외교사 변천을 연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차례가 온 준하이는, 준비해 온 작은 쪽지를 펼치며 침착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원준하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 왔는데, 어려서부터 한국에서 자랐어요. 그리고 제가 관심 있는 분야는 한국과 중국의 항일무장투쟁 협력사입니다. 윤봉길, 김구, 김원봉 등 여러 독립운동가와 중국 국민당 정부, 또 공산당 유격대와의 관계를 파고들고 싶어요. 그래서 만약 우리 동아리에서 세미나나 토론 주제를 잡는다면, 그쪽 분야에 기여해 보고 싶어요.”


그가 말을 마치자,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 재미있겠다!”, “항일무장투쟁 얘기는 저도 들은 적 있어요”라며 호응했다. 호시노는 조용히 듣고 있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도 일본 입장에서의 기록이나 자료를 보여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그날 이후, 준하이는 역사동아리 멤버들과 함께 캠퍼스 도서관과 시내 도서관을 바쁘게 오갔다. 과제를 하면서도 틈틈이, 한중 연합항일사에 대한 논문과 기사, 옛날 신문 스크랩 등을 찾아 정리했다.


중국인으로서 한국에서의 항일운동 역사를 연구하다 보면, 분명 한국인들과도 좀 더 가까워지겠지. 그리고 나 스스로도 뿌듯하겠다 싶었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 희망으로 공부를 이어 나갔다.


놀랍게도, 온라인에선 반중 감정이 꽤 거세게 느껴졌는데도, 직접 만난 동아리 사람들은 우리가 그때 함께 싸웠던 동맹이었구나! 하고 꽤 긍정적으로 호응했다. 와, 그 시절에 한국이랑 중국이 손잡은 건 알았지만, 이렇게 구체적이었다니. 우리나라는 보통 ‘우리 독립운동’만 강조해서 배웠는데, 사실 중국이 많은 지원을 해 줬다는 얘긴 교과서에서 제대로 못 봤네. 등등. 준하이는 처음으로, 내가 그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있구나 하는 기쁨을 느꼈다. 그렇게 착실히 진행되던 동아리 활동 중, 어느 날 지영 선배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이번에 학술동아리들끼리 합동 발표회가 있는데, 우리가 그 항일무장투쟁 협력에 대해서 공동발표를 해 보는 건 어떨까 해. 주로 우리 신입들이 활약하는 걸로 해서 말이야.”

“우와, 좋아요! 저 꼭 참여할게요. 호시노 씨도 같이 하면 어떨까요?”

“그래, 나도 같이 공부하고 싶어.”


무심코 질문을 던졌는데, 호시노는 잠시 망설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한 팀이 되어 조를 꾸리게 됐다.


“한중일, 삼국 학생들이 함께 만든 ‘동아시아 항일무장투쟁사 연구’ 발표팀이라… 나름 의미 있겠는데!”


지영 선배가 장난스럽게 말해 모두 웃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조합을 상상이나 했을까. 중국 출신의 준하이, 일본 출신의 호시노, 그리고 한국인 동아리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난 세기의 아픈 역사를 파고드는 장면. 묘하게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컸다.


“우리가 마주할 이 역사의 무게가 만만치 않잖아…”


하지만 준하이는 굴하지 않았다. 그는 호시노에게 중국어 자료를 번역해 주고, 호시노는 일본 문헌을 꺼내 일본 쪽에선 그 시절 사건을 이렇게 써 놨는데, 이건 분명 편향적인 서술이네… 하며 머리를 내저었다. 둘은 하나씩 오류를 짚고, 사실관계를 재확인하고, 그렇게 서로 다른 시각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기 시작했다.


가끔 호시노가 “미안해… 내 조상이 이런 일에 참여했다니…” 하고 눈물을 글썽이면, 준하이는 “아냐,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우리 부모님도 그 시절엔 아직 세상에 없었으니까.” 하고 토닥여 주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동아리원들은, 국적은 달라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두 사람이 왠지 멋있게 보였다.


학기 중간무렵, 어느 주말에 동아리원들은 야외 답사를 가기로 했다. 맑게 개인 하늘 아래서, 서울 시내 곳곳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 기념비나 유적지를 둘러보자는 취지였다. 안국역 근처의 어느 옛 건물 앞에 모여, 스마트폰으로 예전 사진을 보면서였다.


“와, 여기가 실제로 의열단이 활동하던 장소래!”

"의열단 활동장소가 이렇게 가까이 시내에 있었네."

"시내?"

"시내 몰라?"

"서울은 그런 거 안 써."


동아리원들이 서울시 '시내'에 집중하는 대화는 얼른 잊고 모두가 의열단 활동장소에 감탄했다. 준하이는 호시노에게 한국어 안내문을 천천히 읽어 주었고, 호시노는 종종 작은 수첩에 메모를 했다. 둘 다 비슷한 또래인 데다, 둘만의 협업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다 보니 동아리 후배들 사이에선 저 둘이 혹시 썸 타는 거 아니야? 하는 농담도 오갔다.


정작 본인들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잦아질수록 미묘한 두근거림이 피어났다. 호시노가 잘 웃을 때마다, 준하이는 자꾸만 시선을 돌리느라 바빴다. 호시노도 준하이를 좋게 보고 있었던 것만은 확실했다.


“준하이 씨는 정말 노력파 같아. 난 이렇게까지 깊게 역사 자료를 찾으려는 사람은 처음 봐.”


호시노가 그렇게 말할 땐 준하이는 살짝 볼이 붉어졌다. 동아리 선배 지영은 이런 분위기가 흐뭇한지, 계속 둘을 같은 조에 배치하며 농을 던지기도 했다.


“잘 부탁해, 열정파 커플~”


시간이 흘러 학기가 중반을 넘어서자, 본격적으로 발표회 준비가 시작됐다. 긴 원고와 PPT를 만들어야 했고, 각종 자료를 주석 달아 인용해야 했다.


“한국은 윤봉길, 김구, 안중근 같은 의사들이 유명하고, 중국 쪽에선 동북항일연군이나 팔로군 일부가 조선인 게릴라와 협력한 사례도 많다.”

“일본군 입장에서도, 한중이 함께 움직이면 제법 골치가 아팠나 봐.”


이렇게 협업하던 둘은 어떤 역사 사이트에서 일본군 문서를 발견했고, 거기에 조선 출신 의용군과 중국군의 연합을 가리키는 기록이 들어 있었다. 둘은 그렇게 수군대며, 과거에 존재했던 ‘실질적 동맹’을 재차 확인했다. 준하이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엔 우리가 국경이나 이념을 초월해서 힘을 합쳤는데, 왜 지금은 서로 미워하는 감정만 내세우는 걸까?”


물론, 현실은 복잡하다. 영토 분쟁과 과거사 문제, 민족주의적 자부심 등이 뒤섞여 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건, 그 ‘협력의 역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도록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딱히 대단한 인물은 아니어도, 작은 청춘의 힘으로 그 다리가 될 수 있다면 좋겠어.”


그리고 시나브로, 호시노도 똑같은 희망을 품고 있는 듯했다. 어느 날 밤늦게까지 도서관에서 함께 자료를 정리하던 중, 호시노가 살짝 피곤한 눈을 비비며 말했다.


“이렇게 한국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넘어온 너와 함께 자료를 찾고 있으면, 정말 불가사의한 기분이 들어. 만약 이 시간이 80년 전이었다면, 우리 둘은 적이었을 수도 있잖아. 조부모 세대 땐 전쟁 중이었고…”


“맞아.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함께 공부하고, 같은 목표를 가진다는 게 소중하다고 느껴.”


그녀가 아득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자, 준하이는 조용히 웃으며 속삭였다. 이 짧은 문장에 담긴 애정은, 분명 예사롭지 않았다.


그렇게 맞이한 발표회 당일, 작은 강당을 빌려 몇몇 동아리가 함께 모였다. 자리에 앉은 청중은 대부분 학생들이었지만, 각 발표 조마다 적지 않은 준비를 해 왔기에 분위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준하이와 호시노, 그리고 한국인 동료들이 만든 ‘한중일 항일무장투쟁사’를 주제로 한 발표가 시작되자, 강당이 잔잔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PPT 화면에 윤봉길 의사의 흑백 사진, 만주의 독립군 기지 지도, 일본군 문서가 교차로 비쳤고, 호시노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일본 문서에서 발췌한 기록을 해석해 주었다. 준하이는 열정 가득한 목소리로 조선과 중국의 공조 사실을 설명했다.


“이처럼 아픈 전쟁의 기억 속에서도, 국경과 민족을 넘어선 연대가 분명 존재했다는 걸 오늘날 우리가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발표가 끝나자, 강당엔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다.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다 같이 준비한 발표가 신선하다, 한중일 세 학생이 모여서 역사 동아리 발표를 하다니, 정말 뜻깊다 등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영 선배도 너희 진짜 훌륭했어! 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 순간 준하이는, 한국에서 살아온 자신이 드디어 뭔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에 사로잡혔다.


발표 후, 같이 자리를 정리하며 호시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준하이. 나도 내가 일본인이라서 좀 꺼려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네가 먼저 막 친절하게 이끌어 주고, 자료도 같이 찾아 주고, 그래서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어.”

“아냐, 나도 덕분에 일본 쪽 자료를 직접 보는 게 처음이라 엄청 도움이 됐어.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준하이 손을 내밀었다. 호시노가 부드럽게 그 손을 맞잡았다. 주변에선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며, “오~ 썸이 무럭무럭 자라는군~” 하고 장난을 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 다 괜히 얼굴이 달아올라 황급히 손을 놓고 웃어 버렸지만, 그 순간만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온기가 오갔다. 아직은 서로 다른 국적과 문화적 배경이 주는 간극도 있고, 한중일의 역사적 상처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렇게 청춘의 마음이 역사를 배우고 공감하며 이어질 수 있다면. 준하이는 스스로 다짐했다.


“나는 이곳에서, 더 넓은 세상 속에서, 편견을 깨뜨리고 새로운 우정을 만들어 가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호시노와 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겠지.”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창밖을 내다보며 문득 미래를 상상했다.


“혹시 나중에 일본에 갈 일이 생기면, 호시노가 내 가이드가 되어 주려나? 그곳에서 또 뭔가를 함께 배우고, 이번엔 한국과 중국이 아닌 일본의 관점을 탐구하게 될지도.”


언젠가 중국에 돌아가거나, 전혀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될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한국 땅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청춘을 누리는 자신이 분명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


그 모든 것이, 작은 호기심과 다정한 태도에서 비롯된 선물인 셈이다. 부디 이들이 앞으로 맞이할 계절이, 역사 속의 상흔을 넘어 더 깊은 이해와 애정으로 가득 차길바라게 됐다.


그런데 뜻밖의 일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곳에서 흘러왔다. 부모님이 준하리를 부르며 대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냐는 질문이 왔다.


"준하이. 한국에 계속 있고 싶으면, 네가 하는 일을 그만둬야해."


준하이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부모님을 쳐다봤다. '아니면 중국 국적을 포기하던지.'라는 말에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이제 막 시작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끝내야한다고? 준하이는 두 부모님의 표정을 보며 이건 장난이 아니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어째서죠?"


부모님은 아직 어린 준하이에게 진실을 말하긴 두려워 하는 표정이었지만, 결국 선택은 준하이가 해야한다는 생각에 공감했다.


"준하이. 이제부터 하는 말 잘 새겨 들어야해."


준하이는 태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긴장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가장 믿었고 듬직한 두 부모님의 충격적인 선언과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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