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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캐릭터 - 417

by 라한
세븐틴 원우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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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유전열

제목: 세상이 모였다.


“이렇게 변해버렸네.”


전열은 어린 시절 채리를 만났던 자리가 거의 폐허로 변한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러게, 폐장했다고는 했는데, 이렇게 변했을 줄은 몰랐어.”


채리와 전열은 스키장 숙식 알바를 하면서 만났던 사이였다. 그때 일했던 파트는 달랐지만, 점심시간에 처음 만났다.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며 서로를 알아갔던 사이였다. 그러다가 직원들에게만 허락되는 새벽 스키를 함께 타면서 서로 친해졌다.


그때를 떠올리며 채리를 바라보았다. 스키장에서 구르던 자신을 보며 남들처럼 웃는 게 아니라 정말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채 손을 내밀며 다가왔던 그녀였다.


“괜찮아? 억지로 서려고 하지 말고, 몸을 맡겨봐.”


그때 자신의 일임 스키 강사를 해줬던 채리를 떠올리는 전열은 이제 결혼을 앞두고, 그 순간이 다시 떠올라 설레였지만,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줬던 스키장이 이렇게 폐장되어 폐가와 같이 된 게 안타까웠다.


“여기 다시 살아날 순 없겠지?”

“대기업에서도 권리행사가 너무 복잡해서 포기했대.”


전열은 그 사람들을 다 만나 설득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곳을 새롭게 다시 만들어 보고 싶었다.


기후 변화로 인해서 스키장으로 다시 만들 수는 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채리를 만났던 그 추억의 시간처럼, 누군가에게 한 편의 중요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다시 살아날 순 없겠지?”

“대기업에서도 권리행사가 너무 복잡해서 포기했대.”


전열은 눈앞의 슬로프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연인들이 함께 스키나 보드를 즐기던 낯익은 공간이 이렇게 생기를 잃어버린 채 방치되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비어 있는 리프트와 군데군데 훼손된 객실동, 온갖 먼지가 쌓여 쓸쓸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그의 가슴 속에는 어느새 작은 불씨 같은 열망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예 스키장을 복원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이대로 내버려두고 싶진 않다는 마음이 바닥에서부터 꿈틀댔다.


“채리야.”

“응?”

“나... 이곳을 다시 살리고 싶어.”


채리는 미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낙후된 시설과 산더미 같은 서류 문제가 있는데, 그걸 전열 혼자 해결하겠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열의 눈빛은 생각보다 흔들림이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폐허가 다시 사람들로 북적이게 만들고 싶다는, 과거 그들이 함께 새벽스키를 탔던 기억만큼 소중한 희망이 담겨 있었다.


“다시 살린다면... 예전처럼 스키장이 될 수는 없을 텐데?”

“응, 그건 알아. 눈도 제대로 안 오고, 기후가 너무 달라졌잖아. 그래서 스키장 형태로 부활하는 건 어렵지.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면 어떨까?”


전열은 부서진 리프트 기둥을 손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만났던 이곳에서, 또 누군가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만들 수 있도록. 그냥 추억 놀이가 아니라, 요즘 애들도 좋아하고, 여행객들도 좋아할 만한 무언가를 열면 좋겠어. 가령... 보물찾기 축제 같은 거?”

“보물찾기 축제?”


채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응. 땅에 묻힌 진짜 보물지도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이벤트를 만드는 거지. 계절별로 색다른 ‘보물’을 슬로프 곳곳에 숨겨두고, 사람들한테 힌트를 주는 거야. 그리고 매주, 혹은 2주 간격으로 그 보물을 리셋해서 새로운 아이템을 숨기고.”


전열의 목소리는 점점 들뜬 기운으로 채워졌다. 그가 방금 떠올린 아이디어는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꽤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예전에 스키장 알바를 할 때, 다른 직원들과 게임 형태의 보물찾기를 즐겼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학교 운동회에서 하던 보물찾기 말하는 거야?”

“그렇지. 그런데 단순히 운동장에 사탕 숨기는 게 아니라, 여기 폐스키장의 지형을 제대로 활용하는 거야. 산 정상부터 리조트 건물 내부까지, 엄청 넓은 공간이 있잖아. 슬로프마다 테마를 달리하고, 계절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꿔주면, 매번 올 때마다 새롭지 않겠어?”

“그러면... 봄에는 꽃길 보물찾기, 여름엔 물놀이 겸해서 밤에도 즐길 수 있는 보물찾기, 가을엔 단풍과 함께 미스터리 테마, 겨울엔 그래도 눈이 조금이라도 오면 눈밭을 활용해서... 뭐 이런 식으로?”


채리가 맞장구를 치자, 전열은 반가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녀도 이야기를 듣고 살짝 기대가 생긴 듯했다.


“그래. 그리고 보물이라고 해서 꼭 금은보화가 아니어도 돼. 예를 들면 이 지역 특산품 쿠폰이나, 협찬사에서 제공하는 각종 상품, 아니면 여기서만 얻을 수 있는 굿즈 같은 거. 포토스팟에서 QR코드를 찍으면 힌트를 얻고, 그 힌트를 조합해서 최종 장소에 들어가면 일종의 ‘보물상자’를 열 수 있게 하는 식으로.”

“그렇게 하면 주말마다 사람들이 몰려올 수도 있겠네.”


채리는 폐스키장 인근의 적막한 마을을 상상했다. 최근 몇 년간 손님이 급감해 가게 문을 닫은 식당이 부지기수였고, 남아 있는 상인들도 한숨을 쉬며 겨울철 장사만 믿고 살던 시절은 지나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런데 계절과 상관없이 1년 내내 돌아가는 이런 형식의 축제가 생긴다면, 사계절 내내 관광객이 유입될 수도 있었다.


“그렇지. 사실 지역 주민들이랑 협력하면 더 좋을 거야. 여긴 식당도 없고, 편의시설도 사실상 폐쇄 직전이잖아. 대신 시장이나 로컬 농산물 가게를 축제와 연계해서, 사람들 오면 자연스럽게 지역 경제도 살아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폐스키장 시설들 콘도 같은 곳은 리모델링해서 숙박 시설로 다시 쓸 수 있을 거고, 슬로프 위쪽은 글램핑장 같은 걸 만들 수도 있고.”

“근데, 문제는 돈이지 않아? 아까 말했잖아, 대기업에서도 권리행사가 복잡해서 그냥 포기했다고.”


채리의 현실적인 질문에, 전열은 약간 주저했다. 그도 이곳을 사유화하거나 매입할 돈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일단 지자체와 협력해볼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이 지역도 관광 활성화를 원하고 있을 테니까. 만약 내가 지자체 담당자나 시의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이 폐스키장을 어떻게든 임대 형태로라도 쓰도록 협조를 구해야지. 그리고 그다음엔 투자자를 찾는 거고.어차피 맨땅에 헤딩할 거라면, 실컷 해봐야지.”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채리는 그 눈빛이 조금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론 옛날 새벽스키장에서 봤던 전열의 강단이 떠올라 미소를 지었다. 남들이 보기엔 무모하다고 해도, 그는 늘 한번 해보겠다며 스키에 몸을 맡겼던 사람이었다. 산 위에서 넘어져도 끙끙대다 다시 일어나고, 엉성하게라도 계속 내려오던 그의 모습이 문득 선명해졌다.


“그럼, 우리 같이 지자체부터 찾아가볼까? 내가 아는 공무원 언니가 있거든. 예전에 지역 축제 업무를 맡았던 적이 있어서, 조금이나마 얘길 들어볼 수 있을지도 몰라.”

“진짜? 그럼 바로 연락해볼 수 있을까?”

“응, 해볼게.”


채리는 휴대폰을 꺼내 예전에 행사 지원 관련으로 교류하던 지인의 번호를 찾았다. 마음은 이미 한 발 앞으로 나아가 있었다.


며칠 후, 전열과 채리는 군청에서 일하는 공무원, 박세영 주무관을 만났다. 늦은 오후라 그런지 복도는 한산했고, 어딘가 공기마저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박 주무관의 얼굴만큼은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였다.


“폐스키장을 다시 살리겠다는 아이디어, 일단 흥미롭긴 하네요. 요즘 군에서도 관광객 유치를 위해 고심이 많거든요.”


박 주무관은 두 사람에게 간이 회의실을 안내하며 말했다. 모니터에 구글 지도 위성사진을 띄워놓고, 현재 폐업 스키장의 부지 면적과 인근 지형 등을 함께 살폈다.


“원래 이곳이 스키장으로만 운영됐을 때는 겨울 시즌 한정으로 인파가 몰렸지만, 나머지 계절엔 사실상 문을 닫다시피 했으니까요. 그런데 기후 변화로 자연설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적자가 쌓였고, 결국은...”


그가 지도에 표시된 폐스키장 부지를 빙 둘러보며, 예전에는 숙박동, 야외공연장 같은 시설물을 확충하려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결국 투자만 무리하게 했을 뿐, 현재는 권리를 가진 이들이 모두 실질적인 매각이나 운영에 손을 떼버린 상태였다.


“그렇다고 이걸 시가 직접 사들이기엔 예산이 너무 크고요. 민간투자가 들어오면 좋겠지만, 보시다시피 인프라가 많이 낙후돼 있잖아요. 그런데 전열 씨 말처럼 ‘보물찾기 테마파크’라는 새로운 형태라면,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네요.”

“저희는 1년 내내 돌아가는 행사로 기획해보려고 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 다른 테마로, 스키장이 아니라도 즐길 거리를 만들어보자는 거죠. 또 주말마다 혹은 격주마다 ‘보물’을 새로 숨겨둬서, 방문객들이 반복해서 찾아오도록 유도하고 싶어요.”

“음... 그럼 일종의 레저형 축제라고 볼 수 있겠네요. 슬로프를 어디까지 활용하고, 어느 구역을 폐쇄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할 텐데.”

“기본적으로 안전이 확보된 구역만 개방할 생각이에요. 노후된 리프트는 당장 철거가 어렵겠지만, 적어도 무리해서 가동하지 않고요. 대신 아래쪽의 완만한 코스나 건물들 중 개조가 쉬운 곳을 중심으로, 체험형 이벤트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전열이 슬라이드 자료를 열어 잠시 설명했다. 사실 이 일주일 사이, 그는 밤잠을 줄여가며 간단한 프레젠테이션 초안을 만든 상태였다. 어쩌면 군청 사람들에게는 허무맹랑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사람들, 뜬구름 잡고 있진 않다 정도의 인상을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다만, 이걸 추진하려면 당연히 인허가 문제나, 토지 소유주와의 협의 같은 장벽이 있을 거예요. 저희도 그 부분을 다 알진 못하지만, 최대한 알아보려고 해요.”


박 주무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묻자 채리는 기다렸다는 듯, 지역 상생 방안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렇죠. 결국은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야 가능하죠. 그런데 일단 저희 군청 입장에서는 큰 비용 부담 없이 민간에서 이렇게 나선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특히 지역 주민 참여 방안도 궁금하네요."

“이곳이 단순히 외부 관광객만 유치하는 시설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참여해 함께 축제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할 거예요. 예를 들면, 매 계절마다 열리는 플리마켓이나 농산물 장터 같은 걸 꾸려서, 주민들이 직접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청년 창업팀도 모집해서, 소규모 푸드트럭이나 카페, 체험 부스를 마련할 수도 있고요.”

“음, 그런 방식이라면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겠네요. 특히 가까운 시일 내에는 인지도 확보가 관건이겠어요. SNS나 유튜브 홍보도 적극적으로 해야 할 테고.”

“네, 그래서 일단 첫 시즌에는 ‘봄꽃 보물찾기 축제’ 형태로 시작을 해볼까 해요. 아직 날씨가 많이 따뜻해지진 않았지만, 4월 중순이나 5월 초쯤이면 슬로프 주변에 꽃을 심어서 조경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꽃과 관련한 이벤트, 또 폐스키장이라는 이색 장소가 합쳐지면 화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오, 아이디어 좋은데요. 그 시기에 맞춰 숙박동 일부도 가오픈해두면, 1박2일로 즐기는 ‘보물찾기 여행’ 패키지도 만들 수 있겠네요.”


주무관의 말을 듣고 전열은 미소 지었다.


“사실 그게 제가 제일 해보고 싶은 거예요. 예전에 채리랑 여기서 새벽까지 스키 타고, 함께 알바 숙소에서 지내던 때처럼. 밤에는 깜깜한 슬로프를 헤드랜턴 하나 들고 올라가기도 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엄청나게 짜릿했거든요. 꼭 스키가 아니더라도, 어두운 산속에서 보물찾기를 하는 이벤트가 있다면... 상상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박 주무관은 웃으며 화답했다.


“저 같아도 무섭지만 재밌을 것 같네요. 나중에 공식 제안서 준비되면, 우리 팀장님께도 보여주시면 좋겠어요. 특별교부세나 관광진흥기금 같은 걸 연결할 수도 있거든요.”


채리와 전열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향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구상일 수도 있지만, 이 지역에서는 오히려 색다른 시도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해 보였다.


건물을 나오는 길, 이미 사무실 불은 대부분 꺼져 있었다. 어둑해진 복도를 걸으며 전열은 채리에게 말했다.


“오늘 이야기, 나쁘지 않았네.”

“응, 생각보다 잘 받아주셔서 다행이야.”


둘은 늦은 저녁이 돼서야 폐스키장 근처의 작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인 할머니는 어휴, 간만에 젊은 사람들 오네. 이 동네 요즘 조용하잖아? 라며 반갑게 맞아줬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채리는 배가 많이 고팠는지 허겁지겁 메뉴판을 펼쳤다.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할 거야?”


전열은 채리의 물음에 곰곰히 생각해 본 후 대답했다.


“우선 지자체 측에 간략한 사업 계획서를 정리해 제출해야 할 것 같아. 시설 보수 예상 견적이라든가, 각 계절별 축제 테마에 필요한 비용 같은 걸 대략적으로라도 넣어서. 그리고 소유주 쪽에도 접촉해야 할 텐데, 정확히 누가 얼마만큼 지분을 갖고 있는지부터 알아봐야지.”

“그거 쉽지 않을 텐데...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그리고 SNS 홍보 준비도 해야겠어. 이왕 시작할 거, 우리 채널을 아예 ‘폐스키장 부활 프로젝트’ 같은 이름으로 만들어서, 매주 영상이나 사진 올리면 재밌지 않을까?”

“그거 좋다. 요즘은 이런 스토리텔링이 먹히잖아. 단순 홍보보다, 우리가 직접 부지 정리하는 모습이나, 주민들이랑 협의하는 과정 같은 걸 영상으로 남기면 ‘같이 만들어가는 축제’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전열은 벌써부터 머릿속에 수십 가지 그림이 떠오르는 듯했다. 과거 둘이 알바를 하며 함께 지냈던 그 겨울이, 언젠가는 ‘새로운 계절의 시작’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감이 들었다.


“있잖아, 채리.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뭘 제대로 해본 적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어. 근데 이상하게 이곳만큼은, 꼭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어쩌면 우리 둘의 인연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고...”


전열이 약간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을 흐리자, 채리는 그 시절을 떠올리고 작게 미소 지었다. 자그마한 원룸형 숙소에서 함께 컵라면을 나눠 먹고, 새벽녘 슬로프에서 힘겹게 보드를 타다 넘어지면 서로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던 추억. 처음 만나 오락실에서 둘이서 열심히 버튼을 두드리던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만 같다.


“응,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나도 같이 해볼게. 폐스키장을 다시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억을 주는 장소로 만들자.”


그 순간, 식당 문 쪽으로 시골 동네의 찬 공기가 들어왔다. 알싸한 바람이 몸에 닿았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뜨겁게 뛴 채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덧 밤이 깊어, 근처 모텔에 방을 잡은 전열과 채리는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다시 현장으로 향했다. 잿빛 구름 아래, 폐허가 된 리프트 기둥과 우거진 풀밭이 제대로 보였다. 입구 쪽에는 낡은 안내판이 쓰러진 채 누워 있었고, ‘주차장’이라 쓰인 간판은 글자가 반쯤 지워져서 이제 의미도 알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디서부터 치워야 할지 모르겠네.”


전열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눈빛은 결코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우선 가장 안전 문제 있는 곳부터 체크해야 할 것 같아. 건물 내부나 리프트 탑승장 같은 데, 붕괴 위험은 없는지... 그리고 여기 슬로프를 따라 한 번 쭉 올라가보자.”


둘은 걸어서 슬로프를 오르기 시작했다. 예전이라면 리프트나 곤돌라를 탔겠지만, 지금은 전부 멈춰서있고 전력 공급도 끊긴 상태였다.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곳곳에서 작게 자란 풀들이 흔들렸다.


“생각보다 풀이 많이 자랐네... 원래는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을 텐데.”

“그래도 나쁘진 않다. ‘눈’ 대신 ‘풀’이 된 거니까, 이걸 또 다른 컨셉으로 살리면 돼. 봄이면 꽃 심고, 여름엔 물놀이랑 연결해도 될 것 같고.”


불규칙하게 갈라진 땅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두 사람은 각각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여기는 어린이용 보물찾기 코스로 활용하자, 여긴 전망대처럼 꾸며서 사진 찍는 장소로 만들자’ 같은 이야기가 오갔다. 인프라 부족과 노후화 문제는 분명 심각했지만, 동시에 이 폐허가 가진 독특한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지점에서 전열은 한참 발길을 멈추더니, 저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과거 스키 강사로 일하던 채리가 사람들을 지도하고, 점심시간에 그는 알바 동료들과 컵라면을 먹던 주차장 겸 휴식 장소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 아래가 우리가 점심 먹었던 곳 맞지?”

“맞아. 나랑 넌 파트가 달라서, 점심시간이 조금씩 달랐는데도, 묘하게 항상 그 시간대에 오락실에서 만났었잖아.”

“그러게. 그리고 저기 오른편 리프트에서 새벽 스키를 몰래 탔지. 직원 특권이라고.”


서로가 겨울 눈밭에서 넘어지던 장면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무엇을 함께한다는 건, 단순히 장소만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시간과 추억, 그리고 감정을 공유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 폐스키장이 다시 살아난다면...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도, 그리고 전혀 새로운 방문객들도, 또 한 번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생각을 하자 마음 한구석이 뛰었다.


“보물찾기 테마파크가 잘 자리 잡으면, 누가 알아? 나중에 결혼식도 여기서 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결혼식?”


전열이 농담처럼 말을 던졌다.

채리가 눈을 크게 떴다.


“아, 나쁜 의미는 아니고. 그냥, 여기서 만난 우리 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으니까. 나중에 완전 정비되면, 요즘은 야외 웨딩 같은 것도 많이 하잖아. 주변에 꽃도 심고, 초록빛으로 예쁘게 꾸며놓으면 어느 멋진 리조트 부럽지 않을 거야.”


채리는 순간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물론 아직 결혼식을 올리진 않았지만, 둘 사이엔 이미 확실한 약속이 오간 상태였다. 막상 이렇게 구체적인 상상을 하자, 부끄러운 마음과 설렘이 뒤섞여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음... 생각해볼게. 그런데 그전에 이곳부터 제대로 살아나야겠지.”

“그렇지. 갈 길이 멀어.”


슬로프 꼭대기 부근까지 오른 둘은 잠시 멈춰 서서 헉헉대며 숨을 골랐다. 정상 전망대도 무너진 상태였고, 파손된 철제 구조물이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어 위험해 보였다.


“이런 건 아예 철거해야겠네. 안전 문제가 심각할 것 같아.”

“응, 이런 부분을 지자체 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안 되면 투자자를 찾는 방법밖에 없고.”


한숨 비슷한 소리가 다시 흘렀지만, 그들은 곧 자신들의 위치에서 펼쳐지는 파노라마 전경을 바라보았다. 산봉우리들이 차례로 이어지고, 그 사이로 조그맣게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오면 겨울왕국 같은 설경이 펼쳐졌으리라.


“이렇게 좋은 풍경인데, 아무도 즐기지 못하고 지나가는 게 너무 아쉬워.”

“맞아. 그래서 우리가 노력해보는 거고.”


전열의 말에 채리가 맞장구쳤다. 그 말을 끝으로, 둘은 천천히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걸어서 내려가는 길마저 예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고, 속으로는 각자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직은 얼개만 존재하는 이 계획을 어떻게 구체화할지, 안전은 어떻게 확보하고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지, 그리고 첫 번째 시즌 축제는 어떻게 홍보해볼지.


생각해야 할 부분이 산더미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은 가볍게 느껴졌다. 한때 꿈과 설렘이 머물렀던 그 장소가, 이제는 꿈과 설렘을 또 한 번 꽃피울 무대가 되어줄 것 같았다.


전열은 이렇게 갑자기 생긴 '꿈'에 도전하는 것만으로 설레였다. 이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인 '채리'와 함께 해서 더더욱 배로 설레였다. 수많은 풍파가 닥치겠지만 그런 것들이 전혀 걱정되지 않을 정도였다. 무식한 용기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반드시 해내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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