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422
세븐틴 승관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승관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강지율
제목: 지니스 플랜
수많은 문제는 결국 모두 지율의 앞에 답변으로 연금됐다. 어린 시절에는 지율은 모르는 게 없었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지율이었다. 그러다 이제는 유사 챗지피티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동네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라는 별명이 지율의 별명이었다. 누군가는 동네골목에서 골목대장을 하고 있을 때, 지율은 자신의 동네에서 지식대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EBS 프로그램이 지식과 지혜에 관련한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나면, 동네의 또래들은 지율에게 모였다.
“지율아 방금 테레비에서 나왔던 거 진짜가?”
지율은 그럼 그 티비 속에 나왔던 실험 같은 거나 나왔던 책을 찾아와서 그게 진짜인지, 아니면 그저 가설에 불가한 주장일 뿐인지를 친구들 사이에서 가시적으로 보이게 설명하고는 했다.
“우와, 역시 지율이 니가 최고다.”
그렇게 지율은 공동 1등으로 한국대에 합격했다. 하필이면 수능 만점자가 17명이나 있었다. 불수능이라고 불렸는데, 중간이 없었고, 1등이 17점. 2등은 무려 17점 차이나 나서 1명이 있었다.
거의 기적과 같은 이상한 점수차이와 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수조사를 해야하지 않나라는 말까지 나왔다.
혹시나 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시험을 치룬 거라면 어떤 모의가 있었던 거 아니냐 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재미난 일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실망을 주었다. 이들은 모두 다른 곳, 지역도 달랐다. 그나마 서울 지역에서 3명이 나왔다는 정도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관심 있어 하지만, 그걸 지속할 에너지는 없지.”
지율의 말 대로였다. 흥미를 끌만한 소식이 아닌, 그저 재미없는 진실들이 드러나자,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관심을 꺼버렸다.
사실 대중뿐만 아니라 지율도 도파민을 쫓았다. 그래서 직접 서바이벌 게임을 만들어 학우들을 초대해 즐기기도 했다. 지율이 만든 게임은 꽤 인기가 많았다.
그런 지율에게 ‘초대장’이 왔다. 게임에 승리하면 무려 1000만 달러를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1000만?”
100만 달러가 10억이고, 1000만 달러는 100억이었다. 이런 거대한 금액은 자신이 평생 뭔가를 했을 때 벌 수 있을까? 의사가 된다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고, 변호사가 되면 어쩌면 가능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로 변호사는 안됐고, 검사나 판사가 된 후 전관예우를 통해 대기업의 고문으로 취업했을 때 확률이 높았다.
아니면 경영자가 되거나, 또는 엔지니어가 되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계발하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면 자신과 거리가 먼, 창작자가 되어 엄청난 문화를 만들 정도의 창작품을 만드는 일이었다.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이 초대장에 적힌 ‘서바이벌’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절대 쉬운 건 아닐 것이었다. 그런데 쉽지 않다고 포기한 다면 그건 지율이 아니었다.
“해봐야지.”
그 한 마디를 내뱉고 나서부터, 지율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초대장에 적힌 연락처를 따라가니, 놀랍게도 이미 완비된 안내 사이트가 있었다. 접속하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 영상과 참가 신청 서류가 있었고, 무엇보다 ‘심리 분석 검사’가 첫 관문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심리 검사?”
지율은 살짝 당황했다. 보통 간단한 신상정보를 적는 정도라면 모르겠는데, 질문이 정말 기묘했다. 예를 들어, ‘당신은 평소 자신의 유전자 전수를 위해 어떤 행동을 우선시하는가?’ 같은 질문이 뜨더니, ‘타인을 매혹시키는 당신만의 전략은 무엇인가?’라는, 언뜻 보면 연애 카운슬링 테스트 같은 문항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거, 좀 특이한데?”
심리를 파악한다면서 물어보는 것들이 대부분 연애나 매력, 혹은 사람의 본능적 욕망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지식이나 논리, 전략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당장 ‘사람을 설득할 때 어떤 거짓말을 제일 자주 쓰는가?’ 하는 질문은 지율을 살짝 고민하게 만들었다. 결국 지율은 있는 그대로 적었다. 답변을 솔직하게 써 내려갔다.
“나는 거의 거짓말을 안 한다. 다만, 진실이 너무 복잡하거나 길어질 경우, 핵심만 요약해 상대를 설득한다.”
며칠이 지나고, 영상통화 면접 요청이 왔다. 프로그램 스태프라는 여성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배경은 비현실적으로 세련된 스튜디오 같았다. 마치 비밀 시설에서 CCTV로 사람을 감시하듯, 흐릿한 조명 아래서 지율을 훑어보았다.
“강지율 님, 심리 분석 결과가 꽤 흥미롭습니다. 이런 유형은 흔치 않아요. 보통은 자신의 매력 포인트를 착각하거나 부풀리는 경우가 많은데, 지율 님은 ‘객관적 자료에 기반한 설득’을 핵심 전략으로 삼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네요.”
지율은 대답 대신 가볍게 웃었다.
“강지율 님, 1000만 달러, 즉 약 100억 원이라는 상금이 걸린 이 서바이벌 게임... 참가 의사가 확실하시죠?”
“네. 해보려고 합니다.”
스태프는 음소거 버튼을 잠시 누른 듯 보였다. 화면 너머에서 누군가와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는 기색이 있었다. 잠시 후 그녀가 다시 말했다.
“곧 상세 정보를 이메일로 드리겠습니다. 저희 쪽 서바이벌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살벌한 탈락 경기와 조금 다릅니다. ‘매 라운드마다 지정된 상대와 성향 매칭을 시도하고, 둘이 합의에 이르면 상위 스테이지로 진출’하는 독특한 방식이에요. 하지만 도중에 배신이 일어나거나, 매칭 실패 시 불이익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연애 요소가 강조되는 이유는, 결국 인간 심리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 맺기에서 두드러지거든요. 또한... 절대 살인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단, 그 외 모든 심리적 수단은 가능해요.”
‘모든 심리적 수단은 가능하다.’ 저 한 줄이 묘하게 긴장감을 자아냈다. 사람을 직접 해칠 순 없어도, 심리적으로 몰아붙이는 건 가능하다는 이야기. 한마디로, 착하게만 굴다간 금세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며칠 뒤, 지율은 약속된 집결지로 향했다. 장소는 도심 한복판의 고층 빌딩. 겉보기에는 번듯한 오피스 건물이었지만, 안내를 받아 들어선 20층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은은한 조명과 부유한 분위기가 감도는 대형 라운지에는 이미 수십 명의 참가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스타일과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화려한 정장을 입었고, 또 다른 이는 편한 운동복 차림이었다. 지율이 유심히 보니, 다들 스태프에게 여러 가지 서류와 기기들을 건네받고 있었다.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머리색을 짙은 보라색으로 염색했고, 옷차림은 그야말로 화려함 그 자체였다. 반면, 시종일관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여성도 있었다. 스태프는 해당 휴대폰을 잠금 봉투에 넣어 보관하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지적을 무시하는 듯했다.
그리고, 지율에게도 ‘참가 키트’가 주어졌다. 안에는 전자 태그가 붙은 팔찌, 그리고 별도의 태블릿 기기가 들어있었다.
“이 태블릿을 통해 각 라운드마다 주어지는 미션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리고 미션에는 항상 연애 대상자 혹은 협력 대상자가 지정됩니다. 그 사람과 일정 조건을 달성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죠.”
스태프는 무표정하게 설명했지만, 눈빛은 묘하게 흥미에 차 있었다. 아마 이들은 지율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어떤 심리전을 펼치는지 지켜볼 것이다.
‘연애 대상자’라는 말에서, 지율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이렇게 대규모 리얼리티 서바이벌에서, 그것도 연애를 가장한 심리 게임에 뛰어드는 상황이 우습기도 했다. 하지만 상금 100억이 걸린 일이니, 단순한 놀이로 봐서는 안 될 터였다.
우선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됐다. 진행자는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중년 남성이었는데, 목소리 하나가 마치 유명 아나운서처럼 무척 선명했다.
“참가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이번 서바이벌의 이름은 ‘지니스 플랜’입니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주어진 ‘유전자 전수’와 ‘관계 맺기’가 어떤 의미인지를 게임으로 풀어보려 합니다.”
지율은 순간, 자신의 별명인 ‘지율’과 프로그램 이름 ‘지니스’가 묘하게 겹쳐서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무언가 인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모든 참가자들에게 한 라운드마다 각기 다른 ‘연애 상대’를 자동 배정할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연애란 단순히 사랑을 나누는 ‘행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타인을 이해하고, 필요한 순간엔 감정적 유대 혹은 협력을 이끌어내는 전반적인 소통 방식을 아우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공적으로 상대와 매칭 과제를 수행하면, 그 라운드에서 ‘생존 티켓’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는 그 뒤,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규칙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각 라운드는 특정 테마를 갖는다. 예: 첫 라운드는 ‘진실 게임’, 둘째 라운드는 ‘갈등 조정’, 셋째 라운드는 ‘유혹과 견제’ 등등.
매 라운드 시작 전, 개인 태블릿에는 ‘이번 라운드 당신에게 배정된 상대’의 코드명이 뜬다. 현실 이름은 공개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참가자는 상대와 소통하며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경우에 따라, 협력만이 답이 아닐 수 있었다. 연애(또는 협력) 성공 여부에 따라, 다음 라운드 진출 자격이 주어졌다. 미션에 실패하거나 중도 포기하면 자동 탈락이었다. 탈락자는 별도의 격리 구역에서 제한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재도전 기회가 있을 수도 있지만, 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실물 폭력이 아닌 선에서 모든 심리적 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타인을 속이거나 이용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살인, 폭력, 성적 강압 등은 즉시 퇴출 사유가 됩니다. 게임은 철저한 감시 시스템 속에서 진행될 것입니다.”
약간의 웅성거림이 일었다. 사람이 그렇게 많다 해도, 실제로 누군가를 ‘심리적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말인가. 모두의 시선이 한층 예민해졌다. 진행자는 미소 지었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한 최후의 1인 혹은 2인, 경우에 따라 커플이 우승할 수도 있습니다. 1000만 달러 상금과 함께, 이곳에서 얻은 특별한 결실을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결실이라는 단어에 몇몇이 웃었다. 누군가는 ‘결혼이라도 시키려나?’라고 농담조로 말했지만, 의외로 그 웃음 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말 가벼운 놀이로 생각했다간 쓴맛을 보게 될 것이다.
라운지 한쪽 벽면이 열리자, 참가자들은 모두 거대한 ‘생존 구역’으로 이동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곳은 마치 스튜디오와 호텔의 중간 형태 같았다. 각자에게 제공되는 1인실이나 2인실이 있고, 공용 공간에는 식당과 휴게실, 그리고 체육시설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지율은 일단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깔끔한 침대와 책상, 그리고 냉장고가 있었다. 널찍한 창문 밖으로는 도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지만, 유리창은 아예 열리지도 않았고, 두꺼운 방음이 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태블릿을 켰다. 화면에는 ‘Round 1 - 진실 게임’이라는 문구와 함께, 자신의 ‘연애 대상’ 코드가 떴다. [A-03].
‘A-03이라… 이건 누구지?’
라운드 설명에 따르면, 첫 번째 미션은 ‘서로의 5가지 진실’을 공유하고, 그중 최소 2개 이상은 공감대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실패하면, 그 라운드에서 탈락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그러니까, 서로 마음을 열어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마음을 열고 공감을 이끌어낼 것인가?
태블릿 하단에 작게 적힌 문구가 보였다. ‘상대와 영상 통화를 시도할 수 있음.’ 지율은 곧장 영상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울리더니, 곧 화면에 누군가가 잡혔다. 픽셀이 몇 번 깨지다가, 이내 맑은 화질로 전환되었다.
상대는 또렷한 갈색 머리를 가진 여성처럼 보였다. 얼굴 절반이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고, 이름표 대신 화면 상단에 [A-03]이라고만 떠 있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A-03 맞으시죠?”
“네… 맞아요. 그쪽은, C-11… 인가요?”
상대가 조심스레 물었다. 지율은 자신의 코드명을 확인했다. 화면 구석에 [C-11 : 강지율]이라 떠 있었다.
‘아, 내 정보는 그냥 노출되는구나.’
“이 미션, 서로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데… 저, 조금 두려워요.”
“두려운 건 당연해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근데... 그래도 해야죠. 탈락하기 싫으면.”
상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넘어로 그녀의 눈동자가 약간 흔들리고 있었다. 마스크 아래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떨림이 느껴졌다.
“저 먼저 한 가지 진실을 말해볼게요. 저는 인간관계가 굉장히 서툴러서, 연애 경험이 전무해요. 그래서 이 게임이 좀 겁납니다.”
지율은 의아했다. ‘이런 류의 게임에 연애 경험 없는 사람이 나온다고?’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어쩌면 오히려 그런 솔직함이 그녀의 무기일 수도 있었다.
“좋아요. 그럼 제 진실 하나를 말씀드릴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주위에서 ‘지식대장’으로 불릴 만큼, 책과 정보에 빠져 있었어요. 한마디로, 지적 허영심 같은 게 좀 강한 편이죠.”
상대가 작게 웃었다.
“그런 허영심, 저는 부럽네요. 저는 아무리 뭔가를 배워도 금방 잊어먹어서…”
두 사람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미 공감대의 조짐이 보였다. 상대는 자신이 서툴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에 대해 지율의 ‘지적 욕심’이 보완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얼핏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게 첫 대화는 의외로 순조롭게 끝났다. 태블릿 화면엔 ‘Round 1 임시 호감도: 상(上)’이라는 문구가 떴다. 시스템이 두 사람의 분위기를 감지해, 어느 정도까지 공감이 이뤄졌는지 점수화한 것이다. 1라운드가 무난히 넘어갈 듯싶었다.
그런데, 복도에서 분주한 발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어딘가 몹시 흥분한 표정의 참가자 한 명이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의 뒤를 스태프들이 쫓아갔다.
“뭐야, 또 탈주하려는 사람인가?”
지율이 작게 중얼거렸다. 앞서 오리엔테이션 때 들은 바로는, 중도 포기나 자진 탈락을 원하는 사람이 늘 있을 거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 게임은 너무 불안정하니까. 사람 마음을 후벼 파는 식의 심리전도 가능하니까.’
옆방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장신의 젊은 남자였다. 그는 지율을 보자, 작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걸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인지 아세요?”
“잘 모르겠어요. 아마 저 참가자가 뭔가 격한 반응을 보였나 본데…”
그 남자가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이 게임이 단순히 연애만 하는 건 아니니까, 겁먹거나 화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죠.”
지율은 그 말을 곱씹었다. 사람을 설득하고, 유혹하거나 때론 조작해야 할 수도 있는 게임. 마음이 단단하지 않다면, 중간에 정신적으로 무너질 가능성도 컸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무기를 삼을 수 있는 건 뭘까?’
지율이 생각해본 바로는, 첫째는 자신의 ‘지식’이었다. 둘째는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는 감각. 그러나 연애 감정이라는 게 단순히 머리로만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감정이 개입되면, 평소 논리나 전략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율은 각오했다. 이 게임은 생존을 건, 그리고 100억이라는 상금을 놓고 겨루는 무대다. 상대의 호감을 얻고, 필요하다면 더 강력한 유혹이나 설득을 써야 한다. 마음 한구석이 복잡해졌다.
‘정말로 내가 이 게임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심리적 충격을 주거나, 거짓으로 감정을 연기해야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서도 본능적으로 느꼈다.
‘나는 어떤 방법이라도 해봐야 해. 이곳에 온 이상, 그냥 포기하고 나가는 건 내 성격이 아니니까.’
지율은 살짝 미소 지었다. 어쩌면 이 상황 자체가 자신에게는 또 다른 거대한 문제 해결의 기회일지도 몰랐다. 살아남으려면, 때로는 순수한 지식이 아니라 ‘현실적인 감정 컨트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미 알았다. 이것은 단순한 사랑이나 우정의 게임이 아니다. 참가자 각자의 마음속에는 때로는 이기심과 욕망이, 때로는 의외의 동정과 연민이 뒤섞여 무한히 변주될 것이었다.
끝끝내 누군가는 거짓과 진실의 경계에서 춤추며, 상대를 감동시키거나 철저히 이용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재미있겠는데.’
지율은 방으로 돌아와 다시 태블릿 화면을 들여다봤다. [Round 1 – 남은 시간: 22시간]. 그 시간 동안 A-03과 최소한 ‘5가지 진실 중 2가지 이상 공감대 확보’라는 조건을 달성해야 한다.
벌써 1가지씩 꺼냈으니, 이제 최소 한 가지씩은 더 나눠야 한다. 그런데 한두 번 더 통화로는 부족할 수도 있었다. 상황에 따라 직접 대면해볼 수도 있겠다.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던 지율은 결심했다.
‘일단 1라운드는 무난하게 넘기고, 그다음 라운드부터는 내 방식대로 판을 흔들어보자.’
바로 그때, 태블릿 알람이 울렸다. [A-03이 당신에게 화상 초대 요청을 보냈습니다.] 라고 떴다.
“벌써?”
지율은 잠시 숨을 고르고, 수락 버튼을 눌렀다. 화면 속 그녀의 눈은 조금 전보다 결연해 보였다.
“지금… 저 좀 직접 만날 수 있을까요? 화면 너머로 이야기하는 것보단,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물론이죠. 어디로 갈까요?”
지율은 미소지었다. 그렇게, 서바이벌의 첫 라운드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누군가는 긴장과 공포로 탈출을 시도하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낸 채 공감을 구하고 있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이 거대한 심리전을 헤쳐 나가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움직임은 거대한 ‘지니스 플랜’이라는 이름의 무대 위에서 수많은 카메라와 감시 장치 아래에 있었다. 제작진과 스태프는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면밀히 관찰하며, 이어질 게임 전개를 시나리오처럼 구상하고 있을 터였다.
‘그래도 난 아직 본 게임을 시작도 안 했어.’
지율은 마음속에 유쾌한 긴장감을 채웠다. 그리고 결심했다. 지식으로 증명해내든, 감정으로 공명하든, 반드시 최후까지 살아남아 이 무대를 장악하리라고.
숨겨져 있는 조각 하나를 먼저 발견한 엄청난 행운이었다. 일부로 유도한 건지, 어쩌면 달려나간 사람은 이 비슷한 무언가를 발견한 걸지도 몰랐다. 이 세트장엔 비밀의 규칙이 숨겨져 있었다. 그건 총 세가지였다. 모두에게 적용하는 규칙, 커플에게만 적용하는 규칙, 그리고 나에게만 적용되는 규칙이었다.
즉 규칙을 발견한 사람만이 이용할 수 있는, '히든 카드'였다. 다만 문제는 이게 상시 발동인지, 아니면 제시를 해야하는 건지 몰랐다.
타이밍에 따라, 그저 힌트일 수도 있었다. 지율이 발견한 카드에는 '라운드 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