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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노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캐릭터 - 424

by 라한
디노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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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노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차현진

제목: 고 트루


“음. 이거다. 이거 맞지?”


현진은 깊이 고민하여 눈앞에 있는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민했다. 그러다 바로 선택했다. 이제는 책임이 따르는 시간이었지만, 역시나 현진이 맞았다.


“맞았어. 어떻게 알았어?”


하나는 가짜였고, 하나는 진짜였다. 현진은 이런 게임을 좋아했다. 진실 혹은 거짓. 진실 속의 거짓을 찾거나, 거짓 속의 진실을 찾는 일을 좋아했다.


“뭐, 운?”

“운이 이렇게 확률이 좋아? 그냥 실력이네, 하긴 뭐. 운도 실력이라고 하니까.”


현진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은 그럼 운의 신급. 최고의 실력자라 생각하며 호쾌하게 웃엇다. 그러다가 가짜 전시회를 보게 됐다. 이곳에서 진짜를 찾아내면, 해당 예술 작품을 선물하겠다는 것이었다.


“어라. 저런 게 있어?”


길거리 속, 많은 인파가 지나가지만, 현진만은 이런 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 참에, 집에 걸 작품 하나 찾아 봐?”


가짜 중에 진짜, 그리고 진짜 중에 가짜를 찾는 일이었다. 현진이 무척이나 좋아하고 잘하는 그런 일이었고, 보상도 생각보다 컸다. 엄청난 작품들을 전시하는 현재 대한민국 최고 규모의 전시회였으니까.


문제는 바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전시회장을 찾아가야 만하는 것이었다.


“이 참에 같이 가자고 해볼까.”


현진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가짜 중 진짜를, 그리고 진짜 중 가짜를 찾아내는 그 눈으로 확실히 찍은 그녀였다.


“좋아, 일단 전화부터 해보자.”


현진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통화 목록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으려고 손가락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도 살짝 망설였다. 얼마 전 두 사람이 함께 갔던 소규모 아트갤러리에서, 그녀는 거짓같이 보이는 낯선 그림들 사이에서 홀로 진실만 쏙쏙 찾아내는 탁월한 안목을 보였다. 관람객들에게 한 표씩 배부된 투표용지에 이 중 가짜 작품은 몇 점일까요?라는 질문이 붙었고, 그녀는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현진은 그때부터 은근히 그녀를 존경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결코 만만치 않은 ‘진실찾기’ 실력을 자부하고 있었으나, 그녀만큼 정확하게 찍어내는 건 쉽지 않았다. 지금 떠오르는 ‘가짜 중 진짜’를 구별하는 이번 이벤트에서도, 그녀가 함께한다면 훨씬 더 재밌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주저하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몇 번 울리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현진아? 웬일이야?”

“나 말이야, 지금 엄청 흥미로운 전시회 하나 발견했어. 이름은... 어, 잠깐만.”


현진은 간판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어둔 갤러리 폴더를 뒤적였다. 그녀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음, ‘페이크 페스티벌: 거짓 속의 진실’이래. 전시만 있으면 좀 뻔하겠지만, 여기서는 진짜를 찾아내면 그 작품을 준다나 봐? 어떻게 이런 이벤트를 열 수 있는진 모르겠지만, 완전 대박이지 않아?”

“거짓 작품들을 전시해 놓고, 진짜 하나를 숨겨놓았다? 그리고 그걸 찾는 사람에게 그 작품을 선물해준다고?”

“맞아. 좀 이상하긴 해도, 이색적인 이벤트인 건 확실하지. 그래서... 너 혹시 주말에 시간 돼? 같이 가볼래?”

“오! 그거 재밌겠는데? 나 사실 이번 주말에 딱히 계획이 없어서 집에 늘어져 있을 생각이었거든. 좋아, 가보자. 몇 시쯤?”



그녀는 몇 초간 망설이는 듯하다가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이튿날 오후, 두 사람은 약속 장소에서 만났다. 시내 중심가에서 살짝 벗어난 곳, 다소 낯선 옛 건물을 개조해 전시회장으로 쓰고 있었다. ‘페이크 페스티벌: 거짓 속의 진실’이라는 현수막이 입구 상단에 크게 걸려 있었고, 다양한 색채의 포스터가 마치 축제장처럼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건물 좀 오래돼 보이는데... 뭔가 분위기 있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하자 현진도 시선을 옮겼다. 낡은 벽돌 외관에 사방이 플래카드와 포스터로 도배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입구 쪽에는 담당 스태프가 안내서를 나눠주고 있었다. 현진과 그녀는 각각 팸플릿과 간단한 브로슈어를 받아들었다. 브로슈어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가짜를 구별하는 순간, 당신은 진짜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어쩌면 당신의 눈과 마음이 결정합니다.

자, 이제 거짓 속의 진실을 찾아 떠나볼까요?’


현진은 대충 훑어보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분위기 꽤 그럴싸한데? 괜히 기대되잖아.”

“그러게. 근데 정말 한 점의 진짜 작품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걸까? 가격이 얼마짜릴지...”


그녀가 약간의 의문 섞인 미소를 지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유명 작가의 오리지널 작품을 그냥 준다니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전시회의 홍보문구는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꽤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인파를 따라 줄을 섰다. 입장권을 구매하고 들어가자, 내부는 더욱 독특했다. 기존의 전형적인 전시 방식과는 다르게 공간이 몇 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각각 구역마다 전혀 다른 테마를 가지고 있었다. 입구에서 배정된 안내 스태프가 활기찬 목소리로 설명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브로슈어에 작성된 퀴즈와 게임 미션을 하시면서 전시를 즐기시면 됩니다.”

“각 구역을 돌며 진짜를 의심해볼 만한 단서를 수집하시고, 최종적으로 한 점의 ‘진짜’를 지목해주세요. 맞히시면 그 진짜 작품을 그대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물론, 상당히 어려운 도전이긴 하지만요!”


현진과 그녀는 동시에 흥미로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일단 가보자.”

“그래. 어디부터 시작하지?”


첫 번째 구역은 ‘시작의 장’이라는 큼지막한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들어가 보니, 커다란 전광판에 커플들의 모습을 일러스트로 연출한 그림들이 잔뜩 전시돼 있었다. 어떤 그림은 키가 유난히 큰 남성과 작아 보이는 여인의 모습, 또 다른 그림은 훤히 드러난 야외 정원에서 우아한 복장을 한 두 사람이 춤추는 모습이었다. 온통 로맨틱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림 곳곳에 서명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작가명도, 작품명도.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그림 위나 아래에는 아주 작은 메모지들이 붙어 있었다.


‘이 장면, 정말 있었던 일일까?’

‘사랑이란, 가장 쉽고도 어려운 진실. 혹은 가장 달콤한 거짓?’


그녀가 그 메모지 하나를 가만히 읽었다.


“뭔가 알쏭달쏭해.”

“그러게. 실존하는 커플의 실화를 그린 건지, 아니면 그냥 상상으로 만든 허구인지 전혀 감이 안 오네.”

“어쩌면 작가가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았을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지.”


현진은 벽 한편에 걸린 패널을 발견했다. 그 패널에는 이 구역의 소개가 적혀 있었다.


[‘시작의 장’에서는 사랑과 관계 속 진실 혹은 거짓을 탐색해봅니다.

당신이 보는 사랑 이야기는 과연 사실일까요, 혹은 착각이거나 누군가의 거짓된 환상일까요?

오늘날 우리는 SNS에 올라온 로맨틱한 사진과 영상들을 쉽게 ‘진실된 일상’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그중 몇 퍼센트가 연출된 장면일까요?]


그녀가 패널의 문구를 따라 읽었다.


“아, 이 전시 전체가 ‘거짓 속 진실’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거짓을 보여주는 것 같네.”

“그렇지. 그리고 여긴 사랑이나 인간관계에서의 거짓을 다루는 첫 번째 구역이군.”


둘은 메모지를 꼼꼼히 살펴본 뒤, 다음 구역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직 여기서 ‘진짜 작품’ 같은 건 보이지 않았지만, 어떤 실마리를 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메모지를 스마트폰으로 찍어두거나 간단한 글로 적어뒀다. 뭐라도 도움될 만한 건 모조리 기록해두는 습관 덕분에, 현진과 그녀는 이 이벤트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두 번째 구역은 ‘눈속임의 방’. 들어가자마자 곳곳에서 조명이 번쩍였고, 거울과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장치들이 잔뜩 설치되어 있었다. 바닥엔 기묘한 선들이 어지럽게 그려져, 걸을 때마다 발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어머! 이거 대체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지?”


그녀가 균형을 잡기 위해 현진의 어깨를 잡으며 웃었다. 벽면에는 온갖 착시 그림이 걸려 있고, 그중에는 제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패턴도 있었다. ‘착시’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쉽게 시선이 흔들렸다.


한편, 한쪽 코너에서는 증강현실(AR) 기기를 빌려주는 부스가 있었다. 스태프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이 AR 기기로 바닥이나 벽을 비춰보시면, 일종의 ‘거짓 단서’가 숨어 있습니다. 찾으시면 퀴즈를 풀 수 있어요.”


그녀와 현진은 기기를 나눠 착용한 뒤 천천히 걸어다녔다. 바닥을 비추면, 지저분해 보이는 낙서 속에서 ‘진실은?’이라는 글자가 떠오른다든가, 벽을 비추면 ‘이 또한 거짓?’이라는 문장이 홀로그래픽처럼 반짝 나타났다. 어떤 문장들은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어떤 건 단순히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장난 같았다.


“여기 뭐가 있어. 눌러볼까?”


그녀가 기기 화면 위, ‘거짓라인 따라가기’라는 버튼을 터치했다. 그러자 증강현실 속에서 붉은 빛의 선이 나타났고, 그 선을 따라가자 벽 모퉁이에 ‘F, A, K, E’라는 단어가 흩어져 있었다. 비밀번호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fake’를 의미하는 단어에 불과했다. 그러자 전설적인 인물 한명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그 선수를 떠오릴 때가 아니라 그만두었다.


“어디 하나쯤에 제대로 된 단서가 있겠지. 계속 찾아보자.”


현진이 중얼거리고, 그녀도 동의했다. 이 구역이야말로 ‘거짓을 통한 눈속임’을 극적으로 체험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그러나 정작 진짜 작품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었다. 둘은 ‘혹시 우리의 감각을 깨부수는 경험 자체가 단서가 아닐까?’라고 추측하며 세 번째 구역으로 이동했다.


세 번째 구역에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평소 미술관처럼 고요하고 어두운 조명 아래 하나씩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화려한 퍼포먼스는 사라지고, 대신 진지한 감상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곳에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재현한 것 같은 그림들이 나열돼 있었다. 단, 어딘지 수상쩍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하늘처럼 보이지만, 언뜻 보면 색감이 미묘하게 달랐다. 모네의 수련 같지만, 수련이 아닌 다른 꽃이 그려져 있는 등, 전부 ‘거의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작품들인 것이다. 제목도 ‘Starry-like Night’, ‘Monet-ish Garden’ 식으로 애매하게 표기돼 있었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며 작품 표면을 유심히 살폈다.


“와, 이건 정말 정교하게 모사한 위작들 같아.”

“색채나 질감도 비슷해 보이는데... 정말 진짜 작가가 그린 그림은 아니겠지?”

“확실히 느낌은 모작이야. 근데 이 중 하나가 혹시... 진짜 오리지널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도 있잖아?”


현진은 주변 벽면을 살펴봤다. 비슷한 그림이 최소 열 점 이상 걸려 있었다. 그중 단 하나만 진짜?


그때 벽면 안내문에 ‘이 중 하나는 진짜일 수도, 혹은 전부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눈은 어디까지 진실을 간파할 수 있을까요?’라는 문장이 보였다. 여전히 관람객을 혼란에 빠뜨리는 멘트였다.


“여기서 혹시 진짜를 찾으라는 말일까?”


현진은 작정한 듯 하나씩 그림에 코를 바짝 대고 들여다봤다. 붓의 터치, 캔버스 질감, 프레임 가장자리까지 꼼꼼히 살폈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관찰에 몰두했다. 한참을 지켜본 둘은 고개를 갸웃했다. 모두 꽤 수준 높은 위작처럼 보였다. 딱히 ‘아, 이건 정말 진짜다!’라고 확신할 만한 특징이 없었다. 혹은 전부가 가짜인지도 몰랐다.


“딱히 결정적인 단서는 없네. 다른 구역 더 볼까?”


현진의 제안에 그녀도 동의했고, 일단 메모만 해두고 다음 구역으로 향했다. 네 번째 구역 ‘거짓말 탐지 연구소’라는 팻말이 붙은 곳에 들어서자, 현장 스태프가 방문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지금 거짓말 탐지 체험코너를 운영 중입니다. 성인 관람객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세요! 혹시 두 분도 도전해보시겠어요?”

“거짓말 탐지...?”


현진과 그녀는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이 전시회, 진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거짓이라는 주제를 강조하는 모양이었다. 스태프가 안내한 테이블엔 간단한 센서 장비가 있었다. 맥박과 피부전도 등을 체크하는 저가형 거짓말탐지기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물론 완벽한 기계는 아니지만, 이벤트 체험용으로 쓰이는 장치였다.


“참가자 서로에게 질문을 하나씩 할 수 있고, 대답자가 진실을 말했는지 거짓을 말했는지 기계에서 추정치가 나옵니다. 100% 신뢰할 건 아니지만, 재밌는 경험이 될 거예요.”


둘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며 바로 참가 신청을 했다. 스태프가 장비를 세팅해주자, 먼저 현진이 손목과 손가락에 센서를 붙였다. 그녀가 입가에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아. 내가 질문할게.”

“현진 씨, 지금까지 나한테 말 못한 비밀 있어?”


현진은 잠시 침을 꿀꺽 삼켰다. 정작 무해한 질문을 예상했는데, 은근히 민감한 게 튀어나온 듯했다.


“없다! 정말 없어.”


장비 화면에 작은 막대 그래프가 움직였다. 스태프는 글쎄, 대체로 안정적이긴 하네요라고 말했다. 현진은 웃으며 물었다.


“다행이네. 아, 쓸데없이 떨렸어.”

“진짜 정말 없는 거 맞아?”

“에이, 없어. 없어.”


이번엔 그녀 차례. 현진이 짓궂은 미소로 물었다.


“혹시... 나랑 함께 오길 조금이라도 후회한 적 있어?”

“하하. 당연히 없어.”


그녀가 바로 답하자, 장비 그래프가 조금 튀더니 금방 다시 평온해졌다. 스태프는 거의 진실로 보입니다.라고 했다. 두 사람은 그 결과에 괜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스태프는 아유, 보기 좋네요. 이렇게 솔직하고 착한 커플은 처음이야!라며 박수를 쳤다. 그렇게 짧은 체험을 마친 두 사람은, 장비 특성상 재미 요소가 크다는 점을 확인하고 자리를 떠났다.


“근데 이게 뭐 진짜로 과학적이진 않아도, 나름 흥미롭지 않아? 우리가 믿는 거짓이라는 게 얼마나 주관적인지 깨닫게 해주네.”

“맞아. 이 전시 자체가 ‘거짓’을 어떻게든 경험해보게 만드는 느낌이야. 우리가 무엇을 믿고, 또 어떻게 속는지.”


다섯 번째 구역, ‘최종의 방(Last Chamber)’이라고 적힌 문구가 커다랗게 보였다. 여긴 뭔가 중세 고성 같은 디테일로 꾸며져 있었고, 중앙에는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감시 카메라 모형, 작은 상자, 그리고 커다란 봉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한 스태프가 마이크를 잡고 방문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마지막 구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곳에서는 여러분이 지금까지 모아오신 단서, 혹은 감각을 토대로 ‘단 하나의 진짜’를 선택해주셔야 합니다.”


현진과 그녀는 주위 다른 관람객 몇 명과 함께 테이블 앞으로 모였다. 스태프는 다들 모여들기를 기다려 천천히 설명했다.


“각 구역에서 보신 작품이나 오브젝트 중, 진짜일 거라 추정되는 걸 하나만 골라주세요. 아직 기억이 잘 안 난다면, 브로슈어에 적힌 번호나 사진을 다시 확인해보세요. 혹은 ‘전부 가짜’라고 판단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섣부른 결론일 수도 있지요.”


많은 관람객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현진과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첫 번째~네 번째 구역까지 수십 점의 그림과 설치물이 있었고, 심지어 AR로 접한 것도 있었다. 게다가 각 구역 설명문에는 이건 다 가짜일 수도 있다 같은 문장들이 넘쳐났다.


현진은 고민스러웠다. ‘분명 어딘가에 정말 하나의 진짜 작품이 있을 텐데, 아무 단서도 못 잡은 것 같은데?’ 그녀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아까 세 번째 구역에서 봤던 그림 중 하나가 살짝 색감이 달랐던 게 있었잖아. 고흐 모작 같은 그 그림. 혹시 그게 진짜 아니었을까?”

“나도 그거는 뭔가 좀 달랐다고 느꼈어. 다른 건 브러시 질감이 너무 깔끔했는데, 그 하나만 유난히 거친 붓터치가 남아 있더라. 미세한 흠도 있었고.”

“그렇지. 오히려 그 흠이 진짜 고흐의 붓터치처럼 보였어. 다른 작품은 위작인 게 눈에 띄게 정교했는데, 정교한 척하면서도 뭔가 ‘완벽’해 보이기도 했잖아.”

“음, 맞아. 이 이벤트가 너무 노골적으로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려고 했지만, 결국 그 흔적을 남겨뒀을 수도 있지.”


결국 두 사람은 ‘고흐를 모사한 작품’ 중 그 특정 그림을 진짜로 지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물론 확신할 순 없지만, 지금까지 본 것 중에는 그나마 가장 설득력 있는 선택이었다.


“그래, 그걸로 가보자. 어차피 내일 또 오겠다고 할 수도 없고, 지금 당장 결정해야지.”


현진은 결심했다. 스태프가 최종 참여 양식을 나눠주었다. 거기에는 ‘진짜로 추정되는 작품 번호를 적으시오’라는 란이 있었다. 둘은 세 번째 구역에서 그 작품의 번호를 확인해 뒀으므로, 그 번호를 적었다. 마지막으로 스태프가 안내했다.


“자, 이 형식지에 번호와 연락처를 남기시고 서명하시면 됩니다. 만약 맞히셨다면, 일주일 안에 전화가 갈 거예요. 보도 자료도 함께 나갈 예정이니, 놀랄 준비 하셔도 좋습니다. 혹시 틀리셔도 낙담 마세요. 어쩌면 이 전시회 자체가 좋은 추억이 되셨을 테니까요!”


현진과 그녀는 기분 좋게 서류를 제출하고, 천천히 전시장을 나왔다. 바깥은 어느새 해가 기울어 붉은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전시회장을 나서며 그녀가 물었다. 현진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 맞혔을까?”

“솔직히 모르지. 그래도 이번 이벤트, 꽤 독특하고 재밌었잖아? 만약 우리가 틀렸다 해도 뭐 어때.”

“응, 맞아. 정말 다채로운 형태의 ‘거짓’을 체험했네. 실컷 속아보기도 하고, 눈속임을 당하기도 하고, 또 진실을 찾으려 안간힘 쓰기도 했고.”


길을 따라 걷는 두 사람 사이에는 알 수 없는 묘한 즐거움이 감돌았다. 단순히 무언가를 맞히기 위한 게임이라기보다는, 거짓과 진실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현진은 문득, 처음 이 전시 이벤트에 대해 알았을 때의 두근거림을 떠올렸다. ‘가짜 중에 진짜를 찾으면 그 작품을 받을 수 있다’라는 달콤한 유혹. 하지만 그 과정에서 훨씬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사람의 감각이 얼마나 쉽게 속을 수 있는지, 또 거짓이 얼마나 교묘하게 진실처럼 꾸며질 수 있는지를 생생히 체험한 것이다.


“혹시... 작품이 우리 집에 오게 되면, 같이 축하 파티나 할까?”

“하하. 그래! 와인 사놓고 그 작품 앞에서 건배하는 거지. 물론, 그게 진짜든 가짜든 우리끼린 의미가 있잖아. 우리가 함께 찾아낸 거니까.”


그녀의 말에 현진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든 가짜든, 이 둘 사이에는 이미 작은 이야기가 쌓였으니까. 어떤 작품을 보며 함께 고민했고, 자신의 감각과 추리를 합쳐 결론에 이르렀다. 그것은 그 자체로 ‘진실’이었다. 가짜를 통해서라도 진실 같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흥미롭고 아름다웠다. 그때 현진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어, 전화가 오는데? 벌써 오늘 참여한 전시회 측에서 연락이 온 건 아닐 테고...”


화면을 보니 친구였다. 현진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야, 현진! 지금 어디야? 혹시 ‘페이크 페스티벌’ 다녀온 거 아니야?”

“어, 맞는데. 왜?”

“진짜 대박이야. 뉴스 뜬 거 봤어? 이 전시회 주최 측에서 밝혔는데, 진짜 작품이 딱 한 점 숨어 있다고 했잖아. 그게 엄청난 값어치라더라. 최소 수억 원대일 수도 있다는 말도 있어. 근데 주최 측은 그 금액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미술계의 ‘진실’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거래. 결국 작품 공개를 곧 할 거라고.”


현진은 깜짝 놀랐다. 설마 수억 원대? 아무리 생각해도 허황된 이야기였다. 그런데 친구의 흥분된 목소리는 농담 같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그녀에게 설명하자, 그녀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이면 엄청난 일이네. 진짜 천문학적 가격의 작품을 발견한 사람이 그걸 가지게 되는 거야?”

“그러게. 괜히 더 떨리네. 우리, 혹시 정말 맞혔으면 어떡해?”


현진은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났다. 결코 돈 때문이라기보다는, ‘맞혔다’는 사실만으로도 강렬한 재미와 스릴을 선물받는 듯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마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진실과 거짓을 가르려 하는 세상 속에서, 오늘은 둘만의 작은 진실을 더 단단히 쌓은 느낌이었다. 그저 가벼운 재미로 시작한 전시였지만, 만약 운명처럼 정답을 맞혔다면 그 또한 이들의 특별한 에피소드로 오래오래 기억될 터였다. 그녀가 가볍게 현진의 팔을 끌었다.


“가자, 이제 배도 고프고. 저녁 먹으러 가자.”

“좋아. 근데 말이야...”


현진이 한순간 뜸을 들이다 웃었다. 그녀도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오늘 내가 전시회 선택 잘했지? 이거 실력이야, 실력.”

“에이, 그거 다 내 추리력이 좋았기 때문 아니야? 내가 아니었으면 넌 이미 1구역에서 진짜 찾는다고 설치고 있었을걸.”

“하하하, 그렇긴 하지.”


두 사람은 그렇게 티격태격 말장난을 주고받으며, 어느새 어둑해진 거리를 함께 걸었다. 가짜 중에 진짜를 찾는 건 어려울지 몰라도, 적어도 서로를 바라보는 이 순간만큼은 조금도 거짓이 없는 듯했다.


이렇듯, 우연히 발견한 기묘한 이벤트 전시회가 그들의 일상에 작지만 강렬한 변화를 가져다줬다. 여전히 전화를 기다리는 시간은 또 다른 설렘을 예고했다. 그리고 둘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믿는 진실은 때론 거짓일 수 있고, 거짓 속에도 분명 작은 진실의 씨앗이 숨어 있다고. 무엇보다 진실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내는 것이기에 더욱 빛나는 법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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