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430
솔빈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솔빈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안시현
제목: 스포 없는 커뮤니티
“아! 아아아!!”
기대하고 기대하던 영화가 개봉했지만, 잠에 들지 못한 시현은 결국 너튜브를 클릭했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게 됐다.
“아니, 그걸 왜 스포를!”
일반적인 사람들도 아닌, 기자들이 제목으로 스포일러를 해놨다. 가끔 예능 프로그램과 스포츠 결과를 이런 식으로 스포 당할 때도 기가 찼는데 거의 1년은 기다린 영화의 특별출연한 인물에 대한 정보를 이렇게 알게 될 줄은 몰랐다.
“진짜. 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욕을 쏟아부은 시현은 눈물로 밤을 보내야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났는데도, 어제는 분명 지났고 오늘은 새로운 시작인데도 불구하고 화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 기자 진짜 누구야.”
기자에 대해서 검색하고 기자에게도 이 스포일러를 전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은 없었다.
그러고보니 문득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스포일러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지나가는데 옆에 포장마차처럼 차려진 타로집도 그렇고, 사주집도 그렇고, 어쩌면 연구를 하는 박사들도 논문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대한 스포일러를 준비하는 건지도 몰랐다.
“아, 갑자기 내가 스포일러에 미쳐버렸나봐.”
어제 영화의 스포일러를 당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스포일러 없는 커뮤니티는 없는걸까 싶었는데 그 생각을 더해서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 해볼까?”
시현은 공대여신이라고 불렸던 과거를 떠올렸다. 비록 공대를 졸업했지만 정작 하고 있는 일은 기획전시에 가까웠다.
이 모든 능력을 쏟아 스포일러가 없는 커뮤니티 포탈 사이트를 만들면 대박나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웹툰, 웹소설 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OTT 플랫폼이나 웹툰 플랫폼, 웹소설 플랫폼 여러 컨텐츠 플랫폼과 연계해서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시현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웹툰이나 웹소설 같은 경우는 몇화까지 본 사람만 볼 수 있는 게시글을 올릴 수 있고, 그걸 보려고 그 화를 봐야만 볼 수 있는 비밀의 이야기였다.
실제로 가입을 해야 볼 수 있는 어떤 카페의 게시판을, 게시글로 더 상세하 한 개념이었다.
OTT와 연계해서 영화 1시간 3분까지 본 사람만 클릭할 수 있고, 내용을 볼 수 있는 글. 그러면 사람들은 스포일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비록 최신 내용 얘기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많이 본 사람들은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언제든 내용을 말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드라마라면 2화 10분까지 본 사람끼리 또 얘기를 하고, 웹툰은 컷으로 100화 20컷 까지 본 사람만 대화 가능, 웹소설은 몇줄까지 읽은 사람. 이런식으로 하면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은 거 같은데?”
시현은 곧장 일단 사업 신청해보고, 정부 지원금도 신청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가서 사업신청서를 만들 때 데모버전이 필요하니까 코드를 짰다.
오랜만에 짜려니까 머리가 비워진 느낌이라 공대에서 배운 학문을 잘 살려 취업한 친구들을 오랜만에 찾았다.
시현의 말을 듣고, 괜찮은데? 라는 의견을 더하며 자신도 투자겸 제작을 같이 해보고 싶다고 하는 말까지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도와주는 걸 넘어 함께?”
시현은 나쁘지 않았다. 정말로 그냥 스쳐 지나간 아이디어가 이제는 사업이 될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무심코 드나들던 각종 커뮤니티에서 당한 스포일러들의 악몽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스포일러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그 노고를 감수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제 떠올린 구체적인 기능들을 다시금 노트에 적어 내려갔다.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주요 기능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각 플랫폼별 연동 기능. 둘째, 시청 진행도 인증으로 작성된 게시글이나 댓글에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 셋째, 화별·분 단위로 구분된 스포 방지 알고리즘. 이를테면 “5화 10분”까지만 본 이용자는 그 지점을 넘어서는 내용은 자동으로 가려지고, 글을 읽고 싶으면 해당 파트까지 시청을 완료해야 하는 식이었다.
“나만 불편한 게 아니라고. 이거 제대로만 구현하면 분명 대박일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현은 코드를 짜기 시작했다. 사실 코딩은 꽤나 오랜만이었지만, 모종의 흥분감이 손끝에 전해졌다. 과거 공대 시절의 감각을 되살려 간단한 프로토타입부터 만들자고 결심했다. 일단은 웹 환경에서 구현해보는 것이 접근성 면에서 유리할 것 같았다. 자잘한 버그는 많았지만, 어느 정도 형태가 갖춰지자 시현은 소스 코드를 압축해 지인들에게 공유했다. 곧이어 연락이 왔다. 예전에 같은 과에서 프로젝트를 자주 함께했던 지훈이라는 친구였다.
“와, 이거 재밌겠는데? 근데 생각보다 기능이 많아질 것 같아. 어떤 식으로 확장할 거야?”
시현은 잠깐 고민하다가, 자신이 구상한 전반적인 아이디어를 정리해 메신저로 보내주었다. 표로 정리된 기획서에는 아래와 같은 항목들이 빼곡히 쓰여 있었다.
‘몇 화까지 인증’ 기능 구현을 위한 API 연동 (웹툰·OTT 등)
진입 권한 부여 (게시판 레벨별 접근 차단)
스포일러 자동 필터 (글 제목, 내용, 이미지)
차후 확장: 영화에도 적용 가능 (러닝타임별 분 단위 접근)
“이대로만 가면 가능성 충분하다. 요즘 OTT들이 팬덤과 결합할 서비스를 찾고 있대.”
지훈의 답장에 시현은 더욱 마음이 설렜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아이디어 스케치’가 아니라 ‘현실화’가 가능하다는 신호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자금 문제는 당장 해결이 안 되더라도, 최소한 시제품(데모)은 충분히 완성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솟았다.
“그럼 우리 내일 한번 만나서 자세히 얘기해볼까?”
지훈이 먼저 제안했다. 시현은 흔쾌히 수락했다. 요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나 각종 정부 과제들이 많은데, 잘만 하면 시드머니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다음날, 시현은 홍대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지훈과 조우했다.
카페 한구석에 자리를 잡자마자, 시현은 노트북을 열어 프로토타입 화면을 보여주었다. 메인 페이지, 로그인 후에 뜨는 ‘진행 상황 설정’ 탭, 화별 게시판의 스포일러 자동 차단 데모. 아직은 디자인이 투박하고 기능이 제한적이긴 했지만, 최소한 가능성만큼은 분명했다.
“지금은 웹 형태로만 만들었지만, 나중에 앱으로도 확장할 수 있을 거 같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웹툰 플랫폼만 해도 월간 이용자가 어마어마하잖아? 만약 공식 연동만 된다면…”
시현의 설명을 듣던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사실 OTT나 웹툰 플랫폼이랑 협업만 되면, 정말 재밌을 것 같아. 낯선 사람끼리도, 똑같이 3화까지 본 사람들끼리는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으니까.”
“맞아. 그리고 요즘은 콘텐츠가 많아서 다들 제각각 시청 속도가 다르니까, 이게 오히려 사용자 입장에서는 고민 없이 즐길 수 있는 게 제일 큰 장점일 거야.”
시현은 그렇게 말하며 프로토타입의 시연용 영상을 재생했다. 짧은 예시지만, 가상의 영화 장면을 두고 20분까지 본 사람들끼리만 대화하는 채팅방을 구현해 두었다. 실제로는 단순한 채팅 프로그램이지만, 설정된 권한 이상인 사람만 입장이 허용된다. 덕분에 누군가가 영화 결말을 떠벌리거나 중요한 반전을 말하는 일이 현저히 줄어든다.
“사용자들이 대체 어디까지 인증을 해야 하냐고 귀찮아할 수도 있지 않아?”
지훈의 질문에 시현은 흐음 하고 짧게 고민하더니, '자동화'라는 키워드를 언급했다.
“그래서 자동화가 핵심이야. 가령 내가 넷플릭스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네이버웹툰에서 50화를 봤다면, 그 기록을 가져와서 자동으로 진행 상황을 업데이트시키면 돼. 물론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해야 하지만, 어차피 요즘 다른 앱들도 비슷하게 플랫폼 연동하잖아.”
그 말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럼 핵심은 대형 플랫폼들의 협조를 얻어내느냐 하는 거겠네?”
“그렇지. 일단 MVP(최소 기능 제품)를 만들어서 스타트업 지원 사업에 내볼 생각이야. 일차적으로 자금 지원이라도 받으면 서버나 인프라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두 사람은 저녁 식사까지 간단히 마친 뒤에야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온 시현은 곧장 노트북을 켰다. 오늘 대화 내용을 정리해두고, 좀 더 구체적으로 피치덱 형태의 발표 자료를 만들어볼 작정이었다.
우선, '스포일러 없는 커뮤니티'라는 타이틀 아래에 간단한 시장 현황 분석을 넣었다. 국내외 OTT 시장 규모, 웹툰 플랫폼의 연간 거래액, 그리고 콘텐츠 소비의 파편화 추세까지. 사람들이 같은 콘텐츠를 제때 동시에 보는 시대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각자 다른 속도로 ‘정주행’을 한다. 그 결과 스포일러 분쟁이 증가하고, 커뮤니티에서 분란이 자주 일어난다는 통계를 조사해 넣었다.
“시장 규모만 보면 확실히 가능성은 있어.”
시현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며 통계 자료에 각종 출처를 달기 시작했다.
다음으로는 구체적인 서비스 플로우를 도식화했다. 사용자 가입 -> 플랫폼 연동 -> 시청/독서 진행도 자동 갱신 -> 해당 구간만 접근 가능 -> 커뮤니티 활동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여기에서 가장 큰 장점은, 이미 플랫폼에 가입된 유저들이라면 별도의 회원가입 없이도 간편 로그인으로 연동 가능하다는 점이다.
한창 자료를 만들고 있을 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확인해보니 또 다른 대학 동기인 유정이었다.
“지훈한테 얘기 들었어. 스포일러 없이 팬 활동할 수 있는 커뮤니티라며? 요즘 내 후배들도 스포 당해 화내던데, 내가 소개 좀 시켜줘도 될까?”
시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답장을 보냈다.
“당연하지. 소개해줘! 어떤 식으로 참여하고 싶은지 알려주면 좋겠어.”
조금 뒤에 돌아온 답장에는, 내 후배가 앱 UX/UI 쪽으로 일하는데, 이 아이디어에 관심 많아. 디자인 부분 도와주고 싶다고 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시현은 자기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냈다. 사실 프로그래밍과 기획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디자인은 문외한에 가까웠으니, 좋은 파트너를 만날 수 있다면 팀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UI가 매끄러워야 사용자들도 더 좋아하긴 하니까.”
스스로에게 말하듯이 중얼거린 시현은 밤늦게까지 발표 자료를 다듬었다. 간단한 목업 이미지를 추가하고, 앱 시뮬레이션 화면도 예쁘게 꾸며놓았다. 내일은 꼭 일찍 자야지라고 다짐했지만,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겨우 노트북을 덮었다.
다음날 아침, 다크서클을 달고 일어난 시현의 핸드폰에는 유정이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내가 후배 연결해줄 테니까 이번 주 주말에 셋이 만나볼래? 카페 장소는 내가 잡을게!라는 내용이었다. 시현은 이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좋아, 사람도 조금씩 모이고 있으니, 본격적으로 발로 뛰어봐야겠다.”
스스로에게 작은 격려를 건넨 뒤, 양복 대신 깔끔한 셔츠와 슬랙스를 꺼냈다. 오늘은 서류도 제출하고, 혹시나 관계 기관이나 투자사와 미팅이라도 잡힐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무엇보다 정부 지원 사업 담당자의 눈도장을 제대로 찍어두고 싶었다.
시현은 관공서가 밀집한 지역으로 향하며, 이동 중에도 핸드폰으로 최종 문서를 검토했다. 스포일러 방지라는 테마가 조금 더 와닿도록 예시 스크린샷, 그리고 사용자 스토리(User Story)도 추가했다. 예를 들어 드라마 2화까지만 본 유저는 3화 이후의 게시물을 볼 수 없다고 명시한 뒤, 실제로는 어떻게 화면이 보이고 버튼이 비활성화되는지 등을 상세하게 풀어냈다.
낯선 사무실 앞에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동안, 시현은 유난히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동안 크고 작은 기획서를 제출해온 경험은 있지만, 이렇게 자신이 직접 창업을 꿈꾸는 아이템으로 지원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곧 이름이 불리고, 담당자와 마주 앉았다.
“안녕하세요. 제출하신 서류 보니까, 꽤 재미있는 아이디어네요. 스포일러 방지 커뮤니티라…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인증을 받는다는 거죠?”
말투는 딱딱했지만, 눈빛만큼은 호기심이 담겨있었다. 시현은 그것만으로도 일단 긍정적인 신호라고 판단했다. 심호흡을 짧게 하고, 준비해둔 자료를 펼쳤다.
“OTT나 웹툰 플랫폼과의 연동으로, 시청 시간이 자동으로 동기화됩니다. 예컨대 넷플릭스에서 특정 드라마 3화를 다 보면, 서버 쪽에서 이미 그 기록이 전송되는 거죠. 그럼 저희 플랫폼은 해당 기록에 맞춰 게시판 접근 권한을 열어주는 방식입니다.”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가지 세부 질문을 던졌다. 개인정보 처리 관련 문제나, 각 플랫폼이 과연 API 제공을 해줄 것인지 등등. 시현은 최대한 차분하게, 초기에는 수동 인증 방식으로 시작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플랫폼과 협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짧은 면담이 끝난 후, 일단 긍정적으로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뉘앙스를 얻은 시현은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휴, 첫걸음 치고는 나쁘지 않네.”
한동안 멍하니 햇살을 받으며 서 있던 시현은 이내 결의를 다졌다. 이제 곧 UX/UI 디자이너와도 미팅이 잡혀 있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추가 개발 인력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가 완전히 구현되면, 자신처럼 스포일러를 당해 분노하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이미 커다란 구도가 그려졌다. 웹툰 플랫폼, 드라마 제작사, 그리고 전 세계로 뻗어 있는 OTT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연결만 된다면 상상 이상으로 폭발적인 반응이 오지 않을까?
“이제 남은 건, 내가 끝까지 밀고 가는 거야.”
시현은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고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