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433
하츠투하츠 유하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유하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유연지
제목: 플러팅 연구소
“마음이 어려워.”
연지에겐 쌍둥이 오빠인 연준이 있었다. 연준은 늘 연지를 괴롭히기가 일쑤였는데, 그게 본인의 의도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연지가 바쁘든 말든 자신의 고민 때문에 연지를 붙잡아 놓고 거의 연설을 하다시피 하는 행적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연지야. 내 말 들어봐.”
오늘 학원에서 만난 처음 만난 ‘예쁜’여자가 굳이 빈자리 많은데 내 옆자리에 앉아서, 그리고 지우개를 빌리고, 펜을 빌리고 다시 돌려주지는 않았는데, 이건 어떤 경우인지 묻는데 연지는 한 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오빠. 그냥 그건 오빠가 호구 당한거야.”
인정하기 싫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대처하는 연준의 모습을 보고 연지는 이 자리를 벗어날 방법을 찾았다.
“아니. 제대로 좀 들어봐. 그러니까. 지우개를 빌리면서 이렇게 손 깃이 스쳤다니까?”
“그럼 지우개를 손으로 주지 발로 줘?”
누군가 그냥 했을 수도 있는 일을 ‘플러팅’으로 해석하고 싶은 오빠의 모습에 그저 한숨뿐이었다.
“오빠. 플러팅을 당할 생각하지 말고, 해봐. 그러면 먼지 알꺼야.”
“어떻게.”
연지의 말을 들은 연준은 못들을 말을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을 보니 어이가 없어서 헛기침이 절로 나왔다.
“아니, 플러팅이란 게 그러니까.”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반복되는 하루에 연지는 저절로 연준이 할 말이 있다고 하면 피하고 봤다. 그러나 결국 잠을 자기 직전엔 들었다. 그래도 그러면 학교에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들을 얘기를 잠자기 직전 잠깐만 듣는 것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이었다.
“아, 먼저 왔네.”
신발장을 보고 오빠가 먼저 집에 도착했음을 알아차린 연지는 조용히 자신의 방에 들어가려고 했다.
쌍둥이였기에 중학교 입학때까지 같은 방에서 지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인지한 것 같기도하고 아닌 것 같기도해서 긴가민가했다.
그런 중에 두 사람이 다른 각방을 쓰게 된 건 쌍둥이라 할지라도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오빠가 갑자기 주변의 여자사람에 대한 정보를 연지에게 얻어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지친 연지가 오빠랑 다른 방 쓰고 싶다고 해서, 방을 내놨다. 원래 아빠와 엄마는 두 사람이 빨리 다른 방을 쓸 줄 알았다고, 그런데 물어볼 때마다 ‘아니요! 우리는 같은 방 쓸 거예요’ 라고 말했다고. 그래서 괜찮나 싶었지만 이미 엄마 배에 있을 때부터 같이 자랐던 사이라 그렇게 허용이 됐다.
그런데 연지는 자꾸 자신에게 다른 여자에 대한 정보를 얻어오려는 오빠를 결국 참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빠가 달라졌다.
“오빠, 오늘은 뭐 물어볼 거 없어?”
연지는 그렇게 어딘가 불안한 그러나 편안한 며칠을 보낸 후 오히려 궁금해서 먼저 오빠를 찾아갔다.
“어? 어 없어.”
없지 않다! 분명히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문제였다. 결국 연지가 먼저 묻게 되자 연준이 입을 열었다.
진심으로 첫사랑이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모르는 오빠의 모습에 와, 진짜 사랑을 만났구나 싶었다. 그렇게 꺼내 놓기 시작한 연준의 이야기. 정말 풋풋한 사랑의 느낌이었다.
“어, 지금까지 랑은 뭔가 달라. 두 사람 다 쌍방인 거 같기도하고, 그냥 오해 같기도하고.”
턱을 괴고 연준의 말을 곰곰히 들어보던 연지는 그동안은 다른 게 맞다는 인정을 했다. 그러자 연준의 눈빛이 반짝였다.
어쩌면 평소처럼 연지에게 ‘그런 거 아니야’ 라는 말을 들을 까봐 노심초사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평소처럼 연지에게 '그런 거 아니야' 라는 말을 들을까봐 노심초사했던 모양이었다. 연지는 오빠의 얼굴이 잔뜩 긴장되어 있음을 느꼈다. 평소엔 아무 얘기나 마구 떠들어대던 연준이 오늘만큼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모습이 의외였다.
“저번에 학원에서 만난 그 친구랑은 좀 다르다는 거야? 뭐, 지우개 빌리고 펜 빌리고 그런 거랑은 별개?”
연준은 대답 대신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작게 숨을 고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응. 일단 이름은 지수야. 그냥 처음에는 말도 잘 안 해봤는데, 이상하게 눈이 자꾸 마주치더라. ‘같은 반이니까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려고 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나도 그쪽을 계속 보게 됐어. 말도 재밌게 하더라고.”
연지는 턱을 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가 그냥 주변 여자애들한테서 늘 착각하던 그 감정이랑은 다른 느낌이라는 거지?”
“어. 이번엔 뭔가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하게 되는 게 많아.”
그 말을 들으니 연지는 슬쩍 미소 지었다. 늘 친구가 건넨 사소한 친절을 호감이라고 착각하던 연준이, 이번에는 좀 더 나은 감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그게 단순한 착각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연준이 이렇게 뜸 들일 만큼 신중해지는 건 처음이었다.
“근데 고민이 있다는 거잖아. 뭔데?”
“내가 말이야… 평소에 이렇게까지 긴장하거나 두근거리진 않았거든. 근데 지수랑 얘기할 땐, 아무것도 아닌 대사 하나에도 ‘이거 혹시 무슨 의미?’ 하고 계속 생각하게 돼. 내 성격상 그런 걸 좋아하진 않는데도 자꾸 신경 쓰여서 좀 답답하달까.”
“음, 오빠가 지금 가만히 기다리면 지수가 먼저 뭔가 신호 줄 거라 생각해?”
“글쎄, 서로 플러팅 같은 걸 주고받고 있나 싶다가도 가끔은 그냥 일상적인 친절로 느껴지기도 해. 이게 썸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연지는 순간 며칠 전 봤던 인터넷 글이 떠올랐다. 요즘은 MBTI가 유행이어서, 플러팅 스타일도 유형별로 다르다는 이야기를 한참 읽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상대가 내향적인 사람인지 외향적인 사람인지에 따라 호감 표현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오빠는 MBTI가 뭐였지? ISFP라고 했나?”
연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ISFP 맞아. 근데 그게 뭔 상관이야?”
“ISFP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살짝 수줍음 많아지긴 해도, 친해지면 꽤 다정하게 표현하는 편이라던데? 근데 이번엔 오히려 오빠가 먼저 다가가진 않고 계속 망설이는 걸 보니, 진짜긴 한가 보다. 오빠가 지금 좀 쑥스러워하고 있으니까.”
연준은 못마땅한 듯 입을 삐쭉 내밀었다.
“내가 그런 거에 쑥스러워할 줄 몰랐지. 근데 정말 그래… 이게 나도 처음이라서. 그 지수라는 애는 엄청 스스럼없어. 처음 봤을 때부터 굳이 빈자리 많은데 내 옆에 앉는다거나, 쉬는 시간에 와서 말을 많이 건다거나. 나 혼자 착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적극적’인 인상을 받았어.”
연지는 속으로 ‘그럼 이건 거의 100% 아닌가’ 싶으면서도, 괜히 연준에게 성급한 확신을 줬다가 또 실망할까 싶어 조금 신중을 기했다.
“혹시 그 친구 MBTI 얘기는 해봤어? 요즘 다들 많이 하잖아. 지수가 외향형(E)인지 내향형(I)인지에 따라서 접근법이 달라질 텐데.”
“아직 못 물어봤어. 물어볼 타이밍이 없었어.”
연지는 작은 한숨과 함께 웃었다. 사실 MBTI를 알면 좋은 참고가 되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 무엇보다도 가끔은 직접적인 대화가 가장 명쾌할 때가 많았다.
“좋아. 일단 오빠가 설레고 고민되고 그렇다면, 플러팅 연구소 수석 연구원인 내가 몇 가지 조언을 해줄게.”
“네가 언제부터 연구원이 됐는데?”
“내가 오빠보다 낫잖아. 최소한 누가 지우개 빌려갔다고 다 ‘플러팅이다!’ 하진 않으니까.”
연준은 작게 코웃음을 치다가도, 곧장 연지에게 집중하는 눈빛으로 바꿨다.
“좋아. 들어볼게. 어차피 방에 혼자 있어도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니까.”
“우선, 지수가 오빠한테 자주 다가오는 편이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호의 표현해봐. 근데 너무 과하게 접근하진 말고.”
“과하게 안 하려면 어느 정도가 적당한데?”
“예를 들어 일상적인 작은 칭찬을 해본다거나, 같이 학원에서 문제 풀 때 ‘이 부분 네가 잘 아는 것 같으니까 알려주라’라든지, 지수를 필요로 하는 순간을 만든 뒤 고맙다고 말해주는 식. 너무 큰 거 말고 자연스럽게.”
연준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럼 나도 이런 식으로 무심히 ‘너 참 공부 잘하네, 대단하다’ 같은 말 하면 되는 거야?”
“그것도 괜찮지. 근데 ‘대단하다’보단 좀 더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게 좋아. ‘아까 그 문제 풀 때 방식 참 신기하더라. 나도 가르쳐주면 좋겠다’ 같은 식. 이런 구체적 칭찬이 호감을 전달하기가 쉬워.”
연준은 연필을 들고 무언가 적듯 허공에 손을 움직였다.
“오케이. 구체적 칭찬. 그리고… 또?”
“그리고 지우개나 펜 같은 거, 되도록이면 다음엔 네가 먼저 빌려주거나 혹은 빌릴 일이 생겼을 때, 빨리 돌려받기보다는 가볍게 농담을 섞어봐. ‘내 펜 너무 좋은 거라 빌려줬는데 안 돌려주면 안 된다’ 같은 식의 가벼운 말.”
연준은 입술을 앙 다물고 잠시 생각했다.
“그거, 내가 하면 좀 어색하지 않을까?”
연지는 오빠가 워낙 중간이 없고, 무뚝뚝하다가 한 번 꽂히면 흑역사를 찍는 스타일인 걸 잘 알았다. 그래서 천천히 몇 가지 예시를 들어줬다.
“만약 지수가 펜을 빌려갔고 아직 안 돌려줬어. 그러면 돌아오는 길에 ‘그 펜 맘에 들었지? 근데… 이참에 그냥 내 사인을 만들어줄래?’ 이런 식으로 적당히 장난을 치는 거야. 그리고 반응을 본 다음에, 조금 더 대화 속에서 상대가 즐거워하면 ‘그럼 담엔 너 펜도 빌려줘. 나 네 필기 습관 궁금해졌어’ 같은 느낌으로.”
“그건… 좀 웃기긴 하네. 아, 근데 진짜 내가 내향적인 편이라 이런 농담이 입에 착 붙진 않아.”
“그래도 연습은 해봐. 너도 알잖아. ISFP라 내향성이 강하긴 해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솔직해질 수도 있어. 그냥 연습을 하다 보면 차츰 괜찮아질 거야.”
연준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까지 노력해야 하나 싶긴 한데… 근데 또 하긴 해보고 싶네. 지수 앞에서 괜히 얼어버리지 않게.”
연지는 무심한 듯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플러팅’이야. 호감 있는 사람과 그저 친구 이상이 되고 싶다면, 상대가 나를 편하고 재밌는 존재로 느끼게끔 하는 일종의 기술인 거지. 근데 기술이라고 해서 거짓말이나 과장만 하는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걸 조금 더 의식적으로 신경 쓰는 거랄까.”
연준은 뭔가 납득이 된 얼굴이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동갑내기 친구한테 하면 이상하게 놀림 받을 것 같거든. 근데 너랑 얘기하니까 정리가 좀 된다. 감사.”
연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늘 말하지만, 나중에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경험은 남잖아. 근데 난 이번엔 오빠가 생각 이상으로 잘될 수도 있다고 봐. 지수라는 애가 먼저 다가오는 편이라면, 분명 오빠한테도 흥미가 있는 거일 테니까.”
연준의 표정에는 희망 섞인 긴장감이 묻어났다.
“만약 지수가 ‘어? 얘 왜 갑자기 이렇게 말을 많이 해?’ 하고 부담스러워하면 어쩌지?” “그럼 조절하면 되지. 계속 상대 반응을 보면서 맞추면 돼. 원래 플러팅의 핵심은 ‘서로 기분 좋게’ 이어가는 거야. 한쪽이 너무 앞서가면 튕겨나가고, 한쪽이 너무 뒤로 빠지면 지루해지고. 그 중간을 잘 찾아가는 게 중요하지.”
연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좋아, 그럼 요약하자면… 구체적인 칭찬, 가벼운 농담, 그리고 상대에게 관심을 보이면서도 부담 주지 않게 천천히 접근. 이거네.”
“응. 그리고 혹시 카톡이나 문자 같은 게 있다면 너무 길고 무거운 말보다는, 적당히 이모티콘도 섞고, 지수 반응이 뜸하다 싶으면 조금 시간을 두고 다시 대화를 이어가는 게 좋아. 5분 안에 계속 메시지 폭탄처럼 보내지 말고.”
연준은 그 말에 머쓱한 듯 웃음을 지었다.
“사실 나, 진짜로 메시지 보내놓고 바로 답장 안 오면 불안해서 또 뭘 보내고 싶어져. 근데 참아야겠지?”
“무조건 참아. 그게 나아요, 오빠. 스스로도 생각해봐. 네가 누군가에게 메시지 보냈는데, 답장 기다리는 동안 또 다른 메시지들이 쉼 없이 오면 부담스러울 거 아니야.”
“그치. 알았어.”
연지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한 마디 더 던졌다.
“혹시 지수도 누가 보기에 엄청 사교적인 E형이라고 느껴져? 그러면 아마 ENFP나 ESFP 같은 유형일 수도 있는데, 그 둘은 좀 달라. ENFP는 재기발랄하게 대화를 이끄는 편이라 신나지만, 동시에 감정적으로 통하는 걸 중요시해. ESFP는 스킨십이나 즐거운 분위기에 빠르게 반응하는 타입이고.”
“아직 잘 모르겠어. 지수가 수업 시간에 ‘내가 말하기를 좋아한다’고 스스로 말하긴 했는데, 그 말이 곧 E형이라는 건 아니잖아.”
“뭐, 꼭 MBTI가 전부는 아니니까. 그냥 대화 패턴이나 호감 표시 방식 보면서 오빠가 감 잡아봐.”
연준은 이번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냥 천천히 보지 뭐.”
그날 밤, 연지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면서 속으로 피식 웃었다. 매번 연애 조언을 구실로 쓸데없는 질문을 퍼부어대던 오빠가, 이번에는 정말 귀엽게 느껴졌다. 정작 자신은 크게 연애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한편으론 오빠가 조금이라도 성공적으로 호감을 표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연준은 학원을 다녀와서 연지 방으로 곧장 달려왔다. 평소엔 귀찮아하며 방에 오지도 않았는데, 이럴 땐 또 부끄러운 줄 모르고 찾아오는 게 쌍둥이 남매의 묘한 점이었다.
“연지야! 말 좀 해봐. 나 오늘 지수한테 장난치듯이 물어봤어.”
“뭘?”
“‘요즘 내 MBTI가 뭔지 궁금하지 않아?’ 했더니 지수가 ‘너 ISFP 아니냐?’ 하면서 맞추는 거야. 깜짝 놀랐어. 이미 알고 있었다는데?”
“대박이네. 그러면 지수도 꽤 관심이 있다는 거 아니야? 남의 MBTI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건.”
“그렇지? 그래서 나도 지수 MBTI를 물어봤는데, 진짜 ESFP래. 너 말했던 ‘스킨십 좋아하고 사교적’이라는 유형. 그래서 곧바로 ‘확실히 사교적일 것 같긴 했는데, 네가 내 옆에 계속 앉아줘서 고마워’라고 했어.”
“오, 좋네. 지수 반응 어땠는데?”
“쑥스러워하긴 했는데, 싫어하는 기색은 전혀 아니었어. 오히려 더 웃으면서 ‘너 내 옆에 있으니까 재밌어’라고 하더라고.”
연지는 작게 손뼉을 치며 웃었다.
“그럼 이제 썸 단계 확률이 엄청 높다. ESFP 유형이면 대화나 웃음 포인트로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거 좋아하잖아. 잘해봐, 오빠.”
“근데 아직 내가 대놓고 고백하긴 좀 그렇고… 조금만 더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플러팅 이어가 보려고. 아, 그리고 너 말대로 가벼운 농담도 써먹었어. 펜 빌려주고 몇 분 뒤에 일부러 ‘내 펜 마음에 들었으면 한 번 더 빌릴래?’ 뭐 이런 식으로.”
“와, 그걸 했다고? 너 치곤 되게 과감했네.”
“솔직히 속으로 심장이 벌렁거렸는데, 겉으론 괜찮은 척했지. 지수도 ‘그래, 다음에 잃어버리면 또 빌릴게’라면서 씩 웃더라.”
연지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며칠 전보다는 연준이 한층 여유로워진 느낌이었다. 이게 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서툴기 마련이지만, 한두 번 시도하면서 상대 반응이 나쁘지 않으니 자신감이 붙었을 것이다.
“잘하고 있어. 계속 그래봐. 그리고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대화하다 보면 지수가 더 많이 먼저 다가올 수도 있어. ESFP는 자기 마음이 확 생기면 바로 티 내는 편이니까.”
“맞아. 오늘만 봐도 작은 거 하나하나에 리액션이 좋더라. 내가 재밌는 말 하면 크게 웃고, 내 말 끝까지 귀 기울여주고. 이런 거 처음 느껴봐서 심장이 다 쿵쾅거려.”
“오빠도 참, 이제 시작이구나. 드디어 좀 가슴 설레는 시기가 온 거지.”
연준은 괜스레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며 작게 웃었다.
“고마워, 연지야. 네 말대로 플러팅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아. 그냥 사소한 장난이 아니라, 서로에게 관심 있다는 걸 즐겁게 주고받는 느낌이랄까.”
“그래. 플러팅은 결국 그거야. 거창한 이벤트나 대단한 말보다, 일상 속 작은 순간에 서로 웃고 떠들고 마음을 확인해가는 과정.”
연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슬쩍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럼 나 이만 들어갈게. 오늘 해야 할 숙제도 있고, 내일 지수랑 또 학원에서 만날 거니까 몸도 좀 정비해야지.”
“오빠가 드디어 체계적인 생활을 다 하려고 하네? 기특한데?”
“이게 다 누나… 아니, 연지 선생님 덕분이죠.”
연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평소라면 핀잔을 줬을 텐데, 오늘은 그냥 넘어갔다. 왠지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문이 살짝 닫히고, 연지는 혼잣말처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좋겠다, 오빠. 나도 꽤 오랜만에 이런 달달함이 부럽네.”
그렇게 방에 혼자 남은 연지는 생각에 잠겼다. 형제든 자매든, 연애 상담만큼은 서로 해주기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솔직하게 얘기하기 힘들 때도 많다. 그런데 쌍둥이라는 이유로 함께 지내온 세월이 오래되다 보니, 어떤 면에선 이런 진솔한 대화가 가능했나 싶기도 했다.
책상 위에는 아직도 펼쳐진 MBTI 관련 자료가 있었다. 옆에는 ‘플러팅 연구소’라고 자칭하며 메모한 몇 가지 문장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중엔 플러팅의 핵심: 자연스럽게, 상대 반응 존중하기, 작은 칭찬과 농담으로 거리 좁히기라고 굵은 펜으로 적혀 있었다.
연지는 메모를 가만히 읽어보며 작게 웃었다.
“음, 나도 조만간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열심히 연구해놔야겠다.”
그렇게 혼잣말을 남긴 뒤, 창밖으로 서서히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연준 덕분에 집 안이 묘하게 따뜻한 기운이었다. 이대로 오빠가 더 자신감을 얻고, 지수라는 친구와 멋진 추억을 만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적어도 플러팅이란 건 결국 ‘서로 잘 통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라는 걸 이번 기회에 둘 다 배우고 있는 게 아닐까. 연지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방 불을 끄고 베개에 살짝 몸을 기댔다. 재잘재잘 말 없는 밤이 이렇게 편안하고 달콤할 줄이야. 적어도 오늘만큼은 심란한 오빠의 긴 설교 없이, 뭔가 뿌듯한 느낌으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다음날 등교를 하는데, 평소엔 비어 있는 운동장 농구장에서 공을 튀기는 소리가 글렸다.
강백호가 한소연을 처음 만났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반대지만, 연지가 소연이고, 저 남의 남자가 강백호가 아닌 서태웅이었지만.
"어머..."
플러팅. 그게 필요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