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441
한동훈을 떠올리며 상상하여 만들어 보는 캐릭터
한동훈을 떠올리며 상상하여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정대현
제목: 기술가(家)
대현은 두 팔을 벌린 채 서 있는 노인의 치수를 재고 있었다. 노인의 입은 쉬지 않고 잔소리를 쏟아내고 있었다.
“우리 중 제일 가는 기술자가, 고작 이런 기술이나 익혀가지고.”
“아버지가 제게 늘 최고의 기술을 배우라 하지 않았습니까.”
대현은 아버지의 치수를 적어놓았다. 이전에 잰 치수와 별반 다를 봐 없는 게 확인되는 종이가 있었다. 6개월 전에 쟀던 치수였다.
“매번 똑 같은 치수를 재서 뭐하냐.”
“혹시라도, 조금의 오차라도 있어서는 안 되는 거니까요. 기술이란 그런 겁니다 아버지.”
“쯧쯧.”
대현은 최고의 기술가문에서 자랐다. 그런데 그게 지금처럼 옷을 만드는 일이 아닌, 법의 일이었다.
최고의 법가, 그런 가문에서 법의 기술을 통해 최고 권력자에게 언제나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게 바로 대현의 가문. 정가의 일이었다. 정가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술 가문이었다.
“이런 짓 그만하고 다시 돌아와. 너 만한 놈이 없어.”
“싫습니다. 정도를 걸어아죠. 우리 가문이 정씨이기도 하고. 이 성도 빼 버릴까 하다가 참았습니다.”
“언제까지 토라진 채로 있을꺼야!”
“손님으로 오신 게 아니면 가주시죠. 제겐 이제 남은 가족이 없으니까요.”
대현은 아버지가 돌아간 뒤 혼자 남은 채, 허리 굽은 마네킹 앞에 섰다. 초여름에 어울릴 법한 밝은 감색 원단이 재단대 위에 펼쳐져 있었지만 가위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온 하늘에 비가 내릴 듯 눅진한 구름이 걸려 있었고, 작업실 창문을 두드리는 매미 소리만이 대현에게 남은 시간의 흐름을 알려 주었다.
아버지의 무심한 말투가 귀 안쪽에서 맴돌았다.
법의 기술이 진짜 기술이라던 집안 어른들의 목소리도 겹쳐 들렸다.
마치 옷감을 자르지 못하게 가위를 녹슬게 만드는 주문 같았다.
그때 낡은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가을빛이 도는 정장 차림의 여자가 작은 우산을 접으며 들어왔다.
“정재단 맞나요? 주문한 옷이 나왔다고 연락을 받아서요.”
여자는 연두빛 명함을 내밀었다. ‘장리해, 법무법인 천뢰’
대현은 우산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두 번째 피팅이 조금 늦었습니다. 실례를 끼쳐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아버님 댁이 근처라 들렀다 오는 길이었거든요.”
아버지라는 단어에 대현의 손끝이 스르르 떨렸다.
리해는 정장 재킷을 벗어 마네킹에 살짝 걸어 두고 거울 앞에 섰다.
대현은 침을 삼킨 뒤, 핀을 물어 손에 들었다.
“소매 길이는 손등 중간에서 1센티만 올라가면 됩니다.”
“뒷트임은 그대로 두시죠. 법정에서 움직일 때 편해야 하니까요.”
차분한 리해의 목소리가 바늘처럼 정확했다.
대현은 핀으로 접힌 천을 살짝 고정하며 물었다.
“혹시, 중요한 사건을 맡으셨습니까?”
“글쎄요… 판검사들까지 긴장한다니 중요한 편이겠죠.”
“승소를 위한 옷이라면, 어깨는 조금 더 단단히 잡아 드리죠.”
“옷 하나에 재판이 뒤집힐까요?”
“법무의 논리가 칼이라면, 맞춤옷은 검집입니다.”
“검집이라…”
리해가 피식 웃었다.
옷깃 사이로 은은한 자스민 향이 스며들었다.
대현은 바늘꽂이를 허리에 찬 채, 리해의 팔 길이를 재고 허리를 눌러 보았다.
“허리선을 3밀리만 위로 올리면 자신감이 더 드러나 보일 겁니다.”
“좋아요. 그 대신 버튼 위치는 그대로 두세요. 습관적으로 여기를 만지거든요.”
리해가 배꼽 위를 살짝 눌렀다.
대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재봉선 자국을 머릿속으로 그려 넣었다.
“다 됐습니다. 삼 일 뒤 최종 맞춤을 하시죠.”
리해가 코트와 우산을 챙기며 문 앞에 서자 대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늘은 장맛비가 쏟아진다던데, 차를 불러 드릴까요?”
“괜찮아요. 빗속을 조금 걷고 싶어서요.”
리해가 문을 열고 나간 순간, 작업실에 숨겨 두었던 라디오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대검 차장 출신 정하준 변호사, 20억대 뇌물 수수 의혹으로 영장 청구.,
대현은 리해의 성을 되뇌었다. 장리해.
정하준은 아버지의 대척점에 서 있던 사람, 그리고 어릴 적 대현이 처음 휘둘렸던 법의 칼이었다.
밤이 되자 하늘은 참았던 비를 한꺼번에 쏟아냈다.
천둥이 울리자마자 작업실 문이 세차게 열렸다.
다 젖은 양복 차림의 사내가 숨을 몰아쉬며 들어섰다.
“정대현 씨, 큰일 났어요! 서초동에 영장실질심사 들어가신다던데…”
사내는 대현의 사촌 형, 정범수였다.
유투브에서 ‘법 기술 브리핑’을 진행하는 입 심 센 2류 변호사.
범수의 눈초리가 초조하게 흔들렸다.
“누가요?”
“큰아버지 말이야! 정가(家)가 진짜 휘청거릴 판이야. 아버지한테 전화 안 왔어?”
대현은 마른 침을 삼켰다.
작업실 벽에 걸린 옷본 밑에서 6개월 전 아버지 치수를 적은 종이가 흔들렸다.
“삼촌이… 아니, 아버지가?”
“무리하게 사건 막다가 배후가 드러났대. 조만간 특수부 직격탄 들어올 거라던데?”
범수는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긴급 입장문’을 읽는 아버지의 쓸쓸한 모습이 떠 있었다.
흰 와이셔츠 깃이 꺾이고 넥타이 매듭이 헐거웠다.
대현은 눈을 감았다.
“옷이 잘못됐어.”
“뭐?”
“옷맵시가 무너졌어. 법정에 서면 주눅이 들 거야.”
“지금 그게 문제야?”
대현은 천천히 실내 조명을 끄고 재단대 위 감색 원단을 들었다.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창문 틈으로 밤비 냄새가 밀려왔다.
“내일 새벽까지 수트 한 벌, 완성해야겠어.”
“설마 아버지 걸…”
“아버지를 살릴 마지막 검집이야.”
범수는 번개가 번쩍이자 으스스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나도 도울 게. 하지만 대현아, 법으로는 힘들 거야.”
“나는 옷으로만 싸운다. 법의 기술은 다른 누군가가 이어야지.”
대현이 미소 지었지만, 눈동자에는 단단한 결기가 맺혀 있었다.
재봉틀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형 모터는 밤비보다 고요했지만, 스티치마다 대현의 숨결이 박혔다.
새벽 다섯 시.
구름 층 사이로 희끄무레한 빛이 비칠 때 수트는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새벽빛에 가까운 먹색, 은은한 청색 실크 안감,
그리고 안주머니 속에는 아버지가 평생 품었던 가문(家)의 문장이 아니라
바느질로 새겨 넣은 한 줄의 글귀가 자리했다.
기술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있는 것.
대현은 옷걸이에 수트를 걸어 두었다.
핏줄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빠르게 식어 가는 대신, 오래된 법책장 냄새 같은 고요가 번져 왔다.
문득 전화벨이 울렸다.
‘장리해’
대현은 떨리는 손으로 통화를 눌렀다.
“정 선생님, 혹시 제작 일정… 저도 방금 소식을 들었어요.”
“삼 일 뒤라 했지만, 오늘 오전에 옷을 갖다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옷 아닌 건 알겠어요. 수트… 꼭 필요하겠죠?”
“네. 오늘 오후, 영장 실질심사장에 그 옷이 서야 합니다.”
리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잔잔한 숨소리 뒤로 빗소리가 부드럽게 겹쳤다.
“내가 모셔다 드릴까요?”
“그러면 좋겠습니다.”
전화가 끊기고, 대현은 벽에 걸린 옛 치수표를 조용히 떼어냈다.
종이 끝이 잘게 뜯겨 나가며 허공에 흩어졌다.
오전 열 시.
법원 앞 인도엔 우산 대신 카메라 삼각대가 빽빽이 들어섰다.
대현은 차창 너머 플래시 불빛이 번쩍이는 걸 보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조수석의 리해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양말이에요. 법정 바닥이 미끄러워요.”
“고맙습니다.”
차 문을 열자, 눅진한 습기와 함께 수십 개 마이크가 서로 부딪치며 쇳소리를 냈다.
대현은 검은 옷가방을 들고 천천히 현관 계단을 올랐다.
주홍색 방수 지퍼가 열리며 먹빛 수트가 빛을 받아 떠올랐다.
계단 위에서 한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넥타이 없이 셔츠 단추만 채워진, 불안하게 눈까지 충혈된 중년이었다.
아버지였다.
대현의 손끝에서 옷걸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네가, 왜 여기…”
“옷을 가져왔습니다. 몸에 맞게 다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자들의 셔터가 폭발했다.
대현은 침착하게 수트를 벗겨내 아버지의 어깨에 올렸다.
밀려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버튼을 하나하나 끼워 주었다.
마지막으로 넥라인을 조정하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아버지, 어깨를 2센티만 펴십시오. 허리를 살짝 앞으로.”
“너를 여기 끌어들이고 싶진 않았는데…”
“전 이미 이 가문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작은 바느질은 할 수 있죠.”
가름솔이 어깨선을 정확히 눌렀다.
그리고 숨을 들이키는 순간, 아버지의 눈에 되살아나는 기세가 번쩍였다.
주저앉은 검집에 칼이 꽂히듯, 한 사람이 다시 ‘기술가’가 되는 장면이었다.
플래시가 마지막 한 번 번쩍이고, 빗물과 같은 박수 소리가 기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대현은 한 발 물러서서 아버지의 옷매무새를 최종적으로 살폈다. 수트 안쪽 주머니의 글귀가 피부에 닿아 뜨거워졌을 터였다.
“잘 다녀오십시오.”
“대현아. 나중에… 할 말이 많다.”
“재판 끝나고 어깨 치수부터 다시 재겠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서자, 어깨선이 조금 더 올라 있었다.
대현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에 찬 바늘꽂이를 꽉 쥐었다.
뒤편에서 리해가 조용히 물었다.
“어깨를 조금 더 단단히 잡아야 한다고 하셨죠?”
“네. 그래야 흔들리지 않으니까요.”
“그럼… 선생님도 어깨를 펴야죠.”
“그러다 법의 물살에 휩쓸릴지도.”
“그래도 검집은 필요해요. 저도 하나 맞춰 주실래요?”
“법의 검집은 항상 환영입니다.”
대현이 미소 지으며 빗속으로 우산을 폈다. 재봉틀의 파란 불빛 대신, 회색 하늘과 셔터 소리, 그리고 비 냄새가 검은 실처럼 얽혔다.
기술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한다.
바늘 하나가, 실 한 올이, 때로는 무너진 가문의 가슴을 꿰매고
다시 걸을 길을 마련해 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대현은 처음으로, 피보다 진한 감색 수트를 바라보며 깨달았다.
그리고 대현의 옆으로 다가온 자가 내민 변호사 뱃지가 달린 옷이 보였다.
“이 옷, 오랜만에 보네.”
“잊지 않았지?”
“어떻게 잊겠어.”
대현은 이 옷을 처음 입었을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었을 때를 모두 떠올렸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꿈을 품었던 시기였고 꿈을 이룬 시기였고, 포기한 시절이었다.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법을 배웠는데, 그리고 그는 나름 그렇게 살아왔다. 가족이 적이 되기 전까진 모두 쳐부쉈다. 그게 존경받던 선배 든, 유명한 인사든, 막강한 권력자든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가족’만은 칠 수 없었다. 자신의 가문의 실체를 알았을 때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가족의 일을 치려는 대현은 고민하게 됐고, 결국 가족을 치는 일도, 그렇다고 가족의 더러움을 덮는 일도 모두 할 수 없었다.
"그만두겠습니다."
사적으로 쓰이는 기술들을 보며 그만두기를 마음먹었는데,
사적으로 쓰기 위해 다시 그 옷을 접어들었다.
처음 법무의 일을 하기 위해, 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입었던 옷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