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김부겸을 떠올리며 상상하여 만들어 보는 캐릭터

캐릭터 - 440

by 라한
김부겸을 떠올리며 상상하여 만들어 보는 캐릭터


Kim_Boo-kyum_-_20170119_k.jpg?type=w773


김부겸을 떠올리며 상상하여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정두겸

제목: 선택


“처음부터 어려울 일이었습니다.”

“몰랐겠나,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거지.”


두겸이 다소 아쉬운 표정을 숨기고 웃어보였다. 유권자가 두겸을 지나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겸은 곧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난 댁 안 찍었어.”

“네. 그래도 고맙습니다.”

“이상한 사람이네.”


그는 혀를 차며 두겸을 지나쳤다.


두겸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구의 하늘은 패배 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무겁게 느껴졌다. 진보 정당 후보로서 보수 성향이 강한 이 지역에 출마한 것이 무모했다고 많은 이들이 말했지만, 두겸은 최선을 다했다.


"정 전 후보님, 오늘 일정이 더 남았습니다."


비서관 미영이 두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미영은 두겸이 처음 정치에 입문했을 때부터 함께한 동료였다.


"그래, 가자. 지역구 사무실 정리해야지?"

"네, 그리고 오후에는 선거 운동원들과 해단식이 있습니다."


두겸은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 골목을 돌아서자 익숙한 얼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남자는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TV에 자주 등장하는 얼굴이었다.


"여기서 뵙네요, 당대표님."


두겸이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인사했다. 당대표 이상훈은 웃으며 두겸에게 다가왔다.


"수고했네, 정 후보."

"패배한 후보에게까지 찾아오실 일은 아니었는데요."

"패배? 아니야, 자네는 이겼어."


이상훈은 두겸의 어깨를 두드렸다. 미영은 조용히 물러나 거리를 두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25%의 득표율. 대구에서 우리 당 후보가 이 정도 득표한 적이 없네. 자네는 불가능한 일을 해냈어."


이상훈은 길가 벤치를 가리켰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다. 초여름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었다.


"정 후보, 서울로 올라와 주게. 중앙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길 생각이야. 다음 총선에서는 당선 가능한 지역구로 공천해주지."


두겸은 잠시 말을 잊었다. 정치인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제안은 없었다. 당대표가 직접 찾아와 미래를 보장해주는 일은 흔치 않았다. 두겸은 작게 중얼거렸다.


"서울..."

"그래, 자네같은 인재가 필요해. 대구에서의 패배는 잊고, 더 큰 무대로 나아가자고."


바람이 불어왔다. 벚꽃 몇 개가 두 사람 사이로 날아들었다. 두겸은 고개를 들어 멀리 보이는 팔공산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결연한 빛이 돌았다.


"죄송합니다, 당대표님. 저는 대구에 남겠습니다."


이상훈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뭐라고? 자네, 정치생명을 포기하겠다는 건가? 대구에서는 언제 당선될지 모르네. 어쩌면 평생 당선되지 못할 수도 있어."


두겸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또렷했다.


"제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는 이곳 대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것은 제 신념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상훈은 한동안 말없이 두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복잡하게 변했다.


"정말 확실한가? 다시 생각해보게."

"확실합니다. 제가 가야 할 길은 여기 있습니다. 대구 시민들이 저를 알아볼 때까지, 제 진심이 닿을 때까지 계속 도전하겠습니다."


두겸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상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같은 정치인이 또 나왔군 누구를 떠올리게 만들어. 무모하지만... 어딘가 감동적이네."


상훈은 천천히 일어섰다. 햇살에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언젠가 자네가 대구에서 당선되는 날, 내가 직접 축하해주지."

"그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별했다. 두겸의 선택은 이미 굳건했다. 그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안정된 미래를 포기하는 결정이었지만, 그의 가슴에는 오히려 가벼움이 찾아왔다.


대구의 여름은 언제나 뜨거웠다. 햇볕이 아스팔트를 달구고, 열기가 피부를 찌르듯 내리쬐었다. 두겸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수성구 시장을 걸었다. 벌서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는 도전이었다. 그동안 그는 대구에서만 정치활동을 이어왔다. 중앙무대의 유혹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는 모두 거절했다.


첫 번째 패배 후 두겸은 지역구 사무실을 닫지 않았다. 사람들이 의아해했지만, 그는 '상시 민원실'이라는 간판을 걸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호기심에 들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냉소적이었다.


두 번째 선거에서도 그는 패배했다. 득표율은 첫 선거보다 약간 올랐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두겸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역 노인회를 찾아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청소년 센터에서 아이들과 축구를 했다. 봄이면 벚꽃 축제에서 자원봉사를 했고, 여름이면 수해지역에 찾아가 복구를 도왔다.


세 번째 선거에서는 큰 변화가 있었다. 대홍수가 대구를 강타했을 때, 두겸은 구호활동의 최전선에 있었다. 밤새 모래주머니를 나르고, 고립된 주민들을 구조했다. 정당과 상관없이 그는 시민들과 함께했다. 그해 선거에서 두겸은 3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여전히 패배였지만, 지역 언론은 '대구의 이변'이라고 보도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선거에서도 두겸은 패배했지만, 그의 존재감은 점점 커졌다. 사람들은 그를 '포기 모르는 정치인'이라고 불렀다. 여섯 번째 선거에서 두겸은 4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알았다.


일곱 번째 도전에서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 전국적으로 두겸이 속한 당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두겸의 당도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았다.


"저는 정당이 아닌 대구를 위한 정치를 합니다"


두겸의 정치를 내건 슬로건으로 38%의 득표율을 유지했다. 이후 선거에서 두겸은 각각 4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패배의 쓴맛은 익숙했지만, 그의 마음은 오히려 단단해졌다. 지역구 사무실은 이제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공간이 되었다. 정당 소속과 관계없이 사람들은 두겸을 찾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열 번째 도전.


"정두겸 후보님! 여기 잠시만요!"


시장 한복판에서 중년 여성이 그를 불러세웠다. 두겸은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 기억 못 하시죠? 제가 첫 선거 때 후보님한테 '난 댁 안 찍었어'라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두겸의 눈이 커졌다. 십 년 전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 네... 기억납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잘 지냈어요. 사실 그동안 쭉 지켜봤어요. 처음엔 '저 사람 미쳤나' 싶었는데, 계속 보니까... 진심이 느껴지더라고요. 이번엔 제가 투표할게요. 우리 동네 사람들도 많이 바뀌었어요."


두겸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숙여 인사할 뿐이었다. 선거일이 다가왔다. 두겸은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개표가 시작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겸의 득표율이 50%를 넘어섰다. 그리고 계속해서 올라갔다.


"축하합니다, 정두겸 당선인!"


개표가 끝나고 최종 결과가 발표되었다. 53.2%. 대구 수성구에서 진보 정당 후보가 과반 득표율로 당선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언론들은 '대구의 기적'이라고 보도했다.


두겸의 당선 소식은 전국을 놀라게 했다. 그날 밤, 수많은 지지자들과 시민들이 두겸의 사무실로 몰려들었다. 꽃다발과 축하 인사가 끊이지 않았다. 그중에는 열 해 전, 당대표였던 이상훈도 있었다. 이제 은퇴한 정치인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약속을 지켰네. 자네가 대구에서 당선되면 직접 축하해주겠다고 했지."

"감사합니다. 당대표님의 말씀이 항상 제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아니야, 자네는 스스로 길을 만들었어. 대구에 남겠다는 그 결정이 얼마나 옳았는지, 이제 모두가 알게 되었네."


두 사람은 감격에 찬 포옹을 나누었다. 이상훈은 축하의 말을 남기고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새벽이 되어서야 마지막 지지자가 돌아갔다. 두겸은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대구의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당선 후 6개월, 국회의원 정두겸의 일상은 바쁘게 돌아갔다. 대구 출신 진보 정당 의원이라는 특이한 이력 덕분에 그는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지역 현안을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제기했고, 여야 구분 없이 소통하며 법안을 발의했다. 그가 발의한 '지역균형발전 특별법'은 여야 의원 80%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어느 겨울날, 두겸은 청와대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이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약속된 날, 두겸은 청와대를 찾았다. 대통령 양태오는 따뜻한 미소로 그를 맞이했다.


"정 의원, 오래 기다렸습니다."


대통령의 집무실에서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며 국정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이 본론을 꺼냈다.


"정 의원, 국무총리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두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초선 의원에게 국무총리직을 제안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대통령이 단호하게 말했다.


"대통령님, 제가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초선 의원이고..."

"바로 그 점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극심한 분열 상태입니다. 지역 갈등, 이념 갈등, 세대 갈등...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대통령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바라보았다.


"정 의원은 보수의 텃밭인 대구에서 진보 정당 소속으로 당선되었습니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시민들의 마음을 얻어냈지요. 당신의 정치는 분열이 아닌 통합의 정치였습니다."


두겸은 말을 잊은 채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좌우가 합작하는 세상, 지역이 서로 이해하는 세상, 세대가 서로 존중하는 세상. 이런 세상을 함께 만들어보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두겸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국무총리는 그가 꿈꾸지 않았던 자리였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대로 이것이 더 많은 변화를 만들 기회라면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꿈틀거렸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대구 시민들과 상의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미소지었다.


"물론입니다. 충분히 생각하십시오. 하지만 너무 오래 고민하지는 마세요. 국민들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와대를 나온 두겸은 바로 대구로 향했다. 그는 지역구 사무실에서 주민간담회를 열었다. 국무총리 제안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의견은 나뉘었다. 어떤 이들은 대구를 위해 남아야 한다고 했고, 또 다른 이들은 더 큰 무대에서 대구를 대표해야 한다고 했다.


간담회가 끝나고 늦은 밤, 두겸은 사무실에 홀로 남아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한 노인이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제가 내일 지방으로 떠나는데, 꼭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노인은 천천히 두겸 앞에 앉았다.


"저는 선생님이 처음 출마했을 때부터 지켜봤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한 번도 선생님께 투표한 적이 없습니다."


두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모든 분들의 지지를 받을 수는 없으니까요."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노인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비록 투표하진 않았지만, 선생님이 대구에 남아준 것이 고맙다는 겁니다."


노인은 주머니에서 낡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10년도 더 된 시간의 순간이 적힌 종이였다. 오래 전 두겸이 나눠주던 정책 제안서였다.


"이것을 계속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구의 변화,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무총리가 되시든, 여기 남으시든... 선생님이 대구를 잊지 않으실 거라는 것을 압니다."


노인은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문이 닫히고, 두겸은 창가로 걸어갔다. 대구의 밤하늘은 여전히 별이 가득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대구에 남아 계속 지역 정치를 하는 것, 국무총리가 되어 더 큰 변화를 이끄는 것.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일까?


창밖의 별들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겸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마음을 정리했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은 단 하나였다.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만약 중앙으로 간다면, 그 시작이 국무총리일지 몰라도, 그 끝마저 국무총리가 되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국무총리 한덕수를 떠올리며 상상하여 만들어 보는 캐릭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