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443
이재명을 떠올리며 상상하여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재명을 떠올리며 상상하여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어대명
제목: 리젠트 프레지던트
“대통령님!”
대명이 들었던 마지막 목소리였다. 총발에 묻혀 수많은 목소리가 묻혔다. 그렇게 총격에 의해 쓰러진 대통령 어대명이 깨어나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드디어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는데, 갑작스럽게 남쪽에서 남한(대한민국)이, 그리고 북쪽에서 북한(조선인민공화국) 서로 종전 선언을 하고, 이제 바로 판문점에서 만나 북한의 수장이 처음으로 서울로 내려왔다. 그리고 시민의 수많은 목소리가 담겼던 광화문에 섰다. 급하게 만들어진 무대였지만 매우 엄청난 규모였다. 그렇게 분단된 두 나라의 수장들이 하나의 단상에 서 통일을 선언하려는 때였다.
두 수장이 만나서 악수를 나누고 통일을 선언하기 위해 단상에 선 순간 총 발이 울렸다. 내부의 적이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한 소리였다.
그러쎄 대통령 어대명이 쓰러지고, 북한의 김장열의 몸에도 총알이 박혀 두 수장이 동시에 쓰러졌다. 미국의 동의가 없는 통일이어서 일어난 일이다. 러시아가 배후다. 중국이다. 아니 미국이다. 일본이다는 여러 소리가 들렸다.
모든 나라가 해명을 했고, 6국이 동시에 진실규명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각 국가의 특수작전을 하는 사람들이 한국 땅을 밟았다. 전운이 감도는 순간이었다. 남한과 북한의 양 군대는 당장이라도 서로 북쪽을, 그리고 남쪽으로 진격할 준비가 끝난 상황이었다.
그때의 충격은 순식간에 광화문 광장을 덮쳤다. 수많은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웅성거렸고, 군중 속 몇몇이 뒤로 넘어지면서 무대 인근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단상 위에 쓰러진 두 사람. 남쪽의 대통령 어대명과 북쪽의 지도자 김장열에게 다가가려는 의료진과 경호원들이 엉켜 혼란이 가중되었다.
하지만 불과 몇 분 만에, 현장 통제에 나선 군경과 긴급 의료진이 주변을 차단했다. 구급차가 광장 한복판으로 들어오고, 현장에 대기하던 군 헬기가 인근 옥상에 착륙해 심각한 부상자를 신속히 후송할 준비를 마쳤다. 국민들은 간절히 기적을 바랐다. 그토록 염원해온 통일이 기적처럼 나타나는 순간에, 또 다른 악몽이 시작될 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부터 주변에 계신 모든 분들은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상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협조 부탁드립니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방송국들도 긴급 편성으로 상황을 중계했고, 네트워크는 순식간에 마비되다시피 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어대명 사망’, ‘김장열 중태’ 같은 자극적인 낚시성 속보가 쏟아졌고, 혼란스러운 여론은 곳곳에서 들끓었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루머들이 SNS를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미국이 쐈다.”
“러시아가 사주했다.”
“아니다, 중국 특수부대 소행이다.”
“남북 내부 강경파가 손을 잡고 두 지도자를 날려버렸다.”
유언비어와 음모론이 난무하며, 사람들은 공포와 분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제 막 평화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다고 믿었던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배신감이 없었다.
대통령 어대명은 응급 수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에 머물렀다. 목숨은 간신히 건졌다고 했지만, 뇌를 스쳤다는 총상이 워낙 치명적이어서 의식불명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의료진의 소견이었다. 북쪽 지도자 김장열 또한 심장 근처에 총알이 박힌 채로 발견되었고, 생사조차 불투명했다. 두 지도자의 빈자리는 남과 북 모두에 거대한 권력 공백을 만들어냈다.
“대통령님, 부디 일어나주세요…”
청와대 인근 병원 중환자실 앞 복도에서 허리를 굽힌 채 기도하듯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대명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원로 정치인 박무림이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뒤를 따르던 경호팀, 청와대 비서관들, 여당 지도부가 병원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중간중간 화상 통화를 통해 외교 채널을 총동원하고 있었지만, 이미 국제 정세는 요동치고 있었다.
북 지도자 김장열이 쓰러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평양에서도 대혼란이 일어났다. 일부 강경 군부 세력이 “남측의 음모”라고 규정하며 곧바로 전쟁 준비를 강조했다. 반면, 김장열과 함께 개혁-개방을 추진하던 온건파 간부들은 최대한 진정하자고 호소했다. 남쪽에서도 국방부가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남북이 서로 “우리가 먼저 공격당했다”는 의심 속에서 교전을 시작할 개연성은 사실상 언제든지 열려 있었다. 휴전선 곳곳에는 군 병력이 증강 배치되고, 양 측 포병부대는 실탄 장전을 마친 채 대기했다. 국지적 충돌이 일어나면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공포가 재빠르게 퍼져나갔다.
“지금부터 국군은 최고 대비 태세를 유지한다. 그리고 유사시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신속히 조치한다.”
합참이 밝힌 공식 입장이었다. 이에 북한 역시 “최고사령관 부재 시 총참모부가 전권을 행사한다”고 발표하며 맞대응했다.
세계 정세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남북 통일이 성사되는 것을 달갑게 보지 않는 세력이 있다는 의심이 가시지 않았고, 각국 정보기관이 물밑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
“우리 CIA가 결코 관여하지 않았다.”
“FBI나 NSA도 이번 사건에 책임이 없다. 우린 진실 규명을 원한다.”
미국은 연일 해명을 내놓았으나, 국내외 반미감정이 일부분 들끓기 시작했다. 중국은 “아시아 지역 안정에 큰 타격을 준 사건이며, 중국도 대대적인 조사에 협력할 것”이라 밝혔고, 러시아 또한 “우린 사태를 안정시킬 의무가 있다”며 특수조사팀을 파견했다. 일본 역시 “극도로 우려스러운 사태이며, 동북아 질서를 위해 적극 협조하겠다”고 표명했으나, 배후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한국 정부는 “국제합동조사단”을 구성하기로 발표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EU 대표까지 포함한 6개국이 공식 파견한 조사단이 서울에 모여 광화문 총격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조사단조차 서로 다른 외교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모여 있었기에, 자칫하면 외교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한편, 어대명 대통령의 개인 주치의로 알려진 의사 이수정은 위중한 상태의 대통령을 세심히 살폈다. 그녀는 병원 이동식 칸막이 뒤에서 묵묵히 문진표를 정리한 뒤, 그를 간병하는 간호사에게 차분히 지시를 내렸다.
“산소 공급량을 조금만 조정해주세요. 지금 포화도가 너무 높아요.”
간호사가 조절기를 만지자마자, 어대명의 심전도가 살짝 요동치다 다시 안정 구간으로 돌아왔다. 이수정은 쏟아질 듯한 긴장과 피로 속에서도, 눈앞의 환자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라를 위해 온몸으로 뛰던 대통령이었다고, 그녀는 굳게 믿었다.
청와대 대변인이 뒤편에서 방호복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곧장 이수정에게 다가왔다.
“의사 선생님, 대통령님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바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내각과 당에서도 대통령님의 회복에 매우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단기간에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지금 당장은 외상성 뇌손상 후유증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조차 어렵습니다.”
대변인은 고개를 떨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수정은 이미 여러 차례 기적 같은 회복을 본 적이 있기에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며칠 후, 상황은 더욱 위태로워졌다. 언론사마다 특종 경쟁에 혈안이 되어 “어대명 대통령, 실질적으로 식물인간 상태 돌입”이라는 자극적 기사를 뿌렸다. 국민들은 또다시 불안과 절망감에 빠졌다. 총리가 주재하는 임시국무회의가 소집되어 긴급 대책이 논의됐다.
“남과 북 지도자가 동시에 쓰러진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군사적 충돌이 터지면 국내외 경제뿐 아니라 온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습니다.”
“총리님, 군 작전권 전환이 늦어진 상태라 미국 측 동의를 구해야 할 사안이 많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번 사태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이 보여서… 현장의 군 지휘관들도 지시 체계 혼선을 우려합니다.”
“그래도 전쟁은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대통령님 의지를 기억하세요. 통일을 준비하자고 한 것도, 적대가 아닌 협력을 강조한 것도 대통령님이셨습니다. 함부로 무력충돌로 치달아서는 안 됩니다.”
국무위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결론은 단 하나였다. 가능한 한 평화를 유지하면서, 빠르게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것. 다만 “과연 누가 이런 짓을 꾸몄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에는 아직도 답이 없었다.
그 시각, 북쪽의 김장열이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김장열의 오른팔이라 알려진 인민무력부 부상 한덕삼은 내부 회의에서 이건 남쪽의 배신이라고 강경하게 몰아붙였다. 그러나 다른 간부들은 행여 우리가 오판하여 전면전을 시작했다가 북도 남도 다 파멸로 몰고 가게 되면, 김장열 동지가 눈을 떴을 때 뭐라 하시겠소! 라며 한덕삼을 막았다.
결국 북측도 진실 규명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사태가 계속 길어지면 남북 간 신뢰는 급속도로 무너지고, 자칫 여러 강대국이 한반도에 깊이 개입하는 구도가 굳어질 위험이 크다는 점이었다.
“검은 그림자가 또다시 이 땅에 내리깔리는구먼. 우리 어대명 대통령이 이렇게 쓰러질 줄이야…”
박무림 원로 정치인은 국가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만으로는 대내외적 위기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국회 역시 여야 할 것 없이 대혼란에 빠져 있었으므로, 정치 공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 국민들은 ‘이제 통일은 물 건너갔다’고 좌절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이 기회를 무너뜨린 것 아니겠습니까? 북쪽에서도 체제가 흔들릴 테니, 미리 손을 써야 합니다.”
하지만 국회는 과반 의석수를 가진 여당 내부 사정도 안정적이지 않았다. 다수 의원이 대통령의 가까운 사람들인 ‘어대명계’인 데 반해, 일부 중도 계파나 야당 연합이 “당장 전면적 국정조사가 필요하다. 대통령 주변에 혹시 내부 배신자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어대명 대통령은 우리에게 한반도 평화의 새 지평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를 향해 음해를 하는 것은 우리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가 총을 쐈습니까? 그 무대는 최고 수준의 경호가 깔려 있었는데, 내부에서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에요!”
의원들은 서로 신경전을 벌였고, 회의장은 날선 말들이 오가며 마치 폭발 직전 화약고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 국제합동조사단이 한국 땅을 밟았다. CIA, 러시아 FSB, 중국 MSS(국가안전부) 등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 출신들이 모여 광화문을 비롯한 사건 현장을 철저히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국정원과 국방부도 적극 협조했지만, 서로 기밀을 완전히 공유하기는 어려웠다.
일본 측 조사관은 “총탄의 탄흔과 각종 화약 잔여물을 보니, 범인이 매우 정교한 스나이퍼 기술을 쓴 것 같다”고 분석했고, 미국 측은 “현장 CCTV 데이터는 이미 누군가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사이버 포렌식에 들어갔다. 러시아 측은 “이런 종류의 기밀 작전이면, 소수의 특수요원만이 감행 가능한데, 내부정보를 어떻게 입수했는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모두 다른 시각이었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이번 사건이 보통의 테러가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공격이라는 점.
그 무렵, 병실 안에서는 신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대통령 어대명의 심전도 곡선이 미묘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담당 의사 이수정은 간호사를 불러 모니터 화면을 유심히 관찰했다.
“의식반응 테스트 준비합시다.”
그녀가 고요한 목소리로 말하자, 곁에 있던 청와대 의무실 팀장이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면유도제 양을 조금 줄이고,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을 살폈다. 어대명의 손가락 하나가 살짝 움직였지만, 이게 단순 반사인지 의식 회복 신호인지는 아직 분간이 어려웠다. 이수정은 조심스레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대통령님… 들리십니까?”
반응은 없었다. 그러나 유독 세밀해진 심전도 변화를 보며, 이수정은 미묘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녀는 병실 밖에서 기다리는 박무림에게 솔직하게 전달했다.
“아직은 의식이 돌아왔다고 보긴 어렵지만, 미세한 뇌파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조금씩 나아질 가능성이 있어요.”
박무림은 눈시울을 붉혔다.
“대통령님이 돌아오시면, 난 꼭… 통일을 위해 여기까지 온 여정을 함께 완수하고 싶소.”
그 모습에 이수정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라 전체가 위기에 빠진 가운데, 어대명은 그저 침대에 누운 채 미동도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통일을 꿈꾸던 수많은 국민들의 마음에, 어대명은 여전히 ‘희망’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때, 청와대 대변인이 긴급 브리핑을 발표했다. 기자회견장에는 국내외 2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대변인은 침착하게 원고를 꺼내 읽었다.
“대통령님은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의료진에 따르면 아주 미미한 호전 기미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국제합동조사단의 활동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전폭적으로 협조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불확실한 정보에 현혹되지 마시고, 공신력 있는 기관의 발표를 따라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플래시 세례 속 기자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확성기와 마이크가 엉켜 정신이 없었다.
“이번 테러의 배후가 미국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이에 대해 청와대 입장은 어떻습니까?”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혹시 북한과 공조하거나 러시아와도 협력합니까?”
“대통령 유고 사태가 길어진다면 조기 대선까지 거론되는 상황인데, 이에 대한 논의는…”
“시민들 사이에선 정말 미국이 관여했다는 증거가 있다던데요? 아니다, 일본이었다는…”
대변인은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단지 외교 안보 라인을 중심으로 최대한 진실을 규명하겠다고만 반복했다. 이미 여론은 감당하기 힘든 정도로 양극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이 판문점에서 비공개로 열렸다. 김장열 역시 여전히 중태였지만, 그의 최측근 참모가 대리를 맡았다. 남쪽에서도 합참의장이 참석했지만, 대통령의 명령을 직접 대행하기엔 부담이 컸다.
회의는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양측 모두 무장 완전 해제는커녕, 경계 수위를 더 높인 채 서로를 의심스런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적대 행위 의사가 전혀 없소. 이건 외부 세력이 개입한 테러일 가능성이 농후하오.”
“말은 그렇게 하면서, 혹 남조선 내부에 통일을 반대하는 매파가 있는 것 아닌가! 김장열 동지의 개혁로선을 달가워하지 않는, 제국주의자들과 내통하는 세력이 말이오.”
양측 대표는 한동안 설전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불현듯, 북측 대표가 테이블에 문서를 내밀었다.
“우리도 이 사건의 진상을 알고 싶소. 김장열 동지가 깨어나신다면, 그분이 지금처럼 피를 흘리고 누워계시도록 만든 놈들을 그대로 두시진 않을 거요.”
“우리 대통령님께서도 의식이 돌아오시면, 테러범을 반드시 찾아내 처벌하길 원하실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서로를 향한 의심을 거두고, 진짜 적을 찾아야 합니다.”
다행히 기본적으로 공통된 이해관계가 있었다. 두 지도자 모두 피격당했으니, 남북이 나란히 ‘피해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막판까지 날선 공방이 오갔지만, 양측은 일단 긴장 완화를 위해 연락 채널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적어도 전면전이 일어나진 않도록, 서로 자제하자는 데까지는 뜻이 모였다.
서울 곳곳에는 여전히 사복 차림의 외국 특수 요원들이 교묘하게 활동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편의점, 호텔 로비에서 낯선 인상착의를 지닌 사람들이 포착되기도 했다. 실제로 국제합동조사단에 참여한 일부 국가 요원들은 불특정 시간에 광화문 현장을 재차 둘러보거나, 사건 당일 경호 담당자들과 접촉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이들이 정말 조사만 하는 걸까요? 다른 목적으로 여기저기 들쑤시는 거 아닐까요?”
일반 시민들은 불안해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모두 조사단 절차의 일부라고 짧게만 답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국정원 요원들이 그들 뒤를 밟으며, 혹시 모를 불법행위나 정보 유출을 감시하고 있었다.
병원 밖에는 다시금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대통령 어대명의 ‘회복 가능성’과 관련한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전국민적 관심이 빗발쳤다.
“정말 이대로 식물인간 상태로 가시는 건 아닐까요?”
“혹시 깨어나면 기억을 상실하거나, 제 기능을 못 하시는 건 아닌지…”
사람들은 입을 모아 걱정했다. 어대명은 비록 이념적 지지 여부를 떠나, 국민 다수에게도 ‘통일 시대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그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는 이들도, 통일에 반대했던 이들도, 모두가 불안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어떤 방안이든 마련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어대명이 당선된 이후 줄곧 그를 보좌해온 비서실장 윤지수가 새벽까지 논의를 이끌었다.
“대통령님의 권한대행 체제를 계속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국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겁니다.”
“하지만 대통령님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 예비 대선을 치르는 건 정치적으로도, 헌법적으로도 매우 민감한 문제입니다.”
“우리에게는 사실상 시간이 없어요.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각자 말은 달라도 결국 결론은 하나로 수렴됐다. ‘어떻게든 전쟁을 막고, 통일 의제를 살려야 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의식을 찾지 못했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국회 전체가 합심해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그 시각,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태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릴 조짐이 보였다. 국제합동조사단에 소속된 한 러시아 요원이 총알 궤적과 발사 각도를 추적하던 중, 광화문 주변 건물 옥상에서 오래된 탄피를 발견한 것이다. 탑승 헬기에서 내리는 각국 요원들이 부지런히 주변 건물 옥상과 인접 거리, 고층 빌딩 지붕을 수색했고, 마침내 특수용 탄피 몇 개를 수거했다.
탄피에 남은 총열 자국과 고유 번호가 확인되자, 곧바로 각국 기관들이 DB를 뒤져 비교 분석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어떤 국가의 군용 스나이퍼 라이플에 쓰이는 탄환과 유사성이 높았다. 그 국가는 과거에 쓰던 탄환일 뿐, 지금은 전량 폐기했다고 했으나, 조사단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이것 보십시오. 폐기되었다는데, 남아있는 재고가 있다는 내부 문건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내부 협조를 통해 밀반출했을 가능성이 충분하군요.”
한 국가를 지목하는 순간,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었기에 조사단 내부도 바짝 긴장했다. 자칫하면 ‘새로운 전쟁’이 아닌, ‘강대국 간 대리전’ 양상으로 확산될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딘가 희미한 빛은 보이는 듯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사단이 확보하는 단서들이 하나씩 모아지고 있었다. 북한 역시 동일한 탄환 파편을 재차 확인했고, 북측 조사관과 남측 조사관이 함께 이건 특정 세력이 남북 모두를 타격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저지른 일이라는 데 공감대를 키워갔다.
이제 문제는 그 ‘특정 세력’이 누구이며, 어째서 통일 선언 직전에 이런 테러를 감행했는지, 그리고 남북 내부에 공모자가 있었는지 여부였다. 이 모든 것은 어대명이 깨어나 스스로 진실을 밝히거나 직접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보다 효과적으로 풀릴 수 있었다.
국민들은 간절히 그날만을 기다렸다. 남과 북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광경이 ‘대통령의 꿈’이 될 리 없었고, 김장열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기도했고, 어떤 이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빌딩 옥상 어딘가에서, 또 다른 다음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한반도는 평화와 전쟁, 통일과 분열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이어갔다. 한반도가 오랜만에 같은 마음으로, 어대명과 김장열이라는 두 지도자가 깨어나길 바랐다. 이젠 누가 먼저 깨어나서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에 대한 여러가지 말들과 추측이 오고가고 있는 시간이었다.
더 확실한 건 이 일이 통일을 막는 게 아닌 더욱 빠르게 하는 도화선이 되고 있었다. 그때 어대명이 손가락을 꿈틀 거렸다. 오래전 그가 속했던 단체의 이름처럼. 손가락 혁명대라고 불렸던 것처럼 꿈틀거림이 시작되었다.
밟힌 지렁이가 살기위해 몸부림거리는 것처럼. 그렇게 지룡이 되어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