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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영의 연기를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캐릭터 - 452

by 라한
장원영의 연기를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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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영의 연기를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오하선

제목: 오작의 시선


“말했잖아. 어디에 있든, 어떻게든 찾아내겠다고.”


하선은 처음보는 이, 갑자기 뜬금없이 나타난 존재 앞에 멈칫하며 서 있었다.


“저를 아세요?”


자신을 아냐는 질문에 왜 나를 시험 하려하는 지, 그에 대해 따지고 들었다.


“당연히, 수천년을 기다렸는데, 어떻게 잊을 수가.”


다시 한번 하선을 안으려는 이상한 자를 피해냈다. 그러자 그 자의 팔이 허공을 향해 허우적거리다가 넘어질 뻔했다.


하선은 그냥 넘어트려 버리고 소리를 지르며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칠까도 생각해봤지만, 그의 눈빛을 보니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너무나 애절한 표정을 짓고, 마침내, 드디어, 오랜 세월 억겁의 고통으로부터 이제 겨우 빠져나온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전하지 못한 말들이 마치 공기로, 분위기로 압축되어 전해져 오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이었는데, 처음이 아닌 그런 느낌이었다.


“잠깐만요. 저는 처음인걸요!”


자신에게 다가오는 자에게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 보다는 우선 자신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처음이라. 고?”


하선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처음이란 말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보려고 하다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하선을 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다시 하선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정말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자신을 약간은 원망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에게 하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이 나는데 나지 않는다고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아무 기억도 없었다.


“네.”


그때서야 멈춰 있던 것 같은 세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경적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뿜어내는 여러 소리가 들렸다. 말소리부터, 차소리와 울고 웃는 소리들이 들렸다.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에서 두 사람은 마주쳤다. 아주 우연하게 마주쳤다.


“…”


그는 허망한 표정을 짓고 가만히 서 있었다.


하선은 이제 어떡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냥 지나쳐버릴까 싶다 가도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를 아시는 거죠?”

“…”


반복되는 질문에 그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쪽이 기억하는 저는 누군데요? 그리고 그쪽은 누군대요?”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분명히 난처하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 왠지 모르게 그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었다.


그렇게 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하선도 지금의 이 마음이, 이 생각이, 이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성적으로 틀렸다고 판단될 이 상황이 직감은 맞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지금은 직감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실제로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하선을 아는 모든 이들에게 늘 긍정적인 아이였기도 하고, 지금의 상황도 그렇게 생각하면 충분히 긍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믿었다.


“…”


그가 애처로운 눈빛을 하선에게 보냈다. 원망이 가득하지만 표현하지 않으려 애쓰는 시선이었다.


어떻게 나를 몰라보냐는 애석함이 담긴 시선 뒤에 그가 천근보다 무거워진 입술을 떼었다.


“나는 오군이었다. 우리는 열 두 세계의 연결자. 오작군이었어.”

“오군이요? 오작군이요?”

“기억이 하나도 안나?”


하선은 오군이었다고 자신을 밝힌 자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우리 오작군은 열 두 세계에 불가능한 사랑을 이루어주며 오작교라 불렀다. 그러나 어느 날 사고로 인해 오작동하여, 너를 잃어버리게 됐고, 찾아 다녔어.”

“오작동이요? 오작교?”


하선은 전래동화 속 전설에 대해서 떠올렸다. 견우와 선녀를 이어준 오작교에 대해서 떠올렸다. 칠월칠석에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그 오작교를 말하는 건가 싶었다.


“오작군은 사랑을 이어주는 행동도 하지만, 죽음을 위로해 주는 행위도 한다. 각각 맡는 역할이 있었지만, 인간들의 말로 품앗이로 서로를 돕곤 했지, 나의 이름 또한 기억나지 않겠네?”


하선은 당연한 질문을 받으니 당황스러울 수박에 없었고 여전히 똑같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다니. 그래 네가 잊어버린 내 이름은.”


그가 그의 이름을 말하려고 할 때, 왠지 모르게 하선의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설마 그의 이름일까 싶었다.


“정오?”

“정오.”


두 존재의 입에서 똑 같은 단어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스스로를 정오라고 밝힌 자의 시선이 환해졌다. 모든 걸 다 가진 표정이 되었다.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기억하는구나. 목오.”

“목오? 그건 제 이름이었나요?”


정오는 하선이 된 목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은 다름 이름으로 살고 있는 거겠지?”

“제 이름은 하선인데요.”

“하선이라. 그 이럼도 예쁘구나.”


하선도 목오보단 확실히 하선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정말 자신이 목오였던 시절이 있었는 진 확실하지 않지만, 그 이름이 불러지자, 낯설지는 않았다.


자신이 그 목오라는 자의 환생인건가? 그런 건가 싶었다. 왜냐면 자신의 기억속에 있는 어린 시절의 사진, 집에는 가족들도 있고, 평범한 사람들처럼 자신도 그렇게 자라 낳기 때문이었다.


“네가 계속 하선으로 살고 싶다면 그것이 정답이겠지. 너와 나의 만남은 운명이 아닌 오작동이었을 거다.”


하선은 갑자기 진지해진 정오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하선의 입장에선 혼자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을 안으려 했던 자. 그러다가 또 혼자 진지하게 이상한 말을 짓거리는 자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상한 게 있다면, 어딘지 모르게 낯설지 않았고, 마치 자신 또한 이 정오라는 자를 그리워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게 사랑하는 마음이라 기 보단 그런 건 아니었고 옛 동지를 만나는 그런 느낌에 가까웠다.


“너의 뜻을 존중한다. 목오.”


그가 뒤돌아서 마치 지금까지 일을 없던 것으로 하고 돌아가려는 찰나였다. 인생은 언제나 순간의 결정들이 연속되어 벌어진다. 그리고 지금 하선은 한 가지 선택을 했다.


“잠깐만요.”


자신을 부르는 말에 정오가 돌아섰다. 어느새 그의 날개에서는 검은 날개가 솟구쳐올랐다.


“어.. 날개가.”


이 믿지 못할 상황에 다시 어안이 벙벙해졌는데, 곧 정오가 날개를 접었다.


“무슨 일이지?”


목오는 다시 자신을 부른 소녀를 봤다. 이제 보니 그저 영락없는 인간 세계의 한 소녀에 불과해 보였다.


조금전까지 자신이 찾아 헤매던 목오로 보였는데, 어느새 자신의 앞엔 하선이란 자가 서 있었다.


“그 목오라는 자가 누군데요. 또 갑자기 이렇게 어떻게 저를 찾아왔는데요.”

“모르지, 나는 늘 목오 너를 찾아 다녔다. 그래서 지금 마침내 운명이 당도했다고 생각했는데, 오작동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날처럼.”

“그날이요?”


하선은 조용히 정오가 말하는 그날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그러나 이미 정오가 말하는 모든 게 납득되지 않고 기억나지도 않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 그날에 대해서 파악할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설마 하는 건 견우와 직녀의 일이야기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견우님과 직녀님이 만나는 날은 기억하나? 아니 들어 본적이 있나? 인간세계에는 전해지지 못한 일이겠지.”


이상하게 인간세계에서도 그 이야기를 잘 알았다. 특히 이 곳 지방에 사는 한국사람들은 더욱 더 잘 알았다.


“아, 그 견우와 직녀가. 맞아요? 정말요?”


견우와 직녀를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목오의 모습을 보고 정오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찌 함부로 존함을 부를 수 없는 격의 존재들에게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무엄..하.. 아니. 그 분들은 기억해?”


그분들? 하선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정오라는 자도 신기할 뿐이었는데, 신화속의 견우, 그리고 직녀는 이 보다 더 신비한 존재일까 라는 궁금증이 우선 들었다.


“전설 속이야기 잖아요.”

“전설이라.”


정오는 인간들이 신들의 세계의 이야기를 전설로 구전해 왔다는 걸 떠올렸다.


“너는 완전히 인간이 되었구나.”


정오는 혹시나 목오가 옛 기억을 떠올렸을까 희망을 품었지만, 지금 그 희망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었다.


정오는 어느 순간 눈꽃처럼 흩날리며 하얀 빛으로 모여들고 있는 주변의 신기한 기운을 보았다.


혹시나 싶어 손을 뻗어보니 하나의 깃털 모양으로 기운이 모여들고 있었다.


“설마..!”


정오는 놀랐다. 운명의 오작동이라 느꼈던 지금 이 순간이 오작동이 아닌, 운명 그 자체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거할까.”


견우가 밟고, 직녀가 올랐던 이들의 힘으로 만들었던 다리가. 그 다리의 조각 하나를 목오, 아니. 하선에게 천천히 내밀었다.


하선은 정오가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민 깃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천천히 손가락을 가져 다가 됐다.


이상한 감정이 파도처럼 휘몰아쳤다. 알 수 없는 저항, 마치 무중력의 세계에서 중력을 처음 체감할 수 있듯이 이상한 세계가 자신 앞에 놓여진 것 같았다.


“…”


저항하며 다가갔다. 휘몰아 치는 물결을, 마치 수중에 있는 것보다 더한 저항을 맞이했지만, 손가락을 뻗어서 다가갔다.


무한한 세계가 자신에게 묻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도망치고자 했고, 겨우 성공했으면서 왜 다시 돌아오냐고 묻는 것 같았다.


하선은 대답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손을 내밀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이 기억으로 또 평생을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도망치고 싶었던 건 행복하기 위해서 였는데,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더라.’라는 말로 자신에게 질문해오는 세계에 저항하고자 했다.


이미 잊어버린 걸 넘어 잃어버린 기억 대신, 잃어버린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워했던 세상에 대한 사랑이었다.


하선 뿐만이 아니었다. 하선에게 기억이 담긴 깃털을 내밀고 있는 정오의 손도 이 손을 거두라는 세계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거대한 저항이 정오의 손을 움츠리게 만들었으나 굳건히 버텼다.


그때처럼. 놓지 않을 꺼라 생각했다.


암흑속에 뒤집힌 세계, 하선의 잃어버린 목오의 기억과, 절대로 잊지 못한 정오의 기억 속의 어느 한 조각이었다.


여러 힘들이 목오를 붙잡으려 했다. 오작군의 힘들이었고, 그중에 하나가 목오의 손을 잡고 있었다.


“목오!”


목오는 슬픈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마주잡은 정오를 바라봤다.


“놔야만해. 그래야 네가 살아.”


오작교를 만들었어야 하는 힘이, 오작동하여 이상한 힘을 만들어냈다. 신들의 세계에서, 밀항자들을 이끌어 사랑을 이루어 주며 오작교 행세를 했던 오군들이 함정에 빠진 것이었다.


“너희는 감히 내 말을 어겼다.”


직녀와 견우도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로부터의 처벌이었다.


“…”


그때 자신의 팔이 부러지고 잘려도 절대로 놓지 말았어야 했던 손이었다. 수천년을 후회한 후에 이제는 그렇게 하려고 했다.


마침내 하선의 손에 깃털이 닿자, 모든 기억은 아니지만, 오작교로 활동했던 목오의 기억의 일부가 하선에게 전달되었다.


그러자, 끝내 참아내고 있던 마음이 쏟아졌다.


눈물이 강을 이루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하선은 그대로 주저앉아 울어버렸고, 정오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는 마침내 일어낸 기억의 부활이자, 세상에 대한 저항의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다시, 신들의 사랑을 위해 일어서는 오작교의 시작이었다. 두 번은 없을 오작동을 위해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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