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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브닝의 연기를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캐릭터 - 455

by 라한
모브닝의 연기를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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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브닝의 연기를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하강원

제목: 아침부터 저녁까지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조금만 더 일찍 오시지.”


어제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열심히 살았는데 미래는 사라졌다.


“세달이요..?”


강원은 의사가 자신에게 건넨 한마디를 믿지 못했다. 그동안 누군가가 말을 건네 오면 잘 모르는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듣고, 희망 없는 허세라도 믿어주었다.


“네 선생님. 그래도 마지막까지 입원치료를.”

“잠시만요. 생각 정리 좀 하고요.”


세 달 뒤에 주는 거라면, 지금은 아파서 아무것도 못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살고 싶어서 발버둥을 쳐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까지 막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은 병원에 오면서 죽을 만큼 아프긴 했다. 일주일에 7일은 머리가 아팠다. 잠깐씩 지나가다가 이제는 저려오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찾았는데 정밀 검사를 하자고 해서 했다.


원래라면 검사를 하는 데만 한달이 걸리는 대형병원이었는데, 당일 입원하여 검사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오늘이었다.


“이름도, 못 들어 본 희귀병.”


뼈가 가시처럼 자라 근육을 찌르고, 근육이 죽고, 이상하게 자라난 뼈를 백혈구가 공격하면서 벌어지는데, 그냥 자라난 뼈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몸의 전신에 있는 뼈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는 병이었다.


원래 뼈와 백혈구가 만난 일은 없었지만, 몸의 구멍을 통해서 몸의 전신으로 퍼져서 지금 몸이 아픈 거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오랜 연인이자, 이제는 부인이 될 날만을 기다린 연인에게 이야기하는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강원을 끌어안고 울었다. 손에 물을 가능한, 최대한 많이 뭍이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예 눈물샘이 된 눈을 선물한 것만 같았다. 주고 싶지 않았는데, 예쁜 것만 보여주고, 아름다운 선물만 주고 싶었는데, 그녀에게 준 선물이 정말 최악이었다.


축복과 저주는 같이 온다는 말이 있었다. 그녀라는 축복을 받은 채 몇 년 후, 그래서 그 축복을 상쇄할만한 저주가 자신의 죽음뿐이라 이런 일이 일어난 건가 싶었다.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이 같이 와도 좋은 일로 극복하면 되는데, 이건 그럴 수가 없는 문제가 아닌가, 신은 완벽하지 않다는 말이 사실이라 여겨졌다.


“강원아.”

“괜찮아. 이렇게 되고 보니까. 아침부터 저녁가지 너무나 소중해지더라. 너랑 함께 있는 시간이 언제나 내겐 최고의 행복이었는데, 이제 더 너무나 소중해졌어.”


그런데 이제 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에게 너무나 미안해졌다. 마지막 모습을 이런 게 보여줬구나 싶었다.


강원아. 하면서 웃는 그녀가 바람처럼 연기로 흩어졌다. 이렇게 그녀는 아파할 게 분명했다. 어떤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그녀가 웃을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다.


“…”


일방적인 헤어짐을 통보하는 연인들을 보며, 사랑하니까 헤어진다는 말을 믿지 않았던 강원이었지만, 이제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았다.


“어떻게. 전하지.”


입원을 위해 갈아 입은 옷을 봤다. 조금이라도 더 연명하고자 이 감옥이 되어버린 병원에 있어야 하는 걸까 싶었다.


작은 자유라도 누리고, 그리고 고통과 자유 속에서 죽어가는 선택지도 떠올랐다.


가능하면 그녀의 옆에 하루라도 더, 한 시간이라도 괜찮았다. 일분 일초라도 더 함께 있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남겨질 그녀를 생각하니 또 너무나 큰 욕심처럼 느껴졌다. 가슴이 아픈 건 이럴 때 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아.”


주저앉은 채 병원 밖, 잘 마련된 정원을 나섰다.


사람들이 걷고, 안고, 울고, 웃고 있었다. 이젠 그들과 함께 강원 자신도 이곳에서 삶을 살아가겠지 남은 시간을 그렇게 하겠지 싶었다.


강원은 어린 시절 갖고 놀다가 바늘을 잃어버린 나침반이 생각났다. 항상 가지고 다녔는데 지금은 없었다.


“가방에 있을까.”


입원하면서 입고 온 옷에 있을까 싶어서 다시 병원 건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엄마, 나는 커서 아픈 사람들을 지키는 의사가 될거예요.”

“그래, 우리 나연이, 커서 꼭 의사가 되자.”


링거와 함께 걸어 나와 산책을 하고 있는 모녀가 보였다. 아이는 다섯살로 봐도 많았고 이제 네 살이나 세 살정도로 작았는데, 말은 또 유치원생처럼 잘했다.


자기가 아프면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겠다는 꿈을 말하는 소녀였다.


“…”


소녀가 부디 그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을 돌아보게됐다.


문득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계단으로 병실을 찾고 싶어 졌다. 머리에서는 방금 질문을 통해 헤 메고 있었다. 마치 모험을 하는 것만 같았다.


‘참 많이도 꿨네.’


이룬 꿈은 없는데, 하고 싶은 건 많았다. 그때 계단실에 오르는데 계단이 평소의 계단들과 달랐다.


소아병실로 가는 계단 층이라서 아이들을 위해 꾸며져 있었다.


그곳에선 세상을 지키는 영웅들의 벽화가 있었고, 한참 유행이 지나거나, 이제 유행이 시작된 만화 캐릭터들의 모습들이 많았다.


그리고 한층에는 마치 우주위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아래로 흐르는 빛이 아니라 계단 벽과 아래에 작게 새겨진 수많은 별들이 은하를 그려놓고 있었다.


“…”


병원에서 아이들에게 꽤 좋은 희망을 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내 꿈 중 하나가 선생님이었지.”


그것도 그냥 선생님이 아닌 음악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의 은하수 하모니를 하나로 묶어놓아 멋진 노래와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이 뮤지컬을 지휘하지는 않는데, 음악 교수가 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기도 했다.


강원은 마치 하늘을 걷는 별처럼, 위층으로 올라갔다. 소아과병실이 나오는 층을 지나니, 계단은 평범에 가까워졌다.


그래도 혹시나 이 위를 올라가는 아이들을 배려해서인지, 드물게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요소와 문이 닫히거나 사람이 없다고 불이 꺼지진 않았다.


“아무도 없는데도 밝네.”


병원의 이 사소한 배려로 적어도 이 곳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이 무섭거나 두려움 속에 떨지만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평소보다 무거워진 몸으로 좀 많이 ‘헉헉’되면서 계단을 올라온 강원은 마침내 자신의 병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병원, 참 크네.”


자신의 병실에 도착했다. 6인 병실이라 빈 2곳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티비만 계속 바라보고 있는 아저씨가 보이고 나머진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짐을 보관해둔 상자를 열어 자신의 주머니에서 바늘 없는 나침반을 꺼내 찾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나침반이 어딘가를 향해 가리키고 있었다.


“어?”


강원은 이 상황이 이상하고 믿기지 않아서 다시 한번 눈을 비비고, 그래도 바늘이 있어서 나침반을 마구 흔들었다가 아예 나침반을 조심히 살펴봤다.


“분명 없었는데.”


분명히 몇 년을 품에 가지고 행운의 물건처럼 가지고 다녔는데, 없었다.


어렸을 땐 친구들을 찾을 때, 그리고 여러가지 엄마 잔심부름이라거나 뭘 해도 나침반을 통해 길을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침반의 바늘이 사라진 걸 확인했음에도 행운의 부적용으로 들고 다녔었다.


그런데 그 사라졌던 바늘이 다시 나타났다.


집 안, 학교, 거리, 강원이 다니던 모든 길을 찾아 헤맸지만 발견할 수 없었던 그 바늘이었다. 예전과 똑 같은 것 같았다. 기억이 맞다 면 분명히 그랬다.


“…”


강원은 침대에 기대 이 나침밤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벽에 가로막혀 있어서 당장 뭔가 있는 거 같지는 않았다.


언제인지 기억도 안난 채로 끝났던 자신의 모험이, 지금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다.


“…갈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한 번 더 물었다. 질문의 대상자도, 답변의 대상자도 모두 자신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는 질문도 답도 바꿀 생각이 없었다.


“가자.”


강원은 얼른 병실의 커튼을 치고, 입원 환자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입원한 지 하루도 되지 않고 몇시간 지났을 분이었다.


곧 색을 바꾸고 있는 바깥의 배경을 살폈다. 밤이 오고 있었다. 낮은 잠시 밤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며 내일 오겠단 약속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수많은 배경의 색이 존재했는데, 이제는 하나의 색으로 점쳐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밤은 그저 볼 수 없는 시간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검은 색이 제 역할을 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음.”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딘가 멋져 보였다. 정말 오랜만에 새로운 모험을 나서는 선장처럼 느껴졌다.


그저 평범한 외출복이었지만, 이 모험이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서도 마지막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침반이 그저 고장나서 한 곳만 가리키는 거라면, 그래서 잘못된 길로 안내하는 거라면 어쩌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을 지도 몰랐다.


남은 생마저 짧다고 진단받은 자신이었지만, 이제는 그 남은 생 마저도 제대로 쓰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은 오히려 기대로 변해 용기가 되었다.


“생을 다 써야, 얻을 수 있는 게 있어.”


어디서 들은 말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문득 그 말이 자신의 기억속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싶은 게 생겼으니까 가야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병원 밖으로 향했다.


가장 찬란한 색의 배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밤을 환영하는 건지, 아니면 막으려고 애쓰는 건지 모를 주황의 빛이 온 세상을 물들게 하고 있었다.


푸른 빛과 조금은 검은 빛이 주황빛의 주변으로 흩어져 조각 모음을 하고 있었다.


“가보자.”


강원은 손에 꽉 쥔 나침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나침반이 갑자기 나타나서 가리키는 게 뭘까 싶었다.


처음 병원을 나서자, 시끌벅적했다. 사람들이 많은 거리였는데, 데이트 코스인지 연인들이 많이 지나가고 있었다.


“너랑 왔으면 좋았을텐데.”


아직 아프다는 말도 꺼내지 못한 그녀가 생각났다. 문득 강원은 오늘 그녀와 연락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휴대전화를 찾았는데 없었다. 병실에서 환자복 주머니에 넣어났던 게 떠올랐다.


다시 돌아갈까 싶다가 나침반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그냥 지금은 이곳으로 가자 생각했다.


“지갑은 있네.”


바깥으로 나갈 게 없으니까 따로 지갑은 빼놓지 않았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작은 행운이었을까.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리고 이 행운을 시작으로 앞으로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났으면 했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이 많이 지나치는 길거리, 포장도로임에도 불구하고 풀들이 자란 곳을 보게 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클로버를 발견한 강원은 별 생각 없이 다리를 오므려 클로버를 바라봤다.


그 안에 네 잎의 클로버가 보인 건 그저 운, 아주 작은 행운이었을 뿐이었다.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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