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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의 연기를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캐릭터 - 457

by 라한
서이의 연기를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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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키 서이의 연기를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진예슬

제목: 이루어진 사랑을


“반드시 찾을 꺼야.”


예슬을 슬픈 눈으로 바라본 그였다. 그러나 예슬은 그에게 침을 뱉았다.


“헛소리하지 말고 풀어!”


예슬은 그에게 납치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했다. 처음 본 모습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테블릿 속에서 두 사람은 아주 사랑스럽게 찍은 사진들이 가득이었다.


“도대체 그 놈이 널 어떻게. 어떻게 한건지 모르겠지만.”


그는 예슬이 뱉은 침을 닦아내며, 예슬을 바라봤다. 아주 슬픈 눈이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에슬과, 유강욱이라고 말하는 그와 사랑했던 사이였다.


그러나 예슬의 마음 속엔 진한밖에 없었다.


“얼른 나를 다시 데려다 줘. 그럼 없던 일로 다 용서해줄 게.”


기록은 있는데, 기억은 없는 자가 강욱이고, 기록은 없는데 기억도 없지만 사랑만은 확실한 자가 진한이었다.


“사랑의 신이 너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거야. 내가 반드시 그 놈을 찾아서, 네 사랑을 돌려놓을꺼야.”


환상에 빠진 이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달아나도 금방 따라와 붙잡을 뿐 포박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랑했던 그녀를 믿는 것처럼. 그러나 그런 기대에 늘 실망을 안기는 게 지금의 예슬이었다. 진한을 찾아 다시 돌아가려고 했고, 그럴 떄마다 언제나 다시 붙잡혀왔다.


“여긴 어디야. 도대체 뭔데.”


낯설지 않은 데, 낯선 곳이었다. 진한에게 가야하는데, 이 놈에게 붙잡혀 있을 시간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강욱의 말에 의하면, 과거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된 파리스가 아프로디테(비너스)에게 사과를 준 대가로 헬레네를 준 것처럼.


진한이 사랑의 신에게 사과를 준 것과 같이 신에 의해서 사랑을 예슬이 이렇게 된거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이 돼?”


예슬의 입장에선 말도 안 됐다. 진한이라는 존재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아주 우연히 만났던 그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강욱은 그런 예슬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안으려 다가, 예슬이 완강히 거부하자 그저 바라만 봤다.


강욱은 아내(헬레네)를 되찾으러 왔던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처럼 그저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을 되찾고 싶어했다.


강욱은 예슬을 데리고 낡은 카페로 향했다. 낯설지 않은 이름, 그러나 분명히 처음 본 간판이 걸린 그곳은 대학가 뒷골목에 숨어있었다.


"여기...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야."


예슬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카페를 둘러봤다.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벽에는 바랜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빼곡했다. 대학생들의 추억이 켜켜이 쌓인 곳이었다.


"기억나? 네가 여기서 카페라떼를 시켰어. 그런데 실수로 내 아메리카노를 가져갔지."


강욱이 창가 자리를 가리켰다.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그 자리. 테이블 위엔 누군가 새긴 하트 모양의 낙서가 있었다.


"그때 네가 한 말 기억나? '어머, 이거 제 거 아닌데요. 근데 맛있네요' 하면서 웃었잖아."


예슬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아주 잠깐, 희미한 잔상이 스쳤다.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당황하며 웃던 남자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날부터 였어.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 너는 늘 캐러멜 마키아토를 시켰고, 난 아메리카노를 마셨지. 시험기간엔 아이스로, 겨울엔 핫으로."


강욱이 핸드폰을 꺼냈다. 잠금화면엔 예슬의 사진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잠든 모습. 머리카락이 얼굴에 걸쳐있고, 볼펜 자국이 뺨에 찍혀있는 모습이었다.


“예쁘네.”


자기가 봐도 자기는 예뻤다.


"이 사진 찍을 때 너 진짜 화냈잖아. 못생기게 나왔다고. 근데 나한텐 제일 예뻤어."


사진첩을 열자 수백 장의 사진이 나타났다.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던 모습. 벚꽃 아래서 찍은 셀카. 해질녘 한강에서 라면을 먹던 순간. MT에서 술에 취해 노래하던 영상이 있었다.


"이게 다 거짓말이라고? 이 웃음이, 이 눈빛이 전부 가짜라고?"


예슬은 사진 속 자신을 봤다. 분명 자신인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 행복한 표정들. 강욱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눈빛. 볼에 입맞춤하는 사진에선 두 사람 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만!"


예슬이 소리쳤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무언가가 꿈틀거리듯 올라오려 했지만, 진한의 얼굴이 그것을 막았다. 진한과의 첫 만남, 그의 미소, 함께 걸었던 길들이 선명했다.


"도서관 3층 열람실 창가 자리. 우리 지정석이었어. 시험기간마다 김밥 사들고 갔지. 너는 참치김밥, 난 불고기김밥. 한 번은 네가 실수로 두 줄 다 참치김밥 사왔는데, 난 그냥 먹었어. 네가 사온 거니까."


강욱이 예슬의 손을 잡으려 했다. 예슬은 피했지만, 손끝이 스치는 순간 전기가 통하듯 무언가가 스쳤다. 따뜻하고 익숙한 감촉.


"생일날 한강 불꽃축제 봤잖아. 너무 추워서 내 패딩 같이 입고. 불꽃이 터질 때마다 네가 '우와' 하면서 감탄했어. 그때 네가 말했지. '강욱아, 우리 매년 오자. 할머니 할아버지 되어서도.'”


눈물이 강욱의 뺨을 타고 흘렀다. 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불꽃축제 팜플렛이었다. 구겨지고 바랜 종이. 뒷면엔 예슬의 글씨가 있었다.


- '강욱이랑 ♡ 20xx.xx.xx'


"크리스마스엔 스케이트장 갔다가 둘 다 못 타서 링크 벽만 잡고 돌았잖아. 그래도 재밌다고, 매년 오자고 약속했잖아. 네가 넘어질 때마다 '아야야' 하면서도 계속 웃었어."


예슬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왜 우는지 모르겠는데, 가슴이 아팠다. 진한을 사랑하는 마음은 확실한데, 왜 이렇게 아픈지. 이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하는 건과 싶었다. 다시 한 번 빠져나갈 생각을 했다.


"이 반지... 우리가 100일 때 맞춘 커플링이야. 너는 잃어버릴까봐 목걸이에 걸고 다녔지. 반지 안쪽에 뭐라고 새겨져 있는지 알아? 'Y&K Forever'."


강욱이 목에 걸린 체인을 보였다. 작은 은반지가 달려있었다. 예슬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목을 만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순간, 예슬의 가방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오래된 지갑. 학생증과 함께 끼워진 사진 한 장이 삐져나왔다.


증명사진 네 컷. 포토부스에서 찍은 흑백사진. 웃고, 찡그리고, 볼에 뽀뽀하고, 이마를 맞댄 두 사람. 아래엔 날짜가 적혀있었다.


- '20xx.xx.xx 우리 시작한 날'


"이건..."


예슬이 사진을 집어들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플래시처럼 스치는 기억들. 비 오던 날 우산 하나에 같이 들어가던 순간. 중간고사 끝나고 치킨에 맥주 마시던 날. 새벽까지 과제하다 서로 기대 잠들었던 도서관 앞에서 두 사람의 입술이 닿을 것 같은 환상이 스쳤다.


그 대상은 그러나 강욱이 아닌 진한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진한이가..."


예슬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두 개의 기억이 충돌했다. 강욱과 추억.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강욱은 테이블 위에 더 많은 증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함께 쓴 과제 표지, 둘이 나눠 쓴 필기 노트, 예슬이 강욱에게 준 손편지들도 있었다.


"이 편지 기억나? 군대 갔을 때 매주 써준 거.”


- [강욱아,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떡볶이 먹었어. 혼자 먹으니까 맛없더라. 빨리 전역해.]


편지를 펼치자 예슬의 둥근 글씨가 빼곡했다. 하트와 별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향수 냄새도 희미하게 났다.


"전역하고 첫 데이트 때 넌 울었어. 보고 싶었다고. 그때 내가 말했지. 이제 평생 떨어질 일 없다고."


강욱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도 기억을 되짚으며 아파하고 있었다.


"우리 동아리 방에서 처음 고백했잖아. 밤새 영화 보다가 둘만 남았을 때. 내가 용기 못 내고 있으니까 네가 먼저 '우리 사귈래?'라고."


카페 한쪽에 걸린 달력이 보였다. 오늘 날짜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누군가의 기념일인 듯했다.


예슬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갤러리를 열었다. 진한과의 사진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날짜가 모두 최근 몇 달 이내였다.


"진한이는... 진한이는 최근에 만났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운명이라고 생각했어."


강욱이 노트북을 꺼냈다. 예슬의 SNS 계정으로 로그인했다. 게시물들이 나타났다. 강욱과의 데이트 사진, 기념일 축하 글, 서로를 태그한 포스팅들이 가득이었다.


"이것도 다 조작이야? 댓글 단 친구들도, 좋아요 누른 사람들도?"


예슬은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자신의 계정이 맞았다. 하지만 이 기억들은 없었다.


"내가... 내가 미쳤나? 왜 기억이 안 나지?"


"아니야. 네가 미친 게 아니야. 뭔가... 뭔가 일어난 거야. 그 진한이라는 사람을 만난 뒤로."


강욱이 예슬의 어깨를 잡았다.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수 없었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우리 교수님도 기억하실 거야. 발표 과제 같이 했잖아. 교수님이 우리보고 환상의 팀이라고 하셨어. 기억나? 이렇게 손잡고 캠퍼스 걸었잖아."


순간, 예슬의 머릿속에 장면이 스쳤다. 가을 낙엽이 떨어지는 캠퍼스. 누군가와 손 잡고 걷는 자신. 행복했던 순간이 떠오르는 듯했다.


"기억나? 조금이라도?"


예슬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흔들었다. 잘 모르겠다는 듯이. 그저 진한이 보고 싶었다. 기다리고 있을 텐데, 더 이상 이 자와 이야기를 하는 게 자신에게 의미가 없을 거 같았다.


어떻게 이런 자료를 만들었는지 몰라도, 오히려 무서웠다. 이렇게 자신에게 집착하고 조작까지 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온 휴대전화를 바탕으로 112를 눌렀다.


“더 하면, 신고할 거야. 이제 오지마.”

“예슬아…”


강욱은 그런 예슬의 태도에 너무 놀랐다.


"예슬아."

“넌 지금 내게 스토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그렇게 예슬은 마침내 강욱의 곁을 떠날 수 있게 됐다. 얼른 후다닥 카페 문을 나갔다. 휴대전화를 돌려주려 안으로 던졌다.


그때, 예슬은 비록 보지 못했지만, 카페 안에서도 커피를 만들며 웃고 있는 두 사람의 사진, 그리고 사장으로 등록된 예슬, 그리고 역시 사장으로 등록된 강욱의 문서 역시 함께 있었다.


예슬이 떠나간 자리를 보며 강욱은 눈물이 쏟아졌다.


카페에 홀로 남은 강욱은 테이블 위의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사진, 편지, 선물들. 시간이 담긴 것들이었다.


"강욱 씨죠? 일이 잘못됐네요."


낯선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다.


"누구세요?"


"빼앗긴 황금 사과를 되찾아야죠.."


강욱은 빗속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비를 맞으며 달려가는 예슬의 모습이 보였다.


"기다려, 예슬아. 반드시 되찾을게. 우리의 사랑을."


이런 상황을 모르는 예슬은 진한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때 도로 쪽에서 누군가 예슬의 앞에 나타나 우산을 줬다. 그녀의 다른 손엔 이상하게 빛나는 사과 같은 게 있었다.


그러나 예슬의 눈엔, 그 사과보다 그녀의 얼굴이 더 아름다웠다. 미의 여신이 생존한다면 분명 이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면, 그 존재의 눈앞에 비치는 자신이었다.


“비 오는데, 우산을 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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