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마지막 월드컵을 향한 여정
내 이야기 좀 들어 볼래?
-손흥민, 마지막 월드컵을 향한 여정
첫 걸음 – 태극마크를 처음 달던 날
나는 열여덟의 나이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어.
2010년 12월, 시리아와의 친선경기에서 A대표팀 데뷔전을 치르던 날의 떨림은, 아직 생생히 기억나.
어린 소년이었던 내가 성인 대표팀 훈련캠프에 들어섰을 때,
눈 앞에 박지성, 이영표 같은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영웅들이 서 있는 거야.
가슴이 두근거려 한동안 말조차 제대로 붙이지 못했었어.
하지만 곧 선배들이 먼저 다가와 환영인사를 건네줬었어.
난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지.
"안녕하세요!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러자 박지성 선배가 환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해줬지.
"긴장하지 마. 우리 잘해보자."
그 한 마디에 얼어있던 마음이 조금 녹아내렸어.
그 대회 기간 동안 나는 꿈만 같은 일을 겪었어.
박지성 선배와 같은 방을 쓰게 된 거야.
'대선배와 룸메이트라니!'
밤이면 피곤할 텐데도, 나는 좀처럼 잠들 수 없었어.
혹시나 선배께 폐가 될까 봐 숨소리조차 죽이며 조심스레 숨을 쉬었지.
박지성 선배는 쉬는 시간에 3D 안경을 쓰고 아이패드로 예능 프로그램을 보곤 했는데,
난 같이 보고 싶다는 말도 못한 채 곁눈질로 눈치만 살폈어.
코를 골며 잠들었다가 선배에게 방해가 될까 봐,
일부러 엎드려 조용히 자기도 했다지.
(나중에야 웃으며 털어놓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밤이야.
불을 끄기 전에 박지성 선배가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어.
"흥민아, 넌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다."
캄캄한 방 안에서 들린 그 한 마디는 내 가슴에 전율처럼 울렸어.
너무 벅찬 나머지 나는 이불 속에서 몰래 눈물을 훔쳤지.
'내가 정말 한국 축구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가슴 한편이 벅차오르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막중한 책임감에 두려움도 밀려왔어.
며칠 뒤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이 개막했고,
나는 생애 처음으로 메이저대회에 뛰어들었어.
조별리그 인도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 골을 터뜨린 순간을 잊을 수 없지.
그때 내 나이 만 18세 194일.
한국 축구 역사상 A대표팀 최연소 득점 기록이었어.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자 가슴이 벅차올랐지.
골을 넣자마자 달려온 박지성 선배가 나를 번쩍 들어 안았고,
이영표 선배도 함박웃음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어.
경기 후 라커룸에서 이영표 선배는 장난스럽게 내 어깨를 감싸며 말했어.
"야, 흥민아. 대단한데? 근데 말이야, 내 이름 헷갈리면 안 돼. 영표야, 영표."
알고 보니 내가 긴장한 나머지 처음 합류했을 때 몇몇 선배들의 이름을 잘못 부르는 해프닝이 있었던 거야.
모두 함께 웃었지만,
어린 나에겐 그저 꿈결 같은 시간들의 연속이었어.
그 아시안컵에서 우리는 3위를 차지했어.
대회가 끝나던 날,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들었지.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박지성, 이영표 두 선배가 동시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거야.
마지막 경기 직후까지도 선배들은 밝은 얼굴로 후배들을 다독였지만,
나는 크게 놀라고 말았어.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 허전하고 불안했지.
"앞으로 우리가 잘 해야 할 텐데…"
하는 막연한 책임감이 어린 마음에 스쳤어.
내가 그때 할 수 있었던 것은 작지만 진심 어린 세리머니뿐이었어.
은퇴 경기가 끝난 뒤 그라운드를 돌고 있는 이영표 선배에게 다가가
나는 용기 내어 말했지.
"형, 업어드릴게요!"
그리고는 선배의 허리를 덥석 끌어안아 내 어깨 위로 번쩍 들어 올렸어.
등에는 커다란 태극기가 휘날렸지.
선배의 몸이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어.
수만 관중의 박수갈채 속에 나는 활짝 웃으며 전설과 함께 그라운드를 돌았어.
나중에 이영표 선배는 자신의 SNS에 그날의 사진을 올리며 말했다고 해.
"사과할게, 흥민아. 형 목말 태울 때 느낀 건데 하체 운동을 좀 더 해야겠더라. 안정감이 없어~"
모두 웃고 넘겼지만,
내 마음 한켠에는 뜨겁고 묵직한 무언가가 피어올랐어.
전설들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나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지.
이제 내가 그 바통을 이어받겠다.
"박지성의 후계자"라는 말이 내게 따라붙기 시작했고,
나는 그 의미가 얼마나 큰지 알기에
더욱 몸을 낮추고 이를 악물었어.
시간은 흐르고 흘러, 2014년.
스물두 살의 패기만으로 첫 월드컵 무대에 나섰어.
개최지는 축구의 성지 브라질.
남아공 월드컵의 영웅들이 떠난 뒤라 우리 팀엔 기성용, 구자철 형님들이 새로운 리더로 있었어.
전설의 수비수 홍명보 감독님이 지휘봉을 잡았고,
나는 어린 나이에도 당당히 선발 명단에 내 이름을 올렸지.
세계 무대의 압박감에 가슴이 뛰었지만,
"해보자!"라는 의욕으로 가득했어.
하지만 세계의 벽은 높고도 차가웠어.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러시아와 힘겨운 무승부를 거둔 데 이어,
두 번째 경기 알제리전에서 우리는 크게 흔들렸어.
전반에만 연달아 실점하며 끌려가자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지.
후반, 절박한 마음으로 뛰던 나는 가까스로 왼발 슈팅으로 월드컵 무대 첫 골을 뽑아냈어.
4만 관중의 함성 속에 골망을 가르며 뛰어난 공이 내 품에 안겼지.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
나는 공을 품고 황급히 센터서클로 달려갔어.
하지만 우리의 반격은 거기까지였어.
경기는 2-4 패배로 끝이 났지.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나는 그라운드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어.
뜨거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지.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울먹이는 목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왔어.
함께 뛰던 형들이 달려와 내 어깨를 감싸 안았지.
"고개 들어, 흥민아. 괜찮아. 끝까지 해보자."
형들은 나를 다독였지만,
쏟아지는 눈물을 도저히 멈출 수 없었어.
마지막 벨기에와의 경기마저 0-1로 석패하며 우리의 월드컵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어.
주심의 휘슬과 함께 난 다시 한 번 그라운드에 주저앉았지.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어.
주먹으로 잔디를 내리치며 통한의 눈물을 쏟아냈지.
어린 시절 "한국 축구의 미래"라 불리던 내가,
정작 월드컵 무대에서는 나라에 실망만 안겨드린 것만 같아
고개를 들 수 없었어.
경기가 끝난 뒤 라커룸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지.
홍명보 감독님이 내 곁으로 다가와 등을 토닥이며 작게 말씀하셨어.
"흥민아, 고개 들어.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거야."
그러나 그때의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어.
눈물에 범벅이 된 얼굴로 그저 "죄송합니다…"만 몇 번이고 되뇌었지.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인천공항에 도착한 우리 대표팀은 침묵 속에 고개를 숙여야 했어.
실망한 팬들의 싸늘한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지.
'다시는 지지 않도록, 더 강해져야 해.'
하지만 그 순간의 다짐은 너무나 막막하고 아프게 느껴졌어.
처음 맛본 월드컵의 쓴맛과 함께 흘린 눈물.
브라질에서의 통한은 내 가슴 깊숙이 상처로 남았지만,
동시에 더 단단히 각오를 새겨넣었어.
반드시 언젠가 이 한을 풀겠노라고.
브라질의 아픔을 간직한 채 돌아온 지 반 년 남짓,
이번에는 아시아 정상에 도전할 큰 무대가 찾아왔어.
2015년 1월 호주에서 열린 AFC 아시안컵.
우리는 55년 만의 우승을 향해 모두 하나된 마음으로 달려갔어.
나 역시 마음속으로 절치부심했지.
"이번만큼은 꼭…"
대표팀의 모든 선수들이 그런 간절함으로 똘똘 뭉쳐 있었어.
새로 부임한 울리 슈틸리케 감독님의 지휘 아래,
주장 완장은 기성용 형이 찼지.
나는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팀의 공격을 이끌고 싶었어.
조별리그부터 치열한 승부가 이어졌어.
쉽지 않은 경기들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승리를 쌓아나갔어.
나는 대회에서 연일 공격 포인트를 올리며 활약했지.
8강, 4강을 거쳐 마침내 결승에 올랐고,
상대는 개최국 호주로 정해졌어.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 2015년 1월 31일.
76,000여 관중의 함성은 귓전을 때렸고,
나는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감에 싸여 있었지.
전반전에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가던 우리는
후반 들어 사력을 다해 호주의 골문을 두드렸어.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후반 추가시간에 접어들었지.
벤치에서 "마지막 공격!"이라는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어.
그 순간 기적 같은 기회가 찾아왔지.
이근호 형의 패스가 내 발 앞으로 연결되었어.
나는 곧바로 페널티박스로 파고들며 왼발을 힘껏 휘둘렀지.
공이 골망을 흔드는 순간,
믿기지 않는 듯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져나왔어.
극적인 동점골!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코너 플래그 쪽으로 달려가
유니폼의 태극마크에 입을 맞췄지.
관중석의 교민들, 벤치의 동료들 할 것 없이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어.
승부는 연장전으로 이어졌어.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에 빌었지.
'제발, 이번엔 우승컵을 들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나 축구의 신은 우리를 또 한 번 시험에 들게 했어.
연장 후반, 상대의 한 방이 우리 골문을 갈랐지.
1-2.
남은 시간은 거의 없었어.
종료 휘슬이 울리자 나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어.
눈앞이 캄캄했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뜨거운 눈물을 쏟았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잔디 위에 주저앉은 내 어깨 위로 동료들이 손을 얹으며 일으키려 했지만,
쉽게 일어서지지 않았어.
'또 졌어… 또….'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지.
한쪽에서는 호주 선수들이 우승 세리머니를 준비하고 있었어.
눈앞에서 트로피를 빼앗긴 듯한 기분,
노력의 보상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린 허탈감….
나는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기만 했어.
내 울음소리를 들었는지,
차두리 형이 달려와 내 어깨를 힘껏 끌어안았지.
형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터였어.
차두리 형은 흐느끼는 나를 꼭 끌어안고 말했어.
"흥민아,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네가 있어서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야."
하지만 나는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되뇌었지.
"형… 제가 마지막에 더 잘했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해요…."
말을 잇지 못하고 울부짖는 내 등을 형은 토닥여 줬어.
준우승 메달을 목에 건 채 치른 시상식 인터뷰에서,
나는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마이크를 잡았지.
그리고 말했어.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다… 너무 죄송하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는데… 우리의 실수로 이렇게 돼 정말 죄송하다"
내 목소리는 떨렸고,
눈물이 다시 북받쳐 올랐어.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얼굴을 두 손에 묻은 채 한참을 오열했지.
보상받지 못한 슬픔의 눈물.
55년 만의 우승을 눈앞에서 놓친 아쉬움과 한이
내 가슴 깊숙이 응어리졌어.
돌아오는 귀국길,
실망한 일부 팬들은 우리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냈어.
나 역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지.
"한국 축구의 에이스"라 불리면서도 우승컵을 들지 못하는 현실…
국민들께 얼마나 죄송한지 모르겠어.
취재진이 몰려들어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
나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어.
그러나 속내는 타는 듯이 쓰라렸지.
비행기에서 단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창밖만 바라보았어.
창에 비친 내 얼굴은 초라해 보였어.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지.
속으로 수없이 다짐했어.
'두 번의 눈물을 반드시 나중에 보상받을 날이 올 거야… 반드시.'
그 다짐만이 스스로를 지탱해주고 있었어.
세월은 흘러 2018년,
나의 두 번째 월드컵이 찾아왔어.
이제 나는 어린 신예가 아닌 팀의 에이스로 성장해 있었지.
신태용 감독님의 지휘 아래,
나는 한층 성숙한 각오로 러시아 월드컵에 임했어.
그러나 월드컵의 무게는 여전히 만만치 않았어.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우리가 스웨덴에 석패하자
팀 분위기가 가라앉았지.
그래도 감독님은 우리를 다독이며 말씀하셨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두 번째 멕시코전,
우리는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섰어.
하지만 경기 흐름은 좀처럼 우리 쪽으로 오지 않았어.
상대의 빠르고 조직적인 플레이에 고전하며
0-2로 뒤진 채 후반 추가시간을 맞았지.
절망감이 밀려왔지만,
나는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
종료 직전, 페널티박스 오른쪽 모서리 부근에서 기회가 찾아왔어.
내 앞에 떨어진 공을 보고 본능적으로 왼발을 힘껏 휘둘렀지.
공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골문 구석에 빨려 들어갔어!
내 월드컵 첫 환상적인 중거리 골이었지.
극적인 만회골을 뽑아냈지만 기쁨도 잠시,
경기는 1-2로 끝나고 말았어.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엉엉 울었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지.
등번호 7번이 박힌 내 붉은 유니폼으로 얼굴을 닦아보았지만,
눈물과 땀에 뒤범벅된 얼굴은 한동안 굳은 채 떨어질 줄 몰랐어.
경기 후 라커룸에는 침묵이 흘렀어.
그때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직접 찾아와 선수들을 일일이 위로해주셨다고 해.
대통령님 앞에서도 나는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해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지.
"아직 한 경기 남았다"는 격려를 들었지만,
눈물로 범벅이 된 내 표정은 하늘빛처럼 어두웠을 거야.
(훗날 대통령님께서 라커룸에서 내 어깨를 감싸며 위로해주던 장면이 사진으로 보도되기도 했어.)
온 국민이 지켜보는 월드컵에서 연이어 패배한 현실이
너무도 가슴 아팠어.
머릿속은 '죄송합니다'라는 말 뿐이었지.
하지만 아직 마지막 한 경기가 남아 있었어.
남은 상대는 다름 아닌 세계 최강 독일.
조별리그 2패의 상황에서 아무도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
그렇기에 우리는 오히려 담담해질 수 있었어.
'후회 없이 뛰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쏟아붓자.'
벼랑 끝에서 우리는 하나로 뭉쳤어.
경기 당일, 신태용 감독님은 라커룸에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어.
"뛰고 죽어라. 그러면 분명 얻는 게 있을 거다."
주장 기성용 형의 부상 결장으로 나는 그 경기에 주장완장을 차게 되었지.
감독님이 내 팔에 직접 완장을 채워주시며 진지하게 눈을 마주보셨어.
완장의 무게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졌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어.
결전의 무대, 카잔 아레나의 열기는 뜨거웠어.
우리는 시작부터 한 발 한 발 악착같이 뛰었지.
골키퍼 조현우의 미친 선방,
수비진의 몸을 던지는 투혼으로 실점 없이 버텼어.
그리고 후반 추가시간,
기적 같은 드라마가 펼쳐졌지.
0-0으로 팽팽하던 경기,
코너킥 혼전 중에 김영권 형의 골로 우리가 1-0 리드를 잡은 거야!
벤치와 관중석이 들끓었어.
나도 온몸의 감각이 마비된 듯 그라운드를 뛰고 또 뛰었지.
상대 골키퍼 노이어까지 우리 진영까지 올라와 총공세를 펼치던 마지막 순간,
마치 슬로우 모션 영화처럼 내 눈앞에 결정적인 장면이 찾아왔어.
우리 수비가 걷어낸 공이 하프라인 부근에 있던 내 앞으로 굴러온 거야.
나는 있는 힘껏 공을 몰고 질주했어.
빈 골대를 향해 50미터, 40미터…
독일 수비수들이 뒤쫓았지만 내 의지를 꺾을 순 없었어.
골키퍼보다 반 박자 빠르게 공을 따라 들어선 나는
곧바로 오른발 슛을 시도했지.
텅 빈 골대를 향해 굴러가던 공이 골라인을 넘어가는 순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어.
2-0!
우리는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며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무너뜨렸어.
그 순간 그라운드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어.
주변의 동료들은 서로 얼싸안고 승리의 환호를 질렀지.
나 역시 동료들과 부둥켜안고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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