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472
미요시 아야카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三吉彩花の出演を想像して作ってみるキャラクター
이름: 히나가마 토코 (火長窯 陶子 / ひながま とうこ)
제목: 이어진 자기
“칸코쿠(かんこく)”
옆에서 토코의 말을 듣던 토나와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똑바로 말해. 발음도 다 할 줄 알면서.”
“한국이야!”
히나가마 토코, 그리고 히나가마 토나와는 남매였다. 누나를 지켜야 한다는 부모님의 당부로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강제로 이주 당한 게 토나와였다.
“누나는 어째서, 꼭 한국이어야만 해. 이미 우리나라에서 부모님의 가업을 잘 이어받으면.”
“언제까지. 부모님에게 기댈 수는 없는 거잖아. 이 참에 너도, 잘 해봐. 한국에서도 웹툰이 유행이잖아.”
토나와는 그림을 잘 그렸고, 일본에서 만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의 만화를 알아보고 연재하자는 출판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도 알아서 잘 할 거라고!”
사실 토나와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지만, 웹툰의 본고장인 한국에서는 자신의 작품을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였다.
“그래, 토나와, 너는 너 알아서 잘 할거니까. 이제 혼자선 무리인 이 누나를 좀 도우라고.”
“아니. 그런 말이. 그런 말이 아니잖아”
“아니면 부모님께 동생인 토나와가 말썽을 피워서 돌려보내야 겠다고.”
“알았어. 알았다고!”
토나와는 마치 정치인 같이 고단수인 누나가 무서웠다. 수백 년 전 자신들의 조상이 일본으로 강제로 이끌려 왔을 때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사실 강제로 이주되긴 했어도, 일본에서는 조선의 도자기공에게 높은 지위와 대우를 해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잘 살아남은 게 바로 우리 가문 히나가마였다. 부모님들도 수 대째 이어오는 도자기공이었고, 토코도 토나와도 어렸을 때부터 도자기를 만드는 실력은 피를 속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데, 그 실력이 문제였다. 토나와는 그런 실력을 가지고도 가업을 잇기 보다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했고, 토코는 새로운 도전을 원했다.
“단순한 가업을 잇는 것만으로 안 돼. 이어진 명성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그렇게 토코는 돌연 가족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한국 진출을 선언했다. 단순한 진출이 아니라, 도자기를 잘 만들어 한국에서 성공해보겠다는 이야기였다.
토나와는 토코를 도우면서 한국의 만화에 대해서 배우다 좌절했다. 한국의 만화는 거의 전멸하다 싶이한 현실을 마주한 것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외주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실력이 좋은 것도 같지만, 자체 산업은 거의 망했다 시 피 한 것이었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로 성공하려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 그나마 유아용 만화책들이 선행했으며, 그 외는 거의 모든 부분은 웹툰으로 쏠려 있었다.
“웹툰인가.”
그러나 그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누나 때문이었다. 처음 자리를 잡기 전에는 그래도 토나와에게 시간이 있어서 웹툰을 그리고, 한국에서 유행하는 인스타툰을 그려보며 자신의 그림 실력을 키워가고 주목도 받기 시작했다.
문제는 누나가 자리를 잡고, 성공을 하면서부터였다. 누나를 돕는다는 이유로 한국에 왔었기 때문에 누나의 일을 도와야 했던 토나와에게 개인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토나오네 정말.”
우연히 알게 된 자신의 이름이 한국발음으로 비명을 지른 다는 걸 알게 된 후, 토나와도, 토코도 자주 애용하기 시작했다. 토나와는 처음에는 싫어했지만, 누나인 토코의 의견을 듣고서부터는 달라졌다.
자신의 가족의 이름이 섞여서 였을까, 토코는 토나와가 뭔가 귀엽다고 했다. 어렸을 때 토나와의 기억에는 전혀 없는, 토코가 토나와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밥도 떠먹이고 했던 기억들 때문이라 하는데, 믿을 수 있는 증거가 있기 때문에, 동영상으로 찍혀버린 그 모습 때문에 부정은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토나와는 기록의 무서움을 몸소 체감한 인물이었기에, 토코의 모습을 기록했다. 그가 도자기를 만드는 모습을, 그리고 도자기 위에 오직 단 하나 밖에 없는 그림을 새겨보는 모습을, 곧 그 그림을 새기는 게 자신의 역할이 되었을 때도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대단하네 누나.”
“이제 시작이지.”
“허.”
혀를 내두르며 자신을 바라보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이제 첫발을 떼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토코였다.
어떻게 한국에서 토코의 도자기를 알릴까 고민했다. 처음부터 크게 도전하면 처음부터 된 창 망할 거 같아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어떻게 해야할까.”
그래서 동생한테는 이야기하지 않은 채, 매일 밤을 새워가며 고민하고 도전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는 도자기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도자기 공방은 얼마나 되고, 만드는 모습, 유통과정 마저도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가장 충격 받은 건, 다있오! 라고 하는 한국 전국에 퍼진 저가형 프랜차이즈 매장에서였다.
“이 가격에, 이 품질을 판다고?”
장인들 위주의 일본 보다는, 공장제 위주인 한국의 도자기들을 만나면서 토코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판매양을 늘려서 유명해지는 건 애초에 도전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오히려 토코의 전략은 그릇을 파는 판매점에서였다.
프랑스나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에서 만든 문양이 새겨진 수십만원의 그릇을 세트로 사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였다.
“수요가. 다있소급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많아.”
일본도 마찬가지였지만, 품질이 보장되면 팔린다. 다만 무조건 좋은 품질이 아니라, 이름이 중요했다.
그렇게 동생과 협력해서 자신이 만드는 도자기가 최고의 도자기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나 대단해! 라고 말하기 보다는 한국의 도자기 장인 도공들을 찾아갔다. 거기서 명인이라고 해서 국가에서 공인한 엄청난 장인들도 만나게 된 토코였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왔다고 하니까, 말도 섞지 않으려는 어른들이 있었는데, 자신의 역사를 말하니, 갑자기 두 손을 꼭 잡으며 딸처럼 예뻐 해주는 모습이 있었다. 토코는 한국인들이 정에 약하다는 걸 인지하고 이를 잘 이용하면서, 일본에서 잘 살고 있는 부모님을 뒤로 한 채, 한국에서 열심히 살아 보려는 남매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돌연 SNS에서 도자기 빗는 일본 여신, 그런데 조선에 끌려간 도자기공의 후예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그러다 보니 유명 뉴튜브에서는 토코의 방송출연을 검토하기도 했고, 그럴 때 마다 기회가 될 때 마다 토코는 주저하지 않고 방송에 출연했다.
그리고, 오직 단 하나밖에 없는 도자기들을 만들어 갔고, 동생의 그림을 더해서 출연한 프로그램의 제작진이나 시청자 등에게 아낌없이 선물했다.
맨땅에 헤딩이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는 흙수저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일본에서 나름 부유한 도자기 수저였던 그녀는 자신의 그런 뒷 배경을 굳이 밝히진 않았지만 있는대로 이용했다.
가끔 반일 감정이 올라오는 시기에는 이제, 일본인이라는 정체성 보다는 수백년만에 귀향한 강제로 끌려간 도자기 장인의 후손이라는 이미지를 이용했다.
사실 조상들이 실제로 어떻게 끌려왔는지는 역사에 관심이 없던 토코는 몰랐다. 그냥 자신이 이로운대로 이용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오래전부터 한국에 오고 싶었던 이유가 이런 이유에도 섞여 있지 않나 싶었다. 왜냐면 토코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저도 예의를 차려야 하는 일본이 답답했다.
사실 그게 답답한 마음인지 몰랐는데, 한국에 와서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깨 달았다.
“일본은, 너무 예의범절이야. 그냥 폐만 안 끼치면 그만이지!”
그래서 사실 크게 다른 건 없었지만, 보이지 않는 시선 마저도 신경 써야 할 것 같았던 분위기인 일본 보다, 겉모습만 신경 쓰면 되는 한국이 더 좋았다.
한국에서는 조상들이, 그리고 지금 자신이, 그리고 일본에서는 정유재란 이후부터 부모님까지 양국에서 모두 살았기에 한국이의 후손이면서 일본인이면서 이제는 한국인이기도 한 토코는 그렇게 한국에 잘 적응해갔다.
“이제, 진짜로 내 간판을 달아야지.”
토코가 한국에서 이루어내겠다는 진짜 목표, 한국에서 도자기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이제는 진짜로 실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도 마케팅으로 이용하면서 동생과 함께 이제는 자신의 팬들이 된 사람들에게 어떤 이름이 좋을까 물어봤다.
답은 사실 정해져 있었다. 이제 팬들 중 그 이름에 비슷한 이름을 꺼내기만 하면 됐다.
“오늘도, 누나의 답은 나오지 않았네.”
며칠 째, 토코는 자신의 가게 이름을 고민중이라는 라이브 방송을 했는데, 모두가 아직 토코의 마음에 드는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렇다고, 내가 문득 이걸로 해야겠다 하면 안돼. 조금 만 더 참아보자.”
토코의 동생은 여전히 고개를 휘저으며 저 누나 왜 저래하며 생각했다. 역시 한국으로 올때부터 지금까지 고집불통의 원형이었다. 사실 그건 도자기공이라면 거의 모두가 유전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신 역시 마찬가지긴 했다. 한 번 정한 답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꿔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가게 이름을 뭐로 하려고 했엇지.”
“카마토엔 (かまとえん)”
“한국어로 도자기 정원인건가.”
어느새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로도 평소에 말하게 된 두 남매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서로를 쳐다봤다.
“성웅이 우리를 한국인으로 볼까, 일본인으로 볼까.”
요즘 SNS에서 유행하고 있는 이순신 장군이었다. 당시 선조들에겐 불쌍하게 끌려간 조선 백성들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정말로 자신들의 조상이였으니까.
그러다 지금은 일본에서 쭉 살아 오다가, 일본인의 정체성도 버리지 않은 채 한국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도자기공의 후손이었다.
“알게 뭐람. 훌륭한 장군이지. 12척의 배로도 144척의 배를 보고 쫄지 않은!”
누나인 토코는, 이순신의 기개를 배워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일본말이 그렇게 박힌 게, 한국팬들에겐 안나올 거 같은데. 일본 팬들에겐 나올지도?”
“음. 안돼. 안돼. 한국인들 입에서 들어야해.”
“우우우, 그 고집 우우우.”
“이 고집이 널 먹여살리고 있다 꼬마. 아니면 나가라 집!”
“오오. 멋진 누나. 도자기 장인!”
“한국의 장인에, 명인에 나도 도전할 수 있으려나.”
토코는 문득 동생이 내뱉은 말에 프랜차이즈 도자기 판매점을 만든 이후의 방향을 생각했다.
그냥 예쁜, 특색 있는, 멋 있는 도자기들을 잘 팔아서 대성공하는 게 끝이 아니라, 그 이후에는 명인이 되는 것이 꽤나 멋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꼭 한국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일본에서도 명장이 되고, 한국에서도 명인이 되어 양국에서 최고의 도자기공이 되는 일은, 꽤나 멋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한국 도자기 장인들을 찾아갔던 기억과, 어렸을 때 일본 도자기장인인 부모님에게 도자기를 배웠던 모습이 필름처럼 스쳤다.
자신이 처음 만든 도자기를 보며 실망했지만, 애써 숨기며 칭찬하던 부모님의 두 얼굴 마저도 함께 떠올랐다.
그리고 토코는 자기 딸이든, 아들이든, 아이가 도자기를 만들었을 때, 처음의 작품이 미완성에 가까워도 절대로 그 표정을 들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