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는 과학고의 대학버전'이라는 소문에도 굴하지 않고, 카이스트를 선택해 카이스트 라이프를 즐기던 아들이 잠깐 멈춰 선 적이 있다.
"요즘 만사가 실패투성이에요."
"실패?"
"노력했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 실패로 인해 자존감이 무너질까 봐 무의식적으로 방어적인 행동을 하거나, 작은 실패일 뿐인데도 그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한테 화가 나는 일이 많아요."
카이스트 1년 차일 때는 과학고를 다닌 영향으로 특별한 노력 없이도 성적이 잘 나왔던 것 같고, 과학고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난 2학년과 3학년때는 동아리 활동(카이스트 응원단 ELKA)으로 공부보다는 '낭만과 열정'을 선택했으니 성적이 조금 덜 나와도 만족했는데, 엘카(ELKA) 활동이 끝난 시점에도 성적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자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선택과 행동, 결과들을 모두 '실패'라고 간주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아이의 삶에 '실패'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과학고를 가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영재교육원에 들어가는 일, 과학고 입시를 치르는 일, 과학고에서 원하는 등수에 들어가는 일, 그리고 카이스트에 입학하는 일. 뭐 하나 쉬운 일은 없었지만 결국엔 해냈고, 지금에 이르렀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자괴감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날 새벽 4시까지 이어진 아이의 하소연은 앞만 바라보고 달리다 넘어진 어린아이 같았다.
이럴 때 나는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어야 하는지, 혼자 일어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우며 곁을 지켜주면 되는 것인지 참 마음이 심란했던 것 같다.
걱정스러운 마음 때문에 그 새벽, 잠 못 이루며 아이의 하소연을 들어주며 감정형(F)인 엄마가 사고형(T)인 아들에게 어떤 솔루션을 주는 게 도움이 될까 고민했는데, 역시나 울 아들은 자존감이 높고 내면이 단단한 아이였다. 나는 그저 아이의 고민과 하소연을 들어주었을 뿐인데,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하며 바닥으로 떨어진 자존감을 챙겼고,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아 실패투성이(?)의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며 다시금 근자감(?) 가득한 아이로 돌아왔다.
다행히 울 아들의 방황은 짧고 굵게 끝났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비단 울 아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분명 다른 카이스트생들도 '실패'를 두려워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을 것이고, 더불어 많은 '도전' 앞에서 망설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카이스트는 이런 학생들의 '실패'와 '도전'을 사랑한다.
카이스트에는 실패연구소가 있다.
카이스트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는 과감한 도전정신을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2021년 6월에 설립되었다. 실패연구소가 주로 하는 일은 실패사례를 발굴하고 분석하는 것, 실패지식을 체계화하고 자산화하는 것, 실패지식을 공유하고 확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실패 연구소에서 해 왔던 굵직굵직한 일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실패 연구소 에세이 및 동영상 공모전 : ~ 2022. 5. 16.
∎ 제2회 재도전 국제포럼* : 2022. 10. 13.
* 재도전 국제포럼(Rechallenge International Forum) :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는 실패박람회의 일환으로 2021년부터 세계 실패의 날(10월 13일)에 개최하고 있는 포럼
∎ 2022 가을학기 실패 세미나 : 2022. 11. 3.
∎ 2023 봄학기 실패 세미나 : 2023. 4. 26.
∎ 2023 KAISTian Failure Story 에세이 공모전 : ~ 2023. 7. 31.
∎ 2023 KAIST 실패 주간 : 2023. 10. 23. ~ 11. 3.
∎ 2023 가을학기 실패 세미나 : 2023. 11. 3.
∎ 2024 봄학기 실패 세미나 : 2024. 4. 23.
∎ 2024 KAISTian 실패 에세이 공모전 : ~ 2024. 7. 31.
∎ 실패 포토보이스 2024 사진 공모 : ~ 2024. 8. 31.
∎ 2024 KAIST 실패 학회 : 2024. 11. 8. ~ 11. 20.
∎ 2025 KAIST 실패 포토보이스 : 2025. 4. 28. ~ 5. 7.
특히, 실패 주간(실패 학회)에는 '망한 과제 자랑대회'를 열어 실패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성공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임을, 함께 공감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그렇다면, 카이스트 구성원(학생, 교원, 직원)들은 '실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2022년 실패연구소에서 카이스트 구성원의 실패 태도 및 조직 차원의 실패용인 문화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적이 있다. 총 609명, 학부생 152명(25%), 대학원생 295명(48.4%), 교수 40명(6.6%), 직원 122명(20%)을 대상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 긍정 심리 자본, 심리적 안전감, 실패학습문화 등을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출처 : KAIST 실패연구소, 2022 KAIST 구성원 실패인식 조사).
1) 실패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전반적인 두려움은 대학원생이 가장 높았지만, 세부 항목별로 살펴보면, 능력에 대한 의심,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등은 학부생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2) 긍정 심리 자본(Positive Psychological Capital)
개인의 목표를 달성하고 성과를 향상할 수 있는 긍정적 심리상태를 살펴보면, 모든 항목에서 교수 집단이 가장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회복탄력성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 항목들에서 대학원생 집단이 가장 낮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3) 심리적 안전감
구성원이 자각하는 카이스트의 조직문화에 대한 평가인 '심리적 안전감'에서는 학부생과 대학원생의 심리적 안전감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구성원이 솔직한 의견이나 부족한 점을 드러내도 무시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조직이 실패를 용인하고 도전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4) 실패학습문화
실패학습문화란 조직이나 부서 내에서 구성원들이 문제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구성원 스스로가 해결하여 완수할 수 있고, 공개적으로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 공유하고, 개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는 가를 의미하는데, 카이스트 대학원생들 소속 연구실의 실패학습문화의 정도를 평가한 결과, 모든 항목에서 70% 이상이 '그런 편'이라는 응답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카이스트는 젊은 인재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여 새로운 지식을 만들고, 그 지식이 가치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창의와 도전의 과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1980년대 메디슨 큐닉스 등 국내 벤처 1세대를 시작으로 1990년대 네이버, 넥슨 등 국내 주요 IT 기업 창업가를 배출했고, 지금도 많은 스타트업을 양성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1) Startup KAIST(카이스트 창업원)
2014년 4월 오픈한 기관으로 'Stop Thinking, Start Doing'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캠퍼스 내에 기업가정신을 고취하고, Startup이 생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Startup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카이스트 창업원은 카이스트 교원, 학생,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특히 학생(예비) 창업자를 대상으로 E*5 KAIST, Startup Clup, W8 Garage, 과기특성화대 공동사업, KAIST MAKE-A-THON 등과 같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① E*5 KAIST
(Core 트랙) 카이스트 재(휴)학생을 1인 이상 포함한 (예비) 창업팀 또는 개인에게 활동지원(자금, 사업화 관련 교육 및 멘토링, 전문가 자문, 업무 공간 지원) 및 후속 지원(네트워킹, 사업화 후속 지원) 등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② Startup Clup
창업을 목적으로 개설된 카이스트 창업 학생 동아리의 활동비를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③ W8 Garage
카이스트 재(휴)학생 1인 이상이 포함된 (예비) 창업팀 또는 개인에게 창업활동을 위한 팀별 공간 배정 및 공용 공간을 제공해 주는 사업이다.
④ 과기특성화대 공동사업
과기특성화대학의 유망 창업팀들을 대상으로 공동 창업경진대회를 개최하여 대학 간 창업 네트워크 강화 및 선의의 창업경쟁을 촉발하는 사업이다.
⑤ KAIST MAKE-A-THON
카이스트 재(휴)학생을 대상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실체화/제품화를 위한 시제품 제작 인프라 지원 제작 경진대회를 개최하여 재료, 시제품 제작 관련 전문 멘토링 지원, 메이커 스페이스 장비 사용 교육, 상금 수여 등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카이스트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매년 카이스트 출신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2025년 5월 2일 기준, TIPS* 선정(2024. 7. ~ 9.) 기업 중 카이스트 출신 기업은 다음과 같다.
* 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는 세계시장을 선도할 기술 아이템을 보유한 창업팀을 집중 육성하는 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으로서, 자금뿐만 아니라 운영사의 보육, 후속투자 유치 등 창업팀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지원을 통해 성공적인 사업화를 지원하고 있다.
2) Ideas Factory(아이디어 팩토리)
아이디어 팩토리는 Startup KAIST(카이스트 창업원) 산하 창업지원센터에 소속되어 있다.
카이스트 전 학과가 이용할 수 있는 협업형 프로토타입 제작공간으로 학생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토타입 제작 세미나, 프로그램, 멘토링 시스템 등을 제공한다.
면허교육부터, 장비 및 프로그램 대여, 각종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3D Printing Zone, Advanced Printing Zone, Assembly Zone, Laser Cutting Zone, Machining Zone, Woodworking Zone) 등을 예약해서 활용할 수 있다.
3) K-SCHOOL
카이스트의 우수한 공학교육에 기업가정신*을 접목하여, 미래 사회를 이끌 창업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2016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설립되었다.
*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 21세기 인류와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학기술에도 창의성(Creativity)과 도전정신(Challenge)을 함양해야 하고, 창의와 도전을 겸비한 공학기술은 혁신(innovation)으로 발현되어 인류의 삶에 기여하는 가치를 만드는데, 그 혁신의 밑바탕에서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기업가정신이다.
K-School의 주요 역할은 학부생들에게는 기업가정신 부전공을 통해 기업가정신과 경영 이론을 교육하고, 대학원생에게는 창업에 특화된 창업전문융합석사과정*을 제공하며, 카이스트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기업가정신과 혁신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기초 교육과 세미나를 운영하여 도전 정신과 사회경제적 가치 창출을 위한 창업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 창업전문융합석사과정 : 1년짜리 전문석사과정(관련 내용은 차후 설명 예정)
실패와 도전을 사랑하는 카이스트는 '실패 = 그럴 수 있지'라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 새로운 도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카이스트만의 분위기가 곧 카이스트의 저력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실패? Why not!
아이가 '실패'라는 단어를 쓸 때마다, 나는 '실수'라는 단어로 정정해 주었었다.
일반적으로 실수는 의도치 않게 발생하고 작은 결과를 초래하지만, 실패는 의도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결과로 발생하고 더 큰 영향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실패'라는 단어보다는 '실수'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젠슨 황(엔비디아 CEO)도 실패를 대하는 태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한다.
실패를 실수라고 생각할 때, 성공에 가까워진다.
젠슨 황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떤 일을 실패했을 때 그 실패를 축소하고 은폐하라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안에서 배울 점을 찾아내려고 함으로써 진정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해보길 권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20대라서 누릴 수 있는 '도전'의 용기를 내어보길 바란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