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 첫 중간고사가 남긴 것 (2)

고등 편

by My Way

시험은 3일에 걸쳐 치러졌습니다.

아이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오전에는 시험을 보고 오후에는 다음날 시험을 준비하는 일정으로, 집이 아닌 학교 안에서 온전히 시험에 집중하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대부분의 과목은 50분 동안 치러졌지만, 수학은 100분 시험이었고, 서술형 문항의 비중이 중학교 때보다 훨씬 높았다는 점이 특히 다르게 느껴졌던 것 같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시험기간 동안 학생들이 충분히 공부할 수 있도록 평소보다 늦은 시간까지 자율학습을 허용했고, 새벽 2시에 완전 소등이 이루어졌습니다. 아이들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공부시간을 조절하며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각 과목별 시험 결과는 시험이 끝난 직후 바로 공개되었던 듯했지만, 당시 학교에서는 중간고사가 끝날 때까지 휴대폰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부모인 저희는 아이가 어떤 점수를 받았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후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는 휴대폰 사용이 허용되어 아이가 점수를 바로 알려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늘 "지나간 시험보다, 내일 해야 할 일에 집중해"라는 조언을 했고, 아이 또한 중학교때와 마찬가지로, 당장의 점수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중간고사도, 혼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다음 시험을 준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치러낸 첫 중간고사의 최종 종합 결과는, 시험이 끝난 뒤 약 열흘이 지나서야 공개되었습니다.

그 사이, 학교에서는 시험 마지막 날 아이들을 일괄 귀가시킨 뒤, 다음 날 다시 등교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시험 다음 날에는 공부도, 과제도, 전자기기 사용도 모두 금지된 채 하루를 보내는 '그냥 하루'라는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며 쌓았던 긴장을 풀고, 숨을 고를 수 있도록 마련된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과학고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며 운동을 하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보드게임을 하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험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아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쉼이었을 것입니다.


아이가 과학고에서 치른 첫 시험 결과를 받아 든 날은 금요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각자 캐리어와 흰 봉투 하나를 들고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그 봉투를 보는 순간, 제 가슴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시험을 치르기 전, 저는 스스로 여러 번 다짐을 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놀라지 말자고.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아이가 얼마나 성실하게 준비해 왔는지 알고 있으면서, 결과에 실망하는 것은 아이의 시간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아이가 결과지를 받아 든 모습을 마주하자,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차에 올라탄 뒤에도 흰 봉투를 손에 꼭 쥔 채,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출발하기 전 성적표를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을 아이의 표정을 먼저 살폈고, 결국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그대로 차를 출발시켰습니다.

잠시 후,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저는요. 중간고사 치기 전까지 과학고 공부에 적응하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그런데 과학고에서는 학원의 도움 없이 혼자 공부하는 게 중학교 때보다 훨씬 힘들었던 것 같아요. 수업 진도가 나가기 시작하면서 해야 할 공부도 많아졌고, 점점 더 어려워졌고요. 주변을 보니까 수학이나 과학에서 넘사벽인 애들도 정말 많더라고요. 그래서, 최선은 다하되 시험 등수나 성적에 연연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어요."

"그랬구나."


아이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습니다.


"사실 수업 내용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는데, 막상 시험을 치르고 나니까 시험은 또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들도 시험이 어려웠다고 말하긴 했지만, 저보다는 잘 쳤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목표를 80명 중에 60등 정도로 잡았어요. 그 정도면 나름 선방한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60?!"


아이가 '예상 등수'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60'이라는 숫자를 듣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껏 아이의 성적표에서 '60'이라는 숫자를 본 적이 없었기에, 그 숫자가 등수라는 사실은 더욱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 숫자는 저에게도 처음이었지만, 아이에게는 더 낯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제 감정이 아니라, 이 결과를 마주한 아이의 마음이었습니다. 운전을 하며 몇 번이고 곁눈질로 아이의 표정을 살폈지만, 아이의 얼굴에서는 어떤 감정도 쉽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담담한 것인지, 애써 담담한 척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마음의 준비를 끝낸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넌 어때?"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 끝에 겨우 꺼낸 말이었습니다. 그 질문이 아이의 기분을 묻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 결과를 받아 든 아이의 마음을 묻는 것이었는지, 저 역시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 질문이 끝나자마자 아이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제가 받은 성적이면 80명 중 60등쯤 했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잘 친 거더라고요. 성적표에는 전체 등수가 나오지 않아서, 선생님께 직접 찾아가 여쭤봤어요. 대략적인 등수 범위를 알려주신다고 해서요. 사실 여쭤보는 게 너무 부끄러웠지만, 현실을 빨리 아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용기를 낸 거였는데, 지금 성적이 20등대 후반이라고 하셨어요. 상급학교 조기입학이 가능한 성적이라고요."

"진짜?"


아이들이 전체 등수를 알고 싶어 했던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과학고에서는 1학년 1, 2학기 성적을 기준으로 조기졸업(이하 조졸) 상급학교 조기입학(이하 조입) 자격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조졸이나 조입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등수 외에도 충족해야 하는 다른 조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조건을 만족하더라도, 일정 등수 안에 들지 못하면 자격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지금의 성적은 단순한 점수가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었습니다. 제 아이 역시 스스로 '잘 못 쳤다'라고 생각했던 시험이, 과연 어느 정도의 자리였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집에 도착한 뒤, 아이가 내민 성적표를 확인했는데... 말을 잇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야... 점수가... 이야... 그런데, 이게 20등대 후반이라고?"


아이가 받은 결과는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좋았고, 조입 가능성까지 엿볼 수 있는 성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에는 예상했던 만큼의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기뻐 날뛸 줄 알았는데,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갈 뿐이었습니다.

다만, 차 안에서부터 계속 이어지던 아이의 말투가 평소보다 조금 더 차분하고 또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서는 무언가 단단한 확신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공부가 틀린 건 아니었나 봐요. 이제 기말고사 준비도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조입도 한번 목표로 해보고 싶어요."


과학고에 합격한 이후, 저희는 아이가 자기주도학습으로 학교생활을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조졸이나 조입은 늘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이는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자신의 입으로 꺼내 놓았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아이가 자기주도학습으로 그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몇가지 중요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아이의 의지입니다.

수학 평균이 30점인 시험에서 100점을 받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는 그런 부류의 천재는 아닙니다. 다만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공교육 안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공부해 온 아이입니다.

돌이켜보면, 아이를 버티게 한 것은 '나는 할 수 있다'는 확신보다, '나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더라도, 일단 부딪혀 보겠다는 그 마음이 아이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아이의 유연함입니다.

중학교 때까지 통하던 공부 방식이 과학고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아이는 분명 당황한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조용히 관찰하기 시작했고, 공부법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며 스스로 해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변형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며, 아이는 짧은 시간 안에 자신만의 공부 방식을 만들어 갔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그동안 쌓아온 자기주도학습의 습관이 이런 순간에 아이를 지탱해 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셋째, 부모의 반응입니다.

고등학교의 성적은 중학교와 달리 상대적인 위치로 평가됩니다. 점수보다는 등수가, 성취보다는 비교가 더 크게 작용하는 구조입니다. 성적표를 받아 든 순간, 저 역시 마음속으로는 적지 않은 동요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아이에게 그대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아이 아빠의 경우에는, 아이의 성적표를 한참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 인간적인데? 이런 모습도 있어야지."


그 말은 결과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말이었습니다. 아이 역시 자신의 성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과학고에서는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는 순간들이 반복됩니다. 그때 아이를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힘은 성적 그 자체가 아니라,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도 된다는 감각일지도 모릅니다. 부모의 반응은 바로 그 감각을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아이가 스스로를 의심하기보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날 이후, '조입'은 더 이상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를 향해 세운 하나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 아이에게 과학고 첫 중간고사가 남긴 것은 단순한 성적이 아니었습니다. 압박감을 견뎌낸 경험도, 공부 방식의 변화도 물론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 시험은, 아이가 다시 한번 꿈을 꿀 수 있게 해 준 계기였습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든 또 하나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쉰일곱 번째 고슴도치 시선] 과학고에 입학한 아이들에게 '2학년 졸업'은 하나의 상징과도 같은 목표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나 쉽게 허락되는 길은 아닙니다. 2학년 졸업은 조졸과 조입으로 나뉘며, 대학 진학 여부에 따라 갈립니다. 조졸은 진학과 관계없이 2년 만에 졸업하는 것이고, 조입은 대학 진학이 확정될 경우 졸업하고, 그렇지 않으면 3학년으로 진급하는 조건부 조기졸업입니다. 2025학년도부터는 요건이 더욱 강화되어, 조졸 대상자는 기존 상위 20%에서 15%로, 조입 대상자는 40%에서 30%로 조정되었습니다. 여기에 등수뿐 아니라 주요 교과목의 학업성취도와 별도의 자격 평가까지 충족해야 합니다. 숫자로만 보아도, 그 문은 결코 넓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제 아이 역시 조졸과 조입을 자신과는 조금 먼 이야기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뜻밖의 시험 결과 이후, 아이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던 목표를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고, 그 가능성을 가늠해 보려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제 아이는 목표가 생기면, 그 방향을 향해 조용히 자신을 밀어가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의 결과보다, 그 이후 아이에게 생간 작은 변화들이 더 의미 있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 과학고에서 살아남는 조건




이 이야기의 첫 단추 영유아편과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를 담은 초등 편, 그리고 자기주도학습을 실천했던 중등 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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