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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수 Jan 15. 2020

연필을 깎으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소중함

  아주 잠깐만 응석을 피워보도록 하겠다. 받아줄 사람은 없지만, 정처 없는 넋두리라 하면 될 것 같다. 너무 거창한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시작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2020년이지만, 피로를 느끼는 날이 작년에 비해 많아짐을 느낀다. 올해는 무엇이든 사랑하는 한 해가 되기를 막연히 빌었지만, 그전에 나의 모든 게 메말라 비틀어지겠다는 생각도 함께 했다. 예상치 못한 자리를 맡게 되기도 했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때문인지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이 부쩍 늘어간다. 지갑 사정 역시 외면할 수 없는 일이라 짬짬이 용돈 벌 궁리도 함께 하면, 다 제쳐두고 울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여러 걱정들은 새해에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놀라지 않을 법도 한데, 이 미묘한 난처함은 마주할 때마다 당혹스럽다. 세상에.

  이 곤란함들의 크기는 거대하진 않지만, 상당히 각져 있는 편이라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샌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고 있다. 표현이 부족해 무슨 기분인지 엄밀히 묘사하지는 못할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오늘 자정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20분 전에 알게 된 기분이랄까. 설명하자면 그렇다. 여러 외적인 상황들에 의해, 그런 낭떠러지로 몰리게 되면 여러 모로 궁색해지는 것 같다. 스스로 너무 곤궁하게 지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마른세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설움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요 며칠 사이, 나는 나름의 탈출구를 찾는 밤들을 얼마간 가졌다. 그 탈출구란 어떠한 잡념도 없앨 만큼의 단순한 반복의 힘을 빌려, 나만의 휴양을 떠나는 것이다. 단순하고 아주 기계적인 행동들로 심신의 평안을 찾기 위해 탐색하는 시간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누워있지 않고도 쉬는 느낌을 낼 수 있을지, 어찌하면 집에서 아주 잠시만이라도 휴양하는 기분을 낼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말이다. 며칠 간의 연구 끝에 마침내 나에게 만족할 정도로 안정감을 주는 일을 찾고야 말았다. 놀랍게도 정말 사소한 일이다. 바로 연필을 깎는 일이다.


  사실 연필이란 것이 그 쓰임에 있어 계륵과도 같은 부분이 참 많다. 지독하게 깎아낸 연필을 쓰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뭉툭해져 있는 연필심을 볼 수 있다. 글 서두의 날카로웠던 포부가 마침내 두껍고 뭉개진 서체의 마무리로 이어진다. 자주 보살펴주어야 한다. 용두사미의 글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샤프연필과는 달리, 한 번 부러졌을 때 다시 쓰려면 깎아주어야 한다. 샤프연필처럼 몇 번 누른다고 제 기능을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 여러 모로 손이 많이 가는 친구다. 

그런 번거로울 수도 있는 필기구를 더군다나 칼로 손수 깎는 일은 불필요한 과정일 수도 있다. 내 방 한 편에는 조그마한 플라스틱 틀에 연필의 끝을 넣고 연필을 돌리기만 하면 되는, 조밀한 연필깎이가 있다. 그 옆에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신나게 손잡이를 돌리다 보면 어느새 날카로워져 있는, 은색으로 장식된 멋들어진 연필깎이도 있다. 그렇기에 손으로 연필 깎는 일을 고집하는 건 아무래도 시간낭비인 듯 보인다. 그럼에도 내가 그 시간을 굳이 사수하려는 이유는 잠시나마 연필을 깎는 그 시간의 평온함에서 출발한다. 한동안은 붙들고 싶은, 소중한 시간들에 대해 잠시 얘기해보겠다.


  다양한 출처의 소리들이 들썩이는 낮보다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소음들만이 방 안을 채울 만큼의 밤이 적당하다. 그다지 신나진 않지만 흥얼거릴 수 있을 만한 노래들을 틀고, 연필을 슥슥 깎는 거다. 많이도 필요 없다. 몇 자루의 연필이면 충분하다.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아무 말없이 연필의 누런 부분을 줄여나가면 어느새 온전히 나만의 것인 시간이 되곤 한다. 어떤 스트레스도 그 순간만큼은 잠시 뒤편으로 물러나 있는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연필을 깎다 보면 힘이 잘못 들어가 한 부분이 폭 파인다. 그 모습이 위태해 보여서 마치 금방이라도 쓰러질 고목처럼 보이기도 한다.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나머지 부분들도 조금씩 다듬어주면 그 위기는 자연스레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평온은 쉽게 찾아온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괜스레 경건해지는 것 같기도 하는데, 왜 그런지는 아직 모르겠다.

아 그건 조금 알 것만도 같다. 새 학년 새 학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의 필통에 나무향 그득한 새 연필을 굳이 손수 깎아 채워 넣어주는 부모의 마음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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