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기적 업로드에 대한 총체적 변명회
열 번째 글을 올리는 날이 되었다. 이렇게 규칙적이지 못한 글과 생각들을 누가 읽을는지도 이제는 상상이 안 간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 말부터 시작된 이 브런치 라이프에 대해 간단히 변명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다.
내가 변변찮은 글재주로 이토록 방대한 브런치의 세계에 뛰어든 건, 순전히 나를 쓰는 사람으로 길러나가기 위해서였다. 틈만 나면 뭐라도 적었던, 그래서 더욱 오래 기억될 법한 군대에서의 습관을 유지해나가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거기에 다듬어진 단어들로 쓰인 온순한 글만 적혀있던 건 아니지만.
지속해나가기 위한 마음에서 시작된 브런치 라이프는 나름 원대하게(?) 그 시작을 알렸더랬다. 마치 양질의 글을 꾸준히 써낼 것만 같은 투의 단어들로 포문을 열게 되었다. 오프라인에서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으니 가끔 들어와서 보라는 말로 지켜지지 못할 업로드를 번번이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규칙적이지 못한 연재는 이따금 언제 올라오느냐는 질문으로 돌아와 나의 게으름을 깨닫게 했다. 무책임하게 발언하는 편임을 비로소 알게 됐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나는 대외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글을 꼬박꼬박 쓰는 학생이 되었어야만 했다. 모든 것들을 완벽히 소화해내면서 일주일에 정기적으로 두 편의 글을 올리는, 무척 성실한 사람이었어야 했다. 하루는 콘텐츠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담긴 후기를, 또 다른 날에는 나의 체험과 감상이 듬뿍 묻어나는 에세이를 업로드하는 사람이 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기생충> 속 기택이 천정을 보며 하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인생이.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그를 위해 시간과 공을 들이게 된다던 오은 시인의 말과는 달리, 그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얼마 전이었다. 정기적으로 글을 꾸준히 써내는 일은 여러 모로 힘에 부치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그 탈진이 소재 고갈과 같이 글의 내적인 부분에서 기인할 수도 있지만, 체력적인 측면과 같은 외부적인 측면에서도 오는 것이었다. 세이브된 여분의 글을 계획하지 않고 이뤄지는 연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무척이나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럼에 있어, 존경하는 작가들이 참으로 많아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정기적인 연재를 해내는 작가들의 어떤 근육들에 대해 감탄을 느낀다. 특히 스스로를 연재 노동자라는 타이틀로 소개하는 이슬아 작가에 대한 무한한 경외를 보내게 되었다. 구독료를 지불한 구독자들에게 매주 다섯 편의 글을 보내는 솜씨라니. 게다가 출판사의 대표까지 맡으시다니. 이슬아 작가님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팬심은 조만간 다른 글에서 마저 쓰도록 하겠다. 아무튼 글 쓰는 일에 생각보다 많은 체력이 소모되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나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주기적인 글쓰기가 습관화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게으름에 대한 주된 이유다.
사실 각 분야의 지식과 빼어난 글솜씨를 겸비한 전문가들이 브런치 안에서 각자만의 생태계를 꾸리는 것을 보며 무력감이 조금 들었다. 나는 남들에게 교훈을 줄 만한 색다른 경험을 해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무언가를 꿰뚫을 만한 지식적인 기반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적고 타인에게 선보이는 일에 자신이 없는 편이다. 부족하다면 부족했지, 자랑할 깜냥은 되지 못한다. 그런 부끄러움들을 조금은 없애고자 브런치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그 점이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또, 완성도 있는 무언가를 제출하려면 끊임없이 돌보아야만 한다. 맥락이 너무 동떨어지는 문장이 있는 건 아닌지,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될 수 있는 표현들이 있는지 등 갖가지의 방면들을 모두 살펴야만 비로소 내 생각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글이 된다. 고도의 과정을 거쳐 불순물을 제거하고 마침내 순수한 결정체를 얻어내는 일련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온전히 글에만 소요될 수는 없는 터라 그러한 제련의 과정이 부족함을 느낀다. 그렇게 만들어진, 만족스럽지 않은 글을 올리려다 보면 또 실망감이 앞서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업로드의 날이 다가오고. 그런 순환이 계속되는데, 이게 결과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주하기 힘든 진실이다. 이렇게 시각화해서 보면 외면할 수가 없기에 적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로 어떤 문턱 앞에 좌절하여 업로드를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체득되지는 않은 브런치 라이프가 생각보다 많은 것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중 제일 큰 이유는,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적는 일이 내가 그것들에 더욱 애정을 쏟을 수 있게 한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그중 어떤 부분을 어떻게 좋아하는지를 글을 쓰며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누군가와 말할 때, 더욱 내밀한 언어로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이 그것들에 매료될 수 있도록, 더 진한 마음으로 호소하게 된다. 아마도 그 대화는 조금 더 오래 기억에 남지 않을까. 이 역시 추측이다.
그 호소가 난항을 겪기도 한다. 부족한 어휘력이나 지식 때문에, "왜 좋아하는지?"라는 물음에 대해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는 때가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어느 순간 열심히 탐색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의 다양한 견해와 해석, 그들의 지식적인 기반들을 찾아보면서, 내가 느꼈던 것들과 가장 유사한 언어들을 수집하게 된다. 배움의 시간인 것이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시간을 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막연히 떠오르는 미래를 그려보면, 무언가를 쓰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딱히 이유는 없다. 그게 일반적인 중소기업이든, 출판사든, 잡지사든, 아무튼 쓰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위한 연습의 공간이 브런치가 되길 바란다. 전문적이고 납득할 만한 글의 싹을 틔워내기 위한 토양과도 같은 역할이랄까. 윽, 써놓고 보니 너무 거창하다.
아무튼 그런 동력들로 끝내 한 주에 한 번 글을 써내는 것으로 스스로와 타협했다. 원대하게 시작한 브런치 라이프를 이렇게 모호하게 마무리하기에는 떠들어댄 게 너무 크다. 글을 쓰는 일을 습관으로 만들어 그 근육을 키워나가야겠다. 제법 단단해진 근육 덕에 글을 시작하는 첫 문장을 떠올리는 시간이 단축된다면, 한 주에 여러 편의 글을 올리는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