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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수 Mar 02. 2020

놀면 뭐하니?

유재석과 김태호 PD라면

  TV의 존재가 어떤 위기에 처했다는 건 이제는 자명한 사실이다. 콘텐츠 소비의 트렌드가 이미 지상파 방송의 것을 지나친 지 오래일뿐더러,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새롭게 부상한 플랫폼들이 인기를 얻으며 텔레비전의 의미는 더 이상 예전 같지가 않다. 그렇게 TV의 시대가 저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 대한 소중한 기억은 변함이 없다. 조금씩 커가는 시간 속에서도 나의 반경 안에 늘 존재했TV와의 우정쉬이 바래지는 않을 것 같다.


  과거와의 연결을 기어이 끊어내지 못하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무한도전>(MBC) 일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무한도전>의 레전드라 불리는 에피소드들을 틈틈이 재생하며 희희덕댈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그 시작은 물론 무모한 도전들의 향연으로 채워졌지만, 등장인물들 각자만의 캐릭터가 생겨나고 그들이 끊임없이 주고받는 말장난과 각자만의 공력으로 쌓아 올린 유머의 구도는 끝내 시너지를 내며 무한한 도전의 꿈을 키우게 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 원초적인 말장난과 웃음들로 그들과 나의 한때를 기억하기도 하지만, 이따금씩 이뤄지는 어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정신을 빼앗겼던 기억이 있다. 다른 분야에 대한 도전 역시 <무한도전>만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단순히 웃기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프로젝트를 통해 장기적으로 그들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어떤 성과들을 모두에게 선보이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게다가 그로 인한 수익은 모두 좋은 곳에 쓰이도록 기부하는 완벽한 마무리로 이어지니, 시청자들로서는 그들의 무한한 도전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도전>의 종영은 많은 이들에게 유독 아쉬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그러한 변화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2018년 2월 3일에 방영된 <하우스 IN & OUT> 편의 경우, 그간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안내했던 멤버들의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을 고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새로 영입된 젊은 멤버들과는 달리, 기존의 멤버들이 시시각각 발전하는 기술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며 기성세대의 모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무한도전>이 어느 순간 맞닥뜨린 벽이 분명 존재했음을 미루어 생각해볼 뿐이다.


  그렇기에 <놀면 뭐하니?>(MBC)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조건들로 시작하는, 완전히 새로운 변화였다. 다인 체제로 구성된 <무한도전>은 출연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이 프로그램의 매력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명의 멤버를 꾸준히 지속하기에는, 포맷의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는 데에 제약이 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를 살릴 줄 알면서도 노력을 무기 삼아 몰두하는 자세를 가진 유재석과 함께 등장한 <놀면 뭐하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무한도전>의 종영 후 김태호 PD의 복귀에 이목이 집중된 와중에, 그가 보장할 수 있는 최선의 포맷이었으리라 추측해볼 뿐이다.

<놀면 뭐하니?>는 김태호 PD가 던지는, 사소한 제안들에서 시작되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그 제안들은 때로는 너무 단순하기도 해서, 저의를 알 수 없음에 분노하는 유재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이어지는 시작들은 마침내 멋들어진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긴다. 또, 제안을 수락하고 그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들을 끝내 노력으로 이뤄내는 유재석이 보여주는 성장 서사는 그 끝을 알고 보더라도 매번 눈부시다. 다양한 형태의 난관에 엽렵하게 대처해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방송인 유재석을 만날 수 있기에, 우리는 김태호 PD가 건네는 작은 부탁들에 기대를 또 걸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제안들에 응하며 진행되는 일련의 프로젝트들이 전부 즐겁지만, 그중에서도 그들이 꾸준히 진행하는 음악 프로젝트는 유독 반갑다. 드럼 치는 “유고스타”, 트로트를 부르는 “유산슬”, 그리고 하프를 연주하는 “유르페우스”까지, 다양한 악기와 장르에 스며드는 유재석의 모습은 우리가 어쩌면 그동안 기다려왔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그 음악 프로젝트들은 단순히 음악적인 영감과 요소들을 끄집어내어 잠깐 맛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유재석이라는 진행자를 통해 우리를 그 직업적 세계와 현장으로 데리고 간다는 데에서 차별점을 가진다. 유재석이라는 객체를 통해 우리는 그 세계에 잠시 발을 디뎌볼 수 있는 것이다.

음악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무한도전>에서 격년마다 개최했던 가요제를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데, 그것과는 다른 지점이 바로 그 부분이다. <무한도전>에서의 가요제는 가수와 연예인이 함께 작업함으로써 일궈낼 수 있는 어떤 음악적 성취보다는, 여러 번의 만남을 통해 두 사람이 추구하는 어떤 가치들의 간극을 좁혀나가는 모습과 그에 대한 최선의 무대와 결과물을 시청자들과 공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최근 <놀면 뭐하니?>가 보여주는 몇몇의 음악 프로젝트들은 단순히 유재석이 어떤 직업적인 체험에 도전한다는 점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음악이 완성되기까지의, 혹은 하나의 무대가 무사히 치러지기까지의 과정과 그를 위해 많은 것들을 쏟아부은, 소개되지 못한 인물들을 조명한다는 데에 의의를 둔다.

"유플래쉬"에서는 여덟 박의 드럼 비트 하나만으로도 완성될 수 있는 수많은 장르의 결과물들. 그 뒤에서 갖은 영감과 그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을 쏟아붓는 음악인들의 모습. 그리고 제작뿐만이 아니라 녹음, 믹싱, 마스터링 등 후반 작업에 대한 얘기까지 우리는 접해볼 수 있다. 가히 대가로 불릴 만한 뮤지션들부터 음악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있는 젊은 아티스트들까지 그의 드럼 소스 하나로 연결되는 모습은 우리가 잊고 있던 어떤 열광의 본능을 깨우는 데에 충분하다. 부가적으로, <무한도전>에도 종종 출연하여 유재석과 친분을 쌓았던 유희열과 이적이라는 음악인들의 세세한 포착과 설명으로 우리는 그들의 세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건 덤.

"뽕포유"에서는 한 명의 가수가 활동하는 데에 필요한 여러 가지의 콘텐츠들이 제작되는 과정을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단순히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 의상, 대외적인 홍보 등 다양한 요소들을 조망할뿐더러, 나아가 그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결과물만을 받아들이는 데에 익숙했던 우리가 그 뒤에 가려진 인물들을 마침내 조우하는 순간인 것이다.


  나아가, <놀면 뭐하니?>의 음악 프로젝트는 그렇게 자신이 딛고 서있을 수 있는 기반에 대해 밀도높은 존경을 보낸다는 점에서 기존의 것들과는 다른 우위를 점한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지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지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유플래쉬”에서는 故신해철이 생전에 남겨둔 음성파일을 기반으로 제작한 음악을, “뽕포유”에서는 전설적인 아코디언 연주자인 심성락의 너무나도 유명한 음악들을 연주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준다. 관객과 무대라는 최소한의 조건들을 형성하고, 우리가 기꺼이 높일 만한 이들을 위한 오롯한 시간을 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제작진이 그들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헌사일 것이다.

무대가 끝나고, 유희열과 이적은 "토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이런 내용이 나갈 수 있다니 정말 놀랍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조명해줄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한 감사의 문장들은 그들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피상적으로 다루지 않고, 많은 이들이 미처 없던 부분들까지 전부 다루었다는 점에서 나온 게 아니었을까. 방송에서 시간을 할애하여 무언가에 대해 깊이 소개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이라는 방송인에 집중하며 수많은 페르소나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도 훌륭하지만, 그것들을 활용하는 점에 있어 탁월하다. 한 번의 프로젝트, 한 가지의 플랫폼 내의 캐릭터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페르소나가 가진 능력들을 유기적으로 꺼내어 자연스레 접목시켜 적재적소에 사용한다. 더불어 EBS의 연습생인 펭수와 함께 무언가를 꾸려나간다든지, KBS의 아침 프로그램 <아침마당>에 출연하여 자신의 대표곡을 선보인다든지, 이와 같은 다양한 플랫폼에서의 적응과 활용 역시 <놀면 뭐하니?>가 가진 특유의 기동성을 잘 이용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지점들이 모여서 김태호 PD의 유능한 연출력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수많은 페르소나들이 쌓이다 보면, 마침내 "유재석 유니버스"라는 이름의 세계관과 그를 통제하는 "스탠 (혹은 태호 파이기)"의 모습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해본다.


  이렇게 내가 몇몇의 프로젝트들에 매료된 이유들을 장황하게 적었다. 이 모든 것들을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을 자주 볼 수 있어 그 프로젝트들을 좋아한다는 얘기였다. 더 자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고? 자고로 음악 영재는 자신의 역량 계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음악 영재라면 끊임없이 악기를 배워서 원맨 밴드, 원맨 오케스트라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유재석과 김태호 PD라면 불가능할 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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