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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수 Apr 02. 2020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 씨에게

안녕하세요. 찬실 씨.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우리를 찾아오는 시기지만, 짬을 내어 찬실 씨의 이야기를 보고 왔어요.

찬실 씨를 만난다면 당장이라도 묻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게 알 것 같아요. 찬실 씨가 소문대로 복이 정말 많으신 분이라는 것, 그건 분명히 알 수 있었어요. 한 시간 남짓하는 시간 동안 찬실 씨의 궤적을 따라가며 생각한 것들을 얘기해보려고 해요. 서툴지만 적어보도록 할게요.


찬실 씨가 가장 빛났던 건, 금방 딛고 일어서는 모습이었어요.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랬어요. 물론 영 씨와 잘 되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그게 중요하진 않은지도 몰라요. 외로움은 사랑이 아니라 단지 외로움일 뿐이니까요. 그 공백은 진정 사랑하는 것들로 채워야만 하는 것이니까요.

아무튼, 찬실 씨가 힘을 낼 수 있었던 이유를 곤히 생각해봤거든요? 아마 그건 "생의 감각"으로 단련된 힘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주인집 할머니께서 세상을 먼저 등진 딸의 방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고 딸의 물건을 찬실 씨에게 내어준 것처럼 말이에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슬픔이었겠죠? 그럼에도 오늘 하고 싶은 일들에 매진하면서 작은 기쁨들을 얻는 모습의 할머니가 눈물 나게 멋있었어요. 영원한 숙제로 남을 수 있었던 한글을 배우는 것도, 콩나물을 손질하는 것도 말이에요. 그런 생의 감각들은 오롯이 거쳐온 세월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겠구나, 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그 모습들을 찬실 씨에게서도 찾을 수 있어서 더 반가웠어요. 처음엔 그 감각을 익히는 모습이 위태롭게 보였다가도, 갈수록 점점 의연해지는 몸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보는 내내 알 수 없이 흐뭇하기도 했어요. 찬실 씨에게도 있었을 그 감내의 시간들을 상상하니 너무 멋져서 자꾸 웃음이 나왔어요. 신기한 일이에요.


저마다 다른 이유들로 발이 푹푹 빠지는 와중에도, 알게 모르게 찬실 씨에게 힘을 주었던 건 찬실 씨의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덕분이었을 거예요. 찬실 씨의 입주를 도우며 언제든 피디님과 함께 할 거라 말하던 스태프들, 이따금 돌발적인 때가 있지만 언제나 찬실 씨를 위하며 생각하는 소피, 잠시나마 열렬히 사랑했던 영, 차갑고도 살갑게 대해주는 주인집 할머니 그리고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하는 홍콩 사람(혹은 귀신) 장국영 씨까지.

그 연대는 무척 보잘것없어 보이다가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해요. 그래서 찬실 씨의 세계가 생각보다 견고했는지도 몰라요. 마치 홍수가 나면 숲 속의 나무들이 서로의 뿌리를 붙잡아준다는 비유처럼 말이에요. 그 반가운 독려는 모이고 모여 찬실 씨가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힘을 내게 하겠죠? 좋아하는 일을 끝내 해내는 찬실 씨의 모습을 상상하니 기뻐요. 그곳이 어디든 장국영 씨가 함께 할 거라 생각하니 더욱 기쁜 마음이 되네요.


저와 함께 찬실 씨의 삶을 엿본 관객들은 다행히 찬실 씨의 세계에 쉽게 동화되었던 것 같아요. 다들 찬실 씨의 모습과 유머에 반했나 봐요, 마치 제가 그랬듯이 말이에요. 그렇게 웃던 와중에도 마지막 즈음 끝내 장국영 씨를 떠나보내는 장면에서는 함께 본 관객들 모두 침묵에 잠겼어요. 어느 누구라도 그랬을 거예요. 귀신인 장국영 씨가 없었다면, 찬실 씨의 이야기가 마냥 쓰린 이야기로만 남았을 테니 말이에요.

진정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러면서도 내가 오래도록 잘 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영화를 좋아하는 저도 그 고민 속에 같이 놓여 생각해볼 수 있어 더더욱 좋았어요. 찬실 씨를 더욱 찬실 씨답게 만들어준 시간에 제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괜히 고맙네요. 

이제는 "잘 되는 것"과 "잘 지내는 것"의 차이를 선명히 깨닫게 된 것 같아요. 그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건 가치관의 문제지만, 두 개의 가치 모두 존중받아 마땅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걸 알아요. 우리가 믿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사는 건 어떤 것에 속하는지는 확실히 답할 수는 없겠지만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노래를 저는 좋아해요. 이제는 해체한 밴드의 노래라는 조금 웃기면서도 슬프네요(엄밀히 말하자면 좋아하던 밴드의 해체가 슬픈 부분이고, 밴드의 멤버가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았다는 조금 웃긴 부분이에요). 그 노래는 이런 가사로 마무리를 지어요. “사람의 마음이란 어렵고도 어렵구나. 하지만 오늘 밤엔 잠을 자자. 푹 자자.”

찬실 씨가 푹 자고 일어날 수 있길 바래요. 그렇게 깨어나 정신이 맑아진다면, 여느 때와 같이 소피의 집에 가서 청소를 하고 잔소리도 조금 얹어하고는 까치밥이 남아있는 길목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겠죠? 시간이 나면, 주인집 할머니와 밥을 차려먹고 한글을 가르쳐드리기도 하고 말이지요. 그리고 자기 전에 찬실 씨가 가장 좋아할 법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같은 잔잔한 시나리오를 쓰는 데에 열중하다간 잠이 들겠지요. 그렇게 안온한 하루를 보내는 찬실 씨의 그 모습을 막연히 바래볼게요. 우리는 조금 말랐을지도 모르지만, 결코 시들지 않았거든요. 찬실 씨도 우리도 모쪼록 화이팅.


이따금 찬실 씨의 말과 모습들이 그리우면 이 이야기들을 보며 생각하도록 할게요. 이제는 흐릿해져 가는 장국영의 모습을 찾으려 때도, 찬실 씨의 세계에 대한 이 이야기를 꺼내볼래요. 그럴 때마다 처음 접한 것마냥, 깔깔대며 웃다가도 괜히 뭉클한 마음이 될 제가 눈에 그려지네요. 아무렴 어때요.

아 그리고, 오즈 야스지로와 크리스토퍼 놀란 사이의 간극을 좁혀나가며 사랑해볼게요. 어쩌면 양 극단에 서있는 두 감독의 이름이지만, 모두 영화라는 유희 안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러면서 저는 찬실 씨가 끝내 완성했을 영화에 대해 생각을 해보기도 할게요. 섬세한 포착과 대담한 연출 그 사이에서 고민하며 찬실 씨가 완성했을 시나리오와 영화를 망망히 기다리도록 할게요.


날이 점점 포근해지고 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찬실 씨의 소식을 만날 수 있길 바랄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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