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한차례 도난 사건이 있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중부 지역의 작은 마을 블루아의 고성 입구에 차를 세우고 박물관을 다녀왔던 날이었다. 비는 점점 거칠어져 우산을 깊숙이 내려써야 했다. 한 시간 남짓 시간을 보내고 차로 돌아왔을 때 렌터카 앞유리는 파편이 되어 도로 위에 흩어져 있었다. 신기한 듯 깨진 창문을 바라보고 서있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그저 흐린 날의 골목길이었다. 차 안에 있었던 모든 짐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숱한 여행길에서 도난을 당한 첫 사례가 되었다. 짧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몇 대의 카메라와 렌즈들을 잃어버렸다는 것보다 오래도록 사용해 오던 노트북에 담긴 사진의 분실이 더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사진이라는 물리적인 것보다는 그 사진들 속에 담아둔 순간의 시간들이 사라졌다는 것이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사라져 버린 사진들을 떠올릴 때면 기억의 한 부분을 잃어버린듯한 아쉬움이 들곤 했다.
대부분의 여행길을 혼자 나서야 했던 날들은 매 순간이 나와의 싸움이었다. '이것이 그저 여행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도 묵묵히 손에 쥐어냈던 카메라. 때론 지겹도록 길게만 느껴졌던 날들도 있었다. 어쩌다 날이라도 흐려지면 나머지 일정이 부담스러워졌다. 그렇게 나에게 여행은 고독한 일의 시작이었다. 그 지겹던 여행이 무덤덤하게 몸에 익숙해져 갈 무렵 내 곁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누구 하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정해진 약속도 없었다. 그저 길을 가다 늘 만나던 이웃처럼 사람들을 바라보고 인사하고 함께 웃었다. 표정과 몸짓, 한숨 섞인 이야기들까지 함께 나눌 때면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떠나면 다시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떠나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은 아마도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사진은 하나의 만남을 이어주는 수단이자 훗날 소중했던 기억을 되살려주는 안전장치처럼 변해갔다.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진은 한줄기 선이 되어 서로를 이어주는 소통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신기하게도 수년간 담아온 사진 속에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그날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사진이 좋다. 여행도 좋다. 하지만 그 여행 속에서의 만남들은 더더욱 좋다. 그런 만남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이 내 손에 들려진 사진이라는 것에 나는 즐거워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한 순간 한순간이 모두 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