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쓴다.
어떠한 이유로든 배움의 환경에 자신을 두지 못한 사람의 무지는 가슴아프다.
매주 강의를 나가는 노인복지센터의 어르신들은 남녀로 구분된다.
그 두 그룹은 교육받은 자와 배우지못한 자로도 나뉜다.
가슴아픈 일이다.
펜을 처음 잡아보는 어르신이 계실정도라니..
여자 어르신 중에는
은행가면 떨리고 병원가면 무섭다고 하시는 어르신도 계신다.
글자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이 애잔하다.
지금이라도 배우면 계속 모르는 것보다 낫다고
못배운것은 부끄러운게 아니라고 매주 용기를 드려야한다.
오빠 등록금 벌기위해 가발 공장, 버스 안내양으로 밥벌이를 했던 이야기들은 소설에만 있는게 아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내몰려야했던 고단함이 보상은 커녕 나이들어 제 이름자 하나도 못쓰는 늙은이가 되어 남았다는 말씀은 아픔에 원망을 더한다.
이기적으로 살 수 없었던 시절의 딸들의 일부는 무학의 문맹이고, 물려받은 책으로라도 글 공부를 좀 했던 어르신도 중학교가 최고 학력이다.
반면 남자 어르신들은 교육대 출신의 교사로 퇴직교장선생님과 농학박사님도 계신다.
남자 어르신은 고등교육을 받은 어르신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글을 쓰는 사람이 해야할 일은 약자의 편에 서야 하는 일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
이들을 대변해야하고 억울함과 원망을 불쾌함으로 풀어서는 안된다. 그것이야말로 순수한 희생이 한으로 남는 어리석은 일이다.
그들은 모두 격변하던 시대의 희생양이고 그들의 희생덕분에 이 사회와 국가가 기강을 세울 수 있었다는 인사를 반드시 남겨서 그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게 쉬운 말로 여러번 감사해야한다.
못배워서 억울한 세월에 한만 남아서는 안된다.
고생과 수고덕분이라고 수십번 수백번 들려줘야 한다. 배움에 늦음은 없음을 세뇌시켜드려야 한다.
늦게라도 배움의 보람을 느끼면
지나간 아픔도 희석시켜 떠내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베껴쓰고, 나의 이야기를 쓰는 일은 이토록 낮은 곳에서 소리내지 못하는 사람의 서사를 대변하기 위한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