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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관 Jul 09. 2022

해부대 위에서 잠시 누구인가 하면서

  마트료시카를 구경하고 싶었다

  러시아 인형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인형 안에 인형이 계속해서 나오는  

 

  너는 마트료시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    

  오랜 친구에게 말했다

  너는 고래가 반복되는 바다 같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너는 물었고

  너는 또 되물었다 내가 대답을 안 했기 때문에    


  우리는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며

  창밖 풍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헤어지기 전에 내가 다시 말했다

  너는 고래가 반복되는 바다 같다고    


  노을이 환히 바라보이는 길목에서

  나를 배웅하던 너는

  마치 지나버린 期限처럼

  싱겁게 웃으며 서 있었다    

  길목을 돌아 너를 벗어나서야 네가

  고래가 반복되는 바다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너는 반복되는 창에 가까웠다   

 

  그렇게 우리는 희박한 채 서 있다

                    *    

  버스 창밖으로    

  멀리 노을이 졌다    


  나무와 나무와 새

  사이에서    


  노을이

  나처럼 구는 것 같은    

                 *    

  해가 왜 지는지도 모르고 안다고

  어쩔 수도 없이 비좁은 밤은 오고    


  나는 돌아누워

  마트료시카 마트료시카 마트료시카

  세 번 불러보았다 그렇다고

  누구를 부르는 것은 아니었고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 돌아보길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밤은 방마다

  모양을 달리 하기 때문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기다림이 없어도

  찾아올 것은 찾아온다는 믿음 때문에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를 다시 읽고 싶었다

  한밤의 북소리를 다시 읽고 싶었다

  읽기 전에 고래가 반복되는 바다는

  누구에게 어울리는 말인지

  누구라도 붙잡고 묻고 싶었지만,

  이 밤 이곳엔 나뿐이데    


  어디선가 마트료시카 마트료시카 마트료시카

  세 번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목소리인 듯싶었다

  네 목소리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는 마트료시카를 구경하고 싶었다

  인형 안에 인형이 계속해서 나오는,    

  고래가 반복되는 바다와

  반복되는 창이 영원히 반목하는    

  그런 꿈을 구원하는―     

  우리는    

                 *    

  이미

  꿈속에 와 있는 것 같다    

  텅 빈 잠 속에 스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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