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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관 Sep 22. 2022

버스에 노을을 두고 내렸다

버스에 노을을 두고 내렸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두 고 내린 것도 없고, 혹여나 잃어버릴 만한 마음도  가진 적도  없었는데, 괜히 호주머니를 뒤적이게 되는 것은


부쩍 마르고 있는 마음 탓일지도 모르겠다. 손에 잡 히는 것도 없고 표현할 어떠한 언어도 없이 마음 한 구석 허 전한 요즘, 자꾸 마음이 진다. 마치 수원지 를 잃어버린 강물처럼, 셀 수 없이 반짝이는 은빛 수면같이.


떠나버린 버스를 한참 쳐다보았다. 다행히 신호등에 걸려 서 있는, 마치 두고 내린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돌아서서 손짓하는, 그런 모양처럼 느껴지는.


마음이 지고 있다니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생각하면 도무지 붙잡히지 않는 마음이 내 몸 안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마음이란 것이 처음과 끝을 알기 어려 운, 끝과 끝을 맞잡고 펴서 잴 수 없는 느닷없이 다가오 는 새벽처럼,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체념하면서도 시시 각각 밀려드는 의구심은 어쩔 수가 없었다. 퇴근 시간이 막 지나 거리는 부산하고,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언제나 외로워 보이는 가로등처럼, 딱 혼자만큼 어두워 지는 사람들로 거리는 가득하고, 그들의 지친 등이 괜스 레 초인종처럼 느껴져서는,


  ‘버스에 노을을 두고 내렸다’ 나는 지금 왜 이런 생각이 갑작스럽게 떠올랐는지 되짚어보고 있다. 버스 창밖으 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았을 때 무언가 오래 생각했거나 아니면 떠올랐던 마음이 기억나지 않아 자책하는 그런 마음도 아닌데, 별스럽지도 않은 이 문장이 왜 자꾸 맴도 는 걸까. 이제 추억해야할 기억이 더 많은 나이가 되어서 일까 아니면 쌓아 놓은 추억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기억 나지 않거나 떠오른 추억들을 오래 붙잡아 다독일 만큼 다감한 감성 같은 다정한 마음들이 메말라버린 것일까 하는, 이런 생각을 하면 조금은 슬퍼지고,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컴퓨터 속에 오래 묵혀놓은 조각난 파일들처럼 조각나버린, 금세 사라져버리는 어 떤 포말 같은, 흘러가는 구름의 어느 한 구석 같이  꽤나 좁고 길게 맺혀 있는 것들로 아득한 그런 장면들. 아직 살아갈 날은 많은데 무언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 그런 막연한 생각들로 가득한 나이, 그리고 창밖엔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너무 어린 내가 있던 그때,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춥고 좁은.


적막. 돌연 적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리는 사람들로 넘치고 시간이 멈춘 것도 아닌데도 숲속 어느 구석, 낡은 벤치에 앉아 오래도록 무언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쓸쓸해보이는 누군가의 등과, 위태롭게 바람을 견디는 혹은 야위어 떨어지는 잎새들− 쓸쓸해져서 다시 시작되는, 그런 마지막과 같이


한번은 넘어져야 배울 수 있는 자전거와 같이, 다시 일어 나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마지막과 같이− 다시  처음을 향하는, 목적지보다 먼 출발지로 향하는, 그런 생의 어떤− 그러니 아득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래, 어쩌면 나는 막 시작하려는 마지막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처음으로 향하는, 어느 계절의 내가, 가장 빛났던 어느 순간을 향하는, 예민하고 금세 사라져버릴 것 같고 다시는 상처주지 않고 다정함도 잃지 않는, 오래도록 추억할 아직 남은 시간을 향해서 그리고 결코 공유되지 않을, 지독하게 빛나는 우리 각자의 홀로에 대해서


버스에 노을을 두고 내렸다

이 문장을 몇 시간째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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