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벽이 되고, 나아가면 길이 된다.
작은 배 ‘포포’는 매일 아침 항구 끝에 서서 먼바다를 바라봅니다. 수평선 너머에는 일렁이는 파도와 고래들의 노랫소리가 가득하다는데, 포포의 발목을 붙잡는 무거운 사슬이 있었지요. 바로 항구 입구를 자욱하게 덮은 ‘앞을 볼 수 없는 뿌연 안개’였어요.
“안갯속에는 배를 한입에 삼키는 괴물이 살고 있을 거야.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어버리고 말 거야.”
포포는 자신의 몸에 쌓인 먼지를 보며, 나아가지 않는 배는 그저 낡아가는 나무판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자신이 초라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포포의 눈앞으로 거대한 안개 장막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바다는 지워졌고, 세상은 온통 희뿌연 침묵 속에 잠겼어요. 멈춰 서 있는 포포에게 안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과 같았습니다.
그때, 앞을 보지 못하는 늙은 갈매기가 포포의 돛대에 내려앉아 속삭였어요.
“포포야, 세상이 지워진 게 아니란다. 안개는 지금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바다를 보호하기 위해 잠시 내려온 부드러운 커튼일 뿐이란다.”
‘정말 그런 걸까? 만약 저 안개가 괴물이 아니라 정말 커튼이라면, 그 너머에는 나를 위해 준비된 눈부신 무대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설렘이 차올랐습니다.
포포는 낡아가는 나무판자로 남기보다, 비록 길을 잃더라도 한 번은 파도를 가르는 배이고 싶었습니다.
‘그래, 한 번만 나아가 보자. 저 안개가 벽인지 커튼인지, 내 몸으로 직접 열어보는 거야.’
포포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아주 작은 용기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푸르르, 탁. 포포는 떨림을 안고 천천히 안갯속으로 머리를 밀어 넣었습니다. 눈을 질끈 감았지만, 배 밑의 물결은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느껴졌지요.
안갯속은 상상했던 것처럼 차갑거나 무섭지 않았어요. 오히려 보이지 않기에 더 많은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지요. 배의 나무판자에 닿는 물방울의 보드라운 감촉,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밀려오는 고래의 깊은 울림... 포포는 눈을 감은 대신,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포포가 용기를 내어 눈을 뜨자, 그제야 눈부신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멈춰 있을 땐 장벽이었던 안개 입자들이 햇살을 머금고 사르륵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공중에 흩뿌려진 수천만 개의 은빛 보석이었고, 마치 바다가 아닌 하늘 위를 흐르는 찬란한 윤슬 같았습니다. 나아가는 포포에게 안개는 이제 더 이상 벽이 아니라, 눈부신 길이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안개 장막이 걷히고, 포포의 눈앞에 찬란한 금빛 바다가 펼쳐졌습니다. 파도는 마치 오래 기다렸다는 듯 윤슬의 박수를 치며 포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포포는 깨달았습니다. 안개를 뚫고 지나가야만 빛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는 그 모든 불확실한 순간 속에 이미 빛이 함께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멈춰 서면 두려움은 벽이 되지만, 한 걸음 나아가면 그 두려움조차 우리를 안내하는 빛나는 길이 된다는 것을 말이에요.
[에필로그]
나아가지 않는 배는 낡아갑니다. 우리 마음에도 먼지가 쌓이는 이유는 어쩌면 '완벽한 확신'이 생길 때까지 스스로를 항구에 묶어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떨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엔진이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하루, 막막함이라는 안갯속에서 고생한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엔진 소리를 충분히 사랑해 주었나요?
#추천 태그: #거울 #불확실성 #용기 #브런치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