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유독 당신의 가시를 세우게 만든 누군가가 있었나요?
오늘 하루, 유독 당신의 가시를 세우게 만든 누군가가 있었나요?
늘 안개가 자욱한 도시의 가장 구석진 골목, 그곳에는 사람들의 등 뒤에 숨은 '그림자'만을 수집하는 화가 카인의 화실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에는 탐욕의 냄새가 진동하는군. 재물에 눈이 먼 늙은 쥐 같은 모습이야.” 카인은 욕심 많은 상인의 초상화 아래,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탐욕의 그림자를 그려 넣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는 시기심으로 가득 차 뒤틀려 있네. 아름다운 장미를 시들게 하는 가시덤불 같아.” 거만한 귀부인의 발치에 독을 품은 듯한 시기심의 그림자를 새겼습니다.
카인은 타인의 어둠을 심판하듯 그려낼 때마다 묘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세상의 모든 위선을 꿰뚫어 보는 가장 투명한 눈을 가졌다고 믿었지요. 타인의 어둠을 들춰내는 자신의 행위가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정직함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어느 맑은 오후, 카인은 마침내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화실 중앙에 놓인 커다란 거울 앞에 섰습니다. 햇살이 창가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거울 속 카인의 등 뒤에는 아무런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도 안 돼. 그림자가 없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어!”
순간 카인의 마음속에 묘한 공포와 함께 기이한 갈망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타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그림자조차 없는 고결하고 깨끗한 존재'이기를 바랐지만, 동시에 나만이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카인은 떨리는 손으로 붓을 들었습니다. 타인에게는 거친 먹물을 뿌려대던 그였지만, 아주 연하고 맑은 물감을 칠해 나갔습니다. 고결하고 투명한 그림자를 억지로라도 만들어내어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타인의 그림자를 그릴 때 사용했던 검은 물감들은 캔버스 위에서 자꾸만 미끄러졌습니다. 아무리 진한 검은색을 칠해도, 캔버스는 마치 거부하듯 하얗게 빛날 뿐 그림자는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화실 구석에 쌓여 있던 수많은 초상화 속 그림자들이 일제히 카인을 향해 속삭이기 시작합니다.
“화가여, 당신이 우리에게 그려 넣은 이 어둠들이 정말 우리의 것뿐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정직'이라는 이름을 빌려 우리를 비난하며, 당신 안의 어둠을 숨길 도피처를 찾고 있었던 건 아닌가?”
상인의 탐욕스러운 그림자가 꿈틀대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사실 누구보다 명성을 원하고 돈을 사랑했지. 그래서 내 안에서 그 모습을 발견한 거야. 당신이 만든 그 '투명한 그림자'라는 가짜 안도감 뒤에 숨어서 말이야.”
귀부인의 시기 어린 그림자가 비웃었습니다. “당신은 재능 있는 젊은 화가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그들의 붓을 꺾고 싶어 했잖아. '나는 정직하게 비판할 뿐이야'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말이지. 그 뒤틀린 마음이 나를 완성한 거라고.”
카인은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하지만 초상화 속 그림자들은 캔버스를 뚫고 나와 그를 에워쌌습니다. 평생 타인에게서 찾아내어 '판단'하고 '비난'했던 그 모든 시커먼 어둠이, 사실은 카인 자신이 '정직함'이라는 가면 아래 꼭꼭 숨겨두었던 진짜 그림자들이었습니다.
“내가... 내가 바로 그 괴물들이었단 말인가? 내가 저들과 다르다고 믿었던 그 오만이 나를 이토록 흉측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카인은 떨리는 손으로 붓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거울 속 자신의 공허한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타인의 잘못을 들춰내며 '나는 너희보다 정직하다'는 우월감을 느끼는 동안, 정작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검게 타들어가고 있었는지 보았습니다. 처음으로 캔버스를 향해 비난의 붓질이 아닌, 발밑에 고인 자신의 초라하고 어두운 진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당신들을 미워했던 건, 내 안의 못난 나를 인정하고 저들과 섞이는 것이 죽기보다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나 또한 저들과 다르지 않은, 어둠을 가진 인간일 뿐인데 말입니다.”
그 순간, 카인을 위협하던 그림자들이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그의 발밑으로 조용히 잦아들었습니다. 그리고 비어있던 그의 캔버스에는 더 이상 날카롭고 흉측한 어둠도, 인위적인 투명함도 아닌, 부드러운 빛과 그림자가 조화롭게 섞인 그대로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제 카인은 더 이상 그림자를 수집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둠 속에 발을 담그고서도 기어이 빛을 향해 고개를 드는 인간의 그 아프고도 다정하고 평온한 그림자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에필로그>
세상에 완벽하게 투명한 인간은 없습니다.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눈부신 빛 아래 살아있다는 정직한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심리학에는 '투사(Projection)'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내 안의 감당하기 힘든 어둠을 타인에게 던져버리는 본능적인 방어기제죠.
타인을 향한 날 선 비난은 어쩌면 '나는 저들과 달라'라고 외치고 싶은 필사적인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카인이 억지로 그려 넣으려 했던 가짜 투명함보다, 발밑에 고인 초라한 진짜 그림자가 훨씬 인간적이고 아름답습니다.
타인의 그림자를 인정하는 일은, 결국 오랫동안 외면해 온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용서하는 일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유독 당신의 가시를 세우게 만든 누군가가 있었나요?
그 불편함의 끝을 천천히 따라가 보세요.
그곳에는 아마도 당신의 사랑을 기다리며 길을 잃고 헤매던 '또 다른 나'가 서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 어둠조차 당신을 이루는 소중한 일부임을 다정하게 인정해 주는 건 어떨까요?
타인이라는 거울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정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그림자도 나의 한 조각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와 질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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