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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ug 02. 2019

차 한 잔 하실래요?

“차 그릇은 산의 침묵, 하늘과 땅의 말들이 숨을 쉬는 마음을 담은 그릇이므로 텅 비어 있는 것이 좋다.”  

  -정목일의 ‘차 한 잔’ 중에서




비어야 산의 마음이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일상에 쫓겨 바늘 하나 꽂을 여유가 없다면 길 없는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여백이 있어야 무언가 담게 되고 공복의 시간이 있을 때 생의 의욕이 꿈틀거린다. 밥상과 밥상 사이에 놓인 빈 찻잔은 내게 조용히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 주리라.


하늘이 한층 높아졌다. 구름이 그림을 그리는 파란 하늘 아래 찻자리를 펼치고 싶다. 국화꽃 한 송이 꺾어두고 다식 몇 점 얹어 ‘차 한 잔 할래요?’ 벗을 부르면 좋으리. 따뜻한 차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고 싶은 날이다. 



차 맛은 요란하지 않고 달빛처럼 은은해서 좋다. 찻잎이 우러나와 몸속에 스며드는 동안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마음도 우러나와 통하는 걸 느낀다. 애써 꾸미지 않고 순수한 마음이 서로에게 배어들어  부드럽고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우리다’는 말이 겁나게 좋다.

옛 그림 가운데 차를 우리는 풍속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당 김은호의 그림 속에 노인은 무슨 생각에 젖었는지 멀리 시선을 보내고 있다. 새들이 둥지로 날아드는 황혼녘, 바위에 기대어 화병에 꽂아둔 국화꽃에는 정작 관심이 없는가. 잎 지고 성글어가는 때 몇 송이의 국화꽃 향기가 마음을 흔들어놓았는지 놀빛에 젖어 말이 없다. 아이는 찻물을 끓이느라 연신 풍로에 부채질을 하는 걸 보니 누구를 부르기라도 했을까? 나처럼 차를 함께 마실 사람이 그리운 것일까. 


차를 마실 때는 다식을 몇 점 곁들이면 눈과 혀가 즐겁다. 문양 하나도 예사롭지 않아 단청이나 수복강녕이라든지 물고기와 태극문 같은 걸 찍어 소원을 담고 정성을 담아 맛과 멋을 더했다.


  하략



                                                 -리더스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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