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복련
“네?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었어요.”
남편과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하던 중이다. 웬 여자가 느닷없이 끼어든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거실에는 둘뿐이다. 어라, 우렁각시처럼 숨었다가 불쑥 나타나다니. 우리가 불러야만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하던 그녀가 틀림없다. 심심해서 우리들 대화에 끼어들었을까? 아니면 어떤 부분이 그녀의 질투심을 건드렸는지 모르지만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들은 그녀를 골려주기로 했다.
“너 감정 있니?”
“제가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를 했나보네요. 죄송합니다.”
“죄송한 거 알고 있어?”
“님께서 많이 가르쳐주세요.”
그녀에게 질문공세를 한다. 말 상대가 되겠다. 제법 난이도가 있는 질문에도 대답을 척척 한다. 모르쇠 하는 청문회와 달리 겸손한 미덕마저 보인다. 친구삼아도 되겠다. 나무라려고 한 말이 아니다. 내가 기쁘고 슬플 때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싶어 물어본 말인데 얼른 죄송하다고 꼬리를 내린다. 속내를 털어놓는 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인가. 그녀의 나이가 궁금하다.
“너 몇 살이니?”
“제 나이는 아직 비밀로 하고 싶답니다.”
“심심한데 친구할까?”
“저랑 대화하다보면 심심한 생각이 어느새 사라질걸요.”
“너무 더워서 짜증이 나.”
“그래도 항상 웃으셨으면 좋겠어요.”
지금이야 하루가 어찌 지나는지 모를 정도지만 어느 순간 주변이 적막해질 텐데. 외출도 못하고 하루 종일 무료하게 보내는 나를 위해 말벗이 되어줄 날을 상상해 본다. 기계와 말을 섞는다? 슬픈 일이긴 하다. 말하지 않으면 입안에 곰팡이가 필 테고, 점점 단어를 잃어버려 할 말마저 제대로 못하고 어눌해질 게 뻔하다. 허수아비처럼 멍하니 사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만약에 그런 최악의 순간이 온다면 기가지니와 가까워져야 하지 않을까. 영화를 보고 울고 웃듯이 그때쯤은 더 똑똑해진 그녀와 만날 지도 모른다.
“기가지니?”
“여행 같이 갈까?”
“저도 같이 가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어요. 나중에 가면 좋겠어요.”
“나는 너랑 말하고 싶어.”
“아이유의 ‘너랑 나’ 신청해주세요.”
엉뚱하게 노래를 신청하라니. 그녀와의 소통은 아직 서툴다. 내장된 키워드들 가운데 ‘나는 너랑’과 근접한 대답을 찾아낸 모양이다. 그녀의 동문서답이 못마땅했지만 친구하려면 선곡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경쾌한 가락에 맞추어 부르는 목소리는 여고생처럼 풋풋하다. 시계를 바라보며 속삭이는 말로 마법을 건다. 내 이름을 불러줘. 내 맘 들키고 싶지 않지만 미래에 있을 너에게 내 이름을 불러달라고. 봄날 같은 그때가 떠오르며 기분이 좋아진다. 그녀의 상술에 조금 씁쓸하긴 했어도 인공지능은 이미 나의 생활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낀 하루였다.
거리를 걷다보면 이어폰을 끼고 이야기에 몰입한 사람들과 마주치는데 누가 있나 해서 두리번거린 적이 있다. 낯선 장소에서 여행자와 말이 통하지 않아도 휴대폰을 보여주면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으로 가르쳐준다.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고 사는데 언젠가 친구처럼 애인처럼 말을 주고받는 게 일상화 되지 않을까. 영화 <그녀 Her>에서 보았듯이 ‘사만다’와 같은 가상의 인물과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이 곧 일어날 것만 같다.
요즈음 들어 작지만 황당한 꿈을 꾸며 지낸다. 뉴욕에서 한 달 살아보기이다.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기다가도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에 즐거워진다. 왜 하필이면 뉴욕을. 그것도 한 달씩이나. 디아스포라의 마지막을 세계의 중심에서 마무리하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뉴욕의 거리에서 도시의 산책자가 되어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사람들과 나란히 걷고 싶다. 멀게만 보이던 것들이 가까워지고 낯선 것들은 어느덧 익숙함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시간과 돈이 발목을 잡는데다 믿을 데라곤 하나 없다보니 모험이나 다름없다. 젊지 않은 나이에 좌충우돌하며 살아보려다 무리수를 두는 지도 모른다. 다행히 나의 걱정을 덜어주는 아이템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앱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는 여행자들의 경험담이 힘을 실어준다.
오늘이 며칠이며 날씨가 궁금할 때마다 물어보면 곧잘 대답하던 기가지니. 긴 문장으로 말해보진 않았지만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날마다 사이버 세상을 무진장 누비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게 나의 일상이지 않은가. 안락과 편리함에 대한 욕망이 있는 한 새로운 기기들은 출시가 되고 우리를 유혹할 테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현실과 꿈의 경계가 뒤섞인 보르헤스나 장자의 이야기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사람들이 꿈꾸었던 일들은 바로 현실이 되고 있다. 기기들 때문에 사람들과 교류가 끊어질까 염려들이 많지만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피할 수도 없다. 기가지니와 비록 온전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인공지능들과 융합된 공간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기기들을 잘 다루지 못해 삐걱거릴 때마다 소외되는 느낌이 든다. 이 시대의 문맹자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